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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노조파업. 보이지않는 3일간
임 인 애
장마 속으로 명멸하는 파업
2003년. 6월말. 장마가 시작되었다. 메이데이를 전후로 집중되던 파업이 올해는 여름으로 몰려왔다. 예고된 줄파업 때문에 기업 못해먹겠다는 경총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겠노라고 엄포를 놓고, 정부는 법과 질서를 위반하는 파업은 엄정 대처하겠다고 경고한다. 파업전선과 장마전선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내렸다 그쳤다 하는 비속으로 노동자들의 파업이 명멸하고 있다.
파업은 무엇인가를 절규하는데, 세상은 어떤 소리도 잘 흡수하는 방음장치 같아서, 이제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외침이 되어버렸다. 구조조정의 폭풍이 몰아친 지난 5년간 어떤 파업은 공권력과 사법처리로 초토화시키고 어떤 파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협상 각본에 따르도록 만들었다.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 정부까지 이 패턴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특히 구조조정 핵심사업장에서 노조지도부들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 "공권력이냐 평화적 해결이냐" 양자택일을 강요하며 혼을 쏙 빼놓고 도장을 찍게 만드는 시나리오는 아직은 각본을 새로 짤 필요가 없는 모양이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에 타결된 조흥노조 파업 4일간의 협상을 보면 이 구도가 압축된 일정 속에 매끄럽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받아낸 합의서들의 상징효과는 막강했다. 노조라는 조직을 통해 일어난 싸움을 조직적으로 해산시키는 사회적 합의의 가시적인 징표가 되었다. 위기를 감지한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은 그런 과정을 통하여, 그 어느 때보다 부드럽게 분쇄되었다. 구조조정은 일사천리 진도가 나갔고, 그 진도만큼 삶의 토대는 근원적으로 허물어졌다.
노동자들이 느낀 위기감은 노동자 개개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봉합되었고, 파업은 점점 더 힘겨워졌다. 노동조합 간부가 아닌 평조합원들도 파업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월급을 차압당하고 집을 압류 당했다. 저항과 생존의 폭을 한 치 빈틈없이 압박해 들어가는 이런 물리적 억압과 패배한 파업으로 인한 심리적 박탈감은 노동자 개개인을 아예 기진맥진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렇게 노동자들이 기진맥진 쓰러지는 틈을 타, 정규 비정규로 분할통치하는 노동체계가 구축되었고, 이윤체계로 환산될 수 없는 공공부분마저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국가경쟁력과 시장개방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절대가치의 신화가 되었고, 국경 없는 자본을 위한 경제특구법등이 무소불위의 권능으로 국민의 기본권과 노동하는 삶을 위협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구조조정의 물결은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갈 것인가.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말한다. 곧 시스템이 안정될 것이다. 노동정책 로드맵을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쟁력 있는 노사관계"를 소리 높여 구가하고 있다.
기차가 섰다. 그러나..
당선자 기자회견부터 "해고의 자유"를 심하게 부르짖던 노 대통령은 2003년 6월 27일, 외국인 투자자들을 위해 그동안 노조가 누려온 특혜를 회수하고 해고의 자유를 완전하게 실현하겠다고 천명했다. 같은 날, 철도개혁 관련 법안이 여야합의로 국회법사위를 통과했다. 철도노조는 법안통과를 밀어붙이는 정부를 향하여 공공철도의 파탄과 4.20 노정합의파기의 책임을 묻는 파업을 예고했다. 하지만 참여 정부의 사회적 담론은 강력한 노조를 결성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귀족이라는 작위를 수여한 바 있어, 하급 공무원에 불과한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조차 회수되어야 할 귀족들의 "특혜"로 인식되는 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버렸다. 역시 같은 날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 고건 총리는 철도파업의 "불법"성을 강력하게 성토했다. 철도 파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렇게 특혜집단의 범죄행위라는 평결을 받게 되었다.
