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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빈손
지난 4월 11일에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논문표절문제와 자신의 죽은 남동생의 아내성추행 문제로 비난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 두 사람은 억울한 면도 있을 거예요. 더 많이 표절했지만 발각되지 않은 채 잘 지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더 심하게 가까운 친족을 성추행했는데 문제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 중에 논문표절과 성추행이 아닐지라도 탐욕과 교만이 만드는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별로 없습니다. 최근에 한국 재벌가문에서 재산분배문제로 서로를 향해서 비난하는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쓸쓸하게 하지만 우리네 가정도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은퇴하는 목회자들의 은급문제로 교회가 시끄러울 때가 많지요. 욕심을 부리는 목회자와 인색한 교회가 우리의 모습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적 죄를 낳습니다. 시험점수를 잘 받으려는 욕심이 부정행위를 하게 하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 도둑질과 사기를 치게 합니다. 물질의 욕심이 아닐지라도 나의 생각만을 고집해서 자기주장관철의 욕심을 부릴 때도 많습니다.
인도의 독립운동가였던 간디가 제 2차 대전 후에 독립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독립국가의 환상에 젖어있을 때 메시지를 던졌습니다.“여러분의 욕망(wants)을 억제하고 필요(needs)만을 충족시키세요!” 그의 주장은 인간은 연약한 존재인데 욕심을 부려서 부족한 공간을 크게 만들어 더욱 연약한 존재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간디의 말이 적중했지요.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민들이 서로가 욕심을 부리다가 국가는 더 혼란스러워져 후에 독재정권이 출현했습니다. 요즘 많은 가정이 이혼으로 인해 해체되고 사회는 욕심을 채우려는 이익집단끼리 부딪쳐서 혼돈 중입니다.
상담자의 입장에서 그 원인을 진단하면 가족 식구들의 욕심과 집단의 구성원들의 욕심이 만들어내는 비극입니다. 존경받는 목회자였던 한경직 목사님이 남겨주신 “아름다운 빈손”의 진정한 의미를 가정의 달 5월에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빈손의 주인공이 된다면 우리 가정과 사회는 더욱 밝음과 감사로 넘칠 것입니다.
김 영 근 목사<예수사랑, 가족사랑 발행인>
2012년 5월 가족치유회복중보기도
학교를 다녀오는 딸을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엄마가 딸을 만나 다정하게 집으로 가는 모습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성장기를 보내는 자녀들은 행복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엄마에 관한 느낌을 이야기하라고 했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엄마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답니다. 선생님은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몇 주를 지나놓고 보니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조부모들과 함께 살고 있었답니다. 엄마라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을 볼 때 가슴이 아픕니다.
최근에 실시된 무상보육으로 출생 후 만 2세까지의 유아들을 유아교육기관에서 무상보육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많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가정주부로 일하는 젊은 엄마들이 생후 몇 개월이 되지 않는 아이를 보육기관에 맡긴다는 이야기입니다. 생후 1-2년의 유아들은 엄마가 키워야지 건강하게 자랍니다. 그런데 공짜보육이라고 해서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보육기관에 맡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씁쓰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이 어디로 가야할까요. 남한 땅의 248개로 나눠진 시·군·구에 있는 모든 가정들을 위해서 중보기도의 손을 간절히 모읍시다.
1. 기도시간: 가족중보기도는 개인이나 교회별로 정해진 시간에 하루 1회 이상씩 합시다.
2. 중보기도참여자: 가정의 치유와 회복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3. 기도의 대상: 내가 살고 있는 <시ㆍ군ㆍ구>에 있는 가정들이 기도의 대상입니다.
<일반기도제목>
첫째, 가족식구들의 상한 마음을 건강한 마음으로 변화시켜주옵소서!
둘째, 내가 먼저 주님의 용서를 체험하고 가족 안에 용서를 실천하게 하소서!
셋째,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건강한 자아상을 갖게 하소서!
넷째, 가족식구들의 생각이 합리적인 생각과 성경적인 생각으로 바꿔지게 하소서!
<특별기도제목>
첫째, 학교공동체의 교사들이 단순한 직장인이 아닌 스승의 사명을 갖게 하소서!
둘째, 가정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서 변화시키려는 어리석음을 포기하게 하소서!
셋째, 김정은 체제의 북한 사회에 국제사회를 향한 개방과 인민의 자유를 허락하소서
넷째, 그리스도인들이 성공신화를 포기하고 자족과 감사의 삶을 살게 하소서!
김영근
배우자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하십시오!
결혼초창기 때였습니다. 신학동기생들 여러 명이 부산지역에서 전임전도사로 사역을 하고 있었을 때 친목을 위해서 한 달에 한 번 가정별로 돌아가면서 식사모임을 갖곤 했습니다. 3월 초에 가졌던 저녁식사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가용이 없던 시절이라도 우리 부부도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차례가 된 것 같아서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급한 성격의 부산사람(?)이 먼저 택시를 타고 가버렸습니다. 택시 승차장에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린 것이 아니어서 승객의 순서가 정확하게 구분된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내 순서라고 생각했는데 옆에 손님들이 서둘러 타는 바람에 우리들의 순서는 많이 늦어졌습니다. 기다리기에 지친 아내는 나의 등 뒤에서 추운데 택시를 잡으려면 적극적으로 잡아야지 소극적으로 잡으면 언제 택시를 타겠느냐 하면서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내가 나의 등 뒤에서 하는 말을 듣는 순간 이 여자와 한평생을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을 진행하는데 속도감있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여유를 갖고 일에 임하는 편입니다. 사람들은 저의 그런 태도를 여유가 있다고도 하지만 느려빠졌다고 비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일을 진행하는 나의 태도와 속도감 있게 일을 진행하는 아내의 태도는 각자의 삶의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유를 부리는 태도와 속도감있게 진행하는 것 사이에서 누가 옳을까요? 둘 다 옳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가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면서 저희 부부도 결혼초창기에는 갈등을 많이 겪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부부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면서 인생을 사는 지혜를 조금씩 터득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혼초기에 많은 신혼부부들이 서로를 바꾸려고 소리없는 전쟁을 진행하지만 이 전쟁에서 승자는 많지 않습니다. 다행히 서로를 바꾸려는 전쟁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부부들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가정에서 부부들이 서로를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전쟁을 계속하다가 결혼관계 자체가 파괴되어 불행해지는 경우를 종종 목도합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최근에 늦게 결혼하는 부부들이 많은데 늦게 결혼하면 할수록 자신의 성격과 삶의 스타일은 더욱 견고합니다. 그렇기에 변화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런데 늦게 결혼했기에 결혼에 대한 기대는 더 많아서 내 배우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야 결혼이 행복해질 것 같아서 무리할 정도로 배우자를 변화시키려는 전쟁을 진행합니다. 그 결과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체기를 남기면서 그 전쟁의 무모함을 깨닫습니다.
