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를 알면 만화가 더 재미있습니다. 만화가를 몸소 만나거나, 만화 비평을 읽거나, 그 만화를 먼저 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보려는 만화'가 어떠한지를 찬찬히 헤아려 보면 좀더 즐겁게 만화를 볼 수 있습니다.
<한국 만화의 모험가들>이란 책이 있습니다. 만화를 '비평한다'는 문화가 드물던 1990년대에 나온 책으로, 한국 만화를 이끈다고 할 만한 작가 열두 사람 이야기를 묶었습니다.
.. 밝고 건강하며 행복한 이야기라는 이상무 만화세계의 전형을 생각해 본다면 그의 주인공인 독고탁이 대부분의 만화에서 둥근 선을 위주로 묘사되는 작고 귀여운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이다 .. <53쪽 - 이상무 만화 비평(정준영)>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상무라고 하는 분이 그린 만화에 나오는 '둥근 선'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를 헤아린다면 그의 만화를 '아하, 그렇구나' 하면서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겠죠?
.. 1990년대 초반부터 그에게는 일본 만화의 영향이 엿보인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일부 그런 경향이 눈에 띄지만 특히 그림체의 변화에서 두드러진다. 그것은 이강토와 신석기(이강토의 또 다른 이름)라는 대표 캐릭터의 변화를 살펴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 <69쪽 - 허영만 만화 비평(김이랑)>
이런 대목도 찬찬히 헤아려 봐요. 요즘 한국 만화가들이 일본 만화 그림투를 흉내내거나 자기도 모르게 좇아가거든요. 그림투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이야기 흐름, 줄거리, 그림감마저도 많이 닮아갑니다. 이런 모습은 만화를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기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보게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우리 현실인 걸요.
우리 나라는 만화'산업'은 발돋움했을지 모르나 '만화' 문화는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여점 판으로는 그럭저럭 찍어내고, 그나마 괜찮다는 만화책을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도 꽤 큰 자리를 내주며 팔고, 만화책만 전문으로 파는 책방도 늘었어요.
그러나 만화를 펴내는 출판사에서 좀더 알뜰한 출판얼을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만화를 즐기는 분들도 '재미'를 넘어 '감동'과 '끝없는 창조와 상상력'으로 이어가는 만화 힘을 제대로 펼치지 못해요. 책을 비평하고 소개하는 사람들은 만화책을 제대로 모를 뿐더러 소개하지도 않고, 그림이나 예술이란 테두리에서도 퍽 따돌림받습니다.
<2> 만화를 낳은 사회와 터전을 헤아린다
<한국 만화의 모험가들>은 우리가 어릴 적부터 즐기기 마련인 만화가 사회 영향을 어떻게 받는지도 이야기합니다. 책 첫머리를 여는 비평인 "1970~80년대 어린이의 웃음과 희망을 그린 길창덕"에서는 다음처럼 말합니다.
.. 또한 잊어버릴 때쯤 되면 텔레비전을 장식하는 북괴의 도발 소식에 치를 떨어야 했고, 반공 포스터 그리기 대회, 반공 글짓기 대회, 반공 웅변 대회 등이 어린이들의 유일한 취미활동이자 자치활동으로 자리잡았다. 그들의 감수성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저당잡혀야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가에 충성하는 어린이'가 되어야 했다. 어린이들이 즐기는 만화도 검열과 통제를 통해 국가적 덕목을 담고 있었고, 담아야만 했다 .. <15쪽 - 길창덕 만화 비평(박인하)>
'심의필'이란 딱지가 사라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만화가가 자유로울 수 없던 때는 아이들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온갖 대회에 이끌려 나가야 했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원고를 외워 웅변을 했으며, 대통령 지나간다고 길에 나와 벌벌 떨며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태극기를 흔드는 한편, 새마을노래에 맞춰 새벽 일찍 일어나 마을 골목길을 쓸어야 했습니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저당잡혀야만" 했던 아이들은 억지로 시키는 학교 공부와 비틀어진 '자유민주주의' 교육에도 저당잡혀야만 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만화란 무엇이었을까요? 그냥 재미만 있는 책이었을까요? 답답한 마음을 풀고 막혀 있던 현실을 뚫는 돌파구이자, 끊임없는 억눌림에서 벗어나 답답한 마음을 쉬는 놀이터 아니었을까요?
