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이센(大山·1729m)
시리도록
아름다운
설산과의 조우
글 \ 사진 곽영조 기자
협찬 트레킹클럽 www.trekkingclub.kr
지난 2009년 6월 29일을 DBS크루즈훼리호가 한국-러시아-일본간 정기 운항을 시작하였다. DBS는 우리나라 동해의 ‘D’,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의 ‘B’, 일본 사카이미나토의 ‘S’를 합친 것으로 동해항에서 사카이미나토항은 주2회, 동해와 블라디보스톡간은 주 1회 운항하며 3개국을 왕래하면서 사람들과 물자를 실어나르며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한국에서 일본의 사카이미나토항을 경유해 돗토리현의 다이센(大山·1729m)을 다녀오는 코스가 개발되어 많은 등산객들이 찾고 있었다.
돗토리현 서쪽에 위치한 다이센산은 일본 츄고쿠(中 ) 지방 최고봉으로 1936년 일본에서 세 번째로 국립공원에 지정된 다이센오키국립공원(大山隱岐 立公園) 중심부에 힘차게 솟아있다. 특유의 화산식물대와 조류, 곤충류 등이 서식하고 있어, ‘다이센 조수(鳥獸)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겨울에는 스노슈잉과 스키로도 유명한 다이센은 많은 눈이 내려 겨울 등반지로도 적합한 곳이다.
다이센이 위치한 돗토리현은 우리 땅 독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 숙종때인 1693년과 1696년 2차례에 걸쳐 안용복이 일본으로 건너가 백기주 태수(당시 돗토리현 번주)와 담판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확인했던 역사가 있었던 곳이다. 과거 속 안용복의 일행들처럼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는 동안 거센 바람 속에서 ‘독도는 여전히 조선의 땅이다’라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릴 듯 했다.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다이센지바시다리를 건너고 있는 일행들. 나뭇가지에 걸쳐있는 눈들이 설경을 이뤄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8개의 봉우리가 연결된 형국의 다이센
오후 6시에 동해국제여객터미널(033-531-5891)을 출항한 배는 14시간을 달려 8시에 사카이미나토항에 도착했다. 하절기에는 8시부터 입국절차를 밟는데 동절기에는 9시부터 입국절차가 시작되는 바람에 1시간여를 배에서 보내야 했다. 9시가 다 되어갈 무렵 안내방송이 나오고 출국장으로 가기위해 배에서 내렸다. 우선 출국 전 작성했던 입산신청서를 출국장 앞의 직원에게 제출하고 입국심사를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데 꼼꼼한 입국심사로 인해 시간이 1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나마 오늘은 인원이 적은 탓”이라는 최승원 팀장의 이야기에 다들 놀라워하는 표정이다. 입국 심사장 앞에는 한국인 직원이 상주하고 있어 출입국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달려와 도움을 주고 있었다.
심사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버스를 이용해 돗토리현 요나고(米子)시에 위치하고 있는 다이센으로 향하는데 우리와는 반대방향으로 차들이 운행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다이센이 가까워질수록 양 옆으로 쌓인 눈의 양이 점점 많아졌다. 갑자기 도로의 색깔이 바뀌었는데 “도로 아래로 뜨거운 물이 흐르는 장치가 되어 있어서 한 겨울에도 도로에 눈이 쌓이거나 얼지 않는다”는 임윤선 가이드의 이야기에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많은 눈이 내려 도로까지 마비됐던 서울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차장에 도착했다. 등산을 하러 온 사람들 보다는 젊은 스키어들이 더 많아서인지 다이센의 주차장은 활기가 넘쳤다. “한국분들이 생각할 때 일본은 홋카이도나 북쪽지방으로만 눈이 많이 올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위도상으로 한국의 울산쯤에 위치한 이곳은 고도와 지형적인 영향으로 눈이 많이 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일본의 내로라하는 스키어나 보더들은 이곳을 찾는다”고 현지 산악가이드인 유리사와씨가 귀뜸해 줬다. 풍부한 적설량과 뛰어난 양질의 눈이 스키나 보드 타는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란다. 간단히 인사를 마친 유리사와씨를 선두로 일행들이 다이센 정보관과 자연역사관을 통과해 산행 들머리로 이동했다. 고풍스런 일본식 건축물들과 지붕위로 어린아이 높이만큼 눈이 쌓인 풍경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이센지바시다리를 건너는데 우리나라로 치자면 승합차쯤 되는 차량에 바퀴대신 4개의 무한궤도를 달아 설상차로 운행하고 있는 차가 지나갔다. 일행들이 “얼마나 눈이 많이 오면 저런 차가 다닐까”라고 말하면서도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다이센 북벽자락에서 발원한 사다가와 계곡 위쪽으로 자리한 다이센은 짙은 운무와 가스에 가려 그 모습을 좀처럼 들러내지 않고 있었다.
