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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김인영
S#1. 숲 속 / 낮
짙푸른 6월의 숲. 맑은 하늘, 햇살이 수풀사이로 반짝거린다.
지치고 힘든 발걸음 하나, 휘청이며 걸어온다. 비틀비틀 힘들게 옮기는 두 발에 풀잎들이 채인다.
발을 헛디뎌 돌이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초등학교 6학년 소년(준섭), 탈진한 모습. 식은땀으로 온몸을 적신 채 비틀대며 걸어오다 풀썩 주저앉더니 옆으로 쓰러진다.
쓰러져 움직이지 못한 채 하늘을 본다.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비춰오는 햇살은 따갑고, 사물이 흐려져 잘 보이지 않는데,
서서히 사람의 형체가 흐릿하게 다가오며 손을 내밀고, 소년도 그 쪽으로 손을 내미는 데에서..... 타이틀.
S#2. 야외 공연장 / 낮
여의도 공원. '런치 음악회'라 쓰여진 플래카드,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셔츠에 타이를 맨 직장인들과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들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보거나 자판기 커피를 들고 서서 연주를 듣고 있다.
재영, 한 쪽에 서서 공연을 보다가 시계를 보고 목을 쭉 빼고 이리저리 쳐다본다.
S#3. 거리 일각 / 낮
보도블록 위를 열심히 뛰고 있는 구두. 준섭, 커다란 첼로 케이스를 매고 열심히 뛰고 있다.
귀에 꽂은 핸드폰 이어폰에 큰 소리로 통화하며 뛰고 있다.
준섭 : 응, 지금 간다. 10분 내로 도착할 수 있어. (헉헉) 왜 미리 말을 안 했겠습니까, 이재영 기자님? 수십 번도 더 했지, 임마.
이쁘게 보이려구 미용실에서 세 시간이나 있었대. 하여튼 조금만 기다려. 이제 9분 내로 도착할 수 있어...... 그래.
준섭, 전화를 끊고 뒤를 돌아본다. 빨리 오란 손짓.
예쁜 드레스를 입은 20대의 여성 연주자 열심히 뛰어오고 있다.
S#4. 야외 공연장 / 낮
열심히 뛰어온 연주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고 밝은 얼굴로 연주하고 있다.
피아노와 첼로, 바이올린의 협주. 팝을 신나게 편곡한 노래 흐르고 있다.
구경하던 사람들 발장단을 맞추고 손뼉을 치기도 하고 흥겨운 분위기.
지나가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사람이 둘러싸인 밖에서 펄쩍 뛰어보기도 하고 까치발을 세워보기도 하고.
사진기자 열심히 현장 스케치 사진을 찍고, 또 한 사람은 캠코더로 열심히 촬영중이다.
준섭, 한 켠에 서서 땀을 닦으며 생수 병을 들고 벌컥벌컥 마시고 있다. 사람들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기분 좋은 듯 웃고.
재영은 구경꾼 사이에 서서 옆 사람들에게 뭔가 묻고
(“이 근처에서 직장 다니세요?” “이런 공연 어때요?” 등의)수첩에 메모하는 모습.
메모하다가 문득 준섭을 돌아다본다. 준섭과 재영 눈이 마주치고
재영, 준섭을 보며 밝게 웃는다.
S#5. 야외 공연장 / 낮
캠코더 가득 잡히는 준섭의 얼굴. 밝게 웃으며 6mm 카메라 정면을 보고 이야기한다.
준섭 : 점심 먹으러 오가는 길에 어디선가 라이브 연주가 들리면 기분이 좋잖아요? 스트레스 받고 사는 직장인들에게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 주자는 취지에서 시작을 했어요. 런치음악회는 부담 없이 클래식도 접할 수 있고 또......
(어색한 듯 픽 웃어버리며) 야, 이런 거 하지 말자. 나 쑥스러워서 못하겠다.
준섭, 카메라를 피해 비껴나면 사람 빠진 공연장에 재영과 신문사 사람들, 같이 서 있고.
재영 : (나무라는) 오빠.
준섭 : 그냥 니가 기사로나 써 줘.
재영 : 우리 신문 홈페이지에 동영상으로 띄울 꺼란 말야.
준섭 : 어색해서 그래.
사진기자 : 그냥 하세요. 카메라도 잘 받으시는데.
준섭 : 이러지 말고 오늘 저녁에 다시 뵙죠. 제가 저녁 한 턱 내겠습니다.
재영 : 오빠가 밥 사는 거야 당연한 거구. 이거 마저 끝내 빨리.
(E) : 핸드폰 벨
준섭 : (재영에게 잠깐만! 하는 손짓) 네. 아, 자료 도착했어요? 네, 지금 들어가겠습니다. 재영아, 나 회사로 들어가 봐야겠다.
이따 저녁에 보자. 알았지? (사진기자에게도) 그럼 저녁에 다시 뵙겠습니다. 제가 거하게 한 잔 살게요.
(차로 뛰어가며) 이따 전화해. 시간 맞춰서 내가 그 쪽으로 움직일게.
재영 : (준섭 보며 미소)
S#6. 준섭 사무실 / 낮
모던하게 꾸며진 준섭의 기획사무실. 기획팀장 송준섭이라 쓰여진 책상. 부드러운 재즈 연주가 흐르는 CD플레이어.
준섭, '미스터 그루브'의 홍보자료를 보고 있다가 전화를 든다.
준섭 : 안녕하세요. 공연기획사 '푸른 뜰'인데요. 보내주신 홍보자료 잘 받았습니다.
전 음악공연 파트 총책임자 송준섭이라고 하는데요...... (아무 대답이 없네?)...... 여보세요?
S#7. 음반사 / 낮
전화를 받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 굳은 듯 조용히 앉아 미동도 없다.
서희 : ......네......말씀하세요.
준섭(F) : 송준섭이라고 하는데요......보내주신 홍보자료 잘 받았구요. 음~ 미스터 그루브의 콘서트를 기획해 보면 어떨까 해서
연락 드렸습니다. 일단 좀 만나 뵙고 상의를 하고 싶은데요.
메모지에 펜으로 천천히 '송...준...섭' 이라 쓰는 손.
서희 : 네, 알겠습니다. 내일 뵙죠, 그럼. 낮 12시에 압구정동 '팰리스'에서...... 알겠습니다.
조심스레 펜을 톡 내려놓는 손. 송준섭이란 이름을 가리지 않게 놓인 펜.
S#8. 야외 숯불구이집 / 밤
야외테이블에 앉아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사람들. 재영과 준섭, 마주보고 앉아있다.
두 사람, 고기 구우며 '건배' 외치고 맛있게 소주 마신다.
준섭 : 다른 분들은 왜 안 왔어?
재영 : 내가 오지 말랬어. 오빠랑 단둘이만 먹으려구.
준섭 : (픽 웃고)
재영 : 가판 나온 거 볼래? (가방에서 신문을 꺼내 건네며) 오빠 사진 엄청 잘나왔다.
준섭 : 벌써 썼어?
신문을 펼쳐본다.
'공연예술계의 신선한 바람 젊은 기획자 송준섭' 이란 표제의 기사와 웃고 있는 준섭의 멋진 사진 보인다.
재영 : 취재야 몇 달 전부터 됐던 거구 오빠야 내가 20년 가까이 아는 사람 인데 시간 걸릴 꺼 뭐 있어? 후딱 썼지.
준섭 : (읽으며 미소) 너무 잘 써준 거 아냐? 어쨌든 고맙다.
재영, 올라오는 연기를 손사래를 쳐 쫓다가 눈이 매운 듯 눈물을 찔끔거린다.
매캐한 연기에 눈물이 맺힌 재영.
준섭 : 너 왜 우냐.
재영 : 좀 근사한데서 저녁 사줌 안되냐.
준섭 : 근사하잖아. 하늘도 보이고 바람도 불고.
재영 : 오빠 땜에 나 울었어.
준섭 : 울지 말구 고기 먹어. (고기를 집어 개인접시에 놔주며) 참, 내일 점심 때 약속 있니?
재영 : 왜?
준섭 : 잠깐 보자구. 너 시간 되면.
재영 : (애교) 왜애?
준섭 : 너 재즈밴드 '미스터 그루브' 알지?
재영 : '미스터 그루브'......? 아, 알았다. 오빠가 예전부터 관심 있어 하던 그룹 아냐?
준섭 : 3년 만에 새 음반을 냈어. 내일 그 쪽 사람 만나기로 했는데 너도 올래? 취재거리 좀 얻을 게 있을 것 같은데.
