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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화 시인, 시집 <온•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작가마을) 발간
◉출판사 서평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 이도화 시인이 투병 중 일기처럼 써온 신작시들을 모아 시집 『온•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를 사이펀현대시인선 24번으로 출간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2023년 ‘사이펀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집중적으로 창작한 시편들이다. 이도화 시인은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이등항해사로 일하다 미국 메사추세츠대에서 경영학 석사, 퍼듀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아 포스코경영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을 하였다. 이후 인제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했다. 파킨슨 진단을 받으면서 대학에서 명퇴를 한 뒤 학창시절 이루지 못한 문학도의 길을 걸어 2017년 《부산시인》과 《부산시조》로 활동하면서 『출항』이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하지만 2023년 계간 《사이펀》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오면서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열며 이번 시집 『온•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를 발간한 것. 이도화 시인의 이번 시집은 제목이 암시하듯 시인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파킨슨병으로 공간에 제약을 받는 시인의 일상과 공간제약에 따른 추억과 상상력의 확대가 낳은 시의 이미지가 아련하면서도 화자의 당당한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깊은 사유가 내재된 서사적 기교가 자유롭고 대상에 대한 객관적 관조의 시선이 날카롭게 빛난다. 특히 파킨슨 시편들이 두드러진다. 그만큼 질곡의 언어가 시인을 감싸고 있다는 반증이리라. 이러한 이도화 시인의 시를 본 엄원태 시인은 “생애의 곡절과 파란의 무늬를 담담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생활 시’의 전범같은 평이한 언어와 가볍지만은 않은 깊이를 담보하는 사유의 절묘한 어우러짐이 인상 깊다.”고 평하고 있다.
또 김정수 시인은 해설에서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자유 의지로 선택한 결과가 어떻게 물결을 일으키고, 그 물결이 일으킨 삶의 무늬가 얼마나 선명한지를 보여준다.”며 “시인은 삶의 방향을 바꿀 중요한 선택 이후 평범했던 날들이 어찌 새롭고 특별한 날들로 옷을 갈아입는지, 그리하여 경험의 세계와 결합한 여생이 어떤 여정을 거쳐 운행하는지를 과장되지 않은 진솔한 언어로 들려준다.”고 설파하고 있다.
이도화 시인은 현재 경남 김해 상동에서 시 창작에만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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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시평
어느덧 고희(古稀)에 이른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그간 생애의 곡절과 파란의 무늬를 담담하면서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생활 시’의 전범 같은 평이한 언어와 가볍지만은 않은 깊이를 담보하는 사유의 절묘한 어우러짐이 인상 깊다. 그 범박한 듯 고상한 언어의 율격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거나 경험이 쌓인다고 해서 저절로 생겨난 것은 아닐 것이다.
다채로우면서도 따스한 관조의 시선이 잘 어우러진 시적 정경의 면모는, 시인의 파킨슨 발병과 명예퇴직 이후의 전원생활과 또 이어진 서울 아파트의 육아(시인은 이걸 군 복무에 빗대 「만기 제대」로 표현했다) 생활 등을 두루 거쳐, 청년 고독사의 현장과 정치 양극화와 팬데믹의 세태에 이르기까지 광폭의 스펙트럼을 시인 특유의 ‘강의목눌(剛毅木訥)’ 어법으로 구수하게 익은 향기를 전해 준다. 시인의 이런 모습은 시인이 평소 좋아하고 존경하던 고 문인수 시인의 풍모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번 시집의 백미는 시인이 온몸으로 겪어내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파킨슨’ 시편들이다. ‘파킨슨’은 그이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병(病)’의 단계를 넘어선 그 무엇이었다. 그건 시인에게 삶의 비의와 지혜를 알려준 스승이자 도반이었고, 지금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동반자의 모습으로 그이의 삶을 견인하고 있다. 이번 시집의 「그림자」 같은 절창과 「짐을 들고」 「걸어가자, 바위야」 등의 가편들은 그리하여 더 유현하고 그윽한 빛을 발한다,
시업은 이제 그이에게 ‘지문이 다 닳도록(「부전자전」) 오래 매만져온 자연과 이웃, 사물들과 한 몸, 한 궤(軌)를 이루었다.