다이센은 해발 1709m의 미센과 해발 1729m의 켄가미네봉을 비롯해 8개의 봉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형국이다. 화산지형인 능선구간과 사면으로 매년 수 천 톤에 달하는 토사와 돌이 흘러내려서 산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했다. 보는 방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서쪽에서 바라봤을 때 후지산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작은 후지’라고 불린다.
다리를 건너 주차장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니 팻말에 ‘다이센 여름산 등산로, 요코테미치’라고 한글로 써져 있었다. 팻말 옆으로 주인을 잃은 설피 2쌍이 눈 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등산로 양옆으로 100년 이상 된 삼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입구에서 조금만 지나 오른쪽에는 다이센 내에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아미타당이 있는데 시간이 그렇게 여유롭지 못한 이유로 그냥 지나쳤다. 다이센은 해발 800m 이하로는 적송과 작은 졸참나무숲이 무성하다. 일합목을 지나자 키가 작은 너도밤나무숲이 시작되었다.
눈 덮인 너도밤나무 숲으로 걸어가고 있는 일행들. 눈덮인 설경을 감상하느라 산행이 늦어지고 있었다.
산행하기 전에 기대가 컸던 걸까. 다이센지(大山寺) 아미타당으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 일합목으로 가는 구간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눈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진작 헬멧이며 안전벨트에 로프까지 배낭에 지고 올라가는 일본 등산객들을 보고 알아챘어야 했다. 흰 눈에 덮여 버린 편평한 모양의 등산로가 눈이 오기 전에는 힘든 ‘계단길’이었다라는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일행들이 진정한 눈의 세상으로 초대되었음을 알아채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합목을 지나는 데 크램폰을 착용하는 일행들이 있어 잠시 주춤했다. 일렬로 줄지어 올라가고 있어서 일행 중 누군가 잠시라도 쉬거나 한 눈을 팔면 여지없이 그 뒤쪽 사람들은 그 시간만큼 기다려야 했는데 앞서가려고 옆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가 땅이 꺼지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다. 그나마 삼합목까지는 준수한 편이었다. 삼합목을 지나면서부터는 더 심해져 마치 심연 속으로 몸이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어른의 어깨높이까지 눈 속에 빠졌는데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고 그저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일행들의 도움을 받아 겨울 탈출할 수 있었다.
이합목을 지났다. ‘합목(合目)’은 일본산에서 산행거리를 측정해 9등분한 각 구간을 의미하는데, 옛날에는 등불의 연료로 사용했던 아주까리기름 한 병이 다 타서 불이 꺼져버린 거리를 일합목이라 했었다고 한다. 나무 기둥과 작은 가지들을 하얀 눈들이 감싸 하얗게 변한 모습이 마치 바다 속 거대한 산호밭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했다. 거대한 너도밤나무 하나가 뿌리를 드러낸 채 기울어져 있었다. “너도밤나무의 수명은 보통 350년 정도 되는데 나무줄기가 거의 땅 위에 노출되어 있어 나무가 커지면 스스로 무게를 주체하지 못해 쓰러져 죽는다”는 유리사와씨의 설명이다. 자세히 보니 뿌리 아랫부분으로 머리 조심하세요라는 한자로 적혀있었는데 돌아보니 뒤따라오는 최승원 팀장의 무릎쯤에 걸쳐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눈이 얼마나 왔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삼합목에 도착했다. 삼합목부터는 100년 이상 된 너도밤나무 숲이 펼쳐지는데 눈 덮인 아름다운 숲길 풍경을 감상하느라 산행이 지연되고 있었다. 내려오는 일본 등산객들과도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하니 “오하요”라고 일본어로 답했다. 그들 중 몇 명은 서투른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다이센조난구조대 대원인 우이하라씨로 한국사람들이 다이센을 많이 찾게 되면서 간단한 인사말 정도를 배웠다고 했다. “다이센은 육합목에 올라서면서부터 주변 조망이 되는데, 오늘은 짙은 가스로 인해서 하나도 볼 수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우이하라씨 일행과 헤어지고 나서도 육합목으로 가는 동안에 많은 일본 등산객들을 만났다. 그들은 아이젠과 스페츠만 착용한 일행들을 위해 러셀이 되어 있지 않은 눈길로 돌아서 내려갔다. 고마운 마음에 인사를 하려고 돌아보니 설상용 피켈과 아이젠, 헬멧, 보조 자일까지 동계용 등산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괜히 유난을 떠는 것 같으면서도 안전에 대해서는 철저한 그들의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오합목을 지나면서부터는 듬성듬성 가스가 낀 하늘이나마 볼 수 있었다. 날이 추운데 열이 많아 모자를 잘 쓰지 않는다는 이복순씨 머리로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았다.
