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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산 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동성
시선을 분산시켜라 사진 : 크리스천 지글러
시선을 분산시켜라
붓꽃 모양의 발을 가진 곤충이 시계풀 위에 앉아 있다. 녀석을 노리며 다가온 새는 펄럭이는 붉은 ‘붓꽃’을 보게 될 것이다. 머리는 한번 물리면 끝장이므로 포식자의 시선을 다리로 돌리려는 술수이다. Anisocelis flavolineata (곤충); Passiflora sp. (꽃)
파나마 숲의 어두침침한 아래 부분에서 손가락만 한 여치가 지의류로 뒤덮인 나무껍질로 위장하고 있다. 위장하려면 의태자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의태하는 대상의 행동까지 흉내내야 한다. 이 야행성 곤충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낮에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Acanthodis curvidens
나뭇잎을 빼닮은 말레이시아의 나뭇잎벌레(Phyllium giganteum) 암컷. 나뭇잎 의태는 오랜 세월 성공적으로 이어져온 곤충의 진화 방식 중 하나다. 최근 독일에서 발견된 한 화석을 보면 이 벌레군(群)은 지난 4700만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수많은 나뭇잎 모양 벌레 중에서 가장 큰 잎벌레는 몸 길이가 약 10cm에 달한다.
나무인 척하라
다리는 잔가지처럼 생겼고 갈색 반점과 파먹힌 가장자리까지 나뭇잎을 쏙 빼닮은 나뭇잎여치 두 마리가 천적의 눈에 띄지 않고 쉬기도 하고 먹기도 한다. 녀석들이 아무리 주변 자연의 일부분인 것처럼 위장해도 가끔은 들키고 만다. 살집이 많고 단백질이 풍부하며 독이 없는 여치는 시각이 예리한 원숭이, 새, 도마뱀, 개구리, 뱀이 열심히 찾아 다니는 먹이다.
Mimetica mortuifolia (위에 있는 녀석); Mimetica viridifolia
두 얼굴로 가장하라
가짜 눈이라도 한 쌍 더 있으면, 곤충들이 포식자의 예리한 눈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톱코멸구의 일차 방어수단은 위장술이다.
Cathedra serrata
두 얼굴로 가장하라
하지만 새나 도마뱀 같은 포식자가 잡아먹으려 들면, 녀석은 더 큰 동물의 눈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붉은 반점을 드러내 적을 놀라게 한다.
두 얼굴로 가장하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대니얼 얀젠이 코스타리카에서 발견한 나비의 유충도 가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잎사귀를 돌돌 말아 만든 은신처에서 고개를 내밀고 ‘엿보는’ 듯한 녀석의 눈 모양 점은 벌레를 찾아 잎사귀를 뒤적거리는 작은 새들을 내쫓는다. 가짜 눈은 자연에서 널리 쓰이는 수법이지만 늘 성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가짜 눈 기법을 쓰다 잡히는 녀석들은 고약한 냄새나 독액 분비 같은 이차 방어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톱코멸구는 좀 더 요란한 방법을 쓴다. 말벌처럼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서 포식자가 금방 뱉어내게 만든다.
신분을 위조하라
노린재의 일종인 히야리메누스 님프(Hyalymenus nymph)(거꾸로 뒤집힌 녀석)가 빤히 보이는 곳에 숨어 있다. 녀석은 수액을 빨아먹는 개미처럼 보이고 행동하도록 진화했다. 개미는 녀석들보다 훨씬 더 사나워서 침을 쏘기도 하고 독을 뿜거나 가시로 찌르기도 하며 떼를 지어 한꺼번에 공격해온다. 개미에게 당한 적이 있는 포식자는 개미를 흉내 내는 사기꾼 또한 그냥 지나칠 것이다. 하지만 이 책략에는 위험이 도사린다. 노린재는 개미를 공격할 의사가 없는데도 자기 무리 속에 숨어 있는 녀석을 발견하는 순간 바로 공격을 개시할 것이다. Hyalymenus sp. nymph (개미 흉내 내는 것); Ectatomma sp. (개미들)
적을 혼동시켜라
열대지방의 자벌레나방 애벌레는 위장색과 잎맥 같은 생김새 덕에 몸을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녀석의 섭식 행동이야말로 교묘한 생존 전략을 보여준다. 녀석은 테두리를 따라 잎사귀를 우적우적 씹어먹고서 좌우 균형을 맞춘다. “한쪽만 파먹고 놔두면 벌레 먹은 표시가 나서 자신의 위치가 쉽게 포식자에게 노출되니까요.” 유타대학교의 생물학자 필리스 콜리는 말한다. 이처럼 보잘 것 없는 조그만 자벌레가 한 작업치고는 “꽤나 정교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Geometridae
적을 혼동시켜라
애벌레들은 대부분 교묘하게 위장하거나 가짜 부위를 과시하며 적을 계속 헷갈리게 만든다. 누에나방 애벌레는 꽁무니에 가짜 더듬이가 달려 있는 가짜 머리를 달고 있어 포식자들이 녀석의 꽁무니를 깨물도록 만든다. 첫 번째 작전이 실패하면, 차선책은 진짜 머리에 붙어 있는 또 다른 가시들로 공격자를 찔러 뱉어내게 만든다.