6월 28일 새벽 4시. 철로와 차량기지를 떠난 철도노동자들이 쏟아지는 비속에서 총파업을 선언했다. 총파업이 선언 된 새벽 4시 이후에도 파업 배낭을 멘 노동자들은 연세대 부산대 고려대 서창캠퍼스 등 지역별 파업 농성장으로 합류하고 있었다. 새벽 6시 50분. 뜬눈으로 밤을 지샌 노동자들에게 공권력이 들이닥쳤다. 파업이 선언되고 3시간도 흐르지 않은 시간이었다. 공권력 침탈을 예상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맨몸으로 저항하다 무더기로 연행되었다. 법과 원칙에 따른 신속한 응징이었다. 새벽에 일어났다 아침해가 뜨기 전에 감쪽같이 마무리 된 고요한 폭력이었다. 철도청장은 아침 9시까지 업무 복귀명령을 내렸다. 연행된 1500명의 철도노동자들에게서도 즉각 복귀각서 서명을 받아냈다. 이 날 신문에는 공권력에 의해 파업대열은 해산되었고, 빠른 시간 내에 복귀가 이루어져 철도운행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내용이 실리게 된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게 종료되지 않았다. 캠퍼스의 우거진 녹음 속에서 연행되거나 달아나는 노동자들은 "산개" "산개"를 외쳤고, 경부선 호남선 전라선 등을 달리던 기관사들이 평상복을 입고 여기저기 사람들 속에 파묻혀 숨어 버렸다. 복귀각서를 쓰고 풀려난 사람들도 일터로 돌아가지 않았다. 공권력의 침탈로 파업 농성의 거점 공간을 빼앗긴 철도 노동자들의 산개투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5명 7명 혹은 20명씩 조를 짜서 핸드폰 문자메세지로 파업지침을 받으며, 만 명의 철도노동자들이 전국을 부유하는 동안 열차 운행률은 점점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부나 철도청의 보도 자료를 받아 그대로 기사화 시키는 언론을 보면, 파업은 이미 와해된 것 같았다. 파업참가율은 축소되고 업무 복귀율은 확대시키는 수치조작이 비속으로 흩어져 몸을 감춘 철도노동자들의 존재감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는 정부와 언론의 파트너쉽으로 쉽게 은폐할 수 있는 폐쇄회로가 아니었다. 철길은 한산해졌고, 기차를 타야하는 사람들은 열차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높은 복귀율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곧 정상 운행될 거라는 보도와는 달리 기차는 달리지 않았다. 지하철 전동차처럼 대체인력 투입으로 해소할 수 있는 메커니즘도 아니었기 때문에 기차가 멈춘 현실 자체는 지워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왜 기차가 멈추었는지, 그걸 궁금해하는 사람도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려 주는 저널리스트도 없었다. 시한 내 미복귀자 중징계, 감시와 처벌의 정치선전만이 천편일률로 일간지 탑을 채우고 있었다. 이런 판짜기는 보수 진보 신문 구별도 없었다.
실재와 보도사이의 간극. 복귀율은 높은데 왜 열차 운행률은 확연하게 떨어지는지 이 앞뒤 안 맞는 팩트를 아무도 의심하지도 설명하지도 않는다. 6월 29일 오후 4시 12분이 되어서야 YTN 경제속보에서 당초 5천명으로 알려졌던 파업 참가자가 2배쯤 많은 9천명대로 파악된다는 내용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9일 당시 복귀자는 87명에 불과하고, 전동차 운행 핵심인력인 기관사 복귀는 어제 자정 이후로 한 명도 없었다는 보도가 처음으로 나왔을 뿐이다. 강경한 징계 위협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철도노동자들이 비속을 헤매며 산개 파업 대열에 합류하고 있었고, "복귀자 속속 늘어 철도 운행의 정상화 절차 밟고 있다"던 기사가 오보였음이 분명했지만 아무도 해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파업은 단지 물의를 일으켰다 사라지는 정치 스캔들처럼 여겨질 뿐이다.