부부사이의 힘의 균형이 뚜렷해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강제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이런 경우에도 상체기는 남습니다. 힘이 약해서 저항을 못했을 뿐이지 상대방이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의도에 대해서 내면적으로는 강하게 저항합니다.
내 배우자의 현재의 모습은 벌써 결혼하기 오래 전부터 아마 출생 후부터 형성되기 시작해서 온갖 풍상을 거쳐서 모양을 갖추었습니다. 그 모습이 좋든 싫든 옳든 그러든 내가 결혼할 때에 묵시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결혼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인정해야지 왜 바꾸려고 합니까? 물론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요. 배우자의 성격과 삶의 스타일이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어보이고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 가정에 행복도 미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조급할 정도로 변화를 강요합니다. 그런데 역으로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하면 간섭하고 통제한다고 방방 뛰면서 상대방에게 짜증을 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인간들은 참 이기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자신 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하면서 안타까워하셨습니다.
필자는 상담사역을 하면서 이러한 안타까운 부부들을 자주 목도합니다. 이들은 상담실에 와서도 자신의 주장을 내려놓지 않고서 변화를 거부하는 못된 배우자를 공격합니다. 변화를 강요당하는 배우자는 상대방의 요청을 거부하며 벽을 쌓게 되고 자신의 인격이 무시당하면서 자존감의 손상을 겪습니다. 이들은 결혼관계를 계속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이들의 결혼관계는 불행합니다.
원래 부부는 서로가 돕는 배필로 만납니다(창2:18). 아내가 남편을 향해 돕는 관계이지만 돕는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쌍방간의 관계이기에 서로를 향해서 돕는 관계입니다. 또한 부부는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도와주는 연합관계입니다(창2:24). 결혼생활은 부부 각자가 혼자서는 완성품이 안되니까 서로 연합해서 하나의 아름다운 완성품을 만들어가는 인생여정입니다.
치유목회칼럼 9 나의 치유목회 한영수목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지난 3월 19일부터 28일까지 9박 10일간 처음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아랍 에미레이트의 두바이를 거쳐서 돌아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여러 가지로 유익한 여행이었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성경을 읽는 맛이 전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지명을 읽을 때 그 장소와 분위기가 연상되고 실감이 나 좋았습니다. 비록 2,000년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있기 하지만, 성지 곳곳이 예수님 사역의 현장이고 선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했던 하나님의 임재의 현장이었기 때문에 감동이 컸습니다.
그러나 한편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성지인데,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개신교 신자가 1만 5천명 정도라고 하는데, 유대교도 소수며 대신 세속적 이스라엘 백성이 넘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지를 순례하는 기독교 신자들로 인해 경제적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성지를 순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 다수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무신론자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과 십자가를 아주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적십자사는 우리가 아는대로 일반적으로 붉은 십자가를 로고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수학에서 덧셈 기호는 작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적십자 표장에 십자가를 연상하는 붉은 십자가 로고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덧셈 기호로 +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마름모꼴의 적수정과 ㅗ 기호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또 역사를 구분할 때 통상 기원전과 서기로 구분합니다. 영어로는 B.C라는 말, 즉 Before Christ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기준으로 역사를 구분하는 B.C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B.C.E를 사용합니다. B.C.E는 Before Common Era의 약어입니다. 해석하자면 그 뜻은 공동연대 이전인데 의미는 역시 기원전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을 아주 싫어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입니다. 어떻게 하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다분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책임이 큽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회나 기독교 국가들이 유대인들을 심하게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서구 세계는 기독교화 되었고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차별과 박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직업의 자유도 주거 선택의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살던 곳에서 추방되었고 잔인하게 학살당하기도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유대인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에 못박은 저주받은 민족으로 치부하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과 박해를 정당화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한 사건은 20세기 초에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국가인 독일에서 나치들이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입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는 디아스포라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 박물관은 지난 2천년 이상 온갖 수난과 박해 가운데 생존해온 유대인들이 피눈물 나는 역사를 간직해 놓은 박물관입니다. 그런데 이 박물관 입구에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비수같이 찌르는 글귀가 있습니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학살할 때 기독교인들은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은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의 증오감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리하면 유대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등을 돌린 것은 기독교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이 인간의 본성대로 유대인들을 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하는 길을 걸으셨습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의 참모습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땅의 신자들 가운데 <자기를 부인하는 길>을 걷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것이 안되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욕을 먹고 비난을 듣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포함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못 믿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김희라
자신의 색깔과 빛과 모양으로
누구나 꽃 피울 때 있어요.
앞서 피는 꽃 시샘하나
언젠가 주위 눈얼음 녹이며
샛노란 복수초(福壽草)처럼 피어나리니
기다림 지쳐 스스로 떠나지 마요.
어둔 땅 속 애벌레 7년
오롯이 노래하는 매미 7일
길가에 핀 작은 별꽃
자기 몸 열배 무거운 돌 들어 올리고
피어난 생명
아무도 몰라주어 서러운
활짝 핀 반디지치
해, 달, 별, 하늘, 바람이 껴안고 있어요.
네 향기와 색깔 지니고
당신의 계절에 환하게 피어요.
누구나 꽃 피울 때 있어요.
위의 시는 현실에 좌절하여 생명을 던지려는 청춘들에게 부치는 시다. 꽃은 봄과 여름, 가을, 겨울 등 제철에만 피는 것과 사계절 내내 피는 것이 있다. 하나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우리는 자신의 색깔과 빛과 모양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이른 봄 숲에서 만난 우아한 보라색의 점현호색들은 야생화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꽃이다. 행운과 복을 가져다준다는 눈 속에 피는 노란 복수초의 고고한 아름다움과는 달리 풀꽃처럼 보인다. 점현호색 꽃들이 시들해갈 무렵 흔한 보라색 제비꽃과 모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하얀 남산제비꽃이 앞을 다투어 피고진다. 흔한 제비꽃도 봄 숲에서는 제몫을 다한다. 초여름 점현호색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맥문동이 꽃을 피우고 가을이 되면 맥문동이 까만 열매를 맺는다.
