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을 그리워 떠난 대한민국 최동단 여행 >
방학이 가까워 올 때면 늘 울릉도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매번 허공에 나부끼는 바람에 그쳤었다. 그러던 중 산악회에서 9월 창립 1주년 기념 여행지를 ‘울릉도-독도’로 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드디어 울릉도에 발을 디딜 수 있다는 생각에 며칠을 설렘 속에 보냈다. 1박 2일이라는 다소 짧은 일정 때문에 출발시간이 새벽 세시였다. 평소처럼 늦게 잠들었다가는 새벽에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초저녁부터 잠시 눈을 붙였다.
추석연휴 끝일지라도 많은 분들이 버스에 탑승해 계셨다. 세시에 출발한 버스는 아침 일곱 시 경 묵호항에 도착했다. 울릉도행 배는 8시 45분 출발 예정이었다. 여객터미널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했다. 우리가 탈 예정인 ‘씨플라워호’는 예상보다 작은 배였다. 경험이 많으신 분들은 배가 출발하기 전 멀미약을 드셨지만, 울릉도 뱃길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나는 피트니스클럽에서 건강을 다져왔다는 무한 자신감으로 그냥 막무가내 배에 올랐다. 어르신들의 경험이 얼마나 큰 교훈이었는지 그땐 정말 몰랐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씨플라워호’는 일행을 태우고 파도를 헤치며 망망대해로 나갔다. 배가 많이 출렁거려서 속이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새벽에 잠을 안잔 덕분에 울릉도에 이르는 내내 잠에 취해 멀미를 잊고 지낼 수 있었다.
울릉도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은 도동항이었다. 양쪽으로 높은 산이 있고, 그 협곡 사이로 포구가 있어 배가 접안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파른 언덕을 따라 가게와, 농협이 있고, 우체국도 있었으며, 의료원, 학교 등이 있었다. 제주도는 세 가지가 많은 섬으로 유명한데 비해, 울릉도는 세 가지가 없는 섬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첫째는 뱀이 없고, 둘째는 도둑이 없으며, 셋째는 공장이 없기에 오염이 없다고 했다. 언뜻 보기에도 주변지역이 청정섬이란 단어에 어울리게 녹색 자연의 빛깔로 둘러져 있었다. 본래 일정은 숙소에 여장을 풀고, 바로 독도로 향할 예정이었지만, 먼 바다에 너울성파도가 심했기 때문에 배가 출항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 높은 파도 때문에 그날 울릉도에 들어온 배도 우리배가 유일했다는 이야기를 후에 듣게 되었다. 현지 나물이 풍성하게 차려진 울릉도식 정식을 먹고, 오후에 성인봉에 오르는 것으로 내일과 오늘 일정을 맞바꾸게 되었다.
성인봉(聖人峰)은 산의 형상이 성스럽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높이만 본다면 984m로 그리 높지 않지만, 해발 0m에서 시작하는 산행이었기에 만만하게 볼 수 없었다. 처음 시멘트 포장길로 시작하는 동네 길은 경사가 특히 심했다. 조금 과장되게 해발 500미터 정도는 이 시멘트 길로 오른 것 같았다. 화산섬이었기에 용암이 만들어 낸 기암괴석을 많이 볼 것이란 예상을 했지만, 화산작용이 너무 오래된 탓인지 화산섬임을 알 수 있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우산고로쇠 나무가 길을 따라 울창하게 펼쳐져 있었고, 고사리와 같은 원시 식물들이 눈에 띄게 분포하고 있었다.
성인봉에 오르는 길에서 유달리 눈에 띄었던 것은 오징어로 형상화한 이정표였다.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오징어가 많이 잡히지 않아 울상이라는 울릉도에서 그나마 등산로 갈림길 마다 서있는 오징어가 정겹게 느껴졌다. 다만, 이정표마다 성인봉까지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를 나타내는 숫자표시를 누군가 인위적으로 뜯어내 지워놓은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남은 킬로수를 생각 말고 그냥 산행을 즐기란 의미겠지’란 생각으로 푹신푹신한 오솔길을 따라 정상을 행해 나아갔다.
정상에는 여느 산처럼 정상임을 알리는 비(碑)가 있었다. 사진을 찍고 뒤쪽으로 돌아가니 나리분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다. 울릉도는 많은 것들을 육지에서 가져와야 했기에 물가가 비싸다고 한다. 바다를 두르고 있기에 해산물의 가격은 저렴하겠지만, 육류는 전량 육지에서 들여와 비쌀 것이란 생각으로 물어봤더니, 나리분지에서 소와 같은 일부 가축을 기른다고 했다. 한걸음에 달려가 나리분지에 빠져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오늘 일정에 나리분지 산행은 없었다. 성인봉에서 내려다 본 울릉도 근해의 바다는 비교적 잔잔해 보였다. 대한민국 최동단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 내려다보는 동해의 수평선이 감격스럽게 느껴졌다.
