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가는 길
삼십여 년 전 이른 봄 어느 날, 이야기입니다.
무작정 집을 나서 강릉 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은
그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라는 곳에서 내려 오대산 월정사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족히 이십 리 길은 넘을 듯싶은 거리에다가,
겨우내 내린 눈(雪)은 산자락과 길가에 남아서 겨울을 붙들고 있는,
그런 길을 엎어질듯 자빠질 듯 비틀거리며 월정사 산문에 닿았으나,
산문은 닫혀 있었고 어둠까지 내려 빛이라고는
하늘에 휘영청 밝은 달과 이를 시샘하는 별들만 총총히 깜박거릴 뿐…….
절에 대해서는 절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지식도 없는
그는 절 아래 있는 마을에 숙소를 정하고 잡을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잠은커녕 오히려 눈만 말똥말똥…….
‘에라, 절이나 하자’
그는 그렇게 밤새 절을 향해 절을 하다가
이른 새벽 녘 숙소를 나서 월정사 절문으로 들어섰습니다.
이미 절 안은 소란스런 듯싶었는데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 염불소리 그리고 바람소리까지 어우러져
그야말로 별천지 같다는 생각이 든
그는 팔층 석탑이 앞에 있는 전각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전각 안에는 벌써 많은 스님들이 줄지어 서서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안본사 석가모니불”
………
………
우렁차면서도 정겨움이 넘치는 스님들의 예불소리가
높이 앉아계신 부처님의 미소와 어우러져 그의 머리와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그는 스님들을 따라 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생각에 잠깁니다.
‘하!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그는 엎드려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쳐야 했습니다.
그렇게 새벽예불이 끝나고 그는 눈 덮인 삼십 리 길을 나섰습니다.
코트차림에 구두를 신은 발길은 엎어지고 자빠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상원사를 거쳐 중대사 그리고 오대산 적멸보궁에 도착하니
오전 11시가 넘어 이미 예불은 마칠 무렵이고 스님의 설법이 시작되었습니다.
설법의 주제는 ‘묵언(黙言)’이었는데 내용은 이러합니다.
“오래전 어느 날, 야트막한 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에
조그마한 웅덩이가 있었는데 그 웅덩이엔 남생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살아가니 외롭고 쓸쓸했고
또 비가 안와 가뭄이 들때면 웅덩이가 말라버려
고통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남생이가 가뭄이 들어 말라가는 물가에 나와
근심스럽게 하늘을 바라보며 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학이 그 모양을 보고 내려 앉아 물었습니다.
남생이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듣고 있던 학은 한 생각을 내고 남생이에게 제안을 하였습니다.
‘남생아 너는 물 걱정 없는 넓은 세상에 가보고 싶지 않으냐?’
‘가보고 싶지만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데다가 작디작은 이 몸으로 어떻게 갑니까?’
‘그렇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수는 있느냐?’
‘갈 수만 있다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확답을 들은 학은 잠시 후 나무 한 가지를 물고 와서 남생이에게 일렀습니다.
‘남생아, 이제 이 나무를 너의 튼튼한 입으로 꽉 물고 있어라.
내가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입을 벌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절대로 입을 벌리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여 남생이는 나무의 가운데 부분을 튼튼한 입으로 꽉 물고
학은 두 발로 나무의 양쪽을 집고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하늘로 오르면서 남생이는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처음 보는 광경에
기겁을 할 듯 놀랐지만 넓고 좋은 세상으로 간다는 생각에
설레는 가슴을 달래며 꾹 참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니 저만치 넓디넓은 물이 보였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좋은 세상에 내린다고 학은 친절하게 일러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도 보였습니다.
뛰어놀던 아이들은 하늘을 나는 남생이가 신기한 듯 바라보며 소리 질렀습니다.
‘야, 저기 남생이가 하늘을 날아간다.’
남생이는 신이 나서 우쭐거렸지만 입은 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한 아이가 손가락질 하며 또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저기 남생이 똥꼬 봐라! 하하하!’
이 소리에 그만 화가 울컥 치민 남생이는
‘야, 임마. 네가 뭔데 남의 흉을 보냐?’ 하고
그만 입을 열었고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 하시면서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불자님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나를 망치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욕심이 지나침이요.
둘째는 화를 냄이요.
셋째는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않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삼독(三毒)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 마음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조금만큼의 삼독심의 낌새만 보여도 ‘나무 불법승’ 하시기 바랍니다.
짧은 우화 같은 이야기였지만
그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한없이 솟아난 기쁜 마음은
잠도 안자고 절하고 걷고 또 걸은
스물 네 시간의 피곤함도 모두 삼켜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눈 쌓여 얼어버린 미끄러운 하산(下山) 길을
그 스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내려오면서
또 한 번 환희(歡喜)심을 일으켰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그는 지금도 어디에선가 오대산 가는 길을,
그리고 스님과 남생이를 생각하면서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고 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