.. 풍족하지 않았던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진학했던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일선 시골 국민학교와 서울의 비정규 공민학교에서 보냈던 몇 년 간의 경험은 삶과 인간에 대한 생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것은 결국 그의 만화를 이루는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 .. <28쪽 - 박수동 만화 비평(하종원)>
길창덕님 만화에 이어 박수동님 만화가 사랑받던 때는 무엇이든 모자랐지만, 누구나 모자라던 때였습니다. 물질로는 가난했으나 마음으로는 넉넉하던 때였습니다. 요즘 같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나 온갖 문화시설이 없었으나 마음껏 뛰놀 수 있던 산과 들과 내와 바다가 있던 때였어요.
산동네 골목길도 좋은 놀이터고, 손바닥만한 방에서도 신나게 놀 수 있습니다. 그런 보통 아이들 삶을 헤아리면서 바로 그 '보통 아이들이 살아가는 터전'이야말로 재미난 삶이 아니겠느냐면서 새로운 그림, 새로운 이야기와 줄거리를 펼쳐 준 만화가 박수동님 작품입니다.
"농촌의 일하는 어린이들과 뒹굴면서 자연을 가까이 했으며, 서울의 가난한 아이들의 아픔을 옆에서 같이했던 그로서는 올되지 않은 어린이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세계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성인을 다룬 만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이어져 닳고 닳은 세상을 풍족하게 사는 데 필요한 '어른스러운' 재주는 없지만, 마음씨만은 아직 어린이의 순수함을 잃지 않는 서민들이 그려진다(28쪽)"는 말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 박수동님은 '가장 평범해 보이는 곳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느낀 분입니다.
수수한 사람들 삶에서 재미나면서 눈물도 나고 웃음이 넘치는 이야기를 뽑아낸 건 김수정님이나 이희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만화의 모험가들>에서 소개하는 백성민님도 그렇고, 이상무, 허영만, 이현세, 고행석, 오세영, 황미나, 김혜린님 모두 드넓은 마음으로 여러 가지 깊이와 너비를 갖춘 만화를 선보였습니다.
구름 위에 붕 뜬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에 발을 딛고 선 이야기입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섰지만 현실에만 머무르지 않는 이야기예요. 답답한 세상을 담아내지만 답답하게만 그리지 않는 이야기기도 하고요. 이런 분들은 모험을 하듯 만화를 그렸다고도 하겠습니다.
꽉 막힌 세상에서 도망치지 않았고, 섣불리 일본 만화를 베끼거나 흉내내지도 않았으며, 제도권과 비민주가 판을 치던 사회에서도 곧게 자기 목소리를 담아냈습니다. 책이름에 붙은 '모험가'들이란 말은 괜한 말이 아닙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만화로 꿈과 희망을 선사하거든요. 꿈과 희망뿐 아니라 그치지 않는 상상력과 샘솟는 힘도 건네줬어요. 만화를 보는 내내 웃음과 눈물을 엇갈리게 하고 감동과 즐거움도 안겨 주었습니다.
<3> 아쉬움과 벽
하지만 한 가지, <한국 만화의 모험가들>이란 책이 지닌 아쉬움을 말해야겠습니다. 머리말을 보면 "만화가 평론의 대상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의 저변에는 만화란 아동들의 전유물이고, 저급한 오락물이라는 인식이 위치하고 있다(5쪽,곽대원)"란 말이 있습니다.
