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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제3권 3
『정토신앙의 지남(選擇本願念佛集)』을 권진합니다
지난 해(2019) 12월 동지의 일입니다. 저는 무진스님과 함께, 부산 기장에 있는 염불도량 광명사를 찾아갔습니다. 광명사에는 벌써 30년 전에 『정토신앙의 지남』이라는 책을 펴내신 석도실(釋道實)스님이 주지스님으로 계십니다.
『정토신앙의 지남』은 석도실스님이 일본 정토종의 개조 호넨(法然, 1133-1212)스님 저술 『선택본원염불집』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주해하시면서 붙인 이름입니다. 지남(指南)이라는 말은, 나침반이라는 뜻입니다. 30년 전이라면 우리나라에 정토신앙에 대한 책이 별로 나오지 않았던 때고, 일본 정토신앙의 책을 번역한다는 것은 대단히 선구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는 스님께 오랫동안 궁금하게 생각하던 바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 어떤 인연으로 『선택본원염불집』을 번역하셨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주어졌습니다.
“일본에 가서 정토사상을 공부해 보니까, 정토는 선도(善導, 613-681)대사만 알면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호넨스님의 『선택본원염불집』을 옮기시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정곡을 찌른 안목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정토사상은 어떤 의미에서는 선도대사에게서 하나의 결론을 얻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독자여러분은 궁금할 수 있습니다. 동문서답이 아닌가 하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호넨스님의 책에 대해서 여쭈었는데, 선도대사에 대한 이야기로 대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동문서답이 아닙니다. 그만큼 선도대사를 빼고 호넨스님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국화옆에서」에서 노래했습니다만, 실로 호넨스님은 선도대사를 만나려고 그토록 오래 기다리고 헤매고 고생했습니다. 그 세월이 꼬박 25년입니다. 18세에서 43세에 이르기까지, 호넨스님은 스스로를 구원해 줄 길,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길을 찾아서 대장경을 다섯 번이나 읽었습니다.
제가 2015년에 가보았습니다만, 히에이잔(比叡山)의 깊숙한 골짜기 구로다니(黑谷)에서 은둔합니다. 구로다니라는 골짜기는 말 그대로 하루에 해가 들어오는 시간이 몇 시간이 안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때의 느낌을 제 시 「구로다니黑谷 벳쇼」(『꿈속에서 처음으로 염불춤을 추었다』)에서 읊어본 일이 있습니다.
25년의 긴 세월 끝에, 호넨스님이 드디어 한 줄기 빛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선도대사의 말씀입니다.
일심으로 오롯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일컬어서(念) 가고 머물고 앉고 누움에 그 시간의
길고 짧음을 묻지 말고 찰나찰나(念念)에 버리지 않는 것을 정정취(正定聚, 극락에 태어나
는 근기의 사람들 무리 – 역자)의 업이라 말한다. 저 부처님의 원에 따르는 까닭이다.
야나기 무네요시 선생의 『나무아미타불』에서도 여러 번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당나라 선도대사의 대표작 『관경소(觀經疏』 제4권(정종분 산선의)을 읽으시다가 이 말씀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끝입니다. 호넨스님에게는 더 이상의 방황은 없었습니다. 더 이상 구로다니에 숨어 있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히에이잔을 내려와서 교토로 들어오십니다. 이제 중생들에게 당신이 얻었던 그 환희심, 그 결정왕생(決定往生)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이제 그의 길은 권진의 길이기도 하였습니다.
제자들 수는 380명이었다고 합니다. 출가한 제자들 수가 그렇습니다. 재가자들은 다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재가자 제자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쿠조 카네자루(九條兼實)라는 사람입니다. 이분은 지금 말로 하면,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높은 벼슬을 하고 있었습니다. 호넨스님에게 깊이 귀의하여서, 많은 도움을 드립니다.
어느 날 스님에게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왜 “나무아미타불” 염불만을 해야 하는지? 극락에 왕생하기 위해서는 다른 수행법을 다 버리고서 오직 “나무아미타불”만을 염불해야 하는지? 이 문제에 대해서 체계적인 정리를 해서, 책을 한 권 써서 주시면 좀 읽어보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호넨스님의 가르침은 당시 큰 충격을 주고 있었습니다. 일본불교의 다른 종파들에게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담하고도, 거칠고도,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극락을 가기 위해서는 다른 것 할 것 없이 오직 ”나무아미타불“만 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급진적이고 위험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기성 불교교단에서 들고 일어납니다. 조정에 투서가 빗발칩니다. 법상종에서도 천태종에서도 소장(訴狀)을 제출합니다. 그 이야기는 여기서 다 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튼 쿠조의 권청(勸請)으로 호넨스님은 드디어 책을 한 권 씁니다. 바로 『선택본원염불집』입니다. 1198년의 일입니다.
이 책을 열면, 제목 다음에 제사(題辭)가 하나 붙어 있습니다.