재영 : 칫. 그래서 보자는 거였어? (실망) 결국은 오늘도 일 얘기네.
준섭 : 싫어?
재영 : 난 또 오빠가 날 보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지. 아...실망이다.
준섭 : (웃고) 자, 한 잔 하자.
두 사람, 소주 잔 부딪힌다. 잔을 비우는 두 사람.
고기를 올리자 또 연기가 날리고. 재영, 눈이 매워 눈을 깜박인다.
준섭 : 또 우네.
재영 : 오빠.
준섭 : 응?
재영 : ......나 울리지 마.
준섭 : ......
S#9. 숲 속 (준섭의 꿈)
안개 자욱한 숲 속. 비틀비틀 걸어가다 픽 쓰러지는 소년 준섭. 탈진해 정신을 잃을 듯 쓰러져 가물거리고 있는데
그의 시야로 흐릿하게 형체만 보이는 사람이 손을 내민다. 천천히 그리로 손을 뻗다가 그만 힘이 빠지는데......
S#10. 준섭 방 / 새벽
침대에서 뒤척이다 눈을 뜨는 준섭. 이마에 땀이 흥건하다. 일어나 앉는다. 멍한 표정.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새어들고 있다.
S#11. 레스토랑 / 낮
창이 넓은 레스토랑. 준섭과 재영, 창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있다.
재영, 햇살을 받으며 앉아있는 준섭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혼자 미소.
재영 : 오빠 어제 잠 못 잤어? 피곤해 보인다. (애교) 약속한 사람 올 때까지 잠깐 눈 붙여. 내 어깨에 기대서. 응? 아이, 빨리이......
재영, 준섭에게 종알거리며 웃는데 웨이터를 따라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발걸음.
웨이터, 누군가를 테이블로 안내해 주고 돌아선다.
두 사람 앞에 가 선 발. 재영, 준섭을 보고 웃다가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본다. 놀람. 표정이 굳는다.
재영 : ......
서희 : ......저, '푸른 뜰' 기획에서 나오신......?
준섭 : 예, 제가 송준섭입니다.
재영 : ......한...서희......?
서희 : ......??!!
재영 : 너......서희 맞지?
준섭 : (서희를 보며) !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찻잔.
서희를 보며 기쁘고 반가운 표정의 준섭. 서희를 보며 웃지만 쏘아보는 눈빛의 재영.
서희와 재영의 시선 속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준섭 : 어제 전화 받은 것도 서희 너니?
서희 : 네.
준섭 : 왜 진작 말 안 했어.
서희 : 기억 못하실 것 같아서요. 저도 전화하신 분이 오빠인 줄은 몰랐어요. 이름이 같아서 혹시나 했지만......
준섭 : 아무튼 이렇게 오랜만에 얼굴 보니 정말 반갑다.
재영 : ......(기분 나쁘고)
준섭 : 언제부터 이 회사에서 일했니?
서희 : 작년부터요. 그전엔 외국계 음반회사 홍보실에 있었구.
재영 : 참 의외다. 니가 음악에 관련된 일을 할 줄은 몰랐는데......
서희 : (시선 내리며 미소짓다가)......오빤 한국에 언제 나온 거예요?
준섭 : 내가 미국 갔던 것도 알고 있었어?
재영 : ......
서희 : (멈칫) 아니......요즘 기획사 사람들이 오빠 얘기를 하도 많이 해서......
준섭 : 공부 마치고 작년 가을에 왔어.
서희 : 그랬구나...
준섭 : ......결혼은...했니?
서희 : ......아뇨......오빠는?
준섭 : 나도 안 했어.
재영 : (준섭을 보며) 아마도 곧 하겠지?
준섭 : ......?
서희 : ......
S#12. 레스토랑 앞 / 낮
세 사람, 나온다.
준섭 : 재영인 신문사로 들어가야 되니?
재영 : 응, 회사 근처에서 인터뷰 약속이 하나 있어서. 오빤?
준섭 : 나도 회사로 가봐야지. 서희는 어디로 가니?
서희 : 전 예술의 전당 쪽에 볼일이 있어요.
준섭 : 차 가져왔어?
서희 : 지하철 타고 다니는데요.
준섭 : 그럼 타. 내가 가는 길에 바래다줄게.
재영 : (기분 안 좋고)
서희 : 괜찮아요. 지하철이 편해요.
준섭 : 나도 그 쪽 방향으로 지나가니까 괜찮아.
서희 : ......
재영 : 타고 가, 서희야. (준섭의 팔짱을 끼며) 오랜만에 만났는데 준섭 오빠가 얼마나 서운하겠니. 그치, 오빠?
준섭 : 어....그래.
서희 : ......알았어요 그럼.
재영 : (준섭의 얼굴에 뭐가 묻은 듯 살짝 만져주며) 오빠 그럼 서희 잘 데려다주고 조심해서 들어가.
어제 나랑 늦게까지 같이 있느라고 피곤했지?
서희 : ......
재영 : 오빠 그럼 들어가구 이따 또 통화하자. 서희야,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잘 가. 또 보자.
서희 : 그래, 재영아. 또 보자.
재영, 차로 간다. 운전석에 앉아 서희와 준섭이 웃으며 차에 타는 모습을 본다. 왠지 불안하고 질투가 나는......
준섭과 서희가 탄 차가 떠나는 걸 지켜보는 재영.
S#13. 거리(차 안) / 낮
준섭이 운전하는 옆에 앉아있는 서희.
서희, 수줍은 듯 말이 없고 창 밖만 보는데 준섭, 피식 웃는다.
서희 : ......(의아) 왜요?
준섭 : 옛날에 내가 자전거로 데려다 준다니까 니가 싫다고 그랬었잖아.
아까 니가 괜찮아요 그럴 때 옛날 니 모습이 떠올라 가지구...
서희 : (웃는)
준섭 : 생각나?
서희 : 그럼요. 오빠랑 처음 만났던 날이잖아요.
준섭 : 너 그 때 참 잘 뛰더라.
서희 : (미소)......
S#14. 신문사 문화부 / 낮
재영, 들어와 손에 들고있던 봉투 생각에 탁 던져놓고 자리에 털썩 앉는다.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본다. 물끄러미 명함을 보는 재영의 얼굴 위로 스치는 짧은 플래시 컷.
<14-1> 초등학교 시절, 서희의 원고지를 확 찢는 재영.
<14-2> 쓰러진 준섭을 잡고 '도와주세요' 외치는 재영의 모습......
<14-3> 하교 길에 재영이 뒤를 돌아보면 상처 난 얼굴로 숨어서 자신과 준섭을 응시하는 서희의 모습.
S#15. 예술의 전당 앞 / 낮
와서 서는 준섭의 차.
서희 : 고마워요 오빠.
준섭 : 앞으로 자주 보겠다.
서희 : 잘 부탁드려요. 오빠처럼 유능한 기획자한테 연락이 왔으니 밴드 사람들도 좋아하겠다.
준섭 : 내가 고맙지 뭐.
서희 : ......
서희, 차에서 내린다.
준섭, 출발하려다 창문을 내리고 서희를 본다.
그런 그의 행동을 서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준섭 : 서희야.
서희 : (보면)
준섭 : ......다시 보게 되어서......정말 반갑다......(미소)
준섭의 차, 떠나고. 서희, 차가 멀어질 때까지 한참을 서서 보고 있다가 뒤돌아서 걷기 시작한다.
홍조를 띤 얼굴.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그러다가 서희, 뛰는 심장박동처럼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하는데......
S#16. 시골 마을 큰길가 (회상)
열심히 달리는 소녀의 두 다리. 흰색 체육복을 입고 머리를 묶은 서희(초등학교 5학년), 열심히 뛰고 있다.
얼굴에 땀이 가득하면서도 신나는 표정. 기운차게 달려간다.
커다란 자루 2개에 쑥 말린 걸 가득 담아 들고 가는 준섭, 길을 잘 모르는 듯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저만치에서 달려오는 서희 앞으로 다가선다. 서희, 앞에서 걸리적대는 준섭을 비껴 뛰어가는데
준섭 : (같이 뛰어 따라가며) 저기......
서희 : (돌아보면)
준섭 : 약재 연구소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되니?
서희 : (멈춰서 숨을 헐떡헐떡)......
준섭 : 이 길 따라 쭉 가면 되지?
서희 : (숨차) 아닌데. 그럼 한참을 돌아가야 돼. (하며 무거운 자루를 본다)
준섭 : 그럼 어떻게 가?
서희 : (헉헉) 저기 샛길로 들어가서 한참 가다보면 커다란 나무가 나오거든, 거기서 오른쪽으로 조금가면 등대가 있어.
