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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 | 818쪽 | 223*152mm (A5신)
저자소개 진정일 -
1947년생으로 노자의 고향인 하남성 녹음현 출신이다. 하남대학을 졸업했고, 현재 중국 작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허세우 전기>가 있다.
번역자 소개 이양자 -
1942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한국사 39집> <현대중국의 탐색> <중국근대화 역정속의 주요인물들>, 역서로는 <송경령평전> <송경령과 하양응> <20세기 중국을 빛낸 위대한 여성 송경령>
차례
1. 입지전적 인물, 아버지 송가수.
2. 포화 속에서 탄생
3. 미국에서 유학하다
4. 미령의 귀국
5. 사교계의 여류명사
6.사상의 뿌리
7. 하늘의 뜻은 따르기 힘들다
8. 밤이 길면 꿈도 많다
9. 정치적 인연
10. 성대한 결혼식
11. 명사 부부
12. 미령의 종군
13. 자매관계
14. 항공 사령
15. 환난을 같이한 부부
16. 항일하다
17. 화목한 자매
18. 외교부인
19. 경솔했던 인생
20. 미령이 신발을 태우다
21. 흑백을 뒤집다
22. 대세는 기울어지다
23. 패한 자는 도적이 된다
24. 대륙을 잃다
25. 대만에서의 일화
26. 만년의 세월
27. 탄생 백주년
에필로그
참고문헌
역자후기
미디어리뷰
동아일보 ;
“당신은 지혜로 따지면 제갈공명 아내와도, 능력으로 말하면 측천무후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강하기로는 서태후보다 100배 더 강하오.”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106세를 일기로 사망한 쑹메이링(宋美齡)에게 그의 남편인 장제스(蔣介石) 전 총통이 한 말.
쑹메이링을 비롯한 쑹씨 자매는 20세기 중국현대사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꼽힌다. 첫째 아이링(愛齡)은 산시(陝西)성 최대 금융 재벌과, 둘째 칭링(慶齡)은 쑨원(孫文)과 결혼했다. 중국인들은 지금도 “아이링은 돈을 사랑했고 칭링은 중국을 사랑했으며, 메이링은 권력을 사랑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여걸이 인맥과 미모, 야망으로만 권력을 좌우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책벌레였고 조숙했던 그는 오만하고 독선적이었으나 아름다운 미소와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장제스와 결혼 후 그는 남편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면서 개인비서, 통역관, 외교고문으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1936년의 시안(西安)사변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 군벌 장쉐량(張學良)에게 감금된 장제스를 구하기 위해 직접 시안으로 달려가 담판하는 용기를 보임으로써 그는 전 세계에 자신의 담력과 외교력을 과시했다.
이 책은 중국 본토에서 이루어진 쑹메이링 연구의 첫 결실. 전기 전문작가인 저자는 “중국공산당의 개혁개방 정책 덕분에 이 책을 쓸 수 있었다”고 밝혔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한국일보 ;
장제스 부인 쑹메이링의 106년 삶 자료수집 20년·집필 10년 걸려 담아내
"지혜는 제갈량 아내를 능력은 측천무후를 강함은 서태후를 압도하도다" - 장제스 -
밤이 길면 꿈도 많다지만, 여성으로서 이처럼 오랫동안 화려한 꿈을 펼치며 명예롭게 살다간 인물이 또 있을까. ‘영원한 퍼스트 레이디’ ‘가장 존경할 만한 여성’ ‘가장 아름다운 여성’ 등 최상급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쑹메이링(宋美齡ㆍ1897~2003)여사. 장제스(蔣介石ㆍ1887~1975)라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와 결혼, 어두운 중국의 현대사에서 묵직한 발자국을 남긴 여걸의 삶을 따라가보는 일은 어떤 드라마, 어떤 소설보다도 감동적이다.
