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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30일 성령강림 후 첫 번째
성경 ; 잠8:1-4,22-31, 롬5:1-6, 요16:12-16
제목 ; 우리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을 채워주셨다
1.인간의 소외된 상황과 필요성 (인간의 문제점) - 진리에서 벗어나 지혜
롭지 못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①(원인)진리의 말씀과 하늘의 지혜를 멀리하고 있습니다.
ㄱ.지혜와 진리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ㄴ.하나님의 관계가 좋지 못합니다.
ㄷ.악령이 우리 마음에 미움과 원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②(과정)진리에서 벗어나 불의하게 살고 있습니다.
ㄱ.주님을 높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높이는 일에만 힘쓰고 있습니다.
ㄴ.진리대로 행하지 않고 불의한 일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ㄷ.하나님의 일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훼방하고 있습니다.
③(결과)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ㄱ.성령을 떠나 살기 때문에 그 마음에는 기쁨과 평화가 없습니다.
ㄴ.작은 역경에도 쉽게 실망하거나 좌절하고 있습니다.
2.하나님의 본성과 활동 (하나님의 치료) -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
니다.
①(본성)하나님은 진리가 되십니다.
ㄱ.진리의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ㄴ.사람이 사는 이 세상에 지혜의 말씀으로 계십니다.
②(섭리)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ㄱ.성령으로 오셔서 우리를 바른 길(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ㄴ.지혜를 가르쳐주시고, 우리의 일을 도와주십니다.
③(결과)우리를 위하여 모든 일을 좋은 결과로 나타나게 하십니다.
ㄱ.주님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하십니다.
ㄴ.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하십니다.
3.인간의 응답 (건강한 삶) -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①(준비)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
다.
ㄱ.주님의 말씀과 지혜의 가르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ㄴ.진리의 성령으로 오시는 주님을 마음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②(실천)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을 받아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ㄱ.불의를 멀리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ㄴ.오직 주님만을 높이며 그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ㄷ.하나님이 좋은 결과를 갖다 주실 것을 믿으므로 시련이 닥쳐도 실망
하지 않습니다.
③(결과)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ㄱ.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서 기뻐합니다.
ㄴ.주님의 은혜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ㄷ.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질 것을 확실히 믿고 기쁜 마음으
로 기다립니다.
4.파견사
목사 : 지혜와 진리의 성령으로 오셔서 참 평화와 기쁨을 베풀어주시는 하
나님을 믿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시는 모든 일들은, 그
결과가 다 선하다는 것을 믿으시고,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실망하거
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는,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
여 오시는 성령을 반가이 맞아들이고, 그 인도하심과 도우심에 따라 성
실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회중 : 아멘.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만 산다면 아무 염려와 걱정을 할 필
요가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성령의 지시를 무시하
고 자꾸만 우리 맘대로만 살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후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보내주시는 성령을 우리 마음에 정중하게 모
셔 들이고, 그분의 인도하심과 지도를 받아 살아감으로써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겠습니다.
5.예배에의 부름
여호와, 우리의 주님이시여!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장엄한
지요? 주님께서 하늘 위에 주님의 찬란한 영광을 두셨습니다. 사람이 무엇
이기에 주님께서는 사람을 이처럼 돌보아주시는지요? 주님께서는 사람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시고, 그 머리에 영광과 존엄의 왕관을 씌우셨습
니다. 주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들을 사
람에게 맡기셨습니다.
오, 할렐루야!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이 시간, 우
리가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하고자 하오니,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 더욱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써 참으로 아름답고
귀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6.공동의 기도
오, 우리 하나님!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진
리의 길로 인도하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도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있
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서 진리를 알게 되었
고, 그 진리 안에서 바른 인생길을 갈 수 있는 지혜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불의한 일들을 적극 물리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님 뜻대로 살려고 할 때에 하
나님께서 좋은 결과를 갖다 주실 줄 믿습니다. 바라옵건대, 언제나 우리 손
을 꼭 잡아주시고 생명의 길로만 인도하소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과 평안
을 주시고 인류의 참 소망과 기쁨이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시편교독
목사 : 여호와, 우리의 주님이시여!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장엄
한지요? 주님께서 하늘 위에 주님의 찬란한 영광을 두셨습니다.
