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인 (李起仁 )
1967년 인천 출생
1986년 인천 제물포고 졸업
1988년 서울예술대학 졸업.
2000년 경향신문 신춘 시 <ㅎ방직공장의 어린 소녀들> 당선. 등단
2005년 첫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여공들의 이야기,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의 이기인 시인을 만나다
저녁 하늘이 진눈깨비를 잔뜩 머금고 있던 날이었다. 대학로의 한 조그만 서점에서 만난 이기인 시인은 사진 속의 모습보다 눈이 크고, 여유로워 보였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노동시인이라고 하기도 했고, ‘포스트-박노해’라고도 했다. 참여적인 문학을 하는 사람이니 그 또한 활동가의 느낌이 날 거라 생각했는데, 잘못 짚었던가. 그는 본질적으로 詩人이었다.
그는 인터뷰 기자로 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섭외 같은 거 해봐서 알아요. 간절하지 않으면 만날 일이 없는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한번 튕겨주기도 하고 말예요(웃음). 메일에 시집 얘기가 있어서 마음이 약해졌어요. 시를 좋아한다는 게 오늘 만남의 계기가 된 거죠.”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얘기다. 폭압적인 자본주의에 길들여지는 여직공(소녀)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 그의 시집, 그 덕분에 종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와 비교되기도 한다.
시를 쓰면서도 ‘알쏭달쏭’한 방법론을 택한 그와의 인터뷰는 한마디로 ‘알쏭달쏭’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긴 의미들을 금방 알아채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인으로 사는 삶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감성이다. 민감하게 하고 모든 것을 살펴야 한다. 지금은 감각이 깨진 시대 같다. 예술가들 또한 돈 벌고, 밥 먹고, 국민연금도 내야 한다. 옛날엔 더 자유로웠을 텐데… 마치 소설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처럼 어떤 것에 대한 절대적인 감각을 끌어와서 시 한 줄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다. 시인은 늘 민감하고, 늘 겸손하고, 늘 깨어있어야 한다. 간절한 사람은 시 한 줄 한 줄 사이에서 ‘사랑’을 찾아낼 것이다. 그렇게 예술가는 중증환자를 치료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절하다. 마치 훈련병이 찢어진 신문 한 조각에 집착하는 것처럼
-이기인 시인에게 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다. 현실을 바꾸는 것의 도구인지, 시를 통해 현실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남에게 영향을 끼치는 건 맞다. 활자화 된다는 것 자체가 의미하는 건 ‘널리 퍼뜨리고 싶다’는 뜻일 수 있다. 내 중심축이 ‘약자’쪽에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약자를 대변하는 최전선에 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예술은 더 큰 범위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거나 혹은 지배하거나, 둘다 위험하다. 그러나 이심전심으로 통했다는 것, 그것으로 두 사람의 역사가 시작된다. 예술은 그 ‘소통’을 기반으로 한다.
-시인의 현실 이해, 그 중에서도 노동자를 주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내 캐릭터인 것 같다. 본능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람에게 힘을 주고 싶은 감정을 느낀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런 문제는 존재할 것 아닌가. 조선시대 이전에도 늘 약자는 있었고, 그들의 삶을 조망하고 껴안는 사람들이 있어왔으나 힘주어 얘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예술의 역할이 그들을 대변하고, 전방에 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시와 삶은 그저 통합적이다.
여공들을 다룬 데는 내 성장과정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인천엔 공장이 많았다. 철강회사도, 방직공장도 있었고, 냉장고 공장도 있었고… 그래서 외지에서 온 어린 여공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공순이’라고 불렀던 그 소녀들은 모두 회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그녀들을 통제하는 사람은 완장을 차고 있었다. 그건 멀리서도 여공의 신분이 노출되는 일이었다. 그것이 자기를 비관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과거를 그대로 가져온 게 아니다. 본 것을 규명하는 게 시는 아니다. 다만 그 요소를 담아오는 것이다.
-노동시인이라는 호칭에 대해......
나는 노동시인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본대로만 몰아가는 것 같다. 평론가들이 양극화 시키는 것 같아서 아쉬울 때도 있다. 시는 변한다. 생명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것 아닌가. 생활의 체험이 가라 앉거든 그것에 바탕하여 쓰는 것인데, 앞으로 노동현장만 보고 살 것도 아니고… “걔는 종로에 있어”라고 한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종로에 있으란 법은 아니다(웃음).
-소설가 조세희씨와 비교되기도 한다.
송구하다. 처음 다큐멘터리를 찍는 초짜 감독이 유명한 감독과 비교될 때 아마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큰 이름이라… 존경하고 좋아해서 그것이 더 큰 숙제가 된다. 그 분은 문학계 속에서 자기 역할을 갖고 있으면서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포지션화 했다. 열정과 에너지를 어디에 쏟아야 될지 정확하게 알았던 사람인 것 같다. ‘민중에 대한 방향성’을 갖췄다고나 할까. 그 분의 삶이 크게 보인다. 문학을 하지 않더라도 그와 같은 삶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시집을 낸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인식에 변화가 있었다면?