등대에서 왼쪽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큰 길이 두 개 나오는데......
준섭 :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헷갈리는 표정)
서희 : (헐떡거리며 다시 설명하는) 그러니까 저기 샛길에서......
준섭 : 됐어. 그냥 이 길 따라 갈게. 고마워. (자루를 들고 걷기 시작한다)
서희 : ......(땀을 닦고 다시 뛰기 시작하는데)
준섭 : (뒤에서 걸어오고)
준섭, 걸어가다 옆을 보면 '명산 국민학교 어린이 20리 마라톤 대회'라 쓰여진 플래카드 보인다.
준섭, 서희를 본다. '아, 그래서 뛰어가는 거였구나.' 준섭, 미소.
계속 걸어가는데 서희, 뛰어가다 준섭을 돌아본다. 자루 2개를 메고 힘들게 걸어오는 모습 보인다. 잠시 망설임......
돌아서 뛰어간다.
서희 : 내가 지름길 가르쳐 줄게. 따라와.
준섭 : ......아니 괜찮......
서희 : (말을 자르며) 대신 뛰어와야 돼. 하난 내가 들어줄게.
서희, 자루 하나를 들고 옆길로 뛰기 시작한다. 준섭, 따라 뛰어간다.
준섭 : 달리기 대회 나왔는데 이럼 어떡해.
서희 : 괜찮아. 지금까진 내가 1등이니까.
서희, 열심히 달려가고 준섭도 부지런히 뛰기 시작한다.
S#17. 연구소 근처 / 낮 (회상)
서희, 연구소가 보이자 손으로 가리키며
서희 : 여기가 연구소야.
준섭 : ......
서희 : (자루 주며) 나 그럼 간다.
준섭 : 고마워.
서희 : (부리나케 뒤돌아 뛰어가고)
준섭 : (가만히 서 있다가 연구소 쪽으로 급하게 뛰어간다)
S#18. 예쁜 시골길 / 낮 (회상)
서희, 달려가는 뒤로 자전거를 타고 따라오는 준섭.
준섭 : 아까 큰길까지 내가 태워다 줄게.
서희 : (뛰어가며) 안 돼. 그럼 반칙이야.
준섭 : 그런 게 어딨어. 큰길까지만 태워줄게.
서희 : 조금만 가면 돼. 괜찮아.
준섭 : 태워다 준다니까......
서희 : 다 왔어.
서희, 큰길 쪽으로 나간다.
준섭, 큰길로 달려가 보면 서희를 앞서가는 학생들이 열댓 명 보이고.
서희, 있는 힘을 다해 그들을 따라잡는다.
준섭, 자신도 모르게 응원하듯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서희, 열심히 뛰어 저만치로 사라진다.
S#19. 약재 연구소 마당 / 저녁 (회상)
어슴푸레 해가 지고 있는 저녁의 연구소 외경. 마당에 놓인 야외 테이블과 의자 근처.
약재 연구소장, 술병과 함께 찬합에 음식을 싸온 재영 부모를 반갑게 맞는다.
연구소장, 송 박사를 재영 부모에게 인사시킨다.
재영은 부모 옆에 서서 수줍은 표정으로 엄마 손을 잡고 송 박사 옆에 있는 준섭을 빤히 보고 있다.
준섭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고.
소장 : 자, 인사하시죠. 우리 연구소에 새로 오신 송 박사님, 이쪽은 여기서 제일 큰 한의원을 하시는 이 원장님 내외분.
송박사 : 처음 뵙겠습니다.
재영부 : 아이고, 이거 만나 뵈어서 반갑습니다.
재영모 : 아드님 하나 데리고 계신다면서요. 힘든 일 있음 말씀하세요. 안주인도 없이 타지에서 지내시기 얼마나 고달프시...
재영부 : 거 사람 참 쓸데없는 소리하고는......
소장 : 이 원장님은 종종 우리 연구소에 좋은 약재도 지원해주시고...발전기금도 내주시고...우리가 아주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요.
송박사 : 잘 부탁드립니다.
재영부 : 필요한 거 있음 언제라도 말씀하세요. 저희 집에 약초를 대주시는 양반이 계신데 산 타는 솜씨가 아주 좋아요.
자연산 영지나 가시나무 엄나무......척척 해다 주거든요.
소장 : 그러구 보니 애들도 나이가 비슷하겠네? 니들도 인사해라.
인사하는 준섭.
재영모 : 아이구 아주 인물이 훤하네. 우리 사위 삼았음 딱 좋겠다. 몇 학년이니? (준섭의 머리를 쓰다듬고......)
재영 : (준섭을 보며 미소)
S#20. 약재 연구소 안 / 저녁 (회상)
밖에서는 어른들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고, 준섭은 연구소 내부 한 켠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재영, 준섭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발견하고 들어온다.
재영 : (귀 뒤로 머리 한 번 넘기고... 예쁜 척 조심스럽게) 준섭이 오빠...... 무슨 책 봐?
준섭 : 그냥......아버지 책상에 있길래......
재영 : 오빠 전학은 언제 와? 우리 학교로 오는 건 맞지?
준섭 : 응. (퍼뜩) 참, 너네 학교 오늘 달리기 대회 있었지?
재영 : 응, 어떻게 알아?
준섭 : (관심 가득) 1등은 누가 했니?
재영 : ......?
S#21. 야산 언덕 / 낮 (회상)
서희, 신문지에 둘둘 만 나뭇가지를 들고 힘차게 뛰어내려온다.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내려오는 길.
내려오다 멈춰서 어디론가 시선을 두는 서희. 저만치에서 꽃삽으로 뭔가 파고 있는 소년이 보인다.
소년, 열심히 뭔가를 한 움큼 따서 신문지에 말아 산을 내려간다.
서희, 소년이 있던 자리로 가서 보면 조그맣게 돋아난 버섯들이 보인다.
손으로 뜯어 자세히 살며보는 서희 흠칫 놀란다. 소년을 돌아본다. 벌써 저만치 멀어져 있다.
S#22. 야산 일각 / 낮 (회상)
걸어오는 준섭. 한참 뒤에서 뛰어오는 서희.
서희 : 얘!
준섭 : (못 들은 채 걸어가는)......
서희 : 야!
서희,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내려가는 준섭의 뒤를 있는 힘을 다해 쫓아간다. 두 사람 간격 점점 좁혀지고.
서희, 따라잡아 불러 세운다.
서희 : 얘!
준섭 : (그제서야 돌아본다)
두 사람, 눈이 마주친다. 서로 놀란. '너구나!'
준섭 : (반가운) 너!
서희 : (말하려는데 숨이 차 제대로 못하고 헉......헉......)
준섭 : (웃는) 넌 맨날 그렇게 뛰어다니니?
서희 : (숨찬) 그거......독버섯이야. 먹음 큰일나......
준섭 : 나도 알아.
서희 : 알고 딴 거야?
준섭 : (고개 끄덕)
서희 : ......(민망한데)......
준섭 : 그거 알려주려구 뛰어온 거야? 아까 나 버섯 따던 데서부터 여기까지?
서희 : 응......(헉헉......웃고)......
준섭 : (미소)......
S#23. 시골길 / 낮 (회상)
수풀이 우거진 운치 있는 시골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
서희가 들었던 나뭇가지, 준섭이 들고 걷는다.
서희 : 6학년임 나보다 오빠네. 난 4학년인데.
준섭 : 너 그 날 달리기 1등 못했다며?
서희 : 어떻게 알아?
준섭 : 나 때문에 못한 거지?
서희 : 아냐. 우리 학교 육상부 애들이 얼마나 잘하는데.
준섭 : 그 날 정말 고마웠어.
서희 : 고맙긴......
두 사람 걷는데 준섭, 흠흠...하며 어디선가 냄새가 나는 듯......서희를 보고, 또 다른 데를 보고......
서희 : 왜?
준섭 : 어디서 탄내가 나네... 불이 났나...?
서희 : (자기 팔이나 손의 냄새를 맡아보며) 난가?
준섭 : (서희의 얼굴 근처로 가까이 가 냄새 맡아보는)......
서희 : (묘한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 서 있고)......
준섭 : ......그래 너한테서 난다.
서희 : 머리카락 태웠던 냄샌가 봐.
준섭 : (머리를 보며) 머리카락이 탔어?
서희 : (나뭇가지 가리키며) 우리 아빠 도와드리고 오는 길이거든. 이맘 땐 뱀이 있어서 일하는 근처에 머리카락 태우는 냄새를
피워야된대. 그 냄새를 뱀이 싫어한대나봐.