그동안 세상 속으로 숨어버린 철도노동자들은 잠정적 비국민의 신분이 노출될까 노심초사 불신검문을 피해 잽싸게 잠자리를 옮겨다니며 파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핸드폰은 끊임없이 울려댄다. 핸드폰을 타고 오는 소리들은 파업지침부터 철도청 관리자들의 복귀 종용과 가족들을 향해 들어가는 관리자들의 간접 압박까지, 갖가지 심리적 교란에 시달리게 만든다. 이동 중에 사보는 신문에는 온통 불법! 불법! 심란하기 짝이 없는 것들뿐이다. 왜 이 모든 것들을 견디는 것일까. 왜 만 명이 동시에 불법을 감수하면서 기차를 멈추고 종적을 감추고 이 유령 같은 파업을 계속 하는 것일까. 왜 그 이유를 차분하게 알려주는 기사는 단 한 줄도 없는 것일까. 마치 완벽한 사회적 합의를 이룬 듯 산개 파업을 하는 노동자의 이야기는 그 어디에서도 말해지지 않았다. 대신 파업 진압에 나선 관계 장관들의 말들은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마녀사냥을 호소하는 e-mail
우선 6월 28일 대국민 담화문이 발표되었다. "철도구조개혁은 노동쟁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명분 없는 정치파업 불법파업이다. 노조원들이 업무복귀 명령을 어길 경우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파면, 해임할 것이다. 민사상의 책임도 물을 것이다."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한 건교부 장관은 같은 날 오전 10시 30분, 기자실에 들러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주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노조가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정부가 빨리 해결하라"는 목소리를 끌어내려는 의도로 밀어붙이고 있으니까, 국민들은 "정부가 양보하지 말라"는 생각을 가지고, 공권력도 불사한 정부를 과감하게 격려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들을 빠르게 받아 적은 미디어들은, 온통 국민의 이름으로 정부의 파업대응 강공드라이브에 격려와 지지를 보내며 환호하는 대서특필을 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같은 내용의 이메일을 3만명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보낸다. 불법 집단행동을 용납해서는 안되며, 정부가 더 밀어 부칠 수 있도록 오히려 질책해달라, "선파업-후타협"의 나쁜 관행이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되며... 온통 용납할 수 없는 그 무엇을 호소하는 동보메일 3만통을 6월 29일 아침, 건교부 장관의 이름으로 뿌린 것이다. 참여정부가 호소하는 "참여"의 정체가 이런 것이었던가. 마녀사냥에의 참여를 호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 대검공안부는 주동자 즉각 체포영장을 발부 받은 상태에서, 파업관련 적극가담자 과격행위자 전원을 엄정 처벌할 것을 공표 했다. 복귀명령을 어긴 노동자들은 몇 천명이 되더라도 남김없이 처벌 징계할 것이며 반드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 관계 장관들은 너도나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데, 아예 공포정치의 망령을 부르는 주문처럼 들렸다.
노사관계의 탁월한 해결사를 자임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시절 TV 토론회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니 노동자여러분. 이 노무현이도 못 믿겠다면 누구하고 무슨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화끈한 직설화법을 기억하는 노동자들에게 참여정부 노동정책의 민망한 맨 얼굴이 드러나 버린 것일까. 철도파업이 선언되던 연세대 강당 입구에는 "노무현은 친구가 아니다" "이윤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다"라는 소자보가 붙어있었다.
법의 이름으로
6월 29일, 이번에는 법무부 장관이 나섰다.
"공무원이 파업 대상이 아닌 의제로 파업했고 절차를 어겼으니 분명히 불법 파업"이라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최종분석은 철도 파업에 담긴 문제제기 자체를 법의 이름으로 원천 봉쇄시키는 역할을 한다.
"말을 길게 하면 안 된다. 짧고 분명하게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냥 중징계라고 하면 국민이 잘 모를 수 있으므로 파면. 정직 등 분명한 표현을 써야 한다"
굉장히 디테일한 담화지침까지 내리면서 만명의 철도노동자들을 입체적으로 몰아부쳐 고립시키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다.
"앞으로 불법 파업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공권력을 투입하는 등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불법은 초기에 제압하고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국가의 법체계가 바로 선다"며 법치에 의한 국가의 통치행위를 부각시킨다. 일부에서 "선처"라는 얘기가 나오자 "그건 법무부 장관이 알아서 할 일"이라 여지없이 잘라버림으로써, 법 집행의 엄격성과 권위의 아우라