변한 것도 있을 것이다. 가난한 노동자라고 해서 모두가 슬프지는 않다. 공장 일이 모두다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롤러 블레이드를 타는 주유소 직원이 몸짓은 춤에 가깝다. 작은 임금을 받고서도 꿈을 키워가는 사람은 아름답게 보인다. 자기 인생을 책임지고 잘 연출해서 살고 있고, 그들이 외롭지만은 또한 슬프지만은 않다.
시에 그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인식에 변화가 있었다면?부분이 담겨있는 경우도 있다. 진학하지 못하고 공장에 온 여공이 교양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사글셋방에 살 때에 백과사전을 사 놓고 하나하나 읽고, 못난이 인형으로 자기 방을 꾸미며, 리본 커튼을 다는 것. 그다지 나약하지 않은 그들의 삶, 자기 세계가 있는 그들의 모습. 지금까지 조명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담아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요즘 시의 경향이 난해하고 현실초월적인데 반해, 이기인 시인의 시는 현실과 소통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학력이 유행인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대학원에 다니고 있지만(성균관대 국문학과), 요즘 시인들에는 학위 있는 사람도 많고, 시인들이 똑똑해져서 그런지 시가 어려워졌고, 차용하는 얘기들이 많아서 시에 각주가 많이 달린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백석, 이영 등도 다 그 당시엔 엘리트고 학자였다. 좋은 인재들을 정치적 격랑 속에서 빼앗겨 온 역사가 있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훌륭한 사람이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문학으로 오고 이렇게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 아닌가. 문학에 비단 현실이해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철학적 나아가 우주적 상상력이 담긴다는 건 좋은 일이다.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소설도 그렇고.
-공감에 한 마디
현장에 있는 사람과 하는 것과는 다른, 생경한 인터뷰라 당혹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거리에서 들어볼 수 없는 얘기(시)를 하며 더 이 자리가 아름다워졌던 것 같다. 이런 뉴스레터를 통해서도, 약자들의 얘기가 자극적으로만이 아니라 삶처럼 와 닿는 따뜻한 방식으로 전해졌으면 한다. 더 많은 사람들과 더 좋은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
취재 : 이다해, 곽경란 인턴
사진 : 이다해 인턴
글: 곽경란 인턴
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시 - 이기인 ‘사과 정물’ / 낯선 대상을 한 줄로 꿰어내다, 바느질하듯
시인 이기인씨는 “나는 머리로 늘 시상(詩想)을 녹음하고 다닌다”고 했다. 그만큼 그의 일상은 시와 밀착돼있다. 지난달 27일 본사 스튜디오에서 촬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인 이기인(44)씨는 늦게 등단한 편이다. 서른셋이던 2000년 시인이 됐다. 하지만 2005년에 펴낸 첫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이 일으킨 반향이 작지 않았다. 새로운 ‘공순이상(像)’의 창조랄까. 공장 여공들이 처한 척박한 작업환경이나 결코 순진하지 않은 여공들의 불온한 내면 같은 것들을 인상적으로 그려냈다. 이런 작업에 대해 문학평론가 최원식씨는 “공장 여성노동자들을 ‘소녀’로 바꿔 부르며 해석 변경을 시도해 한국시의 새로운 풍경을 열었다”고 평한 바 있다.
지난해 출간한 두 번째 시집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를 거치며 이씨의 시는 변화를 모색중인 것 같다. 이런 점을 지적했더니 그는 “요즘 내 시가 좀 길어지고 있다”고 했다. 또 “왜 길어지나 스스로 생각해봤더니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강렬함, 시 쓰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지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올해 이씨의 미당문학상 후보작은 자그마치 30편이다. 적지 않은 생산량이다. 미당문학상 본심에 오른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많이 쓰기도 하지만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시를 쓴다는 얘기다. 예심위원들은 이씨 시에 대해 “상투성에서 벗어나 세상을 낯설게 본다” “대상의 뒷면까지 시선을 밀고 가는 힘이 느껴진다”고 평했다.
그런 특징 때문에 이씨의 시는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오래 들여다 보게 만든다.
후보작들 중 시의 제목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들이 시 전체를 관통하며 낯선 대상들을 한 줄로 꿰어내는 끈질김 같은 게 느껴지는 시가 눈길을 끈다. ‘바늘장수가 지나간다’가 그런 시다. 뭔가를 꿰매는 바늘의 이미지가 삐뚤삐뚤한 골목길의 달동네 정경과 잘 어울린다.
