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오쓰(大津)의 명물 경상도 <밥식혜>
경상도 동해안 지방의 사람들이 일본 오쓰(大津)지방에 가면 놀랄 일이 있는데, 전통 요릿집에서 경상도식 <밥식혜>를 내놓기 때문이라며 작가는 그 음식의 유래를 설명한다.
<밥식혜>란, 내장을 뺀 가자미 등의 생선과 하얀 쌀밥을 켜켜로 담아 삭히는 밑반찬인데 쫄깃하고 고소한 생선과, 시큼한 밥알이 잘 어우러져 술안주로도 좋단다.
이 음식을 일본에서는 <후나즈시(鮒鮨: 붕어 부, 어장 지>라고 하는데, 우리와 달리 이 지방의 비와호(琵琶湖)의 민물고기 붕어로 담그고 있는 점이 다르다고 한다.
이 지역의 비와호(琵琶湖)라는 이름의 호수 뻘 바닥에서 가야금이 출토된 것도 우연이 아니니 어쩌면 경상도 동해안 일대의 사람들이 오랜 옛날부터 이 호수 주변에 살았다는 얘기가 된다고 작가는 비약한다.
*[ 大津 ] : 일본 긴키(近畿) 지방 시가 현(滋賀縣)의 현청 소재지. 비와호(琵琶湖) 남서안에 위치하고 있다. 667년 덴지(天智) 천황이 오쓰 궁을 만들어 천도하면서 발달하였다, 호상(湖上) 교통의 요지이며, 경승지가 많아 관광업이 성하다. -출처: 세계지명 유래 사전, 2006. 2. 1. 송호열
이 이야기는 다시 일본의 천지왕과 천무왕, 그리고 액전왕, 고시 왕자의 이야기로 연결한다.
천지왕이 죽자 당연히 왕위를 이어받을 것으로 여긴 고시 왕자 대신 이복 동생 대우(大友) 왕세자(홍문왕)가 지명된다.
그의 세자빈은 천무왕과 액전왕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 십시(十市)였는데 원래 십시(十市)는 고시(高市)와 연인관계였다.
어쨋든 천지왕의 후궁이었던 액전왕은 딸을 따라 이곳 오쓰(大津)궁으로 이사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작가는 천무의 애인이기도 했던 액전왕이 딸을 따라 오쓰(大津)궁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훗날 천무의 쿠데타를 돕기 위한 정치적 판단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왜냐하면 쿠데타가 일어나자 십시 왕녀가 대우(大友) 진영의 기밀을 아버지 천무에게 재빨리 전하였다는 것이다.
전하는 방법은 비와호(琵琶湖)에서 잡은 붕어를 구워 그 붕어 배 안에 정보 쪽지를 넣어 보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쯤에서 이야기를 음식 이야기로 돌린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기록뿐만 아니라 1988년 9월, 일본 나라 지역 공사장에서 발굴된 목간에 기록된 요리 목록의 예를 드는 것이다.
그중에는 심지어 칵테일 이름도 끼어있단다.
놀랍게도 입지름이 넓은 유리잔에 얼음을 담고 그 위에 술을 부어 마시는 <온 더 로크>가 있었단다.
이것을 믿지 못하겠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신라 고분 금령총에서 출토된 유리잔이 전시되어있는데, 푸르스름한 유리에 새파란 사파이어 빛 유리알을 돋워 붙인 아름다운 잔이라고 한다.
그러한 유리잔은 천마총에서도 나왔다고 한다.
출토된 5~6세기의 유물로 볼 때 이러한 우리의 식생활 문화는 일본에 그대로 전해져 천지왕 당시의 도읍 오쓰(大津)에서도 <밥식혜>가 그대로 전통음식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찬란하고 섬세하고 화려한 문화가 일본의 7세기를 수놓는다.
「일본서기」와 「고사기」에는 곡물의 기원에 관한 재미있는 신화가 실려있다고 한다.
죽은 여신의 신체 각 부위에서 오곡이 생겨 그것을 거둬 씨를 삼았는데 그 부위의 이름과 그 자리에 생겨난 곡물의 이름이 교묘하게도 합치된다고 한다,
물론 그 이름이 모두 우리 옛말이란다.
이 글은 1993년 5월 30일부터 조선일보 일요판에 연재된 기획물 ‘노래하는 역사’를 간추린 내용이다. 더불어 스크랩한 신문의 뒷면에 실린 30년 전의 사회 실상을 추억하는 내용을 덧대었다.
작가 李寧熙(1931-2021) 선생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화작가, 한국일보 기자, 논설위원을 역임하였다.
* 만엽집(萬葉集·まんようしゅう /만요슈)
8세기 나라 시대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모음집( 20권 4,516수).
5세기부터 8세기까지의 시가이지만 대부분 7세기 초반에서 8세기 중반에 지어짐.
당시 일본에는 문자가 없어 우리의 향찰(이두 문자)와 비슷하게 일본어 발음을 한자로 표기.
그러나 문자에 대한 해석이 완전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현재도 정확한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이 있다. 만요슈의 많은 노래는 중국, 한반도(특히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30년 전쯤에
일요데이트: 영화-드라마 출연 재주꾼 가수 이상우
그가 말한다. “신인 때 1~2년이야 몰아치는 바람으로 버티지만, 시간이 가면 양파껍질처럼 다 벗겨집니다.”
책 광고:
제목이 자극적이라 살인, 폭력이 유행했던 시기였었나 해서 검색해보니, <어둠의 자식들-1980년 이철용>, <인간시장- 1981-1989년 김홍신> 같은 책들은 훨씬 이전의 책들이다.
책이 주는 선한 영향력이 더 크련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도서마저 아이들에게 금서(禁書)가 된 오늘이다.
뭐 아이들 성폭력을 유발한다고 하던가?
그렇게 높은 도덕성을 지녔다고 자부하는 어른들을 모아서, 나라 하나 세워 그들끼리 살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런 사람들끼리 살아도 다양성을 뭉개고, 그중에서도 20%의 엘리트만 챙기며 살아갈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