육합목에서부터 주변 조망이 가능해
무인 대피소가 있는 육합목에 도착했다. 사각형의 시멘트 건물인 대피소 안에는 나무마루가 놓여 있었고 10여명의 사람들이 눈과 바람을 피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대피소 앞으로 비교적 넓은 눈 밭에서 일행들이 잠시 쉬기로 했다. 맑은 날에는 켄가미네까지 이어지는 장쾌한 다이센 주능선과 동해를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유리사와씨의 이야기에 일행들은 아쉬운 표정들을 지었다. 쉬는 동안 가이드와 상의해 정상에 오르기로 했다. 시야가 좋지 않아 주변 조망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정상에 가지 않으면 아쉬움이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눈 때문에 이미 많은 시간을 지체했던 터라 하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부는 먼저 하산하기로 하고 희망자에 한해서만 정상엘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대피소 오른쪽으로 난 가파른 길을 올랐다. 눈이 너무 많이 온데다가 고도가 높고 날이 추워서인지 눈이 잘 뭉쳐지지 않았다. 그래서 앞사람이 밟고 간 자리도 금세 망가져버려 푹푹 빠지는 설상구간을 올라야했다. 바람도 심하게 불고 가스가 짙어서 자칫 길을 잃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그재그로 올라가던 오르막 구간이 끝나자 완만한 길이 이어지는데 먼저 내려갔던 다이센조난구조대의 우이하라씨 일행들이 설치했다던 막대기들이 이정표가 되어줬다.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는데 텐트의 폴대 종류로 길이가 2m 가량 되었다. 일부 구간에서는 폴대가 부족했는지 대나무가 꽂혀 있었다.
정상부 능선길은 완만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나무판 길이 설치되어 있고 낮은 관목들이 자라고 있다고 했지만 그 역시 눈에 파묻혀 있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고 오직 시리도록 하얀 눈길 너머로 정상부 대피소만 희미하게 들어올 뿐이었다. 눈에 반쯤 파묻혀 있는 정상 대피소는 여름 한철만 사람이 거주하고 다른 기간에는 무인대피소로 운영된다고 했다. 입구까지 눈이 차서 마치 아래로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대피소를 짓는 풍경이 담겨져 있는 사진들과 앉거나 때로 자고 갈 수 있도록 군대의 침상처럼 나무 데크들이 한 쪽 구석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투박해 보였지만 정갈해 보였다. 대피소 앞에서 설동을 파고 있는 야마다씨 일행을 만났다. 고베에서 왔다는 그들은 설동에서 하루를 보내고 내려갈 계획이라고 했다. 설동은 제법 넓어서 3명 정도는 충분히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대피소를 지나 100여 m 올라가면 미센 정상이다. 작은 정상석에 ‘다이센 정상’이라고 적혀있었다. 다이센의 최고봉은 켄가미네다. 미센을 거쳐 켄가미네로 가는 길은 겨울철 칼날능선으로 눈이 쌓였을 때만 길이 열린다. 그나마도 강한 바람이 불고 곳곳에 눈처마인 커니스가 형성되고 한 발 딛기조차도 좁은 능선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겨울산 등반경험이 있어야 하며 동계장비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정상에서 일행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비록 다이센에서 멋진 전망을 볼 수 없었지만 너도밤나무숲의 아름다운 설경과 지나칠 정도로 많이 왔던 눈길에서의 산행, 말도 얼굴도 낯선 일본에서 만났던 산사람들과의 기억은 하산하는 내내 따뜻한 기억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
미센 정상에 선 서울시청산악회원들. 가스가 짙어 다이센의 멋진 풍경을 조망해 볼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긴채 하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