<사진: 상하이 시절, 쑹메이링이 약혼자인 장제스와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다.>
그녀의 인생을 뒤바꾼 장제스와의 인연은 우연한 곳에서 운명적으로 시작된다. 상하이에서 반건달처럼 지내던 장제스는 성병을 치료하기 위해 둘째 부인과 병원을 찾았고,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우아하고 오만한 여인을 만났다. 당시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쑹메이링의 야심도 만만치 않았다. 장제스의 잠재력을 알아본 쑹메이링은 그가 두 번이나 결혼했고 첩까지 있다는 사실도, 어머니와 둘째 언니 쑹칭링(宋慶令)의 강력한 반대도 장애물로 여기지 않았다.
1927년 12월 명실공히 ‘퍼스트 레이디’로서 날개를 달게 된 그녀는 남편의 개인비서이자, 외교고문으로서 전쟁터와 세계 각국을 누볐다. 1943년 카이로회담 때 통역관도 그녀였다. 1937년 장제스가 시안(西安)에서 군벌들에게 납치된 시안사건 때는 직접 공산당 대표인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담판, 두둑한 배짱과 놀라운 협상력을 인정 받았다. 1942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의 능수능란한 외교솜씨를 보고 “선교사가 중국에 예수를 전했듯이, 송미령은 미국에 중국을 알렸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장제스가 만년에 그런 아내에게 “지혜로 따지면 제갈공명 아내를 능가하고, 능력으로 말하면 측천무후도 비교할 수 없으며, 강하기로 말하면 서태후보다 백배”이라고 말했던 것도 과찬은 아닌듯 보인다. 하지만 가정생활 자체는 그다지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의 끝없는 바람기로 눈물을 흘려야 했고, 본처 아들인 장징궈(蔣經國)와 권력투쟁을 벌였다.
근대 중국에서 쑹씨 집안의 세 자매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다. 쑹메이링은 특히, 쑨원(孫文)의 비서로 들어가 혁명가의 아내로, 또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살았던 둘째 언니 쑹칭링과는 자주 비교된다. 81년 쑹칭링이 죽기 전 중국정부는 쑹메이링에게 전보를 쳤으나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 가지않았다. 또 쑹메이링은 죽어서도 고향인 상하이로 돌아가거나, 대만에 있는 남편 묘에 합장되는 것을 거부하고, 지난해 미국 땅에 묻혔다. 하지만 생전에 그녀를 비난했던 중국정부도 ‘항일구국의 영웅’이라고 기렸다.
‘송미령 평전’은 19세기에 태어나 21세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그녀의 발자취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복원하고 있다. 죽음을 무릅쓴 항일투쟁 종군과정이나 대만으로 쫓겨갈 때 금은보화를 가져갔던 일, 남편을 유혹하는 새파란 처녀를 타일렀던 일 등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처럼 기록했다.
중국의 중견작가인 쳉팅이(56)이 20여년에 걸쳐 자료를 모으고 10년 가까이 쓴 이 책은 그러나 중국에서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90년대 초에야 출간될 수 있었다. 권력지향적이고 콧대 높은 여인이 어떻게 “신비하고도 걸출한 동방여인”으로 우뚝 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적었다고 한다.
최진환 기자 choi@hk.co.kr
서울신문 ;
송미령 권력을 사랑한 여인
●‘송가왕조’ 세 자매중 막내로 태어나
‘송가왕조(宋家王朝)’ 세 자매 가운데 한 명인 송미령은 20세기 중국사의 화두이자 상징이다.큰언니 송애령은 산서성 최대의 금융재벌이던 공상희와 결혼했고,둘째언니 송경령은 부친의 친구이자 중국혁명의 아버지인 손문과 결혼했으며,송미령은 22년 동안 중국대륙을 통치한 국민당 총통 장개석과 결혼함으로써 이른바 송가왕조를 이뤘다.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1980년대 중반 송씨 자매들을 이렇게 평했다.“이들은 시대가 만들어낸 인물들이다.낙양의 모란꽃처럼 이들 각자에겐 운치가 있다.사람들은 말하기를 송애령은 돈을 사랑했고,송경령은 중국을 사랑했으며,송미령은 권력을 사랑했다고 한다.” 세 자매의 인생관과 인생역정은 이처럼 판이했다.