회중 : 주님께서는 어린이들과 젖 먹는 아기들이 주님께 찬양을 올리도록
하셨습니다.
목사 : 주님께 대항하는 원수들과 적들과 보복하려는 자들을 침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회중 : 주님의 손가락으로 지으신 하늘을 생각해 봅니다. 주께서 하늘에 자
리를 정해 준 달과 별들을 생각해 봅니다.
목사 :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는 사람을 돌보아 주시는지요? 주님께
서는 사람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시고, 그 머리에 영광과 존엄의
왕관을 씌우셨습니다.
회중 : 주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들을
사람에게 맡기셨습니다.
다같이 : 우리 주여!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장엄한지요?
8.예화
1)'칼 바르트' 의 기독교 진리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가 시카고 대학
에서 강연을 했을 때 학생 하나가 따라 나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이 많은 책을 쓰시고 많은 연구를 한 평생 하시고 또 가르쳤는데,
당신이 그 동안 연구하고 배운 심오한 진리가 무엇입니까?”
‘칼 바르트’는 대답 대신에, 그가 어렸을 때에 부르던 찬송을 불렀습니
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한 말일세.’
칼 바르트는 노래하기를 그치고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한 말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생각한 진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진리의 몸짓은 작아도 그 위력은 역사를 새롭게 한다.
어느 날, 아들의 방을 무심코 들여다보던 어머니가 깜짝 놀랐다. 이유
는 저질스런 그림들과 사진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 호통을 치거나 그림들의 출처를 묻지 않았다. 그 대
신, 다음날 벽 한복판에 독일이 낳은 유명한 화가 호프만의 ‘빌라도 궁전의
그리스도’라는 성화를 조용히 걸어두었다.
하룻밤이 지난 후, 어머니는 아들 방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빽빽하게 걸려있던 저질스런 그
림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오직 호프만의 성화만이 벽 한복판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성화가 악화를 구축했던 것이다.
3)사막 여행의 교훈
동양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밤에 말을 타고 사막을 여행하고 있던 세 사람이 이상한 나그네 한 사
람을 만났습니다. 그 나그네는 그들에게 얼마 가지 않아 마른 시내 하나를
건너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당신들이 그곳에 도착하거든
말에서 내려 마른시내에서 자갈들을 주워 자루와 호주머니에 채우도록 하
시오. 그러고 나서 계속 여행하다가 해가 뜰 때, 당신들이 주운 자갈들을
살펴보시오. 당신들은 기뻐하며 한편으로는 애석해 할 것이오.”라고 말했습
니다.
그 사람의 말처럼, 세 사람은 마른 시내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호기
심으로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많은 자갈들 중에 몇 개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다음 날 해가 뜰 무렵, 그들은 주워 온 자갈들을 살펴보았습니
다.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자갈들은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및 기타 여러 가지 보석들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막에서 만났던 나그네의 말을 떠올린 그
들은 그제야 그 나그네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주워온 자갈들이 보석
으로 변해있어 기뻤습니다.
그러나 더 많이 주워오지 않은 것이 애석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당신이 성경에서 캐낸 진리들이
영적 보석들로 바뀌어 당신의 금고를 채워 갈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더욱 부요해질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 때는 쉽게 영적 정체기를 벗어나 다
시 행진을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4)진리의 자유
어린 시절 시골에서 철없이 놀던 때가 잊히지 않는다. 겨울에 덫을 놓
아 새를 잡았다. 우리는 새 다리에 연실을 묶어 날려 보냈다. 그 새는 자유
를 얻은 줄 알고 있는 힘을 다해 하늘 높이 날아갔다. 새는 죽을힘을 다해
날갯짓을 하며 창공을 날아올랐다.