이씨는 소개하고 싶은 시로 ‘사과 정물’을 골랐다. 시의 전체적인 의미는 불확실하다. 어렴풋하게나마 어떤 죄를 저질러 수감된 수인의 이미지에 캔버스에 그려진 사과 정물 그림을 빗대 표현한 작품으로 읽힌다. 사과는 과일 사과일 뿐 아니라 잘못한 일에 대한 사과(謝過)의 의미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씨는 ‘실수로 사과를 흙에 그렸을 때 사과에 흙이 묻었다’는 문장에 주목해 시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가령 발끝으로 사과를 그리면 그 순간 사과에 흙이 묻지 않느냐”는 것이다. “실수로 어떤 대상을 사랑하게 됐을 때 진짜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알쏭달쏭 사과 정물이다.
신준봉 기자
◆이기인=1967년 인천 출생. 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사과 정물
참을성 있는 생명이 빨간색 모자를 썼다
사과는 캔버스에서 나오지 못한 독방의 주인이었다
수감된 방에서 사과의 불멸을 훼손하고 싶었다
정숙한 가운데 캔버스를 정면으로 걸어놓았다
잔인한 형벌을 겪었으므로 사과의 죄목을 떠올렸다
비공개적으로 사귄 칼날을 버리고 세밀한 붓을 만들었다
위협을 감춘 날에는 빨간색 수인번호를 붓끝에 올려놓았다
형벌의 틀을 갈아 끼우는 마당에서 혼자 사과를 그렸다
실수로 사과를 흙에 그렸을 때 사과에 흙이 묻었다
흙을 씨앗처럼 갖고 싶어 사과에 햇빛을 덧칠했다
환한 두 눈을 뜨고서 저지른 잘못을 후회하였다
캔버스에서 쾅 떨어진 사과의 운명을 믿었다
머리를 숙였을 때 비로소 코와 귀가 빨개졌다
충고의 방으로 굴러온 사과는 두 시선을 채웠다
광인의 눈으로 공포를 웃으며 공개처형을 기다렸다
붉은 붓칠로 완성한 사과는 불안을 한 입 깨물었다
목화송이처럼 눈은 내리고
ㅎ 방직공장의 어린 소녀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따뜻한 분식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제 가슴에 실밥 묻은 줄 모르고,
공장의 긴 담벽과 가로수는 빈 화장품 그릇처럼
은은한 향기의 그녀들을 따라오라 하였네
걸음을 멈추고 작은 눈 뭉치를 하나 만들었을 뿐인데,
묻지도 않은 고향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늘어놓으면서 어느덧 뚱뚱한 눈사람이 하나 생겨나서
그 어린 손목을 붙잡아버렸네
그녀가 난생 처음 박아 준 눈사람의 웃음은 더 없이 행복해 보였네
어둠과 소녀들이 교차하는 시간, 눈꺼풀이 내려왔네
ㅎ 방직공장의 피곤한 소녀들에게 영원한 메뉴는 사랑이 아닐까,
라면 혹은 김밥을 주문한 분식집에서 생산라인의 한 소녀는
봉숭아 물든 손을 싹싹 비벼대네
오늘도 나무젓가락을 쪼개어 소년에 대한 소녀의 사랑을 점치고 싶어하네
뜨거운 국물에 나무젓가락이 둥둥 떠서, 흘러가고
소녀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고 분식집 뻐꾸기가 울었네
입김을 불고 있는 ㅎ 방직공장의 굴뚝이, 건강한 남자의 그것처럼 보였네
소녀들이 마지막 戰線(전선)으로 총총 걸어가며 휘파람을 불었네
-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달의 공장
공장 밖으로 심부름 나온 달빛
심부름을 나온 바람,
심부름을 나온 소녀가 슈퍼에서 쪼글쪼글한 귤을 한 봉지 산다
슈퍼 주인 할아버지가 자기 방식으로 귤을 센다
늘어진 전깃줄에서 나온 백열등이 귤을 또 센다
초코파이가 들어와 부풀어오른 비닐봉투 배가 불룩하다
'이게 모두 얼마예요' 그래서 '이게 모두 다 얼마예요'
'이게 모두 얼마예요' 와 '이게 모두 다 얼마예요' 라는 말을 들은
귤과 초코파이의 몸이 욱신욱신 속이 상해서 비닐봉투에 들어 있다
자정이 넘어서 귤을 벗기고 있는 소녀와 소녀를 벗기고 있는 기계소리가 아프다
오늘밤이 지나면 얼마를 줄 거예요?