산기슭 앙증맞은 작은 바위, 촉촉한 이끼위에 핀 애기괭이눈꽃은 신선한 노란 눈맞춤이다. 꽃이 지면 넓은 잎은 계속 살아 애기괭이눈 자신의 존재를 계속 알린다. 노란 개나리와 생강나무 꽃들, 그리고 산수유가 화려하게 개화하며 봄을 알린다면 야생화들은 겸손하게 엎드려서 봄을 알리고 생명의 신비를 보여준다. 야생화들은 겸손하고 작은 것을 귀하게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 그들은 창조주의 신비를 말하고 있고, 가치 있는 삶이 결코 유명하거나 부하거나 높은 지위에 있지 않음을 조용하고 나지막하게 보여준다.
가치 있는 아름다움은 그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색깔과 빛과 모양을 빚어내는 데 있음을, 그러면서 다음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주어진 환경에서 온갖 몸짓으로 절망하지 않고 땅 위에서 혹은 땅속에서 인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흔한 제비꽃을 그냥 노란 제비꽃, 흰 제비꽃, 남색제비꽃, 보라색제비꽃이라 부르지만 제비꽃 종류가 60여종이나 있고 다들 자신의 고유한 특성과 이름 하나씩을 갖고 있다. 흔하다 하여 우리는 귀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흔한 것 또한 가장 귀한 것임을 봄 숲의 야생화에서 배운다.
아파트 주변 길가에서 뿌리 채 캔 앙증스러운 하얀 봄맞이 꽃과 노란 꽃다지는 재활용한 종이컵 안에서 예쁘게 자라고 있다. 부엌 싱크대 위에 놓아두고 돌보며 그릇을 씻을 때 마다 눈길을 주고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보낸다. 그래 나의 존재가 한두 사람에게라도 감사와 기쁨을 준다면 족한 것이다.
문형욱
Illusion(환상)을 버리고 Vision(참된 꿈)을 찾아라!
많은 믿음의 지체들이 결혼에 대해 환상(illusion)을 쫓으며 결혼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청년의 때에는 이성교제에 대해 많은 교육과 훈련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언론매체(TV, 잡지, 인터넷)를 통해 나오는 환상적인 만남과 결혼에 흔히들 빠져 살고 있는 것 같다.
청년들이 잘못된 성 지식과 사랑에 대한 허구적 생각으로 인해 이성교제를 올바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환상은 잡을 수 없는 현실이다. 또한 환상에 젖어 사는 사람들은 그 환상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환상을 위해 항상 공허할 따름이다.
메스미디어의 발달이 더욱 즐겁고 행복해 보이지만 정작 삶에서는 항상 불안 하고 공허한 마음이 드는 것은 환상에 젖어 살기 때문이다. 믿음의 지체들은 환상을 보고 연애와 결혼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보며 이성교제를 생각 해봐야 할 것이다. 결혼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환상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는 픽션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사랑은 현실에서는 어려운 이야기들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렇게 해야만 드라마에 빠져 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에 살고 있고 예수님 품안 에서 살고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방법으로 사랑을 하길 원한다면 환상을 버리시길 간곡히 바란다. 결혼은 가장 현실적인 삶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우리의 비전을 품고 그 비전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우리의 비전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시며 항상 기뻐하며 열정과 헌신으로 사랑해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사랑을 훈련하여야 한다. 이렇게 사랑을 훈련하고 나눌 때에 그 사랑으로 아름다운 만남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천 청년들이여 이제 illusion 을 버리고 vision을 찾기를 간곡히 기도합니다.
김영근의 마음치유여행 6 - 머무름의 참된 행복 -
변하는 시대와 변하지 않는 원리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1977년 1월 20일 자신의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우리는 변하는 시대에 잘 적응해야 하지만 또한 변하지 않는 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We must adjust to changing times and still hold to unchanging principles)고 강조했습니다. 이 말은 카터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고향을 떠날 때 그의 선생님인 줄리아가 그에게 했던 권면의 말씀이었습니다. 카터는 줄리아 선생님의 이 말씀을 잘 간직하면서 삶에 적용하다가 대통령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되었고 자신의 대통령의 취임연설문에 인용했습니다.
카터는 변하지 않는 원리를 구약성경 미가서 6:8말씀에서 찾았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카터는 개인이든 국가든 강한 자가 힘으로 약자를 억압하는 구조를 개선하는 인권신장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당시 독재권력의 지배를 받던 한국을 비롯한 여러 제 3세계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인권개선을 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그의 정책이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재선실패는 대통령직 수행에 있어서 총체적인 실패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실패한 대통령이었습니다.
재선의 실패는 그에게 낙심되는 일이었지만 그는 곧 일어나서 역사적으로 가장 훌륭한 전직대통령이란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는 국제적인 분쟁지역과 기근지역에 나타나서 긍휼의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가 실패를 극복한 성공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주님 안에 머무름입니다. 카터에게 신앙은 호흡처럼 자연스러운데 그것은 주님 안에 머무름으로 나타났고 힘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는 대통령직만큼 교회학교 교사의 직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눈에 보이는 업적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인 예수님과 함께 동행에,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일에 자신의 삶의 가치를 두었습니다. 그가 취임사에서 말했던 것처럼 해 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변하지 않는 진리인 예수님을 꼭 붙잡고 동행하는 삶, 그 분에게 기도하며 묵상하는 삶이 신앙인의 본질임을 카터는 보여주었습니다.
삶의 가지치기는 소중합니다.
최근에 막말파문을 일으킨 서울 노원갑 국회의원 후보 김용민씨는 변하는 시대에 잘 적응하는 성공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이 시대의 변화의 주체인 젊은이들의 요구를 알았고 그들을 움직이는 능력도 소유했습니다. 그는 변하는 시대의 요청인 권위파괴에 앞장섰고 기존의 질서와 제도에 대해서 도전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자신을 늘 목사 아들이라고 지칭하는 그는 예배당의 밥을 먹고 성장했기에 기독교의 부정적인 면을 잘 알았고 그것을 공격했습니다.
