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사는 이야기
강 인 한
사방의 벽을 꽉 채우던 책들을 무엇부터 버릴까. 생각하면 막막했다. 묵은 잡지부터 버리기로 했다. 언젠가 일 년 동안 되지도 못한 영화평을 쓰면서 사 모은 영화잡지, 그리고 고료 대신 받은 얄팍한 교양잡지, 마침내 수백 권의 문학잡지들도 버리기 시작했다. 월간문학, 한국문학, 현대문학…….
두 바퀴 손수레에 실어 나르면서 그것들을 사 모을 때의 정성과 애착도 그만 잊기로 했다. 책꽂이에서 맨손으로 책을 꺼내면 새까만 먼지인지 그을음인지 금세 손이 까매졌다. 책이란 결국 쓰레기인가. 그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쓰레기를 창조하는 일을 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나 역시 저러한 쓰레기를 창조하는 사람인 것을.
오십 평 아파트에 살다가 서울의 삼십 팔 평으로 이사하자니 버려야 할 건 비단 책만이 아니었다. 자개장롱, 옷장, 냉장고도 버려야 한단다. 새로 이사하는 아파트엔 붙박이장이 있으므로 굳이 자개장롱을 들여놓을 공간이 없다고 했다. 서울로 이사하는 기념 선물로 막내딸이 최신형 냉장고를 사 준다기에 십 오륙 년인가 써 온 구형 냉장고를 버려야 한다 했다. 마침 이웃에 사는 아내의 친구가 그것들을 거두기로 하여 이사갈 때 넘겨주기로 했다.
자개장롱을 버린다는 생각에 미쳐 가슴이 아득히 메이는 듯하였다. 삼십대 청년 시절에 어떤 문학상으로 상금 백만 원을 받았었다. 아내는 상을 타기 전에 미리 상금의 용도를 작정해 놓고 있었다. 한 동네에 장롱을 짜는 이가 살았는데 그 집에 부탁하여 백만 원 짜리 자개장롱을 맞춘 것이었다. 내 나름대로 상을 타면 어떻게 하려니 계획했건만 어머니와 아내는 이 자개장롱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집안 대대로 가보처럼 소중히 물려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나를 달랬다. 불빛에 반사되는 무지개 빛깔의 자개 문양은 아름다웠다. 이사 다닐 때마다 자개장롱은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값비싼 자개장롱을 마련하고 아내와 어머니는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아끼고 자랑스러운 그것을 버린다는 결단을 내리기까지 아내도 많이 망설였겠지.
요즈음 아내는 이순(耳順)의 우리 나이엔 차근차근 버리고 정리해야 할 시기라고 나를 설득한다. 별로 입지 않는 옷가지도 웬만하면 그냥 남에게 주어버리는 편이 낫다고 하였다. 사람이 살다가 죽으면 고인의 옷을 누가 입을 것인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고인의 옷을 불태워 없앤 기억이 연기처럼 슬프게 가물거린다.
언젠가 텔레비전의 프로에서 오십년대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가 지금은 골동품이 되어 일백 칠십 만 원을 호가한다는 것을 보고 우습기도 하고 우습지 않기도 하였다. 쉽게 버리는 하찮은 물건 가운데에는 오래 간직하여 보물이 될 것도 있으련만, 비좁은 생활 공간을 생각하면 무엇이 귀한 골동품이 될 수 있을 건지 판별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사 세 번, 불 한 번이라고 하는 말을 예전에 어머니가 들려주셨다. 생전에 공직에 계시던 아버지가 자주 전근을 다니므로 이사가 잦아서 푸념으로 노상 입에 올리던 말이었다. 이사를 세 번 하게 되면 깨지고 부서지고 없어지는 물건이 많아서 집에 화재가 한 번 나는 것과 같다는 말이라 하였다. 사실 그 말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
작은 개천이 흐르는 변두리의 이태리식 슬라브집에 살다가 대학가의 골목 안 벽돌 양옥집으로 이사하면서 나는 소중한 추억을 몽땅 잃은 적이 있다. 상판을 올리면 서랍장이 되고 상판을 내리면 책상으로 쓰이는, 풍금 모양의 작은 책상이었다. 십 년쯤 손때 묻은 책상인데 여기저기 칠도 벗겨지고 서랍의 받침대도 부러져 있었다. 이사한 새 집에 가서야 그것을 고물상에 넘겨버린 걸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고물 책상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그 책상의 한쪽 칸에 비밀스럽게 간직한 일기장조차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부터 대학교 삼 학년 무렵까지 쓴, 꽤 두툼한 부피의 일기장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과 중학교 시절엔 방학 숙제로 마지못해 일기를 쓰곤 했지만 그런 거야 없어진대도 아쉬울 게 없었다. 그래도 제법 진지하게 일기를 쓴 건 그 시기뿐이었다. 가난한 그 시절 내가 문학에 뜻을 세우고 하루 한 페이지씩 꼬박꼬박 써 나간 일기장이 그 책상 속에 들었던 건데, 낡은 책상과 함께 사라진 것이었다.
이사하면서 가슴 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대학가의 단독주택에 살다가 처음으로 아파트를 사서 옮겨 갈 때의 일이다. 개를 한 마리 기르고 있었는데 아파트로 데리고 갈 수가 없어서 그놈을 새 주인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우리 대신 잘 기르겠노라고 새 주인 여자가 웃었다. 이삿날 짐을 옮기는 북새통 속에서 문간에 개를 놓아둘 수는 없었다. 이층 옥상으로 개집조차 들어서 잠시 옮겨놓아 주었다. 이삿짐을 옮기다가 점심 무렵 평소에 개가 좋아하는 빵을 한 개 사서 개에게 주었다. 한나절 동안 혼자 옥상을 지키고 있던 개는 꼬리치며 빵보다도 찾아간 우리 내외를 반겼다.
이사를 마친 다음날 아침 아내와 나는 옛 집에 찾아가 보았다. 텅 빈 집엔 아무도 없었다. 집을 좀 손보고 이사 들어온다더니…. 세간이 없어서일까, 엊그제까지 우리가 살던 집이 왠지 낯설었다. 옥상에 올라가 보았다. 개집만 한 구석에 쓸쓸하고 정작 개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개집 앞에는 입도 대지 않은 빵 한 개가 바람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뿐.
첫댓글 버리고 산다는 것 가슴이 멍멍해 집니다.
이삿짐 보다 많던 책을 허무하게 버린 일이 갑자기 생각이 납니다,
가구보다 책이 더 소중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사정에 의하여 부득이 버려져야만 하는 책,,
지금도 이태리 가구 버린 일보다 더 후회스러워 말을 못 합니다.
좋은 글 읽었습니다.나이가 들면서 버려야 한다는 것,실감을 하는 시기가 지금입니다.
유익한 시간을 제공해 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