귤을 벗긴 이의 손톱은 달을 파먹은 것처럼 노랗게 물이 들었다
무심한 달빛이 공장 지붕을 아프게 지나간다
그 손을 쥐었다 펴는 사이
손님처럼 손이 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
손님은 둘, 서로 따로 앉아서 할 말이 많지 않다
주머니 밖으로 얼마 동안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주머니는 새둥지처럼 금세 부풀었다
어린 손을 놓은 적이 있는 손은 물잔을 붙들고 있다
물은 금세 비워지고 이제 눈물이 잔을 채운다
(어떻게 해야 저 손을 한 번 잡아줄 수 있을까)
그 손을 쥐었다 펴는 사이 빠져나온 사랑
푸른 멍의 소장자
빨랫줄에 널어놓은 젖은 치마에서 또록또록 흘러나오는
누런 정액의 혐의를 뒤집어쓴 물방울
정액, 물방울, 정액, 물방울, 정액도 물방울도 사이좋게 말라가는 시간
빨래를 마친 소녀가 허기로 끓이는 라면 냄새가 가스레인지 뒤쪽 열린 문틈으로 새어나가
앞집 검은 개콧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먹고 싶냐 개야, 너도 짖어봐라 개야, 신(新)라면 발 한 줄 줄게 개야,
후룩후룩 라면 발이 앞집 개를 친다, 컹컹,
차례차례 정액 한 방울 물방울 한 방울 사정되어진 곳에
나 한쪽 눈을 맞았어, 눈이 따끔거려, 푸른 멍이 마당 콘크리트를 깨며 주저앉는다
집의 가장자리와 가장자리를 묶어 놓은 빨랫줄을 따라서 소녀의 젖은 팬티가 흔들흔들 논다
녹슨 못으로 붉어진 벽까지 물방울 하나가 쭉 흘러가서 꽈당, 부딪힌다
이 희미한 멍은 어디서 얻었니, 언니야
눈부신 오후의 햇살은 젖은 바닥에서 올라와 소녀 치마 속 무릎을 보고 그 위로 훤히 통과한다
온몸을 던져 웅덩이를 파헤친 물방울은 움찔 둥글게 둥글게 몸을 말고
저 높은 곳에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는다
젖은 옷가지를 말리기 위해 온 선선(善善)한 바람은 더운 방문을 두드린다
누가 왔어, 언니 말고 넌 누구야, 검은 개, 검은 소, 검은 고양이 꼬리를 닮은 스타킹 한 짝이
까만 밤의 껍질로 벗겨져 콘크리트 마당에 떨어져 있다
아 푸른 멍이구나, 이끼들만도 못한 것이 아픈 콘크리트 구멍 옆에서 소녀를 데리고 열심히 산다
바닥에 피어 있는 바닥
스러진 자의 잠이 바닥에서 그를 부둥켜안고 있다
스러진 날이 있어서 스러진 사람이 있어서
그 바닥으로 떨어진 잠을 더 곤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 바닥에 자세하게 갇혀 있는 이의 바닥을 한참 바라본다
그 바닥에 귀를 기울이면 그 바닥에서 일어나 더 깊은 바닥을 부르는
어떤 낮은 바닥의 웅성거림이 삼촌의 이야기처럼 나지막하게 들려온다
손바닥을 가져가 그곳을 어루만지고 있으면
더 낮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입김을 한 줌 받는다
더 낮은 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따라서 굴러간다
더 낮은 바닥을 위로하는 더 낮은 바닥이 함께하고 있음을 느낀다
저 저 한없이 낮은 바닥에서 더 낮은 바닥을 향해 뿌리를 내리는 꽃!
바닥에서 이제 막 올라온 꽃 한 송이를 올려다본다
그 바닥에서 흔들리는, 꽃그늘 속에서 내민 손을 붙잡기 위하여
오랫동안 서성이던 무릎을 굽힌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저 어두운 빈곤의 바닥으로 굴려 떨어뜨려본다
퉁퉁퉁
바닥에서 바닥으로 굴러가며 바닥을 깨우는, 바닥을 스쳐가는 인기척
거기서 아직 살아 있다고 하는 이의 기침이
오늘 아침에도 검은 바닥에서 스러진 그의 가족을 데리고 환하게 일어난다
밥풀
오늘 밥풀은 수저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풀은 그릇에서 떨어지지 않네
오늘 밥그릇엔 초저녁 별을 빠뜨린 듯
먹어도 먹어도 비워지지 않는 환한 밥풀이 하나 있네
밥을 앞에 놓은 마음이 누룽지처럼 눌러앉네
떨그럭떨그럭 간장종지만한 슬픔이 울고 또 우네
수저에 머물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이 저녁의 어둠
이 저녁의 아픈 모서리에 밥풀이 하나 있네
눈물처럼 마르고 싶은 밥풀이 하나 있네
가슴을 문지르다 문지르다 마른 밥풀이 하나 있네
