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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원문보기 글쓴이: 芽山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 삼존불 봉불식“온 세상이 정토가 되기를” |
한국불교총본산 조계사(주지 원담스님) 대웅전 삼존불 봉불식이 지난 14일 봉행됐다. 법회가 열리던 시간인 오전 10시 서울의 날씨는 섭씨 5도. 영하에 가까운 날씨에도 신심은 뜨겁기만 했다. 조계사 법당에 새로 부처님을 모시는 역사적인 순간엔 사부대중이 1000여명이 함께 했다. 특히 매서운 추위 속에도 11명의 조계종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번에 조계사 대웅전에 새로 조성된 삼존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불로 좌우에 아미타부처님과 약사여래부처님이 협시한 모습이다. 석가모니불은 사바세계의 교주, 아미타불은 서방극락세계에 머물면서 중생을 인도하며 약사여래불은 중생의 병고를 치유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삼존불은 각각 5m20cm 높이이며, 부처님을 모실 불단과 닫집도 새롭게 장엄됐다. 원로회의 차석부의장 보성스님은 원로의원 스님들을 대표해 낭독한 봉불식 격려사에서 “한국불교 중심도량에 새 부처님을 모시게 됐으니 모두 기뻐해야 할 경사”라며 “삼존불 대작불사에 동참한 모든 사부대중의 노고와 정성에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원로스님 11명 직접 점안 의미 더해
아울러 총무원장 지관스님은 봉불식 치사에서 “세 분 부처님을 새로 모신 조계사는 불교도의 화합과 수행 정진의 중심이며 전체 국민의 화합과 통일을 기원하는 제일도량”이라며 “스님들은 더욱 더 수행에 정진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신도 대중에게 전하는 데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조계사 주지 원담스님은 봉행사에서 “삼존불 봉안 불사는 종정예하와 총무원장 스님을 비롯한 종단 어른 스님들의 각별한 가르침, 조계사 신도회장과 각 신행단체장, 신도여러분의 적극적 동참이 있었기에 성취될 수 있었다”며 “조계사 사부대중이 기도와 수행에 더욱 정진해 부처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가고 온 세상이 정토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한편 봉불식에 앞서 열린 점안식에선 원로의원 스님들이 직접 점안해 삼존불 조성의 의의를 더했다. 이와 함께 헌공의식으로 모든 법회 일정이 끝나자 새로운 부처님에 예불을 올리려는 신도들이 대웅전 앞에 2시간 동안 장사진을 이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장영섭 기자 [불교신문 2279호/ 11월18일자] 2006-11-15 오후 5:08:08 / 송고 |
주불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가운데로 좌측이 약사여래불 우측이 아미타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조계사 대웅전(2006년 4월9일일요일)
조계사의 가장 상징은 대웅전(大雄殿)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웅전은 '큰 영웅을 모신 집'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큰 영웅이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의미합니다.서울시 지방 유형문화재인 조계사 대웅전은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그 규모는 경복궁 근정전(勤
政殿)보다 크며, 사방에 계단을 둔 단층 석조 기단 위에 정면 7칸, 측면 4칸의 515.6㎡(155.7평)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조계사 대웅전은 1938년 10월 25일 전북 정읍에 있던 보천교 십일전(十一殿) 건축자재를 인수, 신축한 것입니다. 대웅전을 이렇게
크고 장엄하게 설계한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조계사는 일제 식민지 시절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로 건립되
었습니다. 그렇기에 일본 불교와의 차별성을 기함은 물론,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사격을 갖추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전통 건축 양식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그 규모는 궁궐건물에 버금가는 형태로 된 것입니다. 조계사는 건립 당시부터 한국불교를 대
표하는 사찰로 자리매김하였기에, 불교의 교주(敎主)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신 것이 또 하나의 특징입니다. 우리나라
사찰은 사찰이 건립될 당시의 주요 이념에 따라 본존불(本尊佛)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사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
존불로 모시지는 않습니다. 법보사찰(法寶寺刹)인 해인사는 비로자나불을 모셔놓은 대적광전(大寂光殿), 부석사는 아미타불을 본
존불로 모신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불상은 나무로 만든 목불(木佛)로서,1938년 전남 영암 도갑사 (道岬寺)에
서 이전하여 현 조계사 대웅전에 봉안(奉安)하였습니다. 자료에는 불상 봉안자는 31본산 대표자 명의로 되어 있음을 비추어 볼 때,
당시 전 불교계가 합심하여 모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상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우견편단(右肩偏袒)을 취하고 있습니다.
항마촉지인이란 오른손을 땅을 향하고 있는 자세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마군을 항복시킬 때 취한 모습입니다.
우견편단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냄을 의미합니다. 불상의 크기는 102.5㎝이고 무릎이 넓고 체구가 장대한 편입니다. 갸름하고 우아
한 얼굴, 뾰족한 육계(肉?), 장신의 늘씬한 체구, 특이한 옷 무늬, 둥근 앙,복련 등은 조선조 초기 15,6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지만 세부 묘사에서 고태(古態)가 없는 새로운 기법이 엿보이고, 가슴의 주름진 내의 등 새로운 수법도 표현되어 있음을 짐작하
여 1900년경의 불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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