준섭 : 이 산에도 뱀이 있어?
서희 : 그럼. 조심해야 돼. 우리 아빠 친구 중에도 뱀에 물린 아저씨가 있었어.
준섭 : 정말? 그래서 어떻게 됐어?
서희 : 다행히 아빠가 응급조치를 해서 목숨은 건졌대.
준섭 : 어떻게?
서희 : (머리에 묶었던 손수건을 푼다. 긴 머리 출렁 하고 내려오고......)
준섭 : (이쁘다...... 바라보는......)
계곡에 앉은 두 사람. 서희, 준섭의 팔뚝을 손수건으로 있는 힘껏 꽉 묶는다.
준섭 : (아파서) 으악!
서희 : (깔깔 웃으며) 물린 자리 위를 이렇게 꽉 묶어서 피를 잘 안 통하게 해야된대. 독이 퍼지면 큰일나니까.
준섭 : (알겠다는 듯) 아......
서희 : 그 다음엔 물린 자리의 독을 빼야 하는데 입으로 독을 빨아내서 뱉으면 돼.
준섭 : 그랬다가 독을 삼키면? 빨아내다가 입 안에 독이 퍼질 수도 있잖아.
서희 : 음~(잠시 생각하다가) 그럼 죽는 거지, 뭐. 자기 목숨을 걸고 구하는 거야.
준섭 : ........
S#24. 학교 앞 길 / 낮 (회상)
시끌시끌한 하교 길.
재영, 저만치에서 준섭이 걸어가는 걸 본다. 반가움에 얼굴이 밝아지고.
준섭, 걸어가다가 어디론가 시선. 걸음이 빨라진다.
가방 메고 걷는 서희.
준섭, 다가가 서희를 부른다.
재영, 서희에게 다가가는 준섭을 보고 멈칫 서고.
준섭 : 서희야.
서희 : (돌아보면 준섭이 웃고 서있다. 얼굴 밝아지며) 어? 오빠.
준섭 : 나 전학수속 끝났어. 오늘부터 학교 다닌다.
서희 : 정말? 몇 반이야?
준섭 : 6학년 3반. 넌 몇 반이랬지?
서희 : 4학년 1반.
준섭 : 나 4학년 때 풀지 않고 놔둔 문제집 되게 많거든. 우리 집에 가자. 내가 너 다 줄게.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걸어가는 두 사람.
재영, 어두운 얼굴로 천천히 그들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S#25. 시장통 떡볶이집 / 낮 (회상)
서희와 준섭, 떡볶이를 먹고 있다.
재영, 반갑고 놀라운 척 두 사람 사이로 끼여들며......
재영 : 어? 준섭이 오빠.
준섭 : 어, 재영이구나.
재영 : 나두 떡볶이 먹으러 왔는데.
서희 : 재영아 앉아. 같이 먹자. (포크를 재영에게 건네주는데)
재영 : 참, 서희 너네 아버지, 어제도 우리 아빠 병원에 오셨더라.
서희 : 그래?
준섭 : 왜? 아버지 어디 아프셔?
재영 : 아니 서희네 아빠, 우리 집에 약초랑 뭐 그런 거 캐다가 팔아. 매일매일 산에 가시잖아. 나무껍데기도 벗겨오고..
한 번은 서희네 아빠가 산삼도 캐다줬다. 그때 서희 동생 서진이가 막 아플 때였는데......그걸 우리 집에 갖다 파시더라.
우리 아빠 같으면 아픈 동생한테 먹였을 텐데.
서희 : ......
재영 : 그래서 우리 아빠가 아주 후하게 쳐서 샀대. 서진이 그 돈으로 입원하고 그랬었어.
서희 : ......
재영 : 참, 오빠. 우리 엄마가 오빠네 주려고 갈비찜 해놓으셨다. 이따 아빠랑 같이 저녁 때 연구소에 가신대. 나도 따라갈게.
오빠 그 때처럼 또 나랑 재밌게 놀자. 알았지?
준섭 : 나 오늘 저녁 때 서희랑 숙제 같이 하기로 했는데......
서희 : ??? ('우리가 언제?' 의아한 표정으로 준섭을 보면...)
준섭 : 우리 먼저 가자 서희야. (서희의 팔을 잡아끌며) 얼른!
재영을 놔두고 가버리는 준섭과 서희.
재영, 기분 나쁜 표정.
S#26. 준섭 집 거실 / 밤 (회상)
약재꾸러미와 책들이 잔뜩 쌓여있는 자그마하고 소박한 거실. 한쪽에 낡은 전축이 놓여있다.
준섭, 레코드 판을 꺼내 턴테이블 위에 놓는다. 서희는 전축을 처음 본 듯 신기하단 눈빛으로 구경하고.
준섭, 서희를 보고 빙그레 웃고. 조심스레 바늘을 판 위에 놓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판 위에서 흐르는 노래. 메리 홉킨의 'Fields of St. Etienne' 노래가 흘러나오자
두 사람, 가만히 듣다가 마주본다.
준섭 : 어때? 좋지?
서희 : 응. 너무 좋다아.
준섭 : 우리 아빠가 되게 좋아하는 가순데 이 노래말고 딴 노래만 듣더라. 난 근데 이 노래가 젤 좋아.
서희 : 무슨 내용이야?
준섭 : 음......몰라.
서희 : 피이....
준섭 : 중학교 가서 영어 배우면 내가 해석해 줄게.
서희 : 그래.
빙글빙글 돌아가는 레코드판. 음악 들으며 앉아 있는 서희와 준섭.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이다.
말 없이 노래에 빠져 열심히 듣고 있는 서희.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준섭.
S#27. 몽타쥬 (회상)
앞 씬의 음악, 계속 흐르고......
<27-1> 바닷가에서 조약돌 주우며 물장난치는 준섭과 서희.
<27-2> 예쁜 꽃을 꺾어 서희에게 주는 준섭, 꽃나무 주인의 고함소리 들리자 손 잡고 도망치는 두 사람.
<27-3> 자전거 뒤에 서희를 태우고 달리는 준섭.
<27-4> 저녁 노을을 바라보는 준섭과 서희.
S#28. 연습실
연습준비중. 악기를 맞춰보고 있는 밴드. 매니저 왔다갔다하며 들떠있다.
매니저 : 우리 이번 공연 대박 내자. 이것만 성공하면 내가 CF, 영화 다 물어다 줄게. 니들두 매니저한테 차 한 대 뽑아 주고
집도 한 채 사주고 좀 이래 보고 싶지 않냐?
리더 : 아뇨.
팀원들 : (킥킥)
매니저 : 저 놈이 꼭 맘에 없는 소릴 해서 우릴 즐겁게 해준다니까요......
서희 : (미소지으며) 조금 있다가 우리 공연 기획자가 직접 오실 거예요. 자세한 일정이나 세부사항들을 설명해 주실 거구요.
(핸드폰 울리는) 그럼 연습하고 계세요. (핸드폰 통화하며 나간다.)
리더의 사인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곡명은 'Fields of St. Etienne'.
매니저, 음악에 심취해 자신도 맨손으로 기타 치는 시늉에 헤드 뱅잉.
준섭, 음료수 한 박스를 들고 들어선다. 매니저 정신 차리고......
준섭, 반갑게 인사하며 연주 소리 때문에 매니저의 귀에 대고 큰소리로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굳어져서 밴드를 바라본다.
연주곡을 유심히 듣는 준섭. 가만히 서서 굳은 듯 곡을 듣고......
매니저는 '왜 이러나?'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서희가 들어온다.
서희와 준섭, 눈이 마주친다. 음악 속에서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는 두 사람.
서희, 준섭의 시선을 피해 연주곡들이 적힌 해설지를 한 장 주며
서희 : 연주 곡목을 확정했어요. 한 번 보세요.
준섭 : 이 노래......기억나니...... ?
서희 : ......(미소)......
노래 끝나자 매니저, 준섭에게 다가온다.
매니저 : 이 곡 어때요?
준섭 : 좋은데요.
매니저 : 한서희 씨가 넣자고 하도 우겨서 마지못해 넣었는데 넣고 보니 좋네. 이런 노랜 또 어떻게 알았대?
준섭 : (서희를 보며) ......
서희 : (당황하고, 수줍고......)
매니저 : 말도 마요. 이번 공연 때도 이 노래를 안 넣으면 공연을 못하게 하겠다는 둥 드럼에 빵꾸를 내겠다는 둥......
서희 : (말돌리며) 저기......우리 포스터랑 홍보사진 촬영이 언제로 잡혔죠?