저 혼자 울다 웅크린 밥풀이 하나 있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오랜만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당신을 만났지요
나는 당신의 등뼈를 본 첫번 째 사랑이지요
당신의 등뼈에 붙은 살이 얼마나 얇은지 알고 있는 사랑이지요
그렇게 얇은 삶이 바람에 견딘 것을 알고
손가락으로 당신의 등을 더듬어볼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일과
뒤돌아서서 날 깨우쳐주신 마른 가슴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내가 처음부터 만질 수 없었던 당신의 몸은 바람이 부는 동안
내가 사는 골목까지 날아와 기다렸지요
당신은 그때 젖은 시집 속으로 부끄러워하는 몸으로 들어왔지요
혼자서, 납작하게 살아온 당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줄까요
불빛처럼 아름다운 당신의 이야기를 밤새 읽다가,
돌 깎는 사람
사거리 한적한 귀퉁이에서 돌가루를 뒤집어쓴 돌 돌부처와
돌예수와 돌사자와 돌코끼리와 돌소녀가
한 반의 아이들처럼 놀고 있다
울타리가 없는 석재상 마당은
절이었다가 교회였다가 아프리카 들녘이었다가
수줍은 소녀가 사는 외딴집으로 변한다
한 반의 아이들이 지키고 있는 돌 부스러기는
염주와 묵 주와 털과 상아와 젖가슴이 되지 못하고
빛의 산란을 일으킨다
콜록콜록 돌 깎는 사람이 오래된 기침을 하면서
한 반의 아이들에게 오래된 천식을 가르친다
오래 입은 옷이 해지는 것을 가르치고
그 옷을 기워입는 것을 가르친다
작은 돌에서 더 조그맣게 떨어져나온 돌을
오래오래 보는 눈빛을 가르친다
아픈 몸을 끌고 가면서도 가끔은 되돌아보는 눈빛을 가르친다
지붕 위의 살림
검은 지붕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이 필 때
붉은 고무대야에 수돗물을 틀어놓고 찌든 이불을 치댈 때
흰 구름이 지붕을 덮고 나무를 덮고 마을을 덮고 지나갈 때
까칠까칠한 수염의 가장이 숫돌에 칼끝을 문지를 때
지붕으로 뛰어올라온 닭이 벌어진 꽃의 이름을 캐물을 때
기둥에 매달아놓은 옥수수 종자가 아장아장 아이에게 말을 걸 때
둥근 집의 살림은 댓돌 위의 신발처럼 늘어났다
줄기가 자라는 시간
일을 찾아서 북으로 가는 이의 남쪽으로 열려 있는 현관
그 문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사글세를 사는 화분
그 속에서 한줌 햇살과 흙을 얻어 잎사귀를 키우는 토란
잎사귀, 귀는 아직 세상사를 알아듣기에는 얇아 보이고
계속 자랄 것 같은 토란 줄기 가랑이는 찢어진다
북으로 가는 줄기는 남으로 가는 줄기보다 짧고
남으로 가는 줄기는 북으로 가는 줄기보다 가늘고 아프다
둥글넓적 잎사귀를 들고서 스러질 듯 스러지지 않는 줄기의 시간이 자란다
일을 나간 이가 돌아올 때까지 가늘게 흔들리겠으나 주저앉기는 싫다는 토란 줄기의 약속!
토란잎 줄기는 휘어져서 땅으로 내려와 쉬고 싶어 죽겠다
어깨 위로 떨어지는 사소한 편지
균형을 잃어버리고 있는 내가 당신의 어깨를 본다
내일은 소리 없이 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나는 초조를 잃어버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더 좋은 표정을 지을 수 있다
첫눈이 쌓여서 가는 길이 환하고 넓어질 것 같다
소처럼 미안하게 걸어 다니는 일이 이어지지만 끝까지 정든 집으로 몸을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닮아가는 구두 짝을 우스꽝스럽게 벗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밤늦게 지붕을 걸어 다니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가만히 껴안아 줄 수 있을 것 같다
벽에 걸어놓은 옷에서 흘러내리는 주름 같은 말을 알아듣고
벗어놓은 양말에 뭉쳐진 검정 언어를 잘 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매트리스에서 튀어나오지 않은 삐걱삐걱 고백을 오늘밤에는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요구하지 않았지만 당신의 어깨는 초라한 편지를 쓰는 불빛을 걱정하다가