그는 변하는 세대에 나름대로 잘 적응했지만 변하지 않는 원리를 간직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안에 머물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신앙이 있다고 입으로 떠들지만 주님안에 머물지 못하면 그 신앙은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주님 안에 머물지 못하는 예수교인은 고삐풀린 망아지이고 브레이크가 없는 질주하는 트럭과 같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인격세우기가 아니라 인격파괴입니다. 김용민은 라이스 미국 여성 국무장관을 강간해서 죽여버려야 한다고 했고 노인들이 시청앞에 모여서 데모하니까 육체적으로 노쇠한 그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시청역에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한 찬송가가사를 개사해서 특정인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그는 그의 강력한 지지자그룹인 30대가 반대해서 국회의원이 되지 못했어요. 그는 선거결과에서 20대, 40대, 50대, 60대에서는 경쟁자와 거의 비슷하게 득표를 얻었는데 30대에서는 현저하게 적게 표를 얻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나요? 30대는 어린 유아들을 양육하는 젊은 부모들로서 어린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막말의 인격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하면 안된다는 자각을 한 것같습니다. 삶의 가지치기는 주님안에 머무름에 방해되는 요소는 과감하게 잘라내는 일입니다. 삶의 가지치기의 관점에서는 필자도 부끄러운 뿐입니다. 필자를 결혼주례 하셨던 목사님은 신혼여행 후에 인사차 방문했을 때 “성령충만”이란 표구를 주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이제 곧 신대원을 졸업하고 목회전선에서 사역할 저에게 가장 필요한 신앙유산은 성령충만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필자에게 “김전도사는 친구들이 너무 많아요” 하면서 친구들과의 교제보다는 예수님과 더 깊이 교제해서 성령충만을 받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분은 늘 기도에 최선을 다하는 분이셨습니다. 늘 성령충만을 사모하는 분이셔서 신학교에서 성령론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성령충만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지금까지의 저의 사역을 돌아보면 예수님과 교제하는 본질보다 가지치기에 해당되는 사람들과의 교제인 주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머물기
송봉모교수는 제자도의 본질을 두 가지로 정의하는데 첫 번째가 예수님과 함께 있음이며 두 번째는 예수님의 파견을 받아 활동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마음만으로 함께 있는 내적 일치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함께 있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공간적으로도 함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예수님과 함께 하는 구체적인 자리, 예수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구체적인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하는 소명은 내적 침묵과 고독, 명상과 기도로 이루어진다.” (송봉모, 『본질을 사는 인간』바오로딸, 1999, 45)
주님과 함께 머무름이 참으로 소중하지만 사역의 현장에서 쉽지만은 않습니다. 찾는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주변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뒤처지는 것 같아서 고민이 됩니다. 주님과 함께 머무는 시간은 뚜렷한 생산성이 없는 것 같아서 갑갑하게 느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 앞에 머물러있다가도 머물러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져서 그 자리에 충분히 머물지 못하고 뛰쳐나가게 됩니다.
특히 누군가가 나를 부르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면서 즉시 뛰어나갑니다. 그런데 이것은 올바른 예수님의 제자의 자세는 아닙니다. 이 때에 필요한 것이 비즉응성입니다. 비즉응성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역에 즉시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사역이 주님의 뜻인지를 충분히 물어보는 일이 소중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확인하기 전에 행동하면 그 일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일은 아니며 내 일이 되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파견을 받아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파견된 자로서 활동하는 것이 됩니다.(송봉모, 1999, 54)
1987년 여름에 부산에서 섬기던 전임전도사 사역을 내려놓고 지리산지역에 있는 개척교회를 섬기러 출발했습니다. 그 때는 태풍 셀마의 홍수로 인해 다리도 끊기고 도로도 유실되어서 버스가 다니지 못해서 목적지까지 가려면 약 2km 정도를 걸어서 가야 했습니다. 걷다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길가에 있는 큰 바위에 앉아 쉬고 있는데 야곱이 벧엘에서 경험한 돌베개가 생각이 났습니다. 아무 사람도 오지 않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예수님만을 바라보았고 예수님도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의 긍휼함이 강하게 임했습니다. 저의 가슴에는 뜨거움이 생겨났고 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지리산지역에서 저의 개척교회사역을 축복해주셨습니다. 그곳에서 머무름은 축복이었습니다.
머물기와 친밀하기
40대 초반에 내가 목회하게 된 부산 사랑의 교회는 부산 사하구 장림동 산중턱에 자리를 잡은 기도원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택은 10평 남짓한 시멘트블록건물이었는데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웠고 많은 비가 내리면 비가 새기도 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6학년이었던 두 아들에게 좋은 공부할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니까 큰 아들 민섭이가 “아빠, 우리가 좁은 집에 사니까 가족끼리 친밀감이 더해지는 것 같아요”하고 말했어요. 이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나는 초라한 주거환경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아이들한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아이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이 불편함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끼리 친밀감형성의 기회로 삼았어요. 나는 큰 아이의 말을 주님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우리 가정 안에서 친밀감을 얻었다는 아들의 발견에 대해서 감사했어요.
주일 오후예배를 마치면 나는 두 아이가 함께 아래 동네에 내려가서 비디오가게에서 가족영화 비디오 한편을 빌려옵니다. 우리 가족 네 식구가 한 이불을 덮고서 그 영화를 봅니다. 아내는 팝콘 하나를 튀겨서 그 팝콘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다가 나는 종종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장성해서 집을 떠난 상황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언제인가 하면 그 장림동시절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열악했지만 그 가운데 가족의 친밀감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친밀감은 가족 안에 있는 불평도 잠재우고 상처도 치유하는 묘약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머물게 되면 정감이 생겨납니다. 정감이 바로 친밀감입니다. 가족사이에 친밀감이 소중한 것처럼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도 친밀감은 소중합니다. 친구사이는 친밀감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친구로 불렀고 병든 나사로를 “나의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기독교는 머리로 하는 이성의 종교가 아니라 예수님과 성도사이의 친밀함에 근거한 정(情)의 종교입니다.
친밀함은 함께 머물기에서 나옵니다. 친밀함의 강도는 함께 머물었던 시간에 비례해서 생겨납니다. 부산에서 목회할 때 여성성도 한 분이 예수님을 오빠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고 나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니까 예수님은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고 버림받은 여러 명의 조카들을 돌보면서 지냈지만 늘 예수님과 함께 머물기를 좋아했던 성도였습니다. 나는 이분에게 나도 예수님을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겠다고 농담을 했습니다. 실제로 통합찬송가 526장을 보면 예수님을 형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포도나무가지, 늘 목자의 음성을 듣는 양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과 가까이서 그 친밀감을 먹고 사는 성도의 삶이 아름답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빈들판의 사람들
저는 2009년 12월 21일부터 2010년 2월 7일까지 약 50일 동안 전국을 도보로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의 목적은 주님과 함께 머물면서 주님의 긍휼함을 맛보는 시간을 갖고자 했습니다. 제가 딛는 땅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자 했습니다.