매니저 : 말돌리는 것 좀 봐. 떼끼!
준섭, 서희 : (웃고)
S#29. 몽타쥬
공연 준비상황들, 경쾌하고 스피디하게 보여진다.
<29-1> 스튜디오에서 홍보용 사진을 찍는 멤버들.
서희, 좀 더 멋지게 포즈를 취해보라고 주문하고.
준섭, 그런 그녀의 모습을 미소지으며 바라본다.
사진작가, 한 쪽에서 열심히 얘기하며 웃고 있는 준섭과 서희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는다. 부끄러워하는 두 사람.
멤버들이 휘파람을 불어 제끼고......
<29-2> 방송국에 홍보자료를 들고 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인사하는 서희. 바쁘고 활기찬 모습.
<29-3> 서희와 함께 실내 공연장을 둘러보는 준섭.
지하 소극장을 보며 약간 맘에 안 든다는 서희의 표정.
걱정스러운 표정의 준섭.
<29-4> 야외 무대를 보며 활짝 웃는 서희. 준섭도 서희를 보며 고개를 끄덕.
<29-5> 핸드폰 통화하며 걸어가는 준섭, 준섭과 통화하며 뛰어다니는 서희.
<29-6> 공연 기획사무실에서 정신 없이 일하는 준섭.
<29-7> 음반 회사 사무실에서 부산하게 자료를 준비하는 서희. 땀을 닦다가 문득 아련한 생각에 사로잡히며 혼자 미소짓는다.
S#30. 햄버거집 / 낮
햄버거, 프렌치 프라이, 콜라로 점심을 때우는 서희와 준섭.
서희 : 다들 도와주겠다고 호의적으로 나와서 너무 다행이예요. 이번 공연 잘 될 것 같아요. 다 오빠 덕이야.
준섭 : 내 덕은.....? 네가 일을 잘해서 그런 거야. 나도 이번 일은 하면서 참 기분이 좋다. 너랑 같이 있어서 그런가, 하하.
서희 : (부끄러워하는)
준섭 :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고......)
서희 : (수줍게) 나두 그런데...... 나두 요즘 일하는 게 너무 신나요, 오빠.
준섭 : (웃는)
서희 : (부끄럽다. 프렌치 프라이 밀어주며) 더 드세요.
준섭 : 참, 너한테 보여 줄 거 있다.
준섭, 스튜디오에서 찍힌 사진 몇 장을 서희에게 준다.
서희, 사진을 받으려다 멈칫. 프렌치 프라이를 먹어 기름 묻은 손을 냅킨에 빡빡 닦는 서희.
그런 모습을 예쁘다는 듯 보는 준섭.
서희, 사진을 소중한 물건 다루듯 조심스럽게 만지며 밝게 웃는다. 멤버들 사진을 하나씩 보며 분석을 하는......
준섭과 둘이 찍은 사진이 나오자, 물끄러미 그 사진을 보며 살짝 아련한 미소를 짓다가
머리 매무새를 고치기 위해 묶었던 끈을 풀고......
머리카락이 출렁거리자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는 준섭.
그런 그녀의 모습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옛 추억에 사로잡힌다.
S#31. 연습실 / 밤
연습실 외경. 차가 한 대 들어오고......
재영, 내려서 도시락을 들고 연습실로 들어가려는데 서희가 준섭을 끌고 밖으로 나온다.
재영, 몸을 숨기고 두 사람을 쳐다보는데 서희, 준섭에게 선물 포장을 내민다.
준섭 : .......?
서희 : 생일 축하해요, 준섭 오빠.
준섭 : 어떻게 알았어?
서희 : (부끄러운 듯 미소).......
재영 : (얼굴이 굳고)
서희, 준섭을 데리고 다시 연습실로 들어가면 안에서 생일축하 연주하는 소리 들린다. 박수치고 웃는 소리도......
재영, 들고 있던 도시락을 툭 떨어뜨리고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서는데......
S#32. 학교 운동장 / 낮 (회상)
학교 스탠드나 나무 그늘에 앉아 원고지에 글을 쓰는 아이들.
머리를 푼 서희, 한 쪽 구석에 앉아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재영, 아이들에게 돌아다니며 말한다.
재영 : 선생님이 종치면 바로 걷어 오래. 이제 10분 남았으니까 빨리 해.
재영, 열심히 쓰고 있는 서희를 한번 힐끗 째려보고 가는데 옆에 서희의 손수건이 머리 끈처럼 돌돌 말린 채 떨어져 있다.
재영, 발로 밟고 지나친다. 뒤돌아서,
재영 : 한서희. 이거 니 꺼 아냐?
서희 : 어! 고마워. (주워 들어 흙을 턴다)
재영 : (지나가고)
S#33. 4학년 1반 교실 / 낮 (회상)
뒷 칠판 우리들 솜씨에 걸려있는 서희와 재영, 그리고 아이들의 그림.
하교 후 빈 교실. 담임선생 앞에 서 있는 재영.
담임 : 지난 번 백일장 과제물 중에서 다섯 편 추렸거든. 학년주임 선생님한테 갖다드릴래?
재영 : 네. (원고뭉치를 들고 문으로 걸어가는데)
담임 : (혼잣말처럼) 서희가 참 잘 썼더라.
재영 : .........
S#34. 학교 외진 곳 / 낮 (회상)
서희의 글짓기를 읽고 있는 재영. <모짜르트를 듣는 장미>란 제목의 글짓기.
서희 : (E) 나에겐 장미나무에 모짜르트 음악을 들려주는 친구가 있다. 내 친구가 들려주는 음악을 듣고 자란 그 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예쁜 꽃을 피웠다. 정말 장미는 음악을 들었을까? 내 친구의 사랑을 눈치챈 것일까?
재영, 읽으며 표정이 안 좋다. 질투심과 기분 나쁜 감정...... 재영, 원고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재영 : ......(화난 감정......원고를 버리고 가만히 서 있는데)
준섭 : (죽은 화분 하나 들고 다가오며) 재영아.
재영 : (화들짝) 응......오빠.
준섭 : 뭐 해? (옆에 떨어진 원고지 조각들을 본다)
재영 : 응. 쓰레기 버리러 왔다가......
준섭 : (원고지 널린 것 보고) 이게 다 뭐야...?
재영 : 응......(발로 치우며) 아무 것도 아냐...... 오빠 이따가 뭐해? 나랑 같이 읍내 나갈래?
준섭 : 안돼. 아빠 심부름하러 뒷산에 가야 돼. 나 먼저 간다. (돌아서 가고)
S#35. 시골길 / 낮 (회상)
예쁜 옷으로 갈아입은 재영.
반바지를 입고 예쁜 양말에 운동화, 머리도 예쁘게 핀을 꽂고 어깨에 맨 물통과 김밥 도시락, 손엔 작은 꽃삽.
한참을 올라가며 이리저리 누군가를 찾는 모습. 한참 가다보면 풀숲에 누가 쓰러져 있는 게 보인다.
재영, 무서워서 흠칫. 뒤로 물러나다 멈칫, 조심스레 다가가 본다. 준섭이 쓰러져 있다.
재영 : (깜짝놀라) 오빠!
준섭 :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재영 : 오빠 왜 이래? 오빠 일어나 봐.
재영, 소리를 지르며 주위를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재영 : 도와주세요.... 사람이 쓰러졌어요. 살려주세요!
S#36. 레스토랑 / 밤
예쁜 케익, 조심스레 테이블 한가운데 놓는 재영.
웨이터, 얼음에 채운 샴페인도 갖다놓는다.
재영, 살갑게 송 박사에게 묻는
재영 : 아버님, 케익 너무 이쁘죠?
송박사 : 매번 이렇게 신경을 써줘서 어떡하니?
재영 :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뭐.
송박사 : 준섭이 녀석 복도 많다.
재영 : 그쵸 아버님? 제 생각에도 그래요.
송박사 : 복 많은 녀석, 저기 오네.
준섭, 들어선다.
재영, 웃으며 준섭 쪽을 보다가 이내 얼굴이 굳는다.
준섭 뒤로 걸어오는 서희. 어색하게 목례한다.
싸늘하게 굳어져 서희를 보는 재영의 얼굴.
준섭 : 아버지, 서희 기억나세요? 옛날 명산리 한씨 아저씨 딸이요.
송박사 : 아이구...그럼 기억나다마다... 옛날에 곱상하던 얼굴 그대로구나.
서희 : (반갑게 미소지으며) 안녕하셨어요?
송박사 : 너, 서울에 살고 있었니?
서희 : (자리에 앉으며) 네. 대학교 오면서 올라왔어요.
