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텔레비전을 보면서
심 영 희
매일 아침 TV소설 삼생이를 보느라고 할 일을 못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요즈음 거의 끝나가는 삼생이가 아니더라도 수년을 TV소설에 푹 빠져 특별한 일이 있어 외지로 가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가지 않는 한 아침 아홉 시를 기다리게 된다.
그 시간에 편히 앉아 드라마를 보기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난 시간부터 아홉 시 전까지는 꽤나 바쁜 편이다. 이것 저것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자리도 별로 나지 않는 그 일이 그 일인데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쉴 틈이 없다.
시간 맞춰 텔레비전을 안보면 될 것을 그 시간 맞추느라 항상 분주하다. 그래도 저녁에 일일 드라마 한 편을 시청하는 데는 TV소설만큼 중독되어 있지는 않다. 바쁘다는 이유로 TV시청을 많이 줄였다. 그렇게 좋아하던 ‘진품명품’도 가끔씩 보고 ‘세상에 이런일이’도 시간이 되면 보고 늦게 집에 들어오면 못 보아도 드라마처럼 궁금하지는 않다.
지난번에 방영되었던 ‘복희 누나’는 아버지와 새엄마께 버림받은 복희가 고생 끝에 성공하는 내용이었다. 육칠십 년 대를 배경으로 한데다 강원도 탄광촌까지 등장해 강원도 사람으로 한층 더 흥미 있게 볼 수 있었다. 또 아버지의 외도로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친 엄마와 생이별 했던 딸이 생모와 만나는 장면까지도 순탄하지 못하고 거짓 속에 기막힌 만남을 하게 되는 드라마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드라마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그런데 요즈음 삼생이를 보고 있으면 괜히 억울한 생각에 분통이 터진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어쩌면 인간의 탈을 쓰고 저렇게 나쁜 짓을 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단 하나 재물에 탐욕이 생겨 만들어낸 거짓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한가지 거짓을 감추기 위해서는 언제나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게 인간들의 살아가는 방법이라면 이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나 다를 게 있겠는가.
무슨 사건이든 욕심을 버리면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사건이 일어났다 해도 쉽게 해결된다. 그러나 끝내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으면 거짓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는 것이다.
더욱 진실을 묻기 위해 진실을 밝히려는 삼생이를 키워준 아버지를 독살시키는 사 사장이란 자는 몇 명의 사람을 더 죽이고 끝이 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철저한 위선자가 있다는 것도 사회를 병들게 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육칠십 년대에 데모행렬에 가담했다 수도 없이 잡혀갔다던 대학생들이 고문을 받다 죽었다는 뉴스도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메워 시청자들을 울리기도 했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데모 한번 하지 않은 대학생을 간첩으로 만들어 고문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보며 그래도 드라마를 보며 즐거워해야 할지.
뇌물을 주겠다고 청탁을 한 사람도 뇌물을 받겠다고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드는 국가의 녹을 먹는 공직자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그 권력을 그렇게 써먹은 적이 있다고 국민들은 알고 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은 정말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드라마에 매료되어 하던 일도 멈추고 텔레비전 앞에서 긴장을 한다. 오늘은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가슴이 조마조마 하다.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화장실도 다녀와야 하고 커피도 한잔 타다가 드라마를 보면서 마시기도 한다.
몇 년 전까지는 사극에 빠져 주말 연속극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정말 사극을 보면 역사공부를 할 수 있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실력을 재생시켜 드라마와 접목시키면 쉽게 우리의 역사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의 역사가 죽고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피로 물들어진 역사를 보면서 역사드라마와 이별을 했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붉은 피는 내 정신과 마음까지 혼란스럽게 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음모와 내란으로 얼룩졌고, 죄인을 다루는 것도 그 옛날에는 사약을 내리고, 철퇴를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곤장을 많이 맞아 살점이 뜯기고 온몸에서 피를 토해내는 장면은 사극에서 내 마음을 멀어지게 하기 충분하다.
어머니의 얼굴을 자루로 뒤집어 씌우고 아들이 몽둥이로 어미를 때려 죽이게 하는 옛날의 형벌이 효를 가르치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동방예의지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혈육간의 권좌 다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권력이든 재물이든 그것을 노린다는 자체가 욕심이다. 사람에게 야망은 누구나 꿈꿀 수 있지만 분수에 넘는 욕심은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결국은 벌을 받게 되는 것이 그 인생의 종말이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모르고 있던 것을 알게 되어 지식을 쌓을 수 있어 좋고, 아름다운 경치와 아기자기한 집들을 보며 감탄을 하기도 한다. 또는 불행한 삶을 사는 어려운 사람들의 실상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아침드라마 외에 요즈음 즐겨보는 프로는 ‘우리말 겨루기’다. 출연자 모두가 열심히 우리말을 공부했다는 열정도 대단하고, 가끔은 나이 많은 출연자가 있어 노인들께 용기를 주기도 할 것 같다. 우리말 겨루기 시간에는 나도 출연자가 되어 함께 문제를 풀어간다. 그때마다 손주손녀는 할머니도 저기 한번 나가서 상금 타오라고 성화다.
어느 월요일 ‘우리말 겨루기’를 보다가 출연자 다섯 사람 모두가 못 맞춘 낱말을 내가 정답을 말하자 손자손녀가 할머니는 저기 꼭 한번 나가야 한다고 부추기기도 한다. 일요일에 즐겨보던 ‘퀴즈대한민국’은 어느 날부터 다른 프로로 바뀌어져 내 마음을 허전하게도 했다.
이렇게 텔레비전에서는 인간들의 희로애락이 실시간 방영되지만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몇 가지 외에는 시청할 시간이 없다. 그래도 어김없이 오전 아홉 시면 텔레비전 앞에 마주 앉은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나는 오늘 하루 누구에게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나로 인해 누군가 불편한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나도 다른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 눈에 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웃어넘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