낮에는 주로 걸었지요. 처음에는 한강변을 걸었고요. 다음에는 강화도 해안길을 걸었습니다. 안면도에서 배를 타고 보령시로 건너왔습니다. 서천군에서 군산으로 넘어갔습니다. 영산강하구언둑을 건넜습니다. 남해대교를 건넜습니다. 해운대에서 기장군으로 걸었습니다. 경주에서 포항으로 걸어갔습니다. 포항의 구룡포해변길을 걸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찜질방에서도 잠을 잤지만 주로 목회자의 사택에서 잠을 잤습니다. 걸을 때 육안에 보이는 것이 강과 바다와 하늘과 건물과 도로와 땅이었지만 내면에는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걸으니까 몸은 힘이 들었지만 마음은 행복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길가면서 주님과 함께 가졌던 머무름의 시간은 가장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더욱이 감사한 것은 순례여행중에 주님과 함께 머물기를 좋아하는 빈들판의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었습니다.
전남 영광에서는 영서교회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김병수목사님과 교인들이 이 나그네를 환영해서 성찬을 베풀어주었습니다. 김목사님과 모든 교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머무름을 사모하는 행복한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교회와 사택에 모여서 매일 저녁기도 새벽기도와 낮기도 이렇게 세 번의 기도모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새벽기도가 오전 다섯 시인줄 알고 기도하러 나갔는데 예배당에 들어서니까 성도들이 개인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들은 오전 4시에 시작된 새벽기도를 이미 마쳤습니다. 빈들판의 사람, 김병수 목사님의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은혜로/ 세상과의 관계를 찢어버린 지/ 수많은 날들이 지났습니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들/ 없었던 것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길이 이토록 사무치게/ 오늘도 생명으로 다가옵니다.
찢어버려야 할 것 찢지 못하여/ 날밤 새우며 아파하는 신음소리를 들으며
주님!/ 저에게 어찌하여/ 이런 복된 길을 허락하여 주셨습니까?
찢어버리지 못하여 소금기둥,/ 찢어버리지 못하여 아골 골짜기,
찢어버리지 못하여 바벨탑이었습니다.
찢음을 통하여 새롭게 주신/ 영원히 찢을 수 없는 새 옷으로 단장하고
오늘도 보좌를 향하여 당당히 나아갑니다.
머무름에서 시작되는 사명의 삶
예수님과 함께 머물고 있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파견을 받아서 활동합니다. 이들이 곧 사명자들입니다. 이들은 늘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오랫동안 깊이 머물다가 주님의 명령을 깨닫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충분히 머물면 예수님의 파견된 자로서 일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예수님의 파견된 자가 아니라 스스로 파견된 자입니다.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에 있는 진토리교회 교인들은 개인적으로 조그만 빈들판에서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일에 애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각 가정별로 또한 선교회별로 군부대를 섬기고 전국을 무대로 특정지역을 선정해서 전도활동을 합니다. 이들은 모임 때마다 전 세계와 전 세계에 파송된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의 제단을 쌓습니다.
필자가 한 번 영주시 순흥면에서 진토리교회 전도팀과 함께 전도사역을 했습니다. 늘 주님과 함께 머무름을 즐기는 전도단들의 얼굴이 밝았고 감사함으로 넘쳤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확신이 있었고 그들의 전도대상자를 대하는 태도는 온유하고 겸손했습니다. 오전 전도를 마치고 그 지역의 명승지인 소수서원 앞에서 식사를 하게 되어 소수서원을 한 번 구경하고 싶은데 이들에게는 관심밖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점은 분산되지 않았습니다. 보통 전도대같으면 1부에 전도하고 2부에는 그 소수서원을 관광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기대하고 보통 전도대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순례여행 중에 경남 고성군에서 목회하는 목사님 댁에서 머물렀습니다. 사모님은 기도하는 분으로 밤을 지새우며 깊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종은 깊은 신심으로 교회를 품고 지역을 품고 기도하는 빈들판을 사랑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여수 애양원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목사님을 생각했습니다. 인민군들이 애양원을 향해서 오고 있을 때 그곳의 교인들은 손양원목사님이 피하도록 배를 주선했습니다. 교회를 지켜야 한다고 고집했던 손양원목사님은 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배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의 머무름은 결국 순교의 길이 되었습니다.
바울사도는 회심 후에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아라비아사막에서 머뭅니다. 이 머무름의 시간이 그를 율법의 사람에서 은혜의 사람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후에 그는 예루살렘에서 사역했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수용되지 못하고 거절당하고서 고향 다소에서 오랫동안 머뭅니다. 이 고향 다소에서 예수님과 함께 머무름은 그에게 사역의 실패로 인한 아픔에서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후에 바울사도의 아름다운 선교사역은 이 두 곳의 머무름에서 받은 힘에서 나왔습니다. 나의 신앙과 사역에 곤고한 시간이 임하면 주님과 함께 머무는 작은 빈들판으로 돌아갑시다. 그곳은 우리가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베이스캠프입니다.
정광일
가락재 골짜기에 담겨진 영성
1. 새 땅에서
91년 5월부터 1년 6개월의 기간. 당시 우리 가족(아내와 열 살, 일곱 살, 네 살 먹은 세 아이)은 돗골(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이라 불리는 산골마을의 마음씨 좋은 어느 할머니 집 외양간 옆방에서 살았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방 안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여름철은 외양간 소 냄새와 파리 떼를 피할 수 없었고, 겨울철의 윗목 자리끼엔 살얼음이 끼곤 했다.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를 분교에 보내면서 우리의 시골생활도 주위 이웃들에게 점차 인정받게 될 무렵인 10 월로 막 접어들어 가던 어느 날 아침, 우연히 푸르디푸른 가을 하늘 아래 가을걷이에 한참인 논 자락을 밟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땅은 그동안의 푸른 꿈을 실현할 새로운 터전으로 신비스런 색깔과 함께 내게 다가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원해왔던 땅이었던가! 얼마나 원해왔던 터전이었던가? 일사천리로 1700여 평의 땅은 계약되었고, 그때부터 그 땅은 하늘로의 비상을 위한 곶이 되었다. 높고 푸른 하늘과 맞닿은 땅. 마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 땅을 <가락재>라 불러왔다.
땅이 주어졌다. 땅에 새로운 꿈이 따라왔다. 그래서 옛 땅이 새 땅이 되었다. 그것은 실로 하늘이 내려준 새로움이었다. 하늘과 땅. 이 둘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공간적 시간적 질료이다. 그런데 이 말 앞에 ‘새로움’이란 글자가 부쳐지면서 하늘과 땅은 영성적 질료가 된다. <새 하늘과 새 땅>이야말로 가장 강하고 분명한 영성적 표현이다. 이러한 영성의 시각으로 성경을 읽어보자. <창세기>는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새 땅을 주겠다는 약속이고, <출애굽기>와 <민수기>는 옛 땅을 떠나 새 땅으로 향하는 사람들 이야기이고, <레위기>는 새로운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아름다운 공동체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알려 준 예전과 규례이며, <여호수아>는 한발 한발 그 땅을 밟아가며 차지해 가는 과정의 기록이다. 그리고 각 지파 별로 점령한 땅을 나누어주었다. 이집트를 떠나 사십 년을 해매고 난 다음,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백년의 긴 세월이 지난 다음 주어진 축복이었다.
