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의 시작지점 신선대 첫 암자 화암사
(기행 수필 신선대 제2편)
루수/김상화
금강산 화암사(金剛山 禾巖寺)로 가는 아스팔트 길 위엔 솔 향기 그윽하다. 절에서 흘러나오는 목탁 소리 또한 심신을
편안하게 한다. 그뿐이랴 새들의 향기로운 대화 소리는 어찌 그리도 아름다울까? 순식간에 필자의 마음을 무아지경(無我之境)으로 만들어 낸다.
필자는 일행의 대열에서 벗어나 제일 후미에서 내가 좋아하는 김경익 사진작가와 글을 쓸 자료를 찾고 있었다. 대열에서 한참 멀리 떨어졌나 보다.
해피의 자랑이자 보배라 할 수 있는 김영식 대장이 빨리 오라고 성화를 댄다. 일행과 너무 많이 떨어져 행여 길을 잃고 헤매지나 않을까 걱정 섞인
목소리다. 많은 회원을 한 사람 한 사람 보살핀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닐진대 참으로 대단한 열정과 책임감으로 통솔하는 보배스러운 대장이다.
화암사로 가는 길 왼쪽엔 고승들께서 쓰신 열반송(涅槃頌)을 비석에 새겨 놓았다. 아름답다고 표현하기보다 너무도 훌륭한 글이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적어본다. 수십 년 전 아니 수백 년 전에 쓴 글이지만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이렇게 좋은 글을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여행이 참으로 보람되고 행복하다. 제1편에서 쓴 오도송(悟道頌)과 지금 2편에서 쓴 열반송(涅槃頌)은 독자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열반송(涅槃頌)이란 고승들이 입적할 때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을 말한다. 열반게(涅槃偈)
입적게(入寂偈)라고도 한다. 6분의 스님들 열반송(涅槃頌)을 적어본다.
선지식(善知識)이란 뜻은 국어사전엔 불교의 바른 도리를 가르치는
사람을 말한다고 적혀있다.
1) ※고한(孤閑) /희언(熙彦) (1561 ~ 1647)
조선조 눈밝은 수행남자로 스스로 몸과
마음에 욕망의 덩어리를 깎고 덜어내어 임종에 이르러 자신의 육신을 산짐승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 서슬 퍼런 유언 앞에
누구나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허욕을 살펴 보아야 한다.
空來世上 (공래세상)
特作地獄滓矣 (특작지옥재의)
命布體林
(명포체림)
麓以飼育獸 (록이사육수)
공연히 이 세상에 와서
지옥의 찌꺼기만 만들고 가네
내 뼈와 살을 저
숲속에 버려두어
산 짐승들 먹이가 되게 하라
2) ※성림(聖林) / 월산(月山) (1913 ~ 1997)
죽음은 왕생도
아니고 소멸이요 본래 자기로 돌아가는 귀환이다.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그 위치를 벗어날 수 없다.
回回一生 (회회일생)
未移一步 (미이일보)
本來其位 (본래기위)
天地以前 (천지이전)
일생을 돌고 돌았으나
한 걸음도 옮긴
바 없나니
본래 그 자리는
하늘과 땅 보다 먼저이니라
3) ※동곡(東谷) / 일타(日陀) (1929 ~
1999)
깨침을 이룩하기 위해 연비를 하고 훗날 태운 손가락 마다 사리가 출현한 신통을 보였고 삼장에 해박했을 뿐 아니라 선교에도 혜안이
번득이었던 특별한 기용을 갖춘 선지식(善知識)
一天白日路眞心 (일천백일로진심)
萬里淸風彈古琴 (만리청풍탄고금)
生死涅槃曾是夢 (생사열반증시몽)
山高海闊不相侵 (산고해활불상침)
하늘의 밝은해가 참된 마음을 드러내니
만리에
맑은 바람 옛 거문고를 타는구나
생사와 열반이 일찍이 꿈이려니
산은 높고 바다 넓어도 서로 방해롭지 않구나
4)
※나옹(懶翁) / 혜근(惠謹)선사 (1320 ~ 1376)
젊은날 친구가 죽는 것을 보고 출가한 고려시대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
중국으로 건너가 지공을 친견하고 평산처럼 선사를 만나 인가를 받았다. 평산을 만나 인사를 하자 누구를 만났느냐고 묻자
지공을 만났다고 했다. 지공을 항상 무엇을 쓰더냐 묻자 천검을 쓰고있다고 대답하니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너의 검 하나를 가져오너라, 스님은
좌구를 가지고 평산선사를 치자 이 도둑놈이 나를 죽인다. 소리쳤다.
七十八年歸故鄕 (칠십팔년귀고향)
天地山河盡十方
(천지산하진십방)
刹刹塵塵皆我造 (찰찰진진개아조)
頭頭物物本眞鄕 (두두물물본진향)
칠십 팔년 고향으로
돌아가나니
이 산하대지 온 우주가 다 고향이네
삼라만상 모든 것은 내가 만들었으며
이 모든 것은 본시 내
고향이네
5) ※혜림(蕙林) / 향곡(香谷) (1912 ~ 1978)
그가 지녔던 기용은 대방무외하여 산과 바다를 누르고 한
번 할을 하면 산악이 무너지고 봉을 휘두르면 바다가 뒤집히고 입으로 백억화신을 토해내던 걸림이 없었던 선지식(善知識)
木人領上暇玉笛
(목인령상가옥적)
石女溪邊示作舞 (석녀계변시작무)
威音那畔進一步 (위음나반진일보)
曆劫不昧常受用 (역겁부매상수용)
목인은 고개 위에서 옥피리를 연주하고
석여는 시냇가에서 춤을 추도다
위음왕불 이전으로 한 걸음 나아가라
영원히
밝고 밝아 언제나 수용하리.
