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옛 두산동 모습
두산동은 수성못을 기준으로 북쪽은 들안길네거리-황금네거리, 남쪽은 법이산, 서쪽은 수성못 서편 둑, 동쪽은 지산동·황금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두산동이란 지명은 ‘두산·말뫼·동묘산·동막산·독메산·불뫼·불미’ 등에서 유래됐다.
수성못과 두산오거리 사이에 두산동 유래가 되는 ‘두산(斗山)’이 보인다. 산이 됫박 혹은 콩을 닮은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말뫼’는 두산의 순우리말이다. 두산을 ‘동묘산(洞墓山)’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 청동기시대 유적인 ‘두산동고분군’과 중화 양씨 문중 선영이 있는 것에서 유래된 것 같다. ‘동막산(洞幕山)’은 ‘묘(墓)’ 자를 꺼려 비슷한 글자인 ‘막(幕)’으로 바꿨거나 아니면 ‘묘’ 자와 ‘막’ 자를 혼동한 결과인 것 같다. ‘독메산·불뫼·불미’는 움직이던 산(뫼)이 들판(불) 가운데 멈춰 섰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과거 두산동에는 다섯 자연부락이 있었다. ‘묵넘어(묵넘이·물넘이·불막)’는 두산오거리에서 지산·범물동으로 가는 입구 좌우 야산 사이에 있었다. 이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이 마을에 이르러 하루를 묵었다고 ‘묵넘이’, 범어천이 두 야산 사이로 돌아서 넘어 흐른다고 ‘물넘이’라 불렀다고 한다. 대구부읍지에는 묵넘어를 ‘두천(斗川)’으로 표기했다. ‘새터(웃불미)’는 수성못과 TBC대구방송국 사이에 있었던 마을로 묵넘어에서 건너온 주민들이 새롭게 개척했다고 새터라 불렀다. ‘감나무정(중간불미)’은 두산초등학교 인근에 있었는데,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 불린 이름이다. ‘아랫말(아랫불미)’은 현 아랫마을어린이공원 인근에 있었다.
사진 아래에 1925년 축조된 수성못이 보인다. 수성못 축조로 안정적인 농업용수를 확보한 수성들은 1970년대까지 대구를 대표하는 들이었다. 수성못 내 남동쪽에 ‘둥지섬’도 보인다. 사진 속 둔덕지는 1980년대 말 매립, 녹원맨션이 들어섰다. 둔덕지는 ‘윗못’으로도 불렸다.
사진 : 국토정보지리원
글 : 수성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송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