南無阿彌陀佛(往生之業, 念佛爲先)
제사라는 것은, 그 책의 내용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한 것으로 볼 수 있고 – 물론, 그러한 역할을 제목이 합니다만 – 그 책의 전체 내용이 이 제사를 부연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택본원염불집』은 바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칭명(稱名)이야말로, 왕생을 하기 위한 수행법에 가장 으뜸이 되고 우선적인 것임을 밝히는 책이라 선언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제사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해놓고서 모두 16장에 걸쳐서 구체적인 내용을 전개해 갑니다. 그 제목을 제가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이 제목의 정리는 『정토신앙의 지남』과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신종 코로나사태로 인하여 집에서 피은/避隱 중이라서, 학교 연구실로 도착한 『정토신앙의 지남』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하여 다시 읽은 책은, 『日本思想大系 法然 一遍』에 일어로 번역된 것입니다.)
1) 도작(道綽)선사, 성도문과 정토문의 두 문(門)세우고서 성도문을 버리고 정히 정토문으로 돌아간다는 글
2) 선도(善導)화상, 정행(征行)과 잡행(雜行)의 두 행을 세우고서 잡행을 버리고 정행으로 돌아간다는 글
3) 아미타여래, 다른 행(餘行)으로 왕생의 본원으로 삼지 않으시고 다만 염불로써 왕생의 본원으로 삼으신다는 글
4) 삼배(三輩)가 염불하여 왕생한다는 글
5) 염불이익의 글
6) 말법의 만년 뒤 다른 행은 다 소멸하고 오직 염불만을 남겨두신다는 글
7) 아미타의 광명은 다른 행을 하는 사람을 비추지 않고 다만 염불행자만을 섭취(攝取)한다는 글
8) 염불행자는 반드시 세 가지 마음(三心)을 갖추어야 한다는 글
9) 염불행자는 네 가지 닦음(四修)을 행해야 한다는 글
10) 아미타불의 화불(化佛)이 내영(來迎)해서 경전을 듣는 선(善)을 찬탄하지 않으시고 다만 염불의 행만을 찬탄하신다는 글
11) 잡선(雜善)과 상대하여 염불을 찬탄하는 글
12) 석존(釋尊)은 정선(定善)과 산선(散善)의 모든 행(諸行)을 부촉하지 않으시고 다만 염불로써 아난에게 부촉하셨다는 글
13) 염불로 다선근(多善根)으로 삼고 잡선으로 소선근(少善根)으로 삼으신다는 글
14) 육방(六方)의 항하(恒河)의 모래알 수 만큼 많은 부처님께서 다른 행을 증성(證誠)하지 않고 다만 염불을 증성해 주신다는 글
15) 육방의 모든 부처님이 염불행자를 호념(護念)해 주신다는 글
16) 석가여래, 아미타불의 명호로써 은근히 사리불 등에게 부촉해 주신다는 글
이 목차만 보더라도, 호넨스님은 정토신앙을 해 나가는 입장에서 문제될 수 있는 주제들을 망라적으로 다루고자 한 것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제목과 제사에 담겨있는 의미를 고려할 때, 또한 본문을 읽어볼 때, 호넨스님이 하고자 하는 주제는 사실상 1-3장에 다 담겨져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더욱 줄여서 생각한다면, 제3장이 가장 중요합니다. 3장에서 하는 이야기가 곧 이 책 전체의 주제입니다.
아미타불이 본원으로 선택한 것은 다른 어떤 수행법이 아니라 “나무아미타불”이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칭명입니다. 여기서 ‘선택’이라는 말을 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택은 가려서 택한다는 것입니다. 호넨스님은 선취(選取)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들 중에서, 하나를 가려서 취한다는 행위를 생각해 보시지요. 그 행위는 동시에, 바로 그 하나 외에는 나머지 것들을 다 가려서 내버린다(선사/選捨)는 행위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선택은 선사를 동반합니다.
여기서 내버려야 할 행위는 염불 외의 ‘나머지 행’이라고 해서, 원문은 ‘여행(餘行)’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호넨스님은 “나무아미타불” 이외의 다른 행으로는 극락왕생할 수 없다. 오직 “나무아미타불” 하나만이 왕생의 길이라고 하는 점을 역설하기 위하여 이 책 한 권을 쓴 것입니다.
다른 수많은 보살행을 다 하더라도, 아니 그러한 보살행을 통해서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하는 입장을 제행왕생론(諸行往生論)이라 합니다. 제행은 여행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니까 호넨스님의 입장은 제행왕생론은 아미타불의 본원을 오해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고 보셨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호넨스님은 왜 그렇게 “나무아미타불”만이 왕생의 정행(正行)이자 정업(正業)이라고 보았던 것일까요? 그 나름의 근거가 없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선도대사의 말씀에서도 나타나 있습니다. 바로 “저 부처님의 원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順彼佛願故)”이라고 했습니다.