우리 가족은 마치 13번째 지파라도 된 듯이 당당하게 그 땅을 밟았다. 아랫마을 사글세 방 신세였으나 아침저녁으로 땅을 밟으며 가슴 뿌듯해 했다. 마을에서 가락재로 가는 길은 좁았다. 그나마 작은 개울을 세 개 건너야 했는데 크게 쏟아지는 비에 길은 늘 망가지고 고쳐야 했다. 동쪽 장락산으로 1 km를 가다보면 왼쪽으로 북(北)을 등진 동산이 하나 나오고 그 옆의 야산과 마주하는 사이로 골짜기가 오랜 세월 패어져 나갔다. 큰 산이 아니라서 골짜기 개울은 장마철 아닐 때는 그 수량이 아주 적었다. 그래도 그 물은 아쉬운 대로 언덕의 다랑이 논의 논물이 되어주었다. 셋째 개울을 건너 골짜기를 등지고 서면 앞은 시내가 흐르고 뒤는 산으로 막혀 있는 것이 전형적인 임산배수의 모습이었다. 남향 햇살은 겨울이면 더욱 눈이 부셨다. 앞의 개울은 위곡리 한 가운데를 흐르는 어엿한 마을의 주류(主流)였다.
91년 9월 26일 땅 계약서에 서명하고 2개월 남짓 지난 12월3일에 잔금을 치루고 나서 내 이름으로 등기된 등본을 손에 들고나니 천하를 얻은 것 같았다. “누구도 내게 무어라 할 사람이 없다. 나도 이제 여기서 당당히 살아 갈 수 있다.” 마치 노예문서를 찢어 버리고 자유인의 권리장전을 받아든 그런 기분이었다. 누가 들으면 지나친 표현 아닐까 여기기도 하겠지만 당시 솔직한 내 심정은 그랬다. 예나 제나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영적으로든 말이다. 국가든 단체든 개인이든 주변 존재의 압력이나 요구에 개의치 않고 제 나름의 소신을 펼친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리라. 게다가 성장과정에서 비교적 심적 억압을 많이 느끼며 자란 유형의 사람으로서는 자유의 문제는 보다 절실한 과제였다.
사실 그 누구로부터의 간섭이나 지시도 힘들어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직장 생활 같은 것은 일찌감치 저 멀리에 있었다. 그러한 내가 군대라는 조직에서 3년을 버틴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탈영 아닌 탈영도 있었다. 가장 좋아한 배우는<빠삐용>이나 <대탈주>에서 열연한 스티브 맥퀸. 어찌된 이유였던 갇힌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것처럼 스릴 있는 장면은 또 없다. 가정이든 학교든 교회든, 나와 관계없이 주어진 그 어떤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해서 저항하고자하는 본능적 욕구. 그러나 막상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다가 올 비난이 싫었다. 불효! 불신앙! 배은망덕! 배신! 이런 화살을 받더라도 좀 멀찌가니에서 받고 싶었다. 그러한 자유를 위해서는 우선 자유로운 공간이 필요했었다. 그렇다 내게 있어서 자유는 자유로운 공간 즉 내가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땅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마침내 그러기에 적당한 땅이 생겼으니 그 때의 기분이 과연 어떠했을지...
‘내가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땅’ 이것이 새 땅이고 약속의 땅이고 가나안이고 유토피아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랬다. 그래서 자유는 주체성이고 누림이고 삶이다. 가락재를 영성수련원으로 이름 지으면서 이 영성원을 떠받칠 기둥을 생각해 보았다. 사랑의 기둥, 기쁨의 기둥, 자유의 기둥, 이 세 기둥 위에 집이 지어지기를 원했다. 사랑과 기쁨이 필수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면 자유는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처음 지은 집, 안채의 기둥에 보를 얹을 때에 쓴 성경구절은 고린도 후서 3장 17절의 말씀이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만일 바울 사도께서 허락한다면, 가락재에 세워진 기둥 그 사이에 서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런즉 사랑 기쁨 자유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자유”라고. 그저 가락재의 마니페스토(manifesto)일 따름이다. 영성(靈性)은 인간이 영적 존재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된다. 그가 만일 진정한 영적 존재라면 영적인 것을 추구함이 마땅하리라. 하나님의 순수한 영이 바람 불듯 불다가, 또는 물 흐르듯 흐르다가 그가 지으신 어느 한 피조물을 스치거나 부딪치면서 일으키는 파장. 이것이 영성이다. 어떤 이에게는 사랑의 영으로, 어떤 이에게는 기쁨의 영으로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자유의 영으로 파문(波紋)을 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영성은 조직신학 입장에서 볼 때 신론(神論)이라기보다는 인간론 또는 인성론에 가깝다.
처음으로 주어진 새 땅에서 맛본 하나님의 영, 그것은 한 마디로 자유의 영이었다. 이제 비로소 나는 내가 되었노라. 여기에서 영원히 자유혼으로 살며 주어진 자유를 마음껏 누리리라. 이런 경우가 공자님이 말한 ‘입지(立志)’에 해당되는 순간일지 모르겠다. 뜻이 세워지니 두려울 게 없었다. 땅이 생기니 무서울 게 없었다. 새 땅으로 가는 길은 험했으나 문제될 것이 없었다. 길은 내면 되는 것이고 개울은 건너면 되는 것이고 바위는 굴리면 되었다. 정말이지 그때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아니, 더 큰 무엇이 보이니 작은 것들이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야 맞을 듯싶다. 그래서 새 땅으로 가는 길은 늘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길을 오르내렸다. 땅을 밟으면 흙냄새가 올라왔다. 그 냄새가 하늘의 기운을 만나면서 내가 두 발로 선 주위를 온통 휘둘렀다. 새로움 이었다! 이런 새로움에 휩싸여 옛 예언자는‘새 하늘과 새 땅을’ 노래했겠구나! 이런 심정으로 삼일 운동가들은‘신천신지(新天新地)의 도래(到來)’를 외쳤겠구나!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 빼앗긴 국토를 되찾으려는 독립투사의 열정을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한 이 작은 독립투사는 가락재라는 새 땅 위에 홀로서서 이렇게 하나님 나라 독립 만세 삼창을 부르고 또 불렀다.