송박사 : 그런데 어떻게 준섭이랑 같이 오는 거냐?
준섭 : 이번에 일을 같이 하게 됐어요. 준비하고 있는 공연이요.
재영 : 어서 와 서희야. 축하객이 한 사람 더 늘어 좋다 얘. 그쵸 아버님?
서희 : ......(불편하다.)
식사하는 사람들. 식기가 세팅된 한 자리는 비어있다.
재영, 선물을 내놓으며......
재영 : 오빠, 생일 축하해. 내가 오늘 두 가지 선물을 준비했거든. 하나는... (선물을 내놓으며) 짜잔! 풀어 봐.
준섭 : (상자 열어보면 셔츠가 나온다. 미소짓는) 고마워, 재영아.
재영 : 맨날 맨날 내 생각하면서 입어 줘. 알았지?
서희 : ......(미소짓고)
재영 : 그리고 두 번째 선물은......(귓속말이라도 하려는 듯) 이리 가까이 와봐.
준섭, 재영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면 재영, 준섭 뺨에 살짝 뽀뽀한다.
준섭, 깜짝 놀라고. 서희의 표정이 변한다.
재영 : 이게 두 번째 선물이야. 두 번째 선물이 더 맘에 들지?
송박사 : (민망한 듯 허허 웃고)
서희 : ......
준섭 : (분위기 바꾸려) 아버지, 저 자리는 뭐예요? 누가 오기로 했어요?
송박사 : 응, 기다려 봐. 귀한 손님이 한 분 오시기로 했으니까.
재영 : 아버님 제가 와인 한 잔 더 드릴까요?
송박사 : 그래.
재영 : 준섭이 오빠는 무심해서 뭘 몰라. 아버님한테나 점수 따놔야지.
송박사 : 점수야 옛날에 다 땄지. 준섭이 목숨을 구해줬는데 어떻게 그보다 점수를 더 따?
서희 : ......
재영 : 그래두요.
송박사 : 서희는 교제하는 남자 있니?
서희 : 아뇨 아직......
재영 : 오빠, 후배 중에 괜찮은 사람 있음 서희 소개 좀 시켜 줘.
서희 : (일어서며) 죄송한데요... 일 때문에 먼저 일어서야겠습니다. 저 먼저 가볼게요. 오빠, 나 먼저 갈게.
준섭 : (따라 일어서고) 서희야......
준섭, 따라나간다. 서희, 급하게 나가다 입구에서 들어오던 의사와 부딪힌다.
서희 : 죄송합니다.
의사 : ......괜찮아요?
서희 : (고개 숙인 채) 네, 죄송합니다. (나가고)
의사 : (서희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안으로)
S#37. 레스토랑 입구 / 밤
준섭, 따라나와 서희를 잡는다.
준섭 : 정말 일이 있어? 아까 나한텐 그런 말 없었잖아.
서희 : 깜빡 잊고 있었어.
준섭 : 서희야.
서희 : 오빠, 나 먼저 갈게. (총총히 사라지고)
준섭 :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레스토랑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S#38. 레스토랑 / 밤
자리에 앉아있는 의사. 와인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준섭, 들어오다 그를 보고 의아한 표정......
송박사 : 인사해라. 내 고등학교 후밴데 지금 대한병원 외과 과장으로 계셔. 옛날 우리 동네에도 공보의로 잠깐 계셨지.
왜 우리연구소에도 몇 번 놀러오고 그러셨잖아?
준섭 : 아......예,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의사 : 얘가 준섭입니까, 선배님? 이야~ 아주 훌륭한 청년이 됐네 그래. 생일 축하해요.
준섭 : 감사합니다.
의사 : 그런데 방금 어떤 아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 것 같던데......
준섭 : 아....예...... 서희라고...예전에 같은 동네 살던 한씨 아저씨 딸이예요.
의사 : 한씨 아저씨......? 아! 그 아저씨...기억난다. 약초 캐던.....?
송박사 : 맞아.
의사 : 그 아저씨 술 참 좋아하셨지. 나하고도 막걸리 많이 마셨는데...... 아참, 그나저나 저 친구네 오빠는 괜찮나?
준섭 : 오빠요?
재영 : 서희 오빠 없어요 선생님.
의사 : 왜 없어? 예전에 한 번은 보건소로 숨이 턱에 차게 뛰어와서는 오빠가 뱀에 물렸다구 어쩌구 그러면서......
재영 : !
의사 : 까무라치듯이 축 늘어져 버린 애가 쟤 맞아. 얼마나 험한 길을 달려왔는지 무릎이 다 깨져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왔더라구.
준섭 : 서희가요?
의사 : 응, 쟤 분명해. 다리에 상처가 하도 심해서 너부터 치료하자 그러니까 뒷산에 오빠가 쓰러져 있다고 빨리 가보라고...
그래서 가봤더니 아무도 없는 거야. 그래서 황당한 기억으로 남아있었지. 며칠 뒤 제대를 하는 바람에
걔를 만나 물어보지도 못하고 말이야......
준섭 : ......?
S#39. 재영 집 앞 거리 / 밤
걷고 있는 준섭과 재영. 재영, 살며시 준섭의 팔짱을 낀다.
재영 : 오빠... 나 이렇게 맨날 오빠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준섭 : ......
재영 : 같이 걷고, 같이 여행 다니고, 같이 밥 먹고......
준섭 : 재영아 난 말이야.....
재영 : (말 가로막으며) 인연 아닐까? 오빠랑 나......
준섭 : .......
재영 : (집 앞에 당도하자) 오빠......나......
준섭 : ......그만 들어가......(돌아선다.)
재영 : 오빠......
준섭 : (멈춰 선다.)
재영 : 설마 갑자기 나타난 서희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지?
준섭 : ......
재영 : 오빠.
준섭 : ......잘 자라......
재영 : ......(화난)
S#40. 준섭 방 / 아침
자고 있는 준섭. 핸드폰 벨이 울린다. 준섭, 잠결에 더듬어 집으려 하면 끊어지고......
준섭, 베개 속에 고개를 파묻고 잠을 다시 청하려 하는데, 집 전화가 요란하게 울려댄다.
머리를 긁적이며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뻗쳐 전화를 받는 준섭.
준섭 : 여보세요? 네......아니 아직 못 봤는데......(놀라) 뭐라구요?
S#41. 음반사 회의실 / 아침
어두운 얼굴로 신문의 문화면을 보고있는 밴드와 매니저, 준섭.
'문화계 상반기 결산 제 3편 약물 파동! - 연예인 대마초 수난사' 라 쓰인 신문 기사.
매니저 : (기사를 읽으며 열 받는다.) 현재 활동중인 퓨전재즈 밴드 '미스터 그루브'의 이전 멤버인 김원식이 96년에 다시
대마초 흡입 혐의로 구속됨에 따라.......야, 이 중에 이재영이란 여자 돈 떼먹고 도망친 사람 있음 손 들어봐.
아니 우리랑 무슨 원수를 졌다구 이따우 기사를 쓴 거야...? 오래 전에 떨어져 나간 옛날 멤버 얘기는 갑자기 왜 쓴 거며
(계속 신문 읽는) 새 음반 타이틀곡인 '나비의 꿈' 역시도 환각 상태와 연관이 되어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니 어떻게 이런 기사를 쓸 수가 있냐구?
준섭 : (어두운 얼굴)......
매니저 :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전화 오고 난리예요. 이래가지구 어디 공연이 되겠어요?
리더 : 공연이 문제가 아니예요. 당장에 방송금지 처분이라도 받아봐요.
매니저 : 그럼 단칼에 가는 거지. 아 어떻게 좀 해봐요. 이재영 기자, 준섭 씨 친구잖아요? 연락 좀 해봐요.
준섭 : 벌써 몇 번이나 해봤어요. 핸드폰이 계속 꺼져 있어서 나도 어쩔 수 없다구요.
(E) : 핸드폰 벨
준섭 : 여보세요? 네, 이사님. 곧 들어가겠습니다.
매니저 : 또 무슨 전화유?
준섭 : 이사님이 대책회의 좀 하자구 부르시네요.
매니저 : 빨리 들어가서 대책 좀 세워보세요. 아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준섭 : 너무 걱정들 하지 마세요. 제가 잘 해결해 보겠습니다.
S#42. 신문사 로비 /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로 바쁜 로비.
서희, 한 켠에 서서 핸드폰으로 통화중이다.
서희 : 여보세요? 부장님? 네, 아까 전화 드렸던 한서희입니다. 내일 자 신문에 오해를 풀만한 기사 한 줄만 실어주시면......