아미타불의 원을 본원이라고 합니다만, 그것은 마흔 여덟 가지 원에 있지요.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제18원입니다. 선도대사와 호넨스님 모두 이 18원을 중시합니다. 18원의 원의(願意)를 생각해 본다면, 거기에 비춰 본다면, “나무아미타불”만을 칭명하는 것이 아미타불의 본원의 의미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증거를 정토삼부경 전체에서 찾아서 논의하는 것이 『선택본원염불집』입니다.
제16장에는 사실상, 이 책 전체에 대한 후기라고 할까요? 총론적인 언급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왜 하필이면 선도대사에게만 의지(偏依善導)하는 것인가? 라는 문제가 다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여덟 가지 선택이 총괄적으로 논의됩니다. 여기서 이들 주제에 대해서 자세히 논의할 수 없지만, 선택에 대해서만 개략을 제시해 두고자 합니다.
우선, 선택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분류하면 다음 표와 같습니다.
┌ 아미타불의 선택 : 선택본원, 선택섭취, 선택아명(我名), 선택화찬(化讚)
├ 석가모니불의 선택 : 선택찬탄, 선택유교(留教), 선택부촉
└ 제불(諸佛)의 선택 : 선택증성(證誠)
처음 듣는 단어들이 나옵니다만, 그 의미는 여기서 상세히 설명 드리기 어렵습니다. 『정토신앙의 지남』을 통해서 직접 확인해 주십시오. 이 여덟 가지 선택을 다시 경전을 중심으로 해서 구별하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 무량수경 : 선택본원, 선택찬탄, 선택유교
├ 관무량수경 : 선택섭취, 선택화찬, 선택부촉
├ 아미타경 : 선택증성
└ 반주삼매경 : 선택아명
정토삼부경 외에 『반주삼매경』까지를 포괄하여 선택을 논의하였습니다. 이 중에, 『무량수경』에서 아미타불의 선택 중, 첫 번째 선택본원은 제18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를 통해서 우리는 이 책의 제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염불은 곧 아미타불의 선택본원이라는 것입니다. 아미타불이 여행(餘行)이나 제행(諸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무아미타불” 칭명염불을 선택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밝힘으로서, 오직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라고 권진하는 것이 이 책입니다.
이러한 호넨스님의 정토사상을 우리는 전수염불(專修念佛)이라 합니다. 선택은 반드시 전수를 부릅니다. 전수만이 아미타불의 본원이자 선택이라고 호넨스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수하지 않으려면 굳이 선택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전수염불은 바로 이 『선택본원염불집』에서 그 극명한 이론무장을 갖추게 됩니다.
이러한 책을 지금부터 30년 전에 석도실스님께서 우리말로 옮겨주셨으니, 가히 선구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아쉬운 점은 그 번역본이 품절된 지 오래라는 점입니다. 더러 염불 카페 같은 데서는 누가 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 파일이 올려 져 있는 것을 봅니다.
사실, 30년 세월이 흘렀다면 새로운 번역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말도 그동안 변했고, 이 텍스트에 대한 학문적 성과도 많이 진전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새로운 독자들의 요청 역시 있어야 맞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어서 빨리 또 다른 번역본이 필요합니다. 실은 몇 해 전, 이 책의 번역본이 새로 하나 더 나왔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번역상의 문제가 많아서 널리 권유하기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장에, 혹은 빠른 시간 안에 이 책의 새로운 번역본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으로 판단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 전부터 이 책이 다시 그대로 재판된다면, 어느 정도 시간을 기다리면서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매개’ 역할을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석도실스님을 찾아뵙게 되었기에, 『정토신앙의 지남』 재판을 부탁드렸습니다. 스님께서도 흔쾌히 승낙하시고, 또 스스로 정재(淨財)를 희사(喜捨)해 주셔서 1,000권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 1000권 중에서, 무려 400권을 제가 널리 배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지금 제 연구실에 와 있습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연락주시길 빕니다.
새롭게 재판을 해서 법공양하면서, 저는 다음과 같은 「법공양발원문」을 지어서 책 뒤에 붙였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이 책을 받아 지닌 모든 이들이 다 읽기를
나무아미타불
이 책을 읽은 모든 이들이 다 그 뜻을 이해하기를
나무아미타불
이 책의 뜻을 다 이해한 이들은 다 아미타불의 가피를 믿기를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의 가피를 믿는 이들은 다 “나무아미타불” 염불하기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한 이들은 다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나무아미타불
극락세계에 왕생한 이들은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와 중생을 다 제도하기를
나무아미타불
이 책을 수지(受持)하시는 분들께서는 이 「법공양발원문」을 한 번 읽어주시고, 그 뜻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번역과 법공양의 공덕을 베풀어주신 석도실스님의 원력에 호응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2020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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