영성이 무엇일까? 왜 영성인가? 끊임없이 되뇌는 질문이었다. 사람들은 이 시대에 이 땅에 살면서 어떤 이유로 영성을 말하는 것일까? 교회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영성>의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해내지 못한다면, 그 또한 천박한 유행상품으로 전락하리라. 성스러움으로 포장된 짝퉁이 되고 말리라. 무늬만 한 가닥 더하는 꼴이리라. 적어도 이렇게 우습게 끝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영성을 말하는 사람이면 다음 몇 가지만큼은 전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첫째로, 영성은 본질을 붙드는 것이어야, 포장이 아니기에
둘째로, 영성은 가난의 차원을 끌어안아야, 물질적 부요가 아니기에
셋째로, 영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수단이 아니기에
넷째로, 영성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어야, 아무아무개의 영성이라고 말하기에
다섯째로, 영성은 삶을 말하는 것이어야, 제대로 살자고 하는 말이기에
여섯째로, 영성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어야, 제대로 죽자고 하는 말이기에
일곱째로, 영성은 영원을 말하는 것이어야, 삶과 죽음을 넘어서는 세계의 차원이 기에
새 땅에 두 발을 딛고 선 나는 문득 84년 봄, 32살의 젊음으로 목사 안수를 준비하며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이렇게 살아보리라, 다짐했던 나 자신과의 약속을 떠 올렸다. 30여 년 된 내 성경책 앞 갈피에는 그 때의 글귀가 이렇게 적혀 있다.
- 가난한 이들과 함께
- 작은 예수 마을
- 예수전(傳) 쓰기
김은섭
작별
지난 6개월 동안 3번의 헤어짐을 경험했다. 먼저는 대학교를 졸업하며 정든 캠퍼스와 CCC공동체를 떠난 것이고, 둘째는 올해 소위로 임관하면서 14주의 힘든 훈련을 함께한 소대원들과의 작별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3개월 동안 같이 교육을 받은 방공포병 동기들과 마지막 회식을 가졌다. 작별하면서 지난 시간에 깊은 감사를 하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움과 후회를 하기도 한다.
사람을 사귀는 것은 아름답고 귀한 일이며 소중하다. 그리고 그 가치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들과 얼마나 많은 추억이 있고, 깊은 친밀함이 있더라도 결국은 작별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자주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물어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어떤 사람이든 영원한 관계는 없는 것 같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우리 주님은 이 땅의 가장 가까운 부부의 관계까지도 천국에서는 초월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황금 집에 내 부모님, 아내, 남편, 자식들, 친구들 불러놓고 즐거운 교제를 나누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영원히 만나는 곳이 천국이라고 말씀하신다.
영원하지 않은 것, 영원할 수 없는 것을 영원할 것처럼 여기고 사는 건 사랑이기 보다는 집착에 가깝다. 헤어짐을 용납하지 못하는 관계는 그 속에 인간적인 서운함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헤어지기 때문에 덜 소중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헤어지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주님은 저 먼 친척이 아니라, 내 가까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 같다.
가끔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거창한 경험이나 지식 때문이 아니라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서 그런 것을 느낀다. ‘이 사람과는 얼마나 긴 인연일까? 어차피 잠깐 스쳐가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고민이 아니라 잠깐의 순간이라도 그 사람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 아버지 영원한 것을 알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영원이라는 시간 앞에 짧은 순간의 어떤 만남이라도 영원한 복음을 나눌 수 있게 해주세요.”
삶의 현장에서 김하기
창조의 빛
석가모니상·예수상·마호멧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머리에 신비스런 후광(後光)을 둘러쓰고 있다는 점이다. 아우라(Aura)라고도 부르는 이 영기서린 빛은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창조적 능력을 의미한다.
얼마전 부산대학교에서 한 물리학 교수가 기독교를 과학으로 변증하는 창조과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교수는 빛은 입자성과 동시에 파동을 가지는 물질파로서 창조적 능력이 있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성경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한복음1:9)’에서 빛은 단순한 상징과 비유가 아니라 실제 빛처럼 창조적 능력을 가진 물리적 실체라는 것이다.
그 교수의 이론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빛이 창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다빈치는 평생 창조의 빛 속에서 다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다빈치의 그림은 빛의 예술이다. 그가 최초로 개발한 스푸마토(Sfumato) 기법은 색과 색 사이 경계선을 흐리게 처리하는 기법으로 빛의 회절이 사물의 경계선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고개를 들어 키 큰 나무를 쳐다보면 하늘과 나뭇잎의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고 나뭇잎은 희미한 빛의 테두리를 달고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나리자의 신비스런 미소는 이런 스푸마토 기법에서 탄생한 것이다.
같은 빛이라도 서쪽에 지는 저녁노을보다는 동터오는 아침햇살이 더 강하고 힘이 있다. 우리집의 베란다 창문은 서향이다. 베란다에 산세베리아·호접란·허브·선인장 등을 놓았는데 이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들이 시들시들하거나 죽기 일쑤였다. 그래서 화분을 채광시간은 짧지만 아침햇살이 드는 북동쪽 창 밑에 옮겨놓아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화초들은 생기를 띠며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오후 한나절의 햇볕보다 아침 30분의 짧은 햇살이 식물들의 생장에 더 강렬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근 이시형 박사의 ‘세로토닌하라’는 책을 읽고 큰 공감을 얻었다. 이 책에 따르면 한국은 후진국·중진국·선진국으로 발전해오면서 필요한 호르몬도 각각 달랐다는 것이다. 한국이 후진국이었을 때는 노르아드레날린, 도파민과 같은 충동과 쾌락의 호르몬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다 ‘한강의 기적’을 창출하는 압축성장 시기엔 엔돌핀과 같은 격렬한 감동의 호르몬이 필요했다. 그러나 창조적 두뇌를 요구하는 정보사회인 지금은 차분한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로토닌은 숲길을 걷는다든지 고요한 명상에서 분비되는데 감정을 조절해 행복감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뇌의 창조력을 높여주는 호르몬이다.
그런데 이 호르몬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시간이 동터오는 아침시간이라는 것이다. ‘신비로운 아침 안개, 맑은 공기를 느끼며 태양을 향해 걸으면 세로토닌으로 샤워를 하게 된다.’ ‘아침의 태양은 힘이 넘친다. 아침에는 모든 호르몬이 활성화되고 신진대사가 촉진된다. 신선한 음이온과 뺨을 스치는 우주의 기운, 이 맛을 모른다면 당신은 아직 성공궤도에 못 올랐다는 증거다.’ 그는 우리에게 창조의 호르몬이 대량으로 분비되는 아침햇살을 놓치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다.