참 옳은 말이고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런데요, 말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요? 다음에 드는 글을 읽어 보셔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 그러나 이런 속성 때문에 깊이 있는 작품, 즉 오래 기억되는 감동적인 기억들이 작품 저변에 시도되지 않는다는 단점도 발견될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깊이를 발견하려는 오기조차도 몇 장의 그림을 넘기는 순간에 폭소와 공감으로 사라져 버리고, 그의 창의력에 경탄을 보내게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 <134쪽 - 김수정 만화 비평(한창완)>
만화평론이 없었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새롭게 만화평론을 뚫어 보겠다고 하는 분들이 도식과도 같은 사회과학 이론 잣대로만 만화를 칼질하고 재는 일은 썩 옳아 보이지 않습니다. 다음 글도 살펴봐요.
.. 오세영이란 작가가 꾸민 얘기라면 매우 편협한, 그리고 작의적인 작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일기장의 주인공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공감했던 문제였기에 현실 이상의 실제 상황임을 알게 된다 .. <151쪽 - 오세영 만화 비평(곽대원)>
어떻게 작품도 보지 않고 섣불리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요? "아무개란 작가가 꾸민 얘기라면 매우 편협한, 그리고 작의적인 작품일 수밖에 없다"는 말을 독자들이 들으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또 오세영님이 그린 만화가 평론한 분 말처럼 모두 "편협하고 작위성 있게 꾸민 얘기"일 뿐일까요? 더구나 세상 어떤 만화와 문학이 '꾸미지 않은' 이야기이며, 한 가지 글감과 그림감을 다루는 작품치고 '편협하다'는 말을 안 들을 수 있겠습니까?
앞에서는 이렇게 모질게 말하다가 바로 다음 줄에서는 "현실 이상의 실제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은 또 무얼까요?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일까요?
.. 성장하지 못한 주체를 상정하고 그 주체의 틀을 끝내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이상무는 결국 성인만화의 세계로 도약할 기회를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 <56쪽 - 이상무 만화 비평(정준영)>
'성인만화의 세계'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성장하지 못한 주체'를 내세워서 '성장하지 못한 이야기'를 펼쳐서는 안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어떤 틀을 세워서 꼭 그 틀에 꼭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듯한 만화평론은 외려 만화평론을 주눅들게 할 수 있습니다. 만화 자체도 줄기를 꺾어버릴 수 있어요.
평론이란, 어느 작품을 찬찬히 살펴서 이야기하기 앞서 독자라는 눈길로 바라보고 즐긴 뒤 써야 하는 글입니다. 즐거운 독자로 만화를 맛보려는 눈길이나 생각이 없이 그저 '평론'이란 이름으로 글만 쏟아낸다면, 이런 평론은 차라리 없는 편이 낫겠다고 봅니다.
평론이 없어도 작품은 얼마든지 즐길 수 있으니까요. 엉뚱하거나 사실을 비틀거나 낡은 틀에만 매이면서 쏟아내는 평론 100편보다, 우리 가슴을 울리고 움직이는 창작 1편이 훨씬 소중하다고 봅니다.
<4> 우리 만화를 생각하는 마음
지금 우리 만화는 할리우드 같은 만화와 이웃한 일본 만화에 크게 눌려 있습니다. 산업으로는 퍽 발돋움했지만 문화로는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뒷걸음을 쳤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 만화의 모험가들> 같은 만화평론도 꾸준하게 나와야 합니다. 제대로 된, 그러면서 독자라는 눈길과 눈높이를 잃지 않는 살가운 평론이 나와야겠어요.
<한국 만화의 모험가들>은 아무래도 만화평론이 겨우 싹틀 때 나온 책이라 거칠고 어리숙한 비평이 곳곳에 드러납니다. 그런 아쉬움은 찬찬히 살피며 비판하고 거듭나는 발판으로 삼으면서, 이 책에서 말하는 만화가 지닌 값어치와 재미와 효과와 맛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문화를 이루는 것은 참 많아요. 만화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화가 만화다우려면, 그러니까 우리 문화가 좀더 다양성을 갖추고 사회도 좀더 따뜻하고 아름다울 수 있으려면 좋은 만화를 아이들부터 어른 모두까지 어깨동무하면서 즐길 수 있어야지 싶어요.
만화를 좀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만화비평도 꾸준하게 나오면 좋겠고, 좀더 쉽고 살갑게 독자들한테 다가갈 수 있도록 거듭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