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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은 구제하는 것 (마 6:19~24)
며칠 전 부산 해운대 경찰서에서 전국 금은방 5곳에서 5억여원 상당의 금품을 턴 절도범을 구속했습니다. 이들은 훔친 건설도구를 사용해서 중소 도시의 금은방 벽을 뚫거나 출입문을 부수고 침입했습니다. 경보기가 울려서 경비업체가 출동하기 전인 1분 30초가 되기 전에 금품을 털어 달아났습니다.
감시 카메라가 잘 작동이 되고 경비업체가 철통같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도 뚫려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보물을 안전하게 잘 보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하시면서 이와 같은 일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보물을 땅에 쌓아두면 내부적으로는 좀이 먹고 부패해버리고 녹이 쓸게 된다는 것입니다. 외부적으로는 도둑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귀한 보물을 잘 보관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땅은 영원하지 못하고 사람도 영원히 살지 못하기에 아무리 좋은 보물이라 할지라도 모두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이 땅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원한 천국에서의 복된 삶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는 동안에만 소유할 수 있는 이 땅의 유한한 보물보다는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영원한 보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의 모든 것도 아십니다. 우리의 일생에 대해서도 훤하게 아십니다. 그러기에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것을 소유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에 현혹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히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의 영생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가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한 삶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시는 말씀들을 통해 교훈을 얻어 참된 보물이 무엇인지를 알고 영원한 하늘에 우리의 값진 보물을 잘 보관하시길 바랍니다.
본문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이 땅은 귀한 보물을 잘 보관해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 창고는 완벽한 곳입니다. 방충이 잘 되므로 좀이 먹지 못합니다. 온도조절이 완벽하기에 부패하지도 않습니다. 녹도 쓸지 않습니다. 심지어 도둑도 없고 뚫지도 못합니다. 이 말씀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각 사람이 쌓아놓은 보물을 안전하게 잘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진귀한 모든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보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늘에 쌓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물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요? 금은과 다이아몬드 등의 보석이 보물일까요? 아니면 사람마다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보물일까요? 성경에서는 보물을 구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33절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보물은 소유를 팔아 구제하는 것입니다. 이 보물은 다함이 없는 하늘에 둔 진귀한 보물입니다. 이 보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원히 가치 있는 보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누구나 보물을 가질 수 있습니다. 비록 화려하고 많은 금과 보석을 가지고 있지 못해도 우리가 구제할 때마다 이 보다 더 진귀한 보물을 우리는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제할 때마다 하나님 나라의 보물 창고에 하나씩 차곡차곡 쌓이므로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보물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보물은 한 개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하나님 나라의 보물 창고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보물에는 우리 이름이 잘 표시되어 있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면 곧바로 손쉽게 찾게 됩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영원토록 소유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1장 4절을 보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화로운 존재로 부활한 이후에 그동안 열심히 쌓아서 하나님 나라에 간직해둔 보물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어느 누구나 진귀한 보물을 가질 수 있습니다. 보물을 가질 뿐만 아니라 영원히 안전하게 소유할 수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썩거나 녹슬거나 변질되지 않고 외부적으로는 도둑이 없고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이 보물을 우리가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야 하는데 쌓을 것이 있어야 쌓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보물이 있어야 쌓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보물을 어떻게 가질 수가 있을까요? 그 보물은 구제하는 것이라고 했으므로 이것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2장 33절 상반절을 다시 봉독해 드립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아멘. 소유를 팔아 구제하는 것이 보물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보물을 만드는 비법이요 보물을 가질 수 있는 비결입니다. 보물 상자는 다름 아닌 구제하는 배낭이요 지갑입니다.
잠언 11장 25절입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아멘. 그렇습니다. 구제는 풍족하게 만들고 윤택하게 만듭니다. 구제하면 재산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풍족해집니다. 24절 상반절을 보면 더욱 더 명확하게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구제할수록 더욱 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살면 정반대의 결과가 옵니다. 구제하지 않으면 오히려 가난하게 되어버립니다. 24절 하반절입니다.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고 구제하는 사람은 풍족하게 되지만 구제하지 않고 아끼는 사람은 오히려 가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관리가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잘 알고 있는 계명대로 간음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거짓 증언하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관리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 22절입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 사람은 이 말을 듣자 큰 부자이므로 심히 근심하면서 돌아가 버렸습니다.
부자가 구원을 얻기가 어렵다고 한 것은 재물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겠습니까? 가지고 있던 재물이 하나님의 나라의 문을 꽉꽉 막아버렸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부자에 대해서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곡식을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농사가 아주 잘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부자는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에 쌓아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러 해 동안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해야겠다.” 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마치면서 자기를 위해서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2:16~21).
이러한 부자와는 반대로 사도행전을 보면 실제로 자기의 소유를 팔아 구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4장 32절을 보면,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33절에서 35절을 보면, 믿는 무리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밭과 집 있는 자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소유를 팔아 구제하는 일은 초대교회에서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나바 역시 있는 밭을 팔아서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에게 드렸습니다(행 4:36~37).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이 필요로 하는 만큼 나누어주었기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해주셨습니다(행 2:45~47).
구제는 이처럼 모든 사람을 살립니다. 함께 더불어 잘 살게 합니다. 큰 부흥을 가져다 줍니다. 그러므로 이 구제에 대해서 구약 성경부터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병들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힘써 벌어야 합니다. 왜 힘써 벌어야 합니까? 줄려고 하면 줄 것이 있어야 하고 팔려고 하면 팔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도행전의 이 구제 행위를 보고 공산주의를 말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소유를 팔아서 구제했다고 했습니다. 힘써 벌어서 모은 사유재산이 없는데 어떻게 팔아서 구제할 수 있겠습니까? 공산주의는 생산은 적당히 하고 나누어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점점 쇠퇴하게 된 것입니다. 수입이나 예산은 부족한데 지출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장점은 팔 수 있는 사유재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팔아서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유만 하고 나누어 가지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병폐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힘써 벌어서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웨슬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벌어라. 할 수 있는 한 저축하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라.” 고 했습니다. 요약하면 “벌어라, 저축하라, 주라”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이처럼 소유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으로 공유하라고 하면서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죽고 난 뒤1파운드라도 재산을 남겼다면 나를 강도로 표현해도 좋다”는 말대로 모두 주고 1파운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1파운드는 현재 환율로 약 1,760원입니다. 웨슬리는 이 2,000원도 남기지 않고 나누어준 것입니다. 이처럼 웨슬리는 ‘소유’에 가치를 두지 않고 ‘나눔’에 가치를 둔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았습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진귀한 보물을 많이 쌓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입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벌고 많이 저축해서 구제에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구제하는 순간마다 영원히 빛나는 진귀한 보물이 하나씩 하나님의 나라에 쌓이게 됩니다. 수고하여 벌고 저축하고 나누어준 것이 하나도 헛되지 않고 그대로 하나님 나라의 보물 창고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헛수고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부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에 애착을 가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하나님의 나라에 애착을 가지고 하늘 창고에 보물을 많이 쌓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일생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자상하게 가르쳐주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록 금과 보석과 같은 보화를 가지기 어렵더라도 구제함으로써 더 고귀한 보물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제에 힘써서 참된 보물을 영원히 안전한 하나님의 나라에 차곡차곡 많이 쌓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