●송미령 가문의 원래 성씨는 韓
‘송미령 평전’(첸팅이 지음,이양자 옮김,한울 펴냄)은 조국과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동시한 사랑한 한 여인의 ‘모순된’ 삶을 통해 20세기 현대사의 궤적을 그려낸다.
책은 먼저 송미령 가문의 원래 성씨는 송이 아니라 한(韓)임을 밝힌다.송미령의 부친 한교준은 집안이 어려워 열 세살 때 양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다.우여곡절 끝에 송가수(찰리 송)로 성과 이름을 바꾼 그는 신학대학을 졸업,선교사가 돼 귀국한다.송가수는 훗날 절강재벌로 성장해 손문의 혁명자금을 지원하는 혁명동지가 된다.송미령은 이런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인 어머니 예계진 사이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장개석과 결혼… 퍼스트레이디로
송미령은 매우 오만하고 독선적이었지만 미모와 교양,외교력 등을 두루 갖춘 강한 면모의 ‘서구적’ 여성이었다.송미령을 중국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게 한 결정적 사건은 장개석과의 결혼이었다.장개석에겐 이미 맏아들 장경국의 어머니인 첫 부인 모복미가 있었고,둘째 부인 진결여와 첩 요이성이 있었다.송미령에게도 미국 유학시절부터 사귀어온 유기문이란 연인이 있었지만,언니 애령의 권유와 퍼스트 레이디가 되려는 권력욕이 어우러져 장개석과 결혼에 이르게 됐다.언니 경령에 이어 중국의 두 번째 퍼스트 레이디가 된 것이다.경령은 이들의 결혼에 대해 “둘의 결합은 정치의 일부분이지 사랑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송미령과 장개석의 48년 결혼생활은 화려함과 허영,용기,외로움으로 점철된 것이었다.1·2차 세계대전과 중국 내전,권모술수와 배신의 한복판에서 송미령은 늘 주인공이길 원했다.결혼 후 그는 국민당을 이끌고 공산당과 일제침략에 맞서 싸우는 장개석을 10여년 동안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개인비서,통역관 겸 외교고문으로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특히 1936년 ‘서안사변’은 송미령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장학량에게 납치 감금된 장개석을 구하기 위해 직접 서안으로 달려가 담판하는 용기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담력과 외교력을 과시했다.
●美서 ‘차이나로비’ 주역으로 주목
송미령은 ‘차이나로비’의 주역으로 대접받았다.1943년엔 루스벨트 대통령의 초청으로 외국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상하 양원합동회의에서 미국의 원조를 요청하는 연설을 해 기립박수를 받았다.루스벨트 대통령은 “선교사가 중국에 예수를 전했듯이 송미령은 미국에 중국을 알렸다.”고 극찬했다. 1949년 대륙에서 공산당이 승리함에 따라 국민당은 타이완으로 쫓겨났지만 송미령은 장개석을 도와 외교활동을 계속했다.그러나 송미령은 1975년 장개석이 사망한 뒤 병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그의 미국생활은 외로웠다.장개석의 성병과 송미령의 나팔관 수술 등의 이유로 자식이 없었고,본처의 아들인 장경국과는 불화의 연속이었다.두 번에 걸친 유방암 수술에도 불구하고 송미령은 106세까지 장수했다.
