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어의 꾸짖음 /봉림 유무근
유학산 도봉사로 향하는 길목, 고갯마루에 작은 서낭당 하나가 앉아 있다. 세월의 비바람을 맞아 일부는 허물어지고, 순례객들이 올려놓은 기도 돌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화려한 사찰보다도 이 초라한 서낭당 앞에서 늘 걸음을 멈춘다.
반반한 조약돌 하나를 주워들었다. 나의 소망 하나쯤 얹고 싶었다. 좁은 틈새에 돌을 올리려는 순간, ‘아뿔싸. 몇 개의 돌이 우르르 굴러떨어졌다.
급히 주워 보려 했지만 큰 돌 틈으로 파고들어 소탐대실 될까, 손을 댈 수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다른 돌 몇 개를 더 얹어 놓고 돌아섰다. 내 기도를 세우려다 남의 기도를 허물어 버렸으니 내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조금 더 오르니 도로 굽이에 설치된 반사경이 눈에 들어왔다. 불룩한 거울 속 내 얼굴은 보름달처럼 커지고 눈은 괴물처럼 일그러진다. 순간 웃음이 나다가도 왠지 섬뜩했다. 거울은 얼굴만 비춘 것이 아니었다. 내 안 감춰둔 허물과 치부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산신각에 오르자, 낙동강 물줄기 왜관 들녘, 구미 시내 일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산 아래 세상은 평화로워 보였지만 이곳은 다부동 전투에서 산화한 젊은 넋들을 기리는 곳이다. 채 스무 살도 되지 못한 청춘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 장마철이면 누군가 “엄마”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종각에 이르자 범종과 법고 사이로 커다란 목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보다 큰 물고기였다. 퀭하게 뚫린 눈, 텅 빈 배. 순간 걸음이 멈췄다.
목어의 비어 있는 배 속이 마치 내 가슴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왜 고개를 숙이고 있느냐.”
깜짝 놀라 목어를 바라보았다.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부끄럽다는 것이냐.”
목어의 물음에 오래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보험회사 설계사로 뛰어다니던 시절이었다. 생활은 바닥이었고 주머니는 늘 비어 있었다. 딸아이가 학교 과제물을 사야 했는데 몇천 원을 마련하지 못했다. 아이는 울먹이며 학교로 갔고 나는 등을 돌린 채 눈물을 삼켰다.
또 어느 날은 판잣집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우리 집”이라 적던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인집 아이와 “아니야 우리 집이란 말이야.” 다투면서도 서로 자기 집이라고 우기던 아이였다. 집 없는 설움이 무엇인지 어린 가슴으로 먼저 배워야 했던 자식들. 그 기억들은 지금도 내 가슴 한편에 못처럼 박혀 있다.
목어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너는 그 가난을 다 비워냈느냐.”
대답하지 않았다.
“연쇄 부도 때문이었다고, 시대가 어려웠다고, 세상이 야속했다고 말하며 살아오지 않았느냐.”
목어의 꾸짖음은 점점 거세졌다.
“네가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하느냐. 가족들은 어떠했겠느냐. 아이들은 어떠했겠느냐. 아버지의 무능까지도 품고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은 누구였느냐.”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평생 가난을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진짜 부끄러운 것은 가난이 아니었다. 실패를 시대적 변명으로 덮고, 책임을 세상 탓으로 돌리며 살아온 나의 오만함이었다.
목어는 침묵하지 않았다.
“너는 비웠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채우려 하고 있다. 인정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어 하지 않느냐.”
그 말에도 끝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목어의 배는 텅 비어 있었다. 속을 다 도려내고도 아무 말 없이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자신을 비워 중생을 깨우는 소리만 남긴 존재. 반면 나는 어떠한 책임으로 살아왔는가.
세월이 흘렀어도 후회와 미련, 억울함과 자존심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비움은 잊는 것이 아니었다. 상처를 없애는 것도 아니었다.
상처까지 품고도 더 이상 원망하지 않는 것, 그것이 비움이었다.
한참 뒤 하산길에 다시 서낭당 앞에 섰다.
아까 무너뜨렸던 돌 자리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고른 뒤 기도돌 놓을 자리를 만들어 놓고 이번에는 내 소망을 얹지 않았다.
다음 사람의 돌 하나 놓일 자리를 남겨 두었다.
문득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배려가 기도의 반이다.”
산바람이 서낭당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뒤돌아 유학산 정상 쪽을 바라보았다. 종각 어딘가에서 목어가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꾸짖음이 아니라, 조금은 따뜻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