-엄원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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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화의 시집 『온•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는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자유의지로 선택한 결과가 어떻게 물결을 일으키고, 그 물결이 일으킨 삶의 무늬가 얼마나 선명한지를 보여준다. 시인은 삶의 방향을 바꿀 중요한 선택 이후 평범했던 날들이 어찌 새롭고 특별한 날들로 옷을 갈아입는지, 그리하여 경험의 세계와 결합한 여생이 어떤 여정을 거쳐 운행하는지를 과장되지 않은 진솔한 언어로 들려준다. 시인은 어느날 무릎 아래가 이상한 걸 감지한 후, 파킨슨병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첫 번째 선택은 치유를 위한 귀촌에 이은 명예퇴직이다. 퇴직 후 “아들네 서울 아파트”(이하 「공간의 문제」)에 같이 살면서 “손주 등하교”를 돕다가 2년여 만에 두 번째 선택인 ’재귀촌‘을 실행한다. 세 번째 선택은 “낮의 노동에 밤의 시” 쓰기다. 주경야시晝耕夜詩는 몸과 마음에 새살이 돋고 근력을 붙게 하여 파킨슨병의 진전을 늦추는 결과로 이어진다.
단연하게도, 이번 시집은 세 번의 탁월한 선택이 만들어낸 곡진한 결과물이다. 선택의 중심에 시인이 존재하지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동인動因은 오롯이 아내의 덕이다. 선택하는 순간마다 시인의 곁에 아내가 함께했다. 동행은 단지 조언과 배려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닌, 같은 공간에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다. 혼자라면 쉽게 결정할 수 없었던 선택지와 삶의 위기와 불안을 함께함으로써 몸과 마음에 새살이 돋고 근력이 붙게 하는 결과를 끌어낸다. 일상에서의 고통과 불편의 감수는 삶의 이면에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한편, 한층 깊어진 철학적 사유와 불교적 세계에 귀의하도록 인도한다. 어둠을 파고드는 뿌리의 힘과 창공의 기쁨에 가 닿는 나뭇가지에서 보듯, 시적 대상에 투영된 자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과 성찰의 깊이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김정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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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약력
이도화 시인은 경북 달성에서 태어났다. 경북고 재학 중 토론∙봉사 써클에 참여, 문학과 철학을 꿈꾸었지만 학창시절의 꿈을 뒤로하고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 후 연습선 교관과 상선의 이등항해사로 일하며 살아있는 바다를 체험했다. 이후 ‘사람 관리’와 경영학에 대한 실용적∙학문적 관심도가 높아져 미국 메사추세츠대에서 경영학석사, 퍼듀대에서 경영학박사(인사조직전공) 학위를 마치고 포스코경영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있었으며, 후학양성에 뜻을 두어 인제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16년 전 파킨슨병 증상을 처음 감지하였으나 태극권을 수련하며 현직에 머물다 정년을 3년 앞두고 귀촌에 이어 명예퇴직하였으며 현재는 땀 흘리는 정원 일과 시 쓰기로 최대한 독립적인 삶을 이어가려 노력하고 있다.
