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 살야야만 했는지 참으로 후회스럽다 .
지금부터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7살때
나의 어머니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나에겐 위로 3살 많은 누나와 3살 적은 여동생이 있었고 나는 종가집의 장손으로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풍족한 생활의 나날이였으나 어린나이에 갑자기 엄마잃은 슬픔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고 당시 4살이던 여동생은 무주에 있는 시골할머니 댁으로 보내졌고 서울에서 대학교에 다니던 고모님이 집으로 오셨다.
매일밤 엄마가 보고싶어 누나와 함께 울기도 했고 그럴때면 고모님도 옆에와서 같이 울다가 잠들곤했다 그로부터 2년뒤 나의 아버지는 재혼을 하셨고 새어머니는 나와 동갑네기 여자아이를 데리고 오셨다. 새어머니는 우리들에게 잘 대해주셨고 아버지의 가구점 사업도 번창하셔서 차츰 우리집은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3학년까지는 착실히 공부도 잘했으며 전교에서 3,4 등 정도 , 그러던 91년 6월 아버지또한 고속도로에서 3중추돌사고로 돌아가셨다 .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 우리집의 슬픔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몆달후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올라오셔서 고모 ,삼춘들과 가족회를을 하였다.
아직 새어머니는 젊으시고(당시 30 후반) 아버지와의 자식도 없고하니 아버지의 재산을 정리해서 줄 터 이니 새출발 하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시고 새어머니는 새출발 하려는 마음이 없다며
제발 쫒아내려 하지는 말아달라고 울면서 할머니께 매달리시는 모습을 보고
새어머니께 감사했다 .앞으로 더 잘하고 싶었고 새어머니가 불쌍한 생각까지 들었다 .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려가시고 난후 얼마지나지 않아
나는 보지 말아야 할것을 보았다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와보니 새어머니와 아버지 친구분이셨던 ( 김(ㅇㅇ청량리시장과일가게운영)하고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
너무나 혼란스럽고 주체할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말을 할수도 없었다 .
그때부터 나는 점점 방황하기시작했고 비툴어져 갔다 .
공부는 하기 싫어졌고 집도 싫었으며 점점 학교가는 날보다 결석하는 날들이 많으며 만나는 친구들도 바뀌였으며 처음엔 술과 담배를 접하다가 교무주임하테 발칵되어 유기정학 을 당하고 간신히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겨우 들어갈수 있었다 . 활발했던 성격은 난폭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자연스럽게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싸움과.술과 담배, 그러다 본드흡입.부탄가스흡입 까지 하게되고 다시 유기정학 , 무기정학 ,고등학교 2년 중퇴를 하고 결국은 춘천의 소년원까지 가게되었다 .
그후로 새어머니의 남자들을 여러차례 보게 되었고 새어머니의 대한 복수심으로 새어머니가 데리고온 동생을 나쁜친구에게 소개하기도 했고 새어머니의 지갑을 훔치다가 새어머니의 신고로 결국엔 2년6개월의 대구 교도소 수감생활 이 시작되고, 수감중 미안하다는 잘못했다는 편지를 여러번 했으나 연락도 면회도 오지않자 새어머니의 대한 나의 마음은 더욱더 분노만 짖어가고 사람들의 대한 불신도 날로늘어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출소 1달쯤 남겨놓고 할머니댁에서 자라던 여동생의 사망소식을 듣고
오빠로서 보살피지 못하고 주체못한 나자신이 후회도 밉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수감중인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
출소후 새어머니께서 누나에게 유산이며 이것저것 정리하자고 여러번 연락이 왔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어린 나를 키워 주시고 정이 들었던지라 많은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했다 .
나는 작은아버지 소개로 물류센타에 취직을 하였고 누나의 결혼을 앞두고 동생이 죽었을때 새어머니께서는 오지도 않고 결국엔 할머니에겐 알리지도 못하고 작은아버지들과 고모님이 화장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더 이상 새어머니를 용서할수도 없었고 , 가족관계 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해서 모든것을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아버지의 유산을 정리하려고 하니 96년 부동산 특가법때 부동산은 다 정리하고 그나마 남은 집마저 세를 주고 남는건 6천여만원 중에 누나와 나에게 돌아온건 2500만원 이였다 .결국엔 호적까지 정리를 하고 나니 시원함보다는 서운함과 나에 대한 자책감이 더해만 갔다.
그러던중에 우연히 수감생활중 같은방에서 생활했던 서 ㅇㅇ를 만나게되고 가끔만나다 보니
다시 술과 마약에 손을 대게 되어 그게 없으면 아무것도 할수없는 지경에 이르러
누나에게 연락하여 자수를 하였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새사람이 되어보려고 청송교도소로 보내달라 간청해서 다시 1년6개월의 시간을 허비하고 나와보니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나에게는 쌍둥이 조카가 있었으며 나이드신 고모님은 결혼도 안하시고 다시한번 그러면 죽어버리겠다고 난리치시고 , 참으로 한심한놈 이였다 .
특별히 하는일없이 빈둥대다가 고모님의 손에 이끌려 광명원과 인연이 되어 정묵 스님을 뵈옵고
왜 그렇게 서글펐는지 스님손을 붙잡고 체면이고 뭐고 다팽개치고 한없이 눈물을 쏟아내었다 .
한참을 울고나니 마음이 후련하고 무언가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
지금생각해도 무엇이였는지 는 모르지만 ...
그날부터 나는 정묵스님 시키신대로 진심으로 돌아가신 조상님들을 위해 어머니.아버지를 위해 먼저간 불쌍한 내동생을 위해 기도를 하였고 천도재를 지내주었다 .
재를 마치고 백일기도가 끝이 날 즈음 꿈에 승복을 입고 웃고있는 동생을 보고 정묵스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 처사님 동생이 부처님께 귀의했어요 축하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스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
다시 스님한테 백일기도를 하사받고 기도 열심히 하다보니 고모님친구분 회사에 취직도 되었고
여자친구도 생겼습니다 .
감사합니다 . " 정묵스님 " 늘 건강하십시요.
첫댓글 과거는 다 지나간것이고, 항상 용기 잃치마시고,힘내세요. 저도 이카페를 자주봅니다. 스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꼭 만나보고 싶습니다.
살아행동이 죽어행동이고 죽어행동이 살아행동이니 앞으로도 계속기도 많이하시고 복도많이지어시고무량공덕쌓아가시고 성불하세요 참 스님 존경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뜻대로 잘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역시나 불운했던 과거로 몸과 마음고생 했지만 지금은 행복합니다 .스님말씀대로 기도많이하세요.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복 많이 지으시고 성불하시길 기원합니다.
부럽네요.. 추카드리구요.. 부디 저에게도 올해 꼭 발복되기를...
축하드려요. 저도 스님을 꼭 뵙고 싶네요.~~~
부처님 가호속에서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_()_
이 글을 읽고 있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요..... 이젠 정말 행복하게 잘 사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님이 앞날에 좋은일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