아득한 절벽에 놓인 방의 열쇠를 나에게 주었다
자기 중심을 잃어버린 별들이 옥상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본다
뒤척이는 불빛이 나비처럼 긴 밤을 간다
흐린 창문 밖으로 보니
과일장수는 사과에 앉은 먼지를 하나하나 닦아준다
사과는 금세 반짝반짝 몸의 상처를 찾아낸다,
몸의 중심을 잡는다
사과 위에 사과를 사과를 사과를 올려놓으면서
한 바구니의 사과 일가가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그 앞으로 코가 빨개져서 서로 웃고 지나가는 가족이 보인다
흐린 창문 밖으로 보니 저들의 무릎이 더 반짝인다
사과는 왜 빨간 것이지? 반질반질 윤나는 사과의 붉은 얼굴. 과일장수가 자꾸 만지니까 성이 났을까 아니면 성숙한 사과 엉덩이를 정성껏 애무해서 부끄러운 것일까. 내가 생각한 사과와 시인의 사과는 다르다. 시인의 사과는 “반짝반짝 몸의 상처를 찾아낸다.” 잘 닦으니 가려졌던 상처가 드러난다. 상처를 숨기지 말라고 사과장수는 사과의 몸을 닦아주었다. 사과는 제 몸의 상처를 활짝 열어 보인다. 상처는 몸의 중심이다. 숨길 수 없고 지울 수 없고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고통스럽다. 고통 때문에 건강한 나머지의 중심이 잡힌다. 나는 몸의 상처와 몸의 중심을 이어놓은 시인의 이 구절에 밑줄을 긋는다. 그리고 다음 행 “사과 위에 사과를 사과를 사과를 올려놓”는 시인 사과장수의 얼굴을 떠올린다. 동사 올려놓다의 목적어 사과를 주목한다. ‘사과를’의 반복 세 번. 사과가 쌓인다. 무너질 듯하지만 견고하다. 이것은 나의 실수를 사과한다는 번복이 아니다. 이 짧은 시에 리듬을 부여하고, 상처 입은 시 속의 사과를 먹을 수 있는 실재의 사과로 만드는 주문 같은 ‘사과를’의 반복. 4행의 사과 일가처럼 읽는 사람에게 “행복한 표정을 짓”게 만드는 반복.흐린 창문 안에서 “한 바구니의 사과 일가”와 “그 앞으로 코가 빨개져서 서로 웃고 지나가는 가족”을 행복하게 쳐다보는 시인. “반짝반짝 몸의 상처”는 사과의 상처가 아니라 시인 자신의 상처가 아닐까. 시의 사과가 탐스럽게 느껴지지만 한 입 먹고 싶지 않은 이유, 시인의 행복한 사과가 슬프게 보이는 이유. 흐린 창문의 안과 밖으로 나뉘는 시의 분리된 공간이 완강한 사실의 벽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십년 만의 답장 / 이기인
그대가 떠준
털스웨터를 가슴까지 끌러서 아이의 장갑을 만들었습니다
이제야 당신의 마음이 손에 잡힙니다
아이와 함께 한짝씩 그 마음을 나눕니다
그 어린아이와 액자 속에서 한참 놀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을 보다가
아이가 휘휘 저은 나이를 먹어서,
나는 한입 먹고 놔둔 사과처럼 붉어집니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노을을 집안에 잘못 들여놓기도 합니다
세월이 흘러
내 검은 구두에 주름살 생기고 그
구두 속으로 거꾸로 매달린 꽃잎이 메말라 떨어지고
요 앞, 담배가게까지 슬리퍼를 끌고 갔다 돌아오는 길
이웃의 꽃담장을 봅니다
(십년 전 당신은 왜 저 꽃들처럼 수줍어 피었습니까)
묵묵히 집으로 오는 길에
십년 동안 빈 우체통에 고갤 처박습니다
저쪽 계란장수가 너무 크게 떠들어서 저쪽 삶을 다시 바라봅니다
그쪽도 잘 있죠
상자의 시간 / 이기인
골판지 지붕 위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였을 때
그는 그의 집이 불에 타버리는 심정이었으므로 허공을 휘저었다
그는 한 줌 재를 손에 쥔 채로 상자 밖으로 꺼내져 나왔다
곧 그의 얼굴은 노숙자가 아니라 불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표정이었다
창틀이 뒤틀리고 별똥별이 수없이 지붕 위로 떨어지는 줄 알았다
한낮에 창문에 앉았던 나비는 날아가 버리고 하늘은 검은 먹빛이었다
슬픈 집의 네 모서리가 타닥닥 타다닥 울다가 곧 녹아서 없어지는 것을
길바닥을 함께 뒹굴던 시선들이 방울방울 모여서 걱정하다 사라졌다
길을 잃은 그는 데인 사람처럼 꾸물꾸물 걸음을 데리고 주인 없는 처마를 찾아서 돌아다녔다
검은 나뭇가지에 앉은 달빛을 스쳐서 지나가기도 하였다
비가 멎고 젖은 골판지 지붕을 쓸어내던 청소부는
주저앉은 집에서 아직 깨지지 않은 소주병의 울음소리를 하나 덩그러니 깨웠다