시인은 뒤늦게, 줄곧 놓지 못하고 가슴에 담았던 학창시절의 문학의 꿈을 펼치고자 文靑 시절로 돌아가 2017년 《부산시인》과 《부산시조》 신인상, 2023년 《사이펀》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사이펀의 시인들’ 회원이며 시집으로 『출항』(201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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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의 시
탁발승 땅콩이
‘땅콩이’는 주인들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기구하게 떠돌 뻔했다가
이집 뜰에 정착하여 살게 된 마당 고양이다
일상의 궤도가 다르긴 해도
집주인이 지구라면 땅콩이는 달처럼 주위를 돌며 움직이는데
두 궤도 사이 거리를 말없이 조율하는 쪽은
언제나 땅콩이
다가서면 철칙처럼 물러서는 거리 두기로
땅통이는 안고 안기는 품과는 멀어졌어도
뜻밖의 선물을 얻게 되었다
나비를 쫒으며 뛰어놀다 기둥을 긁어대고
동네 고양이들과 어울리다 싸움박질도 더러 한다
땅콩이에게는 집주인이 지어준 집 외에도
스스로 정해둔 잠자리가 있고
명상인 듯 백일몽인 듯 골라 앉아 즐기는 바위와
햇볕과 바람도 따로 있다
무엇보다 자유의 품위를 얻었으니
공양 때 누런 장삼을 걸치고
아침 탁발에 나서는 땅콩이는 흡사 남방의
소승불교 스님
말갛게 올려다보는 땅콩이 축복어린 시선에
집주인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여미고
찬불가를 부른다
“땅콩 스님, 공양 하입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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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꼬리로소이다
늘어져 있든 서 있든 개 꼬리는 개 대가리 반대편에 붙어 있다
큰형님의 구린 곳을 마지못해 가리거나 닦아주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편이 낫지 않았을까,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변소 지기에 머물렀다면
조선에까지 들어와 씻지 못할 무거운 죄는
짓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히데요시는 주군의 심기가 흡족하도록 달랑달랑
꼬리를 잘 흔들 줄 알았다
주군의 심기는 꼬리 끝에 예쁜 색색 리본으로 매여져 있었고 사람들은 개 꼬리만 쳐다보게 되었다
나름 영악해서 대가리가 꼬리를 흔들려 할 때
꼬리 밑동을 꽉 부여잡고 어쩌나 한 번 버텨보기도 했다
꼬리가 꼼짝하지 않자 휘둥그레 놀란 대가리
눈을 까집고 보더니
둔한 머리를 흔들어보고 몸뚱이를
부르르 떨어보기도 하는데
머리를 흔들면 꼬리가 흔들리는 것처럼,
몸통을 움직여도 그렇게 보이는 때가 있었다
현실이 눌려 착각을 믿어보기로 하였으니
세뇌된 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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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
내 걸음은 레보도파 농도에 다라 0 또는 1,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활보하는 것이다
둘 사이에는 깊게 그은 절단면이 있고 그 자리는 면도날이 지나간 것처럼 매끈하다 하여
온·오프라 부를만한데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랏!”
그대는 모래시계, 마지막 모래알갱이 줄을 서고
세 알, 두 알, 한 알, 끊어질 무렵이 오프의 시작,
정해 둔 시간에 약을 먹어라, 떨어졌던
스위치가 올라가고 온의 해가
다시 떠오를 것이다
온의 능선을 걸어갈 때 우리는 감쪽같다
오프의 골짜기에 들어서면 어둠이 내릴 테니
하던 일을 멈추고 안전에 조심하라
온·오프는 자비의 얼굴로 다가와 말의 채찍을 휘두른다
자신의 규격에 가두려 하여
하늘에 환히 달이 떠있는 날 나도 밤길에 따라나가 보았다
빨갈 신호등이 켜진 왕복 6차선 건널목,
차들은 오가는데 어른 손을 놓친 아이가 혼자 길을 가고 있다 길 건너를 바라보며 “할아버지”
뛰어들려고 해 막으려 몇 걸음 달리는데
잠이 깨고 새벽 요의가 아랫배에 팽팽하다