그러나 새는, 연실이 다 풀리는 순간, 마치 돌멩이가 떨어지듯 곤두박
질하며 떨어졌다. 땅 바닥에 나뒹구는 새를 또 날려 보내지만, 연실에 매여
있는 한 새에게는 자유란 없었다. 무조건 날아오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줄을 끊어야 한다는 것을 그 새는 몰랐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청산해야 할 것, 끊어야 될 것, 버려야 될 죄
의 줄이 있다. 이런 것을 끊어 버리지 않고는 연실에 묶인 새처럼 신앙에
자유가 없다. 자신과 하나님만이 아는 죄의 사슬에 매여 있다면 성령께 도
우심을 구하며 빨리 끊어 버리자. 성령은 감동과 깨달음을 주신다. 우리가
그것을 실천하려고 할 때 성령이 도와주신다. 믿음의 결단을 하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겨자씨, 양병희 -
5)새 사람이 된 여종
부천시 시청 옆 혜린장로교회에서 섬기는 부족한 나는 주님의 여종이
며 슬하에는 딸 하나(13세)가 있다.
정직과 근면을 생활지침으로 삼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 왔으며 종교
적으로는 고상하고 조용한 가톨릭에 몸담아 오랫동안 가르침과 종교의식의
절차를 드렸다.
10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내 생활은 바뀌어서 안에서 밖으로
험하고 거친 세파를 타는 삶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친척으로
부터 복음을 듣고 받아들여 주님을 영접하고 십자가를 따른 지 수년이 된
다.
첫 번째 변한 것은 소중하다고 느꼈던(부귀, 영화, 명예욕) 것이 배설
물과 같았고, 주님과 교제하는 데 거침돌이 되어, 그때부터 모두 버리는 작
업으로 들어갔다.
바로 되기를 기도하며 금식기도, 철야기도, 새벽기도로 밤을 지새우며
말씀을 상고하면서 하늘에 속한 것은 모두 찾기에 열심당원이었다.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성령님의 인도로 주님께 붙들리어, 그리고 부족한
대로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게 되었다.
9.설교예문
♣성령강림절 후 첫 번째 주일
성경 ; 잠8:1-4,22-31, 롬5:1-6, 요16:12-16
제목 ; 시련은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시로 나가서 아주 큰돈을 번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친구 사
이로서 처음에 약속하기를 ‘돈을 많이 벌면 반드시 고향에 다시 돌아와서
함께 살자’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돈을 벌만큼 벌었기 때문
에, 두 사람이 옛날에 약속한 대로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오던 중에 마을 어귀에서 징을 들고 있는 한 노인
을 만났습니다. 그 노인은 말하기를 “나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징을 쳐주는
사람이네. 당신들의 남은 생애는 이제 사흘뿐이오. 그러므로 사흘째 되는
날에 해가 지면, 내가 징을 치며 나타날 것이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당
신들은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오.”하고 들려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아주 기분이 나쁘고 속이 상했습니다.
‘지금까지 죽도록 일해서 돈을 모았는데, 이제는 그 돈을 제대로 쓰지도 못
하고 사흘 후에는 죽어야 한다니, 정말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다.’하고 장탄
식을 하면서 각자 자기 고향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중의 한 사람은 그동안 번 돈을 세어가면서 ‘이제 곧 죽을 텐데, 이
많은 돈이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생각하고, 그 돈을 다 불태워버렸습니
다. 그리고 그는 아무 것도 먹지도 않고 잠도 안 잤습니다. 그냥 가만히 누
워서 죽을 날만 기다렸습니다. 결국 사흘째 되는 날, 그 노인이 찾아왔습니
다. 그리고 그는 그 노인이 두드리는 징소리와 함께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죽은 그 사람하고는 전혀 달랐습니다. ‘어렸을
때에 혼자 된 나를 고향 어른들이 얼마나 정성껏 보살펴주었던가. 이제 지
금까지 내가 번 돈을 그분들을 위해서 보람 있게 써야겠다.’하고 생각했습
니다. 그래서 그는 마을에 다리도 놓고, 아이들을 위한 학교도 세우기로 했
습니다. 너무나 바쁘게 일하다 보니, 징을 들고 있던 그 노인의 말을 까맣
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마을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잔치를 벌였습니다. 풍악이 울리고, 사람들은 즐겁게 춤을 추며 노래했습니
다. 그때, 그 노인이 나타나서 징을 쳤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징소리
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거듭 징을 쳤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 노인은 징을 치다가 말고 그냥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은 그동안 죽도록 고생한 보람도 없이 허무하게 인생
을 마쳐야만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그동안 번 돈을 가지고 보람이
있는 일에 투자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좀 더 오래 살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좀 더 오래 산다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만 중요한
것은, 그가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하지 않고, 그동안 애써서 번 돈을 가지고
나머지 주어진 인생을 보람 있게 살 수 있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가 앞으로 사흘을 더 살게 되든지, 아니면 십 년 또는 백 년