초췌한 얼굴로 모인 담배꽁초가 그 속에 갇혀서 쿨룩쿨룩,
상자의 시간을 쫓아다니는 그를 찾고 있었다
흰옷을 벗은 채로 붉은 몸 / 이기인
아내의 다리미가 하얀 강을 건너가고 있다 그 사이 나는 물결처럼 퍼져 강 건너 편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하얀 강의 밑바닥으로 끌려오던 주름이 펴지는 것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다 주름이 없는 옷은 정신과병동으로 가는 옷처럼 조용하고 하얗다 그 옷을 먼저 입은 자의 걸음이 창밖으로 걸어가고 있다 주페의 경기병 서곡을 그리고 있는 발자국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위생병처럼 서 있는 아내는 한낮의 음악을 틀어놓은 채로 전쟁 중에 맞은 평화처럼 옥상에 올라가서 뜨거운 하늘의 이마에 얹어놓은 수건을 걷는다 하얀 강의 건너편에서 날아온 새들은 목마른 탈영병처럼 이쪽으로 오고 싶지만 오지 못하고 있다 사이렌 소리가 아프게 울어 출렁거리던 세탁기의 몸통이 가느다란 진통을 앓다가 멈춘다 탈수를 마친 의식은 가벼우리라 아내는 부르르 떨리는 세탁기의 몸통에서 젖은 날개를 한 벌 건져 올린다 강의 밑바닥에서 살아나온 자의 걸음이 옥상으로 부축을 받으면서 끌려가도 좋으리라 거기서 두 팔이 묶인 채로 사랑을 배울 수도 있으리라 흰옷을 벗은 채로 붉은 몸으로 바람을 불러올 수도 있으리라
느린 노래가 지나가는 길 / 이기인
한 방울의 빗방울이 떨어져 산을 녹이고 산길을 녹여서 산의 일부를 파내 길의 일부를 파내 새로운 길이 하나 생겨나게 하여서 예전에 데리고 내려오던 길을 종종 잃어버리게 한다 하여 사람들은 따뜻한 삽으로 흙을 떠서 한 사람이 지나가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한다 그 산길의 가지 끝에 둥지를 올려놓은 새의 말이 오늘은 푸릇푸릇 이기적으로 흔들리고 할 때 저 멀리서 노인을 꽃가마에 태운 이들이 산길을 올라가면서 느린 노래를 부르며 느린 노래를 몇 송이 떨어뜨려 참나무 진한 잎사귀에 싸서 꽁꽁 묶어놓을 때 꽃그늘 아래 수북이 앉아있던 키 작은 꽃들의 물음이 저 할아버지는 누구야 바라보다 누군가의 발바닥에 밟혀서 뭉개버린 얼굴이 다시 이게 뭐야 고개를 들어서 꽃가마 서늘하게 지나가버린 길바닥을 환하게 다시 보고 싶어한다
빛동냥 한 그릇 / 이기인
비비고 비비는 햇살이 길바닥에
땡그랑 오백 원짜리 동전처럼 떨어졌다육교 위에서 때 묻은 줄기로 자라고
있는 이의 몸에서 두 손바닥이 새순처럼 뻗어 나온다거지도 뿌리를 뻗고 싶다가난의 바닥을 한 입 가득 먹고
배가 터져서 죽고 싶다때 묻은 줄기가 늘어나서
배부른 돼지의 목을 칭칭 감아서 죽이고싶다육교 위에 엎드린 눈빛은 점심을 거르고서 거르고서거르고서 비로소 자신의 몸이 누군가의 점심이 되고 싶었다점심을 먹으러 나온 이들이 돌처럼 굳은 그의 손바닥에서글프게 환하게 쏟아지는 빛을 놓고 간다빛이 든 그릇에 두 눈알을 땡그랑 빠뜨리고 간다
송곳이 놓여 있는 자리
이기인
저녁에 동그란 상처를 가진 이들이 모여들었다
누군가 라면상자에서 꺼낸 서류철을 보며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기 시작한다
송곳으로 뚫어서 묶어놓은 명단의 이름은 긴 밭고랑처럼 길고 순하다
송곳 하나 후빌 땅이 없어서 마음에 구멍을 하나씩 만들고 죽은 사람들이다
이제 이들은 죽어서 검은 표지의 송곳 구멍을 하나씩 갖게 되었다
나는 오늘 송곳 끝에 매달린 빛을 보다 붉은 핏자국을 하나 떨어뜨렸다
저녁 하늘에 뚫어놓은 수많은 구멍의 빛을 보다 책상 위의 핏자국을 하나 지운다
구멍이 많은 하늘이 빛을 흘리고 있다
<감상>
살면서 땅 한 평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생 임대와 월세, 전세로 전전하면서 이 생
을 마무리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송곳’은 세상에 대한 상처이자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이기도 합니다.
시를 읽다 보면 송곳에서 연상되는 동그란 구멍을 여러 이미지로 연결시키는 깊이 있는 흐름이 인상적입니다. 서류철에
서 마지막 행 저녁놀까지 송곳이 놓여 있는 자리를 좇다 보면 어느새 순한 사람들의 상처가 붉게 각인됩니다.