Periphoba arcaei
눈에 띄어라
선충류 기생충 중 한 종의 목표는 도망치는 게 아니라 잡아먹히는 것이다. 녀석은 개미에 기생하면서, 숙주의 꽁무니를 선명한 빨간색으로 물들여 잘 익은 열매처럼 보이게 한다. “새를 속여 개미를 먹게 하는 동시에 선충 알 한 움큼을 삼키게 하는 거죠.” 생태학자 스티브 야노비아크는 말한다. 새는 배설물을 통해 알을 퍼뜨리고, 개미가 배설물 속의 알을 먹으면서 이런 생태의 순환이 반복된다.
Cephalotes atratus
눈에 띄어라
개구리 중에서 색깔이 눈에 띄게 화려한 녀석은 대개 독이 있다. 하지만 파나마 연안의 보카스 델 토로 군도에 사는 한 개구리 종은 한 색깔만 고집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현상이라고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교의 마틴 만은 말한다. “개구리들이 서로 다 비슷해 보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래야 특정 색깔을 보면 포식자가 독이 있다는 걸 쉽게 알아차리고 포기할 테니까요.” 하지만 짝짓기라는 또 다른 자연선택의 원리도 작용한다. 서로 다른 섬에 사는 암컷들은 선호하는 수컷의 색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수컷들은 똑같은 색이 아니라 다양한 색을 띠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화려한 색으로 독이 있음을 알리는 것은 효과적인 방어술이다. 만에 따르면 대부분의 포식자는 색깔이 화려한 개구리는 피하려고 하는 편이다. 이는 위험한 세상에서 사전에 위험을 방지하려는 행동이다.
Oophaga pumilio
수척하고 도깨비처럼 생긴 얼굴로 유명한 데이노피스 거미가 파나마의 마른 야자수 잎사귀위에서 길다랗고, 비쩍 마른 몸을 위장색으로 숨기고 있다.
낙엽사마귀인 데로프래티스 트리고노데라(Deroplatys trigonodera)는, 열대 숲의 바닥에서 썩어가는 잎사귀의 모습으로 진화해서, 친척인 보통의 녹색 사마귀와는 다른 생태적 지위를 차지했다. 야간 사냥에 어울리는 커다란 겹눈이 달려 있는 이 숨기 좋아하는 곤충은 앉아서 기다리는 데 도가 튼 포식자이다. 녀석은 안 보이게 숨어있다가 무방비의 곤충을 가시 돋친 앞 다리로 잽싸게 낚아채 먹는다.
남동 아시아의 낙엽을 흉내 내는 사마귀의 일종인, 데로플래티스 앙구스타타트(Deroplatys angustatat)는 위장술이 실패하면, 다리와 앞날개 아래쪽의 밝은 색깔과 눈처럼 보이는 점을 번득여 적을 놀라게 한다.
눈과 더듬이가 나뭇잎벌레(Phyllium giganteum)의 머리 부분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초기 식물학자들은 나뭇잎벌레가 실제로 녀석들이 흉내 내는 잎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1759년 영국 왕립학회 회원인 리차드 브래들리는 다음과 같이 썼다. “그 곤충은 나무 수액으로 영양을 공급받는다 … 나뭇잎이 떨어질 때면, 녀석은 나뭇잎을 몸에서 날개처럼 자라나게 해서, 나무에서 내려와 기어 다닌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에드워드 베이커는 이런 설명이 “이제 와서 보면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아직도 이들 생물종 대다수의 생태에 대해 아는 것이 매우 적은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에서 발견한 대벌레의 일종인 론초드 제주누스(Lonchode jejunus)를 자세히 관찰하려면, 두 번은, 아니 세 번은 봐야 할 것이다. |
첫댓글 자연공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