을 더 살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결국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다음에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물론,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도 있겠지
만, 자식들이 그 재산을 끝까지 지켜 내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그것은 알 수도 없
는 일이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기간 동안에,
우리는 사람답게 살기 위한 일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
시 말해서, 물질에 얽매여 살 것이 아니라, 오늘 현재 우리에게 있는 것들
을 가지고서 보람이 있고 의미가 있는 일에 투자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을 보면, 주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라고 하셨습니
다.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다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만, 진리란
결국 ‘삶의 원리’를 말합니다. 즉,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지혜의 말씀
을 뜻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진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리
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성령은 오셔서, 거짓되고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에게, 저와 같은 사람의 입술을 빌려서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잘 듣고,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미래에 있을 일도 알려주신다고 했
습니다(요16:13). 그런고로, 우리는 성령께서 알려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목적과
방법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아직도 갈팡질팡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가는 길과 목적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의 말씀을 좀 더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박은경이라는 사람이 ‘좋은생각’ 6월호에 ‘릴라의 행복, 린디의 불행’이
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읽어봤습니다. ‘박은경’씨가 히말라야를 여행하던
중 ‘요가 아쉬람’라는 곳에서 지낼 때에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박은경 씨는 28세가 된 ‘릴라’라고 하는 여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데,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다 낡아서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그녀는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늙어보였으나, 눈빛만을 항상 햇살보다 더 빛났습니
다. 그리고 그녀는 웃음이 많아서, 누가 손짓만 해도 까르르 하고 웃었습니
다.
그곳에 있는 동안, 박은경 씨는 뉴욕에서 온 ‘린다’라고 하는 금발 아
가씨와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린다’는 하루도 빠짐없이, 식
사가 형편이 없느니, 잠자리와 화장실이 불편 하느니, 그리고 인터넷이 느
려서 이메일조차 제대로 보낼 수 없다고 하면서,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더라
는 것입니다. 뿐만 아닐, 그녀는 항상 몸도 아프고 마음도 괴롭다고 했습니
다.
한편, 원주민 ‘릴라’의 부엌에는 그날에 먹을 음식을 만들 밀가루 한
사발과 쭈글쭈글한 채소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손님을 위해 밀가
루 반죽을 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의 아이들은
엄마가 부르는 콧노래에 맞추어서 즐겁게 춤을 추었습니다.
글쓴이는, 이처럼 ‘릴라’의 집에서 즐겁게 지내다가 잠을 자기 위해 숙
소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뉴욕에서 온 그 금발 아가씨의 불평
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금발아가씨가 그곳에 온 이유는, 대도시
에서 바쁘게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없어서 머리도 식힐 겸 왔다
는 것입니다.
박은경 씨는 이렇게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금발아가씨 린디가 인도가
아닌 천국에 가게 되더라도,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찾는 평화
는 결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라고.
사도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써 하나
님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롬5:1)’고 하면서, 그 믿음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참다운 평화를 누리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른 그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해야 하는 것입니
다. 물론, 다른 것도 기본적으로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우리 마음
속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심이 굳건하지 못하거나 희박할 경우, 다른
것이 아무리 많고 여유가 있어도 참평화는 누릴 수가 없습니다.