부장님, 부탁드립니다. 저 지금 로비에 와있는데요... 부장님......부장님. (전화 끊기고)
재영, 출근하다가 서희를 본다.
서희, 수심이 가득한 얼굴. 돌아서다가 재영과 마주친다.
S#43. 카페 / 낮
마주 앉아있는 재영과 서희.
재영 : 나도 정말 유감이다. 데스크에서 정한 특별연재라서 어쩔 수 없었어.
서희 : 꼭 예전 멤버 얘기까지 꺼내야 됐었니? 그 정도는 네 선에서도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었잖아.
게다가 그 사람은 지금 밴드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야.
재영 : ......그 자료도 위에서 준 거였어.
서희 : 지금 멤버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이라고 니가 기사 한 줄만 써줄래?
재영 : (천천히 서희를 응시하다가) 싫은데.
서희 : (표정 변하며)......왜?
재영 : 내가 왜 니 말을 듣고 기사를 함부로 써줘야 되니? 내가 뭐 없는 사실을 썼어?
서희 : (입술을 지그시 깨무며)......
재영 : (지지 않고, 서희를 노려본다.)
서희 : ....니 생각만 하는 건 여전하구나.
재영 : 너야말로 남한테 엉겨붙는 버릇 좀 버릴래? 너 때문에 준섭이 오빠만 곤란해졌잖아.
이번 공연 취소되면서 기획사 간부들한테도 신중하지 못했다고 찍히고...... 지금 얼마나 난처해졌는지 알아?
서희 : (놀라는) 공연이......취소돼?
재영 : 아직 몰랐니?
서희 : ......
재영 : 니 힘으로 안되면 아예 시작을 하지마, 남한테 엉겨붙어 바라지 말고. 그리고 부탁인데 준섭이 오빠한테 다신 피해주지 마.
아니 아예 다신 오빠 앞에 나타나지 않아 줬음 좋겠어.
서희 : 니가......무슨 권리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니?
재영 : (미소지으며) 오빠랑 결혼할 사람이니까, 난.
서희 : ......
재영 : 너, 갑자기 나타나서 반가운 마음에 준섭이 오빠가 챙겨주고 신경 써 준 거 너에 대한 관심이라고 착각하지 않아 줬음
좋겠어. 분명히 이야기하는데, 사랑과 연민은 다른 거야.
서희 : ......
재영 : 나, 아주 오랫동안 그 사람 옆에 있었어. 너하고는 달라.
서희 : ......그래서?
재영 : ......우리 사이에 니가 함부로 끼어들 자리 없다는 거...... 니가 알아줬음 좋겠어. (일어서 나간다)
서희 : ......
S#44. 몽타쥬 (회상)
<44-1> 초등학교 앞. 재영과 준섭, 다정하게 가는 모습.
멀리서 지켜보는, 다리에 붕대 감은 서희.
<44-2> 대학 시절, 준섭이 친구들과 얘기하며 걸어가는 모습.
서희, 캠퍼스를 걸어가다 우연히 준섭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준섭을 향해 걸어가는데,
재영이 준섭에게 달려와 준섭의 눈을 뒤에서 가린다.
서희 멈춰 서고.
재영, 준섭과 함께 웃으며 걸어가고. 서희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본다.
S#45. 야외 고기집 / 밤
연기가 피어오르는 철판. 고기와 함께 소주 마시는 준섭과 매니저.
매니저 : 아......열 받네. 우리 애들 잔뜩 부풀어 있었는데.
준섭 : 미안해요. .
매니저 : 그쪽두 우리 땜에 손해 많이 났죠?
준섭 : 손해는요...
매니저 : 공연 잘 돼라구 내가 지금 머리도 안 자르고 말이예요, 공연만 대박 난다면 세수도 안하고 한 달이고 보름이고
버틸 수 있다... 이런 각오로 임했는데 말예요......아......열 받는다. 거기 담배 좀 집어줘요. 준섭 씨 술만 마시지 말고
고기도 좀 먹어요. 다 먹자고 하는 짓인데. 아~ 이번에야말로 뭔가 좀 되는가 싶더니만......
매니저, 담배를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데 불이 확 올라오며 앞머리가 탄다.
매니저 : 앗 뜨거! 앗 뜨뜨......흐앗 뜨거......(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준섭, 놀라서 컵에 있는 물을 뿌린다.
당황하는 매니저. 물에 빠진 생쥐 꼴.
준섭,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다. 매니저, 고통스러워한다.
준섭 : 으......냄새.
매니저 : 아이 씨. 라이터가 왜 이래? 공연 깨진 것도 짜증나는데......
준섭 : 머리카락 타는 냄새 참 지독하네. 그러니 그걸로 뱀을 쫓지......
매니저 : 뱀요?
준섭 : ......!
옛날, 서희와 산에서 내려오며 서희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던 기억...
'이맘 땐 뱀이 있어서 일하는 근처에 머리카락 태우는 냄새를 피워야된대. 그 냄새를 뱀이 싫어한대나봐.'
뱀의 시선으로 약초를 캐는 준섭에게 다가가는 카메라. 뱀에게 물린 뒤 쓰러지는 준섭.
온 힘을 다해 기어가지만 이내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면서 의식을 잃어 가는데, 그의 시선으로 보이는 희미한 사람의 형체.
23씬. 어린 시절, 서희가 손수건을 묶으며 설명해주던 기억.
'물린 자리의 독을 빼야 하는데 입으로 독을 빨아내서......' 준섭, 멍해진다.
생일파티, 의사의 말이 떠오른다.
'예전에 한 번은 보건소로 숨이 턱에 차게 뛰어와서는 오빠가 뱀에 물렸다구 어쩌구 그러면서.......'
옛날, 응급실. 의사가 누워 있는 준섭과 옆에 서 있는 송 박사에게 말한다. '다행히 누가 독을 빨아냈네요.'
서희가 산에서 하던 말, '자기 목숨을 걸고 구하는 거야.'
준섭 : ......
S#46. 재영의 집 앞 / 밤
차에서 내리는 재영. 준섭이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재영 : 오빠.
S#47. 공원 / 밤
마주보고 서 있는 준섭과 재영.
준섭 : 꼭 그래야 했니?
재영 : 몇 번을 말해.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준섭 : 서희네 회사에서 낸 음반이어서 그랬니?
재영 :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준섭 : ......
재영 : ......
준섭 : ......
재영 : 나 들어갈게. 피곤하거든. 내일 보자 오빠. (돌아서 가는데)
준섭 : 재영아.
재영 : (서서 돌아본다.)
준섭 : ......그 날 내가 뱀에 물렸다는 건 어떻게 알았었니?
재영 : ......?
준섭 : 정말로 독을 빨아낸 게 너니?
재영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준섭 : ......
재영 : ......
준섭 : (돌아서 간다.)
재영 :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걸음을 멈추지 않는 준섭을 지그시 바라 보다가 결심한 듯) 그래......내가 아니야.
준섭 : (돌아본다.)
재영 : ......이제 됐어......? (눈물이 주르르) 난 그저......오빠가 날 좋아하도록 만들고 싶었어.
준섭 : (착잡한 표정)......
재영 : (눈물을 흘리며 한참동안 준섭을 바라보다가 돌아선다.)
준섭 : ......
S#48. 야외 공연장 / 낮
며칠 후. 런치 음악회. 미스터 그루브의 공연. 사람들 잔뜩 모여서 구경하고......
한 쪽에 멍하니 앉아 있는 준섭...... 공연 끝나고 사람들, 밴드와 악수하고 음료수 건네주고 싸인 받고......
매니저, 한 쪽에 앉아 있는 준섭에게 다가온다.
매니저 : 어쨌든 하긴 했네요. 돈 한 푼 안 생기는 공연이라 좀 그렇지만.
준섭 : 죄송합니다.
매니저 : 죄송하긴요......오늘 사람들 반응 봤죠? 우리, 한 달 내에 뜹니다.
준섭 : 서희는 왜 안 왔어요?
매니저 : 아버지 상 당한 사람이 어떻게 와요.
준섭 : (놀라) 네?
매니저 : 몰랐어요? 며칠 전에 아버지 돌아가셔서 시골 내려갔는데.
준섭 : ......
S#49. 서희네 마루 / 낮
한씨의 미소짓는 영정사진 마루에 놓여있고.
수정과 그릇을 두고 앉아있는 준섭과 서희 모, 동생 서진. 서희 모와 서진, 옛날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다.
준섭 : 죄송합니다. 오늘에야 소식을 들었어요.