급류를 앞두고 망설일 틈이 없는 세랭게티 강에서는
온·오프는 어둠의 표지,
로봇에게 내리는 명령어가 아니다
악어가 번쩍이는 눈초리로 약한 누를 노리고 있어도
건너는 누는 건너가는 이유가 간절하다
악어 머리와 등을 밟고 지나가느라
마비될 겨를도 없다
* 파킨슨병 약을 복용한 뒤 약 효과가 발생하는 시점에서 끝나는 시점까지의 시간을 온(on), 약 효과가 사라지고 없는 기간의 시간을 오프(off)라 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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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블루문
월출 시각이 지났는데 여기서는 몰려온 비구름에
캄캄해진 하늘만 바라보입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칠흑 구름을 탓하는 대신 블루문
카페를 찾아
블루문 재즈곡을 듣거나 블루문 리큐르를 기울이며
비구름의 추억이나 나누는 편이 나을 뻔했습니다
한 달에 두 번째 뜨는 보름달, 불길하다 해서
블루문이라 부른다면
반은 잘못 만든 달력 탓, 블루문 편견에 맞서 싸워 줄
우군이 그곳에는 많을 테지요
고개 숙인 은메달의 비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데
빼앗긴 결혼식의 들러리 같고
풀 죽은 복사본 같아 보이는 2인자,
쏟아지는 박수는 잊혀질 승리에 대한 위로인가요,
마지막 패배에 대한 동정인가요
이제 이곳에는 블루문의 아픔처럼 장대비가 내립니다
그곳 하늘이 문득 궁금해져 휴대전화를 켜고 보니
구름 위로 활보하는 슈퍼 블루문이 생생하게 중계되고 있었습니다
기쁨에 슬픔을 섞지 않으려는 달의 속내를 보았습니다
모쪼록 블루문의 축복으로 기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여기 슬픔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14년 후에는 다시 돌아온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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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 제대
2년 2개월, 군 복무기간부터 떠오른다면 그대는 십중팔구 베이비부머 세대,
자식들의 호출은 국가의 부름으로 여겨
아내는 자원입대, 나는 동반 입대
아이들 등하교 도우미를 주특기로
아들과 딸네 아파트를 오가며 옛날 군 복무기간에 버금가는 달 수를 채우게 되었다
아파트 생활에 새로 적응하는 불편함이며
운동 부족으로 불룩해진
아랫배 하며 갑갑함이며,
그렇다 치자 다 좋다 치자
손주들 예쁜 순간, 너희들 어려워도 잘 살아가는 모습
못된 시어머니 못난 시아버지 서운한 친정엄마 아버지
다 좋다 치자, 너희 고생이 많았으니 다 같이 박수 치고 좋은 기억에 감사하자
오늘 나는 비워둔 시골집으로 돌아간다
하자 한 점 없이 만기로 제대한다,
"명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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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목차
이도화 시집
시인의 말
<1부>
느티나무 진단서
탁발승 땅콩이
스캔들
팬데믹의 눈
개꼬리로소이다
종점
수탉 노릇
꼬끼용 탈출기
벽
철길 위 철부지들
요지경
상극에서 태극으로
고소공포증
변신 증후군
색, 계
애향
부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2부>
공간의 문제
슈펴 블루문
바람과 나뭇잎
자리돔회 한 접시
부전자전
트리하우스
버드나무 다라니
공양주
능소화
가장 콤플렉스
촌부의 하루
밀당 하는 닭
서울 가는 길
빈집
만기제대
<3부>
짐을 들고
온•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
동결
걸어가자, 바위야
무심코
커밍아웃
따개비가 사는 법
그림자
고요한 밤
수양이 필요한 이유
조개 몇 줌
우중 비행
행복 랜드
고행으로 가는 길
<4부>
덜컹
벽난로
유구무언
울 아버지 봄바람
가명이세요?
수다쟁이 새
묵은지 사랑
알라트 아센드라이!!!
빅딜
3절의 노래
사돈은 달리기 선수
스친 인연
우리가 되었다
홀로 새는 밤
◆해설:세 번의 선택과 한 채의 허공 - 김정수(시인)
첫댓글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