굳이 들뢰즈와 라깡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는 원본이 실종된 대량복제사회가 된 지 오래다. 싱크로율 100% 음악표절, 해마다 반복되는 예술 당선작과 논문 표절 시비, 심지어 한국형 중이온가속기까지 외국의 것을 그대로 표절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창조의 빛은 사라지고 복사기의 검은 잉크만 돌아가고 있다.
발터 벤야민은 아우라의 개념을 예술에 적용해 ‘예술작품에서 복제나 모방이 가질 수 없는 원본만이 지니는 고고한 분위기’로 정의하고, ‘오늘날 예술위기의 본질은 원본에서 볼 수 있는 창조적 아우라가 상실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평생을 정치와 문학, 예술과 과학에서 다대한 창조적 업적을 남겼던 괴테는 임종 때 ‘나에게 좀 더 빛을’이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복제와 모방의 거리,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오늘 햇살이라도 마음껏 받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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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그룹영성치유모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일시 : 5월 25일(금)저녁 7시-26일(토) 저녁 7시, 장소;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주제 : <사랑으로 가는 길> 인도자: 김영근 원장
회비 : 13만원 등록: 농협121015-52-049140 김영근
참가대상 : 모든 크리스천, 소그룹인도자, 집단상담 실습생 및 상담전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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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치유상담연구원 상담 ․ 교육프로그램 안내
<개인상담>
사전전화예약한 후에 상담을 진행합니다. 지역교회의 위탁상담을 환영합니다. 개인상담예약 02-3675-7368, 010-3290-1007.
<치유상담 아카데미>
치유상담전문가 훈련과정으로 이론학습과 그룹임상훈련을 실시합니다.
주제 : 전인치유 일시 : 5월 9일-7월 4일(수, 8회) 오전10:30-12:30
주제 : 쓴뿌리치유 일시 : 9월 5일-10월31일(수, 8회) 오전10:30-12:30
<그룹영성치유모임>
매월 1회씩 마지막 주 금, 토요일에 1박 2일 동안 속마음을 나누며 치유와 회복을 찾아 떠나는 그룹영성모임입니다. 1회기 70분 모임을 10회 가집니다.
5월 모임 주제: 사랑으로 가는 길 일시: 5. 25(금)저녁7시- 26(토)저녁7시
6월 모임 주제: 내적치유오솔길 일시: 6. 22(금)저녁7시- 23(토)저녁7시
<목민독서교실>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에 읽은 책을 함께 나누는 식사를 겸한 독서치유모임
5월 모임: 5월 31일 저녁7시-9시 도서: 김덕경 ․『허물이 많아도』. 작가마을
6월 모임: 6월 21일 저녁7시-9시 도서: 김병오 ․『상처와 슬픔의 치유』.대서
<김영근원장의 교회집회세미나인도>
주향교회(최은용목사): 5월 6일. 누산교회(문수근목사): 5월 13일.
한양교회(최루톤목사): 5월 20일. 본동교회(장승현목사): 5월 20일. 대구정동교회(권오진목사): 5월 27일,
<교회초청세미나집회인도를 실시합니다.>
구역장(목자)교회학교교사 세미나 : 상담기술훈련, 대화법훈련, 감수성훈련
교회집회 : 예배설교, 쓴뿌리치유, 전인치유, 가정사역부흥회, 부부행복학교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가족치유상담연구원
전남 여수지역에서 송여자생명교회를 섬기는 원순희목사님(010-3996-9039)께서 연락이 왔습니다. 쪽지 <예수사랑 ․ 가족사랑>에 감화를 받아서 대학원에서 상담학을 전공하는 조카에게 보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애독자가 있다는 말에 보람을 느꼈지요. 원목사님은 공무원생활을 하다가 신학에 입문하셨고 경남 거창군에서 임불교회를 섬기다가 현재는 여수에서 섬교회를 목회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리산지역에서 개척교회를 섬길 때에 만나 복음 안에서 교제했는데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네요. 한 영혼을 사랑하는 신실한 마음으로 섬김을 감당하는 원목사님은 임불교회를 섬길 때에 솔잎 액기스를 만들어서 판매하면서 교회재정에 도움을 주었지요. 저는 그 때 솔잎 액기스 한병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제 저도 쪽지를 조카분에게 보내면서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었네요. 인생의 아름다움은 서로가 받은 은혜를 조금씩 나눔에서 옵니다.
저희 연구원의 치유상담아카데미 4번째 강좌인 <전인치유>가 5월 9일부터 6월 27일까지 진행됩니다. 처음 시작한 수강생들 중에 4과정까지 모두 마치는 분들이 생겨납니다. 완주한 수강생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들의 섬김이 복되기를 빕니다.
5월 넷째 주 5월 25일(금) 저녁부터 26일(토)까지 1박 2일로 한국교회백주년 기념관에서 제 3회 마라톤치유영성모임을 갖는데 주제는 <사랑으로 가는 길>입니다. 저희 연구원을 위해 후원하는 교회와 개인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원하시는 분들은 형편에 따라 후원할 수 있습니다(1구좌: 만원).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김영근>
3월 후원 교회 : 동숭교회, 참빛교회, 한마음교회, 유성장로교회, 안동서부교회,
예향교회, 예성교회, 산정현교회, 일산은혜교회, 충신교회.
개인 : 주재철, 김태형, 김은섭, 류해룡, 이은혜, 이지은, 이정산.
I 가족치유상담 연구원의 사역 I
►가정회복중보기도(기도사역) ►엘림상담실(개인상담ㆍ집단상담)
►지역교회위탁상담(협력사역) ►치유상담아카데미(상담교육)
►다문화가정상담(긍휼사역) ►중국교회지도자상담교육(교육선교)
►목민독서교실(독서치료) ►월간쪽지<예수사랑ㆍ가족사랑>발행(문서사역)
►구역장ㆍ교사상담기술훈련(훈련사역) ►교회설교ㆍ세미나(쓴뿌리치유, 전인치유)
주소 : 종로구 연지동 136-46 기독교회관 504호 / 02-3675-7368, (fax)7369
원장 : 김영근목사(010-3290-1007) 상담실장(010-3219-1097)
Cafe.Daum.net/familytherapy0191(daum 다음 카페→가족치유상담연구원)
메일 noksanlove@hanmail.net/ 후원계좌 : 농협351-0355-2650-43 김영근
찾아오는 길 : 종로5가역 2번 출구 대학로 방향 200m ⟶ 한국기독교회관 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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