서희모 : 죄송하긴......여기까지 찾아와 준 것만 해두 고맙지...
준섭, 집을 휘 둘러본다.
준섭 : 서희는 어디 갔습니까?
서진 : 언니, 뒷산에 갔어요.
준섭 : 산에는 왜?
서희모 : 어릴 때 즈이 아버지랑 맨날 같이 돌아다니던 곳이잖아.
서진 : 이것두 그때 사진 같은데? 맞지 엄마?
서희모 : 그러게. (눈물난다. 눈물 훔치고)
준섭, 사진을 보면 산에서 한씨와 함께 모종삽 들고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
반바지를 입은 서희. 다리에 커다랗게 붕대를 감고 있다.
준섭, 붕대 감은 다리를 조심스레 만져본다. 의사의 말이 떠오른다.
'얼마나 험한 길을 달려왔는지 무릎이 다 깨져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왔더라구.'
S#50. 등대 / 낮
검은 원피스를 입은 서희,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걸어오던 준섭,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가온다.
돌아 나오던 서희, 준섭을 발견하고 놀란다.
서희 : 오빠......
준섭 : ......
S#51. 언덕 / 낮
등대가 보이는 언덕에 준섭과 나란히 앉아 있는 서희.
서희 : 오는 길에 오빠가 맨날 음악 들려주던 장미나무 봤어요? 아주 이쁘 게 잘 자랐더라.
준섭 : 니가 그랬잖아.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크고 이쁜 나무가 될 꺼라구.
서희 : 응, 기억나.
준섭 : 나중에 안 비밀인데 우리가 그 나무에 정성 들이는 걸 알고 너희 아버지가 밤마다 몰래 물 주고 두엄 주고 신경을 써주셨대.
서희 : ......(마음이 찡하고)
준섭 : 서희야...... 인어공주 이야기 아니?
서희 : (뜬금없는 질문에 의아한)......인어공주?
준섭 : 인어공주가 왕자를 구해 주고도 자기가 구해 줬다고 말을 못하잖아. 왜 그랬는지 알아?
서희 : 두 다리를 얻는 댓가로 목소리를 잃어버리지 않았나? 말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랬겠지.
준섭 : 그럼 글로 쓰면 됐을 텐데. 안 그래?
서희 : ......
준섭 : ......
서희 : (시선을 바다로 돌리며) 육지로 올라와 보니까 이미 다른 나라 공주랑 사랑에 빠져 있었잖아.
준섭 : 그래서 말을 못한 거니?
서희 : ......
무릎을 세운 서희. 치마가 올라가 오른쪽 정강이 부근 흉터가 살짝 보인다.
준섭, 서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거기에 손을 살며시 얹는다.
준섭 : 많이 아팠겠다......
서희 : ......(준섭을 향해 고개 돌리며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눈물이 핑)......
S#52. 야산 / 낮 (회상)
준섭, 삽으로 땅을 파고 뿌리째 풀을 뽑아 신문지 사이에 잘 끼워둔다.
멀리서 뱀의 시선으로 풀잎을 헤치며 낮게 다가오는 카메라.
준섭, 뱀이 오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풀만 뽑고 있는데 옆으로 다가가서 준섭을 무는 뱀.
준섭, 비명을 지른 채 쓰러진다. 따가운 햇살.
준섭, 식은땀을 흘리며 흐릿한 정신으로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러다 이내 푹 주저앉으며 옆으로 쓰러져 버린다.
한편에서 산으로 올라오던 서희. 저만치 누군가의 발이 보인다.
서희, 놀란 눈으로 다가가 보면 준섭이 쓰러져 있다.
서희 : (달려가)오빠!
준섭 : (의식을 잃어가고)
서희 : 오빠...왜 이래? 일어나. (준섭을 흔들다가 벌떡 일어나서) 자, 빨리 내 손 잡아. (손 내민다) 내 손 잡고 일어나 봐.
준섭 : (가물가물. 서희에게 손을 내밀다가 푹 팔을 떨구고)
서희 : 오빠! 오빠?!!
서희, 정신차리라고 막 흔들다보면 다리의 상처가 보인다. 작은 이빨 자국 두 개가 나있고 다리가 부어 올라 있다.
서희 : 오빠, 뱀한테 물린 거야? (너무 놀라고 걱정돼 눈물이 난다.) 오빠! 죽지 마...죽지 마...... 도와주세요! 아무도 없어요?
아빠아...아빠아!
푸른 이파리들만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 서희, 두렵고 떨린다.
서희, 심호흡을 하고 머리를 묶었던 손수건을 풀어 준섭의 종아리를 있는 힘을 다해 질끈 묶는다.
준섭의 종아리에 입을 대고 독을 빨아내는 서희. 땅에 퉤 뱉고, 다시 한 번 빨아내고 퉤 뱉고.
서희, 땀과 눈물로 얼굴이 뒤범벅이다.
서희 : (울면서) 오빠. 조금만 참아 내가 가서 의사선생님 불러올 테니까 조금만 참아. 죽으면 안 돼. 알았지?
서희, 미친 듯 산을 뛰어내려오기 시작한다. 내려오다 미끄러지고 다시 일어나 달리고......
S#53. 시골길 / 낮 (회상)
달리는 서희.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눈물로 자꾸 시야가 흐려진다.
이를 악물고 달리는 서희. 예쁘게 차린 재영, 걸어가다 서희가 달려가는 걸 본다.
재영 : 서희야. 한서희.
서희 : (못들은 채 달려가고)
재영 : (갸우뚱. 산으로)
달리는 서희. 뛰다가 돌에 걸려 넘어진다. 정강이가 푹 파여 피가 많이 난다.
서희, 개의치 않고 일어서서 달리는데 다리가 아픈 듯 절룩인다.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혀 상처투성이다.
절룩이면서도 달리는 서희. 눈물이 자꾸 난다.
S#54. 보건소 / 낮 (회상)
온몸이 흠뻑 젖어 뛰어 들어오는 서희. 다리엔 피가 흐르고 있다.
가운을 입은 공보의, 서희를 보고 깜짝 놀란다.
서희 : (헉헉) 선생님. 도와주세요...
의사 : (놀라) 아니, 너......어...어디서 그랬니?
서희 : 저기 산에요......빨리 좀 올라가 보세요. (헉헉) 학교 뒷문에서 산에 올라가는 길이 있거든요......
의사 : 이런. 너 아주 심하게 다쳤구나...
서희 : 괜찮아요. 빨리 가보세요. 오빠가 뱀에 물렸단 말예요...(울부짖는다.) 오빠가 죽어요 선생님......
의사 :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급하게 문을 나선다.) 간호원, 간호원!
서희 : (실신하고......잠시 후 간호사가 뛰어들어온다.)
S#55. 야산 / 낮 (회상)
재영, 산으로 올라오다 준섭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친다.
재영, “도와주세요......” 등산객들, 내려오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다.
재영 : 도와주세요. 아저씨......
등산객들 준섭을 들쳐업는다.
재영, 따라서 내려가는데 준섭의 다리에 감긴 손수건이 눈에 들어온다.
재영 : ......(서희 손수건인데...... 설마, 하는)......
S#56. 병원 응급실 / 낮 (회상)
침상에 누워있는 준섭, 힘없이 눈을 뜨고 있다. 옆에 서 있는 송 박사와 재영.
응급실 의사 : 다행히 누가 독을 빨아냈네요. 생명엔 지장 없겠습니다.
송박사 : 누가 독을 빨아냈죠?
응급실 의사 : 처음 발견한 사람이 했겠죠.
송박사 : 고맙다, 재영아.
재영 : ......
준섭 : (재영을 향해 힘없이 미소짓는다.)
재영 : (등뒤로 서희의 손수건을 감추고 서 있다)
S#57. 연구소 / 밤 (회상)
재영네 부모와 사람들 모여있고 모두들 재영의 머리를 쓰다듬고 칭찬한다.
얼굴에 상처 나고 다리에 붕대 감은 서희,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고.
S#58. 야산 언덕 / 낮
준섭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서희. 서희의 손을 살며시 잡는 준섭.
두 사람, 고향으로 돌아온 듯, 평온한 땅으로 돌아온 듯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하며 미소짓고 있다.
S#59. 야산 / 낮
6월 녹음이 짙은 야산의 언덕. 한 소년이 헤매다 쓰러져 있다.
그에게 나타나 손을 내미는 소녀, 서희다. 그녀의 손을 잡는 소년. 두 사람 다정히 손을 잡고 숲길을 걸어간다.
고요하고 평안하게...... 그들 뒤로 비치는 햇살, 맑고 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