‘린다’를 보십시오. 그가 외국여행을 다닐 정도라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불평과 불
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몸도 아프고 마음도 괴롭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릴라’는 그 생활여건이 아주 열악한데도 불구하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
리가 진정으로 평화의 삶을 살아가고자 원한다면,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
스도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1.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 도우심을 받아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진리는 ‘사람답게 사는 원칙’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곧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
시는지, 그 참뜻을 바로 알아서, 그 뜻을 이루어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
야만,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참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실 모든 계획이 실
제로 이루어져 나가는 것을, 우리는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기다린다(롬
5:2)’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문제와 곤경에 처하게 되더
라도, 그것이 가져다줄 좋은 결과를 생각하면서 기뻐할 수가 있다(3)’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신실하게 믿는 사람이라면, 어떤 어려운 문제를
겪게 되더라도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하면서 좋은 날을 기
다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문제가 주님의 은혜와 능력 안에서 좋은 쪽으
로 해결되리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히말라야의 ‘릴라’는 천
성적으로 낙천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즐겁게 사는 것
이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천성이야 어떠하든지 여호와를 믿는 믿음 안
에서 기뻐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해인 수녀의 ‘나의 죄로 인하여(시편 51편)’라고 시(詩)가 있습니다.
아버지여, 죄가 나를 이김으로
내 마음이 아파 깨어지나이다.
나의 죄로 인하여 슬퍼할 때에
내 굳은 마음 부수어지나이다.
내 마음을 깨끗하게 고치소서.
고집스럽게 교만한 나의 의지
낮아짐의 자리에 서도록 도우소서.
상한 마음을 멸시치 아니 하시니,
내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나이다.
잃어버린 구원의 기쁨 회복시키시니,
구원의 기쁨이 죄악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의 초석이 되나이다.
나의 입술이 주의 은총으로
나를 죄에서 건지신 주의 의를
노래할 때에 시온의 성벽은
더욱 굳게 세워지나이다.
이 시(詩)를 살펴보면, 이해인 수녀가 슬퍼했던 것은 ‘생활고(生活苦)’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지은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가 비록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버리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
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의 슬픔과 아픔은 기쁨으로 변하게 되었고, 그 구원
의 기쁨으로 더 큰 죄악을 이겨낼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해인 수녀는 시편 51편을 배경으로 시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네 보통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한 번 죄를
짓게 되면, 그 죄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더 깊은 죄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죄를
지었을 때,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 깊은 죄에
빠지지 않고, 그 죄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가 죄에 빠지게 되던지, 아니면 어떤 시련에 부딪히게 될
때에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죄와 시련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 좋으신 분임을, 우리는 항상 기억하고 살아
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좌절하거나 슬퍼하기보다는, 곧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실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모든 일이 유익하
다는 것을 알게 된다(롬5:5)’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런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사는 게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데, 그다지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바탕으로 일하십니다. 우리가 믿고 바라는 대로, 하나님은 이뤄주시는 것입
니다.
2.진리의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처음에 들려드린 예화에서, 한 사람은 노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
임으로써 결국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
람은, 노인이 들려주는 말을 친구와 함께 들었지만, 결코 낙심하지 않고 그
남은 기회를 아주 멋있게 잘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는 그 이전보
다 훨씬 더 멋있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말 저런 말을 많이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래서 때로는 안 좋은 말을 듣고 낙심하거나 슬퍼하기도 하고, 괴로워 몸부
림칠 때도 있습니다. 비단, 그 누가 무슨 말을 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가 생각해낸 말 때문에 괴로워하고 슬퍼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겠는가?’하
고 생각한다든지, ‘나는 왜 이토록 고생만 해야 하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
아야 하나?’하고, 스스로 자신을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자기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
부터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
에 예수를 믿게 하셨을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나에게 큰 복을 베푸시려고
이런 시련도 겪게 하시는 거겠지! 그때까지 잘 참고 이겨내도록 하자!’ 이
런 믿음과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사탄이 결코 접근하지 못합니
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 선생은 말하기를 ‘어떤 어려움이 닥
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서 꾸준히 기다리면, 모든 일이 다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롬5:5)’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얼
마나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고, 성
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가슴속에 채워주시는 까닭에, 우리는 이 따뜻
한 사랑을 어디서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참으로 놀라운 은총과 크신 복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굳건히 가지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에서
의 삶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이 땅 위에 수많은 사람
들이 왔다가 갔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살아간 사람들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물론, 우리 인간은 너무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
르게 살고 싶지만, 그게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낙심도 하고 좌절도
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옛날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여호수
아에게 들려주시고, 훗날 이사야 선지자에게도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니, 겁을 내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 강하게 하고, 내가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서, 네가 승
리하도록 하겠다(사41:10)’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주 예수를 믿는 믿음과 여호와를 향한 소망을
가지고 세상을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 멀지 않은 훗날에 영