6) ※태고(太古) / 보우(普愚) (1301 ~ 1382)
고려 말기 불교계를 대표한
수행인
그는 정진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만큼 존경을 받았고 한국 불교 종조로 추앙받는 영예까지 누린 이사에 눈이 열린 선지식
이었다.
人生命若水泡空 (인생명약수포공)
八十餘年春夢中 (팔십여년춘몽중)
臨終如今放皮? (임종여금방피대)
一輪紅日下西峰 (일륜홍일하서봉)
사람의 목숨은 물거품 처럼 빈 것이어서
팔십여 년이 봄날 꿈속 같았네
죽음에
다다라 이제 가죽 부대 버리노니
수레바퀴 붉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네
화암사 경내를 배인자 고문 안국현 회원과 함께
살펴보았다. 증축과 수리를 하느라 분주하다. 경내는 증축할 자재들로 너절하게 흐트러져 있고 스님들은 수리하는 것 돕기 바쁘다. 옆으로 올라가
사방을 내려다보니 경관이 매우 뛰어난 곳이다. 앞산에는 그 유명한 수바 위(쌀바위)가 위엄을 드러내 눈길을 끌고 있다. 우리는 몇 카트
기념사진을 찍고, 100m 정도 올라가니 미륵 부처님을 크게 모셔놓고 스님 2분께서 경내 단장을 하고 계신다. 고성 화암사는 금강산 일만이천 봉
중에서 남쪽에 있는 마지막 신선봉 아래에 있다. 고성 화암사는 원래의 이름은 화엄사였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에 금강산
화암사(강원도문화재자료제114호)가 있다. 화암사는 금강산 최남단의 절로서 지금으로부터 약 1216년 전(서기 769년) 신라 36대 혜공왕
5년에 진표율사가 설악산 북쪽 기슭에 창건하고 화암사라 이름하였다. 금강산 건봉사의 말사다. 이 사찰은 1623년(인조 1년)에 소실되어
1625(인조 3년)에 중건 하였으나 몇 차례에 걸친 화재로 소실되어 중축이 거듭되는 수난을 겪었다. 1912년 수바위의 전설에 유래하여
화암사(禾巖寺)로 이름을 고쳤으나. 1915년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었고 후에도 한국전쟁 때 다시 불타 없어진 것을 법당만 다시 지었다. 현재
경내에는 삼성각.미타암.법당.명부전.설법당.요사채.종각.금강누각.일주문 등이 조성되어 있다. 사찰 경내에는 조선 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부도15기가 남아 있다.
금강산 화암사의 유래에 대해 알아본다. 화암사의 원래 이름은 화엄사다.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후기인
769년 (혜공왕 5년) 우리나라에 참회불교를 정착시킨 법상종의 개조 진표율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진표율사는 이 절에서 수많은 대중들에게
"화엄경"을 설했다. 스님에게 "화엄경"을 배운 제자 100명 중 31명이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가고 나머지 69명은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얻었다고 한다. 진표율사는 이 사찰에서 지장보살의 현신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지장암을 창건하여 화암사의 부속 암자로 정했다. 이 절의 공식적인
명칭을 화암사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12년 경이었다. 절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는 화암사 남쪽 300m 지점에 우뚝 솟은 왕관 모양의
예사롭지 않은 모양새를 띤 수(秀) 바위에 얽힌 전설 때문이다. 진표율사를 비롯한 여러 스님이 수바위에서 좌선 수도를 했으며, 바위 꼭대기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작은 우물이 있는데 그곳에서 기우제도 지냈다고 한다. 한편 절이 민가와 멀어 수행하는 스님들이 시주를 구해 공양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몸은 도를 얻는 법기(法器)라지만, 필요한 양식을 구하느라 수행에 매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 후 수행을
열심히 하던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있는 조그만 바위굴을 지팡이로 세 번 두드리면 쌀이 나올 것이니 그 공양미로 열심히
수행에만 힘쓰라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꿈에서 깨어난 두 스님이 아침 일찍 수바위에 가서 꿈속에서 노인이 시킨 대로 하였더니 정말로 쌀이
나왔다고 한다. 지금도 수바위를 찾는 신도들과 스님들에 의하면 수바위에서 기도를 한 후 꿈에서 전설 속의 노인을 만났다고 한다. 또 화암사는
서북쪽에 위치한 삼성각이 유명한데, 이 삼성각 안 벽에는 금강산 천선대, 상팔담, 세전봉, 삼선대 등 금강산의 이채로운 풍경이 그려져 있다.
이것이 화암사가 금강산 1만 2천봉 8만 9암자 중 남쪽에서 시작하는 첫 봉. 신성봉. 첫 암자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신도들도 삼성각이
금강산이 시작되는 신선봉 바로 아래 세워져 있어 매우 영험하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삼성각의 영험성과 수바위의 절경으로 인해 화암사는 전국에서
제일가는 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제2편에서는 열반송(涅槃頌)과 금강산 화암사(金剛山 禾巖寺)로 끝을 맺고 제3편 에서는
신선대까지 재미있었던 일들을 적어볼까 한다.
2017년 06월 03일
첫댓글 화엄사
다녀오셨군요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
이양순 부장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화암사를 잘 다녀왔습니다
고운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