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법정면.
[명칭유래]
안동의 읍지(邑誌)인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임동면은 “본래 고구려의 굴화군(屈火郡)이다.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곡성군(曲城郡)으로 고쳤는데, 고려 초기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현종(顯宗) 때에 본부(本府)에 예속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임하현에 속하였다가 조선
숙종 때 임하현이 분할되면서
안동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8개 법정리로 개편되었고,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마리(馬里) 외 5개 리가 편입되면서 13개 리가 되었다. 1993년
임하댐 건설에 따른 행정구역 조정으로
지례리와
수곡리의 일부가 폐지되었다. 1995년 안동시와
안동군이 통합되면서
안동시 임동면이 되었다.
[자연환경]
대체로 동쪽과 남쪽이 서쪽에 비해 지형이 높다. 임하호가 중앙부에 자리 잡아
임동면을 동서 지역으로 가르고 있는데,
임동교와
수곡교가 두 곳을 이어 주고 있다. 특히
중평리는
임동면 중 침수 면적이 가장 넓은 곳이다. 마을은 주로 도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특히
임하댐 건설로 이주한 마을은 주로 호수 주변의 일부 경작지를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하였다.
[현황]
안동시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 안동 시내에서 동쪽으로 24㎞ 정도 떨어져 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151.07㎢이며, 2011년 6월 30일 현재 총 1,113가구에 2,209명(남자 1,122명, 여자 1,08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중평리,
수곡리,
박곡리,
망천리,
고천리,
지리,
갈전리,
마령리,
마리,
사월리,
위리,
대곡리 등 12개 법정리(20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 소재지는
중평리이다.
원래
중평리는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고 주민들은 새로운 터를 조성하여 이주하였는데 옛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동쪽으로 청송군 진보면과 영양군 입암면, 서쪽으로
안동호를 경계로
와룡면, 남쪽으로 임하호를 사이에 두고
길안면, 북쪽으로
예안면과 이웃하고 있다. 동쪽에
국도 34호선이 청송군과 연결되고, 지방도 999호선이 북쪽으로 이어진다.
임동면 일대는 토질이 비옥하여 사과, 고추, 담배, 콩, 참깨 등이 생산된다.
문화 유적으로
대곡리에
안동 대곡리 굴참나무(
安東大谷里굴참나무, 천연기념물 제288호),
박곡리에
지촌 종택(
芝村宗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호)·
지촌제청(
芝村祭廳,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호)·
지산서당(
芝山書堂,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9호),
위리에
안동 위리의 나무화석(
安東圍籬의 나무化石, 경상북도 기념물 제150호),
지리에
운천재사(
雲川齋舍,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8호)·
운천 신도비(
雲川神道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0호)가 있다.
그 밖에
수곡리에
봉황사 대웅전(
鳳凰寺大雄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1호), 안동송화주(安東松花酒,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0호),
기양서당(
岐陽書堂,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7호),
전주류씨 무실 종택(
全州柳氏무실宗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7호),
무실 정려각(
무실旌閭閣,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8호),
만우정(
晩愚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호),
정재 종택(
定齋宗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2호),
수애당(
水涯堂,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6호),
안동 수곡리 암각화(
安東水谷里岩刻畵,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47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