이튿날, 오전은 울릉도를 한 바퀴 도는 유람선 일정이었다. 유람선은 어제 타고 온 배와 달리 밖으로 나가서 경치를 구경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하얀 포말을 만들어 내며 출발하는 배의 맨 후미에 자리 잡았다. 배가 도동항을 빠져나가자 갈매기 수십 마리가 계속 추격해 왔다. 가만히 지켜보니 하얀 포말위로 사람들이 던져준 과자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운이 좋은 녀석은 던져진 과자를 공중에서 받아내는 녀석도 있었다. 갈매기를 그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도시의 지저분한 비둘기만을 흔히 보아서인지 예상과 달리 갈매기는 정장을 차려입은 신사 같은 깨끗한 새라는 생각을 했다.
울릉도 주위를 한 바퀴 도는데도 두 시간 가까이 소요되었다. 유람선을 타고서야 비로소 울릉도가 화산섬이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거제도 해금강에 버금가는 기암괴석이 즐비했다. 특히 울릉도가 동해물에 흘러 태평양 한가운데로 떠내려가는 것을 막고 있는 양, 섬을 이끌고 육지로 향하고 있는 거대한 코끼리 바위가 인상적이었다. 삼선암, 죽도 등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오전 11시경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다시 도동항에 도착했다. 도동항을 끼고 오른편 해안을 따라 저동항까지 이어진 탐방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일행들이 숙소로 올라간 동안 그 길을 따라 산보를 나갔다. 동굴과 흡사한 구간도 있고, 화산이 굳어 바위를 이룬 곳도 있었으며, 제주도의 주상절리와 흡사한 구조의 해안경치도 있었다. 비로소 울릉도가 화산섬임을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오후 2시가 가까워오면서 독도로 가는 배인 ‘오션플라워호’에 오를 때가 되었다. 유람선 관광 때부터 속이 안 좋고 멀미 기색이 있었지만, 설마 내가 멀미를 할까하는 안이한 생각은 여전했다. 주위 어르신들은 멀미약을 챙겨 드시고 있었지만, 나는 설마라는 객기를 부려 그냥 배에 올랐다. 그리고 도동항을 출발한지 20분 만에 너울성파도 위를 타고 가는 배 안에서 멀미와 사투를 벌이게 되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분명 내 삶에서 멀미는 없어졌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땀으로 옷이 흥건하게 물들었고, 거의 인사불성 지경이었다. 매일 운동 후 사우나를 해온 탓에 땀나는 것은 어느 정도 견뎌 낼 수 있었지만, 속이 뒤집히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소나무 누님과 회장님의 절대적인 도움으로 가까스로 독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독도로 가는 배 안에서 나는 당분간 배는 타지 않겠노라 수차례 다짐을 했다.
독도...... 멀미와 사투를 벌이고 어렵게 내린 사람을 정말 의연하게 맞아 주었다. 마치, 그 정도는 겪고 와야 한다고 겸손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두개의 섬이 머리 위로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경건하고도 위엄 있어 보였다. 어렵게 독도에 오더라도 1년 중 40일 정도만 배가 접안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 일행은 억세게 운이 좋아보였다. 멀미와의 사투 속에서 얻어낸 값진 승리처럼 보였다. 비록 섬 꼭대기에 오르지는 못하고 아래 선착장에서 잠시 동안 올려다본 독도의 모습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 독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 이번 ‘울릉도-독도 여행’의 의미는 컸다고 생각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독도의 시원한 바람이 나의 뒤집어진 속을 차분하게 가라 앉혀 주었다.
독도에서 도동항으로, 다시 묵호항으로 오는 뱃길은 마치 KTX 열차를 타고 있는 듯 했다. ‘파도를 역방향으로 타는 것과 순방향으로 타는 것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묵호항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어둠이 한껏 내려앉아 있었다. 육지가 이렇게 좋은 곳이란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울릉도와 성인봉, 그리고 독도까지, 이번 여행은 나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었고,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예상치 못한 멀미로 많은 것을 보았으면서도, 많은 추억을 잊어버린 어처구니없는 여행이기도 했다. 하지만, 멀미를 통해서 자만이 아닌 겸손을 배웠고, 울릉도에서 섬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보고 느낄 수 있었으며, 독도에서는 우리나라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모로 이번 여행은 뜻 깊은 여행이었으며,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여러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땅입니다.”
[2010. 09. 25~26 한서산악회 울릉도-독도 여행 중에서..]
원본출처 : [ http://www.cyworld.com/tomhuck ]
첫댓글 시간이 없어서인지, 게을러서인지 모호하여, 이제야 올립니다. 제가 멀미에 정신이 없어 사진촬영을 제대로 못한 관계로 회원님들이 찍은 멋진 사진을 몇장 올렸습니다.
고 3 수험생 입시지도 하시느라 진짜 바쁘고 시간이 없었을텐데 이렇게 잊지않고 올려 주시니 읽는 저희들은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껏 읽어봅니다.
휙~~스치고 읽기엔 산행기를 쓰는 선생님의 정성이 얼마나 큰지를 알기에...... 배멀미로 고생하셨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니 얼마나 값진 여행이였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