●만년의 장개석, 송미령에 찬사
만년의 장개석은 수많은 신화를 남긴 아내 미령에게 “당신은 지혜로 따지면 제갈공명 아내와도 비교할 수 없고,능력으로 말하면 측천무후도 비교할 수 없으며,강하기로 말하면 서태후보다 백배 더 강하오.”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20세기 현대사를 풍미한 송미령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을 달린다.그러나 중국의 개방 이후 본토에서 씌어진 이 책은 비난도 찬양도 하지 않는다.송미령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소설적인 문체로 그릴 뿐이다.소설처럼 부담없이 읽는 가운데 중국 현대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중국에서 13쇄를 거듭한 베스트셀러인 이 책의 번역본은 800여 페이지에 이른다.3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조선일보 ;
- 김한수 기자(2004-06-12) 조선일보 :
19세기에 태어나 21세기에 세상을 떠난 중국현대사의 주역, 미국 시사지 '타임' 표지에 3차례 등장한 여인... 장개석 전 대만 총통의 부인 송미령의 일생을 다룬 책이다. 아버지 송가수가 자수성가하는 과정부터 송미령이 100세 생일을 맞던 1997년까지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버지가 손문의 혁명을 재정지원하고 둘째 언니 경령은 손문의 부인, 미령은 장개석의 부인으로 중국현대사를 호령한 그녀의 집안은 '송왕가(王家)'로 불린다.
10대 때부터 미국에 유학한 재색을 겸비한 그녀가 뿜어내는 매력은 책 전체에 가득하다. 단신으로 미국을 방문, 루스벨트 대통령과 의회지도자들을 설득, 일본 공군에 대항할 전투기 120대와 비행사까지 데려오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또 남편 장개석이 군벌 장학량에게 연금당했을 때도 당당히 서안을 찾아가 담판짓고 남편을 구출해 온 장면은 여장부의 모습 그 자체이다.
그러나 빼어난 능력과 담대함에도 불구하고 시대는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구해내야 할 대상이 국민당 정권과 장개석이었다는 점은 그녀의 최대의 불행이었던 것 같다. 저자가 중국 대륙 출신이어서인지 장개석의 경우는 개인적·성격적 결함이 좀 더 부각되고, 송미령의 능력과 매력이 부각된 느낌도 없지 않다.
- 김한수 기자 -
경향신문 :
'송미령…' 하면 떠오르는 이름이 수없이 많다. 남편 장개석은 물론이고 첫째언니인 애령과 중국 최대 재벌인 형부 공상희, 둘째언니 송경령과 그 남편인 국부 손문, 오빠 송자문, 모택동, 타이완 총통을 지낸 장경국 등. 중국 현대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그러다보니 '송가왕조'라는 말까지 만들어졌다.
이 책은 결국 이들이 엮어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현대사의 일부인 셈이다. '애령은 돈을, 경령은 중국을, 미령은 권력을 사랑했다'는 속설처럼 미령은 자신의 권력욕과 언니 애령의 권유로 미국유학 시절 사귄 애인을 내친 채 10살 연상의 장개석과 결혼, 셋째부인이 되면서 중국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장개석에게도 손문과의 관계를 굳건히 하려는 정치적 야망이 작용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권력욕에 사로잡혔던 재벌의 딸로만 읽는 것은 금물이다. 언니 경령의 "둘의 결합은 정치의 일부분이지 사랑이 아니다"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교력과 용기를 갖춘 그 시대의 주인공 중 하나였다. 서안사건으로 장학량에게 사로잡힌 장개석을 구출하기 위해 홀로 적진에 들어가 담판하고, 중일전쟁에서 미국의 원조를 이끌어내고 공산화된 중국 대륙으로부터 타이완을 생존케 한 '차이나 로비'의 주역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를 "선교사가 중국에 예수를 전했듯이 송미령은 미국에 중국을 알렸다"고 평가했다. '세계 속의 여성' 시리즈 2편으로 1편인 송경령과 함께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괜찮겠다.
국민일보 :
20세기 중국 현대사를 뒤흔든 장개석 전 대만 총통의 아내 송미령, 여걸일까 악녀일까. 그녀는 중국 광동성의 부호 송씨 가문의 딸로 산서성 금융재벌 공상희와 결혼한 큰 언니 송애령,근대 중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손문과 결혼한 송경령의 막내동생이다. 세 자매를 두고 "송애령은 돈을 사랑했고,송경령은 중국을 사랑했으며 송미령은 권력을 사랑했다"는 말이 회자됐다.