-윤성택(시인)
시래기
이기인(1967~ )
졸린 눈으로 한숨을 쉬는 시래기가 벽에 걸려 있다
그의 영혼은 일을 하러 나갔다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의 등뼈는 집으로 돌아와 시름시름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직도 벽에 걸쳐놓은 굵은 손을 놓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작은 입술로 뼈마디를 주무르며 바스락거린다
온몸의 근육이 파도 물줄기처럼 번져 그의 삶을 거들고 있다
좁다란 어깨에 푸른 노동의 시간이 사이좋게 누워 있다
그의 어깨를 붙잡아서 깨우고 싶은 바람이 오늘은 외치듯이 온다
한시름을 놓은 주름살이 우두커니 허름한 살림을 본다
지친 날개를 한 묶음 껴안은 가슴이 파닥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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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린 시래기 한 묶음이 있다. 서슬 푸르던 청춘을 뙤약볕에 내어주고 졸음과 한숨으로 바래져가는 노년이 있다. 영혼은 일터에 묻었고 등뼈는 고단함과 맞바꾸었다. 시래기는 온몸이 거칠고 “굵은 손”이다. 온몸이 바스락거리는 “뼈마디”다. 그의 온몸은 “파도 물줄기”처럼 흔들린다. 그렇구나. 온힘을 다해 말라가는 것도 “푸른 노동의 시간”이었구나. 저 주름살들, 시름에 겨워서가 아니라 시름을 놓아서 생긴 것이었구나.
삶이란 그렇게 최선을 다해 늙어가는 것, 거기에 무슨 시급이 있고 무슨 정년이 있으랴. 오늘도 노인정에 나와 앉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온몸으로 파닥거린다. 파닥거리며 말라간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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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질
붓을 잡은 하늘이었다 얼음장 밑으로 붓끝의 씨를 떨어뜨렸다
필적을 헤아릴 수 없는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협의를 벗은 새소리가 날아갔다
분파를 걱정하는 바람이 옅게 흩어졌다 흙의 성해포를 찍은 햇빛이었다
연두를 신은 발목이 부었다 망설이던 밭으로 새소리가 들어갔다
밭의 가장자리로 소걸음이 들어갔다 흙의 가족이 놀랐다
흙의 가족들 가죽이 벗겨졌다 내장의 크고 작은 돌이 쏟아졌다
직면한 삶을 파헤치던 삽날이 점점 의식하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춘곤이었다
봄의 주조색으로 쟁기는 하얗게 소독되었다 빛나는 어지럼증이었다
이마의 주름살을 핥아먹는 소의 눈알이 한 마지기 흙빛을 들이마셨다
귓속으로 차오르는 방울 소리는 축축하지 못하고 찌그러졌다
바람이 왕래하는 소의 속눈썹이 붉은 밭을 가두고 콧물을 흘렸다
내전 內戰
치약 끝자락을 짜낸 슬픔이 부글부글 더운 말을 부풀린다
입 속의 혀를 숨겨서 입 속을 벌리고 눈썹 끝의 말을 비웃는다
밤새도록 창가에 머문 말이 사라졌나 창문을 열어서 하늘의 말을 생략한다
다정히 모인 신발을 잃어버리고 사라진 말을 쫓아서 현관으로 가본다
부러진 우산의 말을 펼쳐서 우산의 우울을 하늘에게 보여준다
어디서 날아왔나 잡초의 말이 뒹굴어가는 마당은 하늘의 서책 제일권이다
오늘은 누가 맑은 책을 팔아먹고 싶었나 엿장수 가위소리가 가렵다
애쓰는 하늘을 모두 열 줄 쓰다 계속 지우다 저녁을 쌓는다
밤낮
귀를 부풀리던 풍선이 터졌다
진종일 통로를 찾지 못한 빛이 손톱 밑으로 숨어들었다
라이터보다 가느다란 손가락 하나가 구부러져서 방아쇠를 만들었다
방아쇠는 혼자이다 추방된 심정이다 촉각을 드러냈다
목소리가 작은 사람을 떨어뜨린 회사의 벽은 보이지 않는 문을 닫았다
허름한 주머니에서 꺼낸 손가락은 욕을 자주하지는 않았다
담배꽁초를 오래 깨물며 기침을 두 갑 반 선언했다
하얀 모래시계의 고백에 취해서 모자를 하나 줍듯이 샀다
얼굴을 기만하는 모자의 표정은 잠을 자야한다고 찌푸렸다
고장난 길로 굴러가던 자전거는 옛집을 잃어버렸다
반찬 가게가 많은 동네의 골목길을 자주 휘저었다
목걸이를 채운 개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새소리를 흉내 내는 하수구로 쌀 씻은 물이 괴롭게 흘러갔다
통점이 많은 문장으로 채운 전단지를 버려진 목발에 붙였다
무심한 거울가게의 오토바이 귀에도 간지럽게 붙였다
이름 없는 새들을 한참 잡아먹는 꿈속에도 붙였다
지금까지 쫓아다니던 하늘의 이마를 환전하였다
그리고 남은 주름살을 뭉개진 나무의 그림자로 받았다
별의 뒤에서 혼자서 헤엄치던 수영장 물을 쪼르르 따라냈다
무서움을 배우는 이 별의 시간이 포도주처럼 붉어졌다
무서움이 잠옷처럼 편안해지자 술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