원한 천국에 다 들어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령강림 후 첫 번째
성경 ; 잠8:1-4,22-31, 롬5:1-6, 요16:12-16
제목 ; 우리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을 채워주셨다
아주 가난하게 사는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자녀가 여섯이
나 있어서, 그 여섯 남매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문제로 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남편과 아주 가깝게 지내는 부자 친구가 ‘자녀들
중에서 하나를 나에게 양자로 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들이 모두 잠자리에 든 다음, 두 내외는 ‘어떤 아이를
양자로 보낼까?’하는 문제로 의논했습니다. 첫째 아이인 아들을 생각해보았
습니다. 맏아들을 남 주기에는 너무나 귀하고 아까웠습니다. 둘째 아이는
딸이었습니다. 딸로서는 첫째라서 또한 보낼 수 없었습니다. 셋째 아이도
딸인데, 너무나 몸이 약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넷째 아이는 장모
님과 너무 닮아서 보낼 수 없다고, 아내가 거절했습니다. 다섯째는 아버님
과 너무 닮아서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린 아이
밖에 없었습니다. 그 순간, 아내는 “우리아기는 정말 안 돼요!”하면서 통곡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여섯 자녀들 중에서 어느 한 자식도 기꺼이 다른 집의 양자로
내어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비록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여섯 자녀를 다
키우기가 참으로 버거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내외는 다른 집의 양자
로 보낼만한 자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그들 내외에게는 여섯
자녀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자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자녀를 하나만 둔 경우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 부모에게는 정말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자녀일 것입니다. 하건만, 하나님
께서는, 하나밖에 없는 그 외아들을, 인류를 위한 희생제물로 삼으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외아들보다 우리 인류를 더 사랑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
람을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다른 모든 것들도 우
리에게 아낌없이 주시지 않겠느냐?(롬8:32)’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 우리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놀라운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
야 합니다.
믿음이란,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
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믿음을 갖게 될 때, 하나님과 우리는 좋은 관계
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좋은 사람(의인)’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십니다.
요컨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믿고 받아들여야 합
니다. 그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
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진리도 믿고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던 불신의 벽은
무너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참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사람들이 조약이나 협정을 맺어서 누리
게 되는 평화와는, 결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람이 만든 평화는 작은 통통배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아주 큰 군함에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통통배는 조금만
바람이 세게 불어도 금방 뒤집어질 것처럼 위태롭습니다. 그러니, 그런 배
를 타고서 어디로 가야할 경우, 그 배에 탄 사람들은 정말 불안하기 그지없
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큰 군함은 웬만한 거센 비바람에도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배를 타고 있으면,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목적지를
향하여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리 큰 군함이라도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편 89편을 쓴 시인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나를 건져주시고 든든히 지켜
주시는 바위이시다.’라고 노래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고한 믿음만 있다면, 우리에게 어떤 시련과 역경이 있을지
라도 항상 고요하고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아주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참으로 요상하기
이를 데 없는 북한은, 번번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금방이라도 전쟁
을 일으킬 것처럼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주 고
약한 이웃나라인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 주장을 하면서, 자
기네들이 일으켰던 침략전쟁까지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럴 때에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참으로 불안하
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나라의 경제는 날
이 갈수록 더욱 악화되고 있고, 정치인들은 온갖 추태를 부리면서 사분오열
나뉘어 밤낮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그야말로 그 정신을 의심해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온전한 정신과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편 89편 시
인이 말했듯이,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주시는, 바위와 같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우리는 어떤 어려운 문제와 곤
경에 처해도 기뻐할 수 있다(롬5:3)’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고
난이 가져다 줄 좋은 결과를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
리가 지금 겪고 있는 시련과 역경을 잘 참고 이겨내면, 위기가 오히려 축복
을 가져오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 독생자까지도 화목제물 삼으신 하나님이신데,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계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 능력을 굳게 믿고,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을 잘 이겨내고자 힘쓰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오후 예배 시간에 자주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
다.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 쓰리라. 천지는
변해도 나의 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으리. 두려워 말라, 강하고 담대 하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실망치 말라! 네 소원 이루
는 날 속히 오리니, 내게 영광 돌리리. 영광의 그날이 속히 오리니, 내게
찬양하리라!’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믿음으
로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자라는 인정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
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참다운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롬5:1)’고 했습
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시고, 우리를 엄청나게 많이 사랑하
시는 분이라는 것을 확고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좋
아하시는 일만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리라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쪽으로 갈 경우, 그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습
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으면서 그 뜻대로 살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를 위한 하나
님의 모든 계획이 실제로 이루어져 가는 것을, 확신과 기쁨을 갖고 기다린
다(롬5:2)’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이런 믿음을 갖고 모든 시련을 이
겨내야 합니다.