하지만 이들은 단지 남편의 후광만이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중국 현대사와 20세기 세계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셋째딸 송미령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조국과 자신의 이기주의를 동시에 사랑한 한 여인의 모순된 삶을 그리고 있다.
이상적이고 희생적인 언니 송경령과 비교해 송미령은 분명히 권력 지향적이다. 하지만 그녀는 뛰어난 재능과 미모,외교적 수완으로 중국이 일본 침략에 대항하고 대만의 국민당이 공산중국의 위협 속에 생존케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936년의 시안(西安)사변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 군벌 장쉐량(張學良)에게 감금된 장제스를 구하기 위해 직접 시안으로 달려가 담판하는 용기를 보임으로써 그는 전 세계에 자신의 담력과 외교력을 과시했다.
- 김윤순 기자 -
세계일보 :
쑹이 어떤 인물이었는가 하는 답은 그와 반백년을 함께했던 장제스의 칭찬을 참고할 만하다. "지혜로 따지면 제갈공명 아내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능력으로 말하면 측천무후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강하기로 말하면 서태후보다 백배 더 강하오." "쑹아이링은 돈을 사랑했고, 쑹칭링은 중국을 사랑했으며, 쑹메이링은 권력을 사랑했다."
중화민국 총통인 장제스의 부인으로 중국 현대사와 운명을 같이했던 쑹메이링(1897∼2003)은 권력을 사랑했던 여인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송미령평전>을 읽다 보면 그가 권력에 눈이 멀어 장제스와 결혼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가족과 장제스의 집요한 구애의 결과로 권부에 진입했음을 알게 된다.
1927년 결혼은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과 장제스 간의 인연, 그리고 국민당 시절 돈줄을 거머쥔 재정부장 쿵샹시와 결혼한 언니 쑹아이링 등 쑹 가문의 합작품이었다. 결혼 후 쑹메이링은 남편과 함께 전쟁터를 누볐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지원을 끌어내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외모만 중국인이었을 뿐 사고는 미국인과 다름없었던 쑹은 유창한 영어 실력과 외교력을 발휘, 미국으로부터 비행기 120대를 지원받아 항공외국용병대 창설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항일 국공합작을 요구했던 장쉐량이 1936년 12월 시안(西安)에서 공산당 토벌을 강조한 장제스를 구금한 '시안사변'에서 쑹은 진가를 발휘한다. 저우언라이와 담판을 벌여 남편을 구출한 것이다. 이후 국민당은 공산당에 밀려 대만으로 쫓겨가고 75년 장 총통은 사망한다. 결혼 후 남편과 사별하기까지 48년간 쑹은 대담성과 뛰어난 외교력을 보인 여걸의 삶을 살았다.
남편 사후 대만과 미국 간의 유대를 돈독히 하기 위해 노력했던 쑹의 만년 미국 생활은 외로움과 초라함 그 자체였다. 19세기에 태어나 21세기에 이르는 중국 현대사 격동의 현장을 누볐던 파란만장한 삶의 주인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한평생 아이를 낳지 않았고, 이념을 달리했던 언니 쑹칭링과는 49년 중국 공산화 이후 평생을 만나지 않았다. 장제스의 전처 소생의 아들과 손자 대다수가 사망할 때까지도 쑹은 생존했다.
쑹이 어떤 인물이었는가 하는 답은 그와 반백년을 함께했던 장제스의 칭찬을 참고할 만하다. "지혜로 따지면 제갈공명 아내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능력으로 말하면 측천무후와도 비교할 수 없으며, 강하기로 말하면 서태후보다 백배 더 강하오." - 신동주 기자(2004-05-15) 조선일보 : 남편 장개석이 군벌 장학량에게 연금당했을 때도 당당히 서안을 찾아가 담판짓고 남편을 구출해 온 장면은 여장부의 모습 그 자체이다. 그러나 빼어난 능력과 담대함에도 불구하고 시대는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 신동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