목회자들 중에서 ‘칼 바르트’라고 하는 신학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아주 유명한 신학자입니다.
그가 시카고 대학에서 강연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학생 하나가 따라와
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아주 많은 책을 쓰시고, 평생토록 많은 연구를 하
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당신이 그동안 연구하고 배운 심오한 진리가 과
연 무엇입니까?”
이때, ‘칼 바르트’는 대답 대신에, 그가 어렸을 때부터 불러왔던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죄를 다 씻어, 하늘 문을 여시고
들어가게 하시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
은 나를 보시네. 세상사는 동안에 나와 함께 하시고, 세상 떠나 가는 날 천
국가게 하소서.
(후렴)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아멘.’
‘칼 바르트’는 이렇게 노래하더니,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한 말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생각한 진리일세.’라고, 그 청년에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얼마나 확실히 믿느냐는 것과, 그리고 그
사랑과 능력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믿음이 달라지는 것
입니다. 물론, 마음과 생각으로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여호와 하
나님의 존재와 그 사랑을 믿는다면,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
니다. 그리고 실제 생활로써 하나님중심으로 산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모습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보여줄 때, 진리의 성령의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
데로 인도하실 것이다(요16:13)”라고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유익하고 복이 되는 길인지 깨닫게
해주고, 그 길을 온전히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면, 하나님을 향한 소망
이 흔들리지 않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실망
치 않고, 모든 일이 유익함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요컨대,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성령은 우리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을 채워주셨다(롬5:5)’고, 사도 바울 선생이 말했습니
다. 그리고 ‘우리는 이 따뜻한 사랑을 어디서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그 능력을 꼭 반드시
경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어정쩡한 믿음생
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그야말로 확신이 있는 믿음생활을 하시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중국의 한 농장에서 어미 곰과 새끼 곰을 잡아다가 분리하여
철장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쇠사슬에 묶여 있는 새끼 곰의 쓸개에 호수를
꽂아 쓸개즙을 뽑아냈습니다. 쓸개즙을 뽑아내자 새끼 곰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절규를 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어미 곰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죽을힘을
다해서 자신이 갇혀 있던 철장 우리를 부수었습니다. 그리고는 새끼 곰에게
로 달려갔습니다. 어미 곰은 새끼 곰의 사슬을 끊고자 온 힘을 다했으나,
사슬이 끊어지지 않자, 새끼 곰을 끌어안아 질식사 시키고 말았습니다. 어
미 곰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스스로 벽으로 돌진해서 머리
를 부딪쳐 죽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곰의 모습
을 통하여,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
렸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그 아
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주
셨습니다.
물론,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아니 믿고는 각 사람의 자유입니
다. 그리고 그 선택 여하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영생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끝끝내 그
사랑을 거부함으로써 파멸의 길을 갈 것인지, 각 사람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고 싶어도, 그 믿음의 길을 방
해하는 여러 가지 악조건들이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생활을 할 수 없도록
훼방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 자신이 겸손하고 온유하면, 그런 악조
건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습니
다.
요컨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장 두꺼운
벽은, 바로 그 자신의 교만과 태만입니다. 다시 쉽게 말한다면, 믿음생활을
온전히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심으로 부탁하건대, 하나님을 향한 소망과 믿
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서 천국을 향한 발걸음을, 세
상의 그 무엇보다 먼저 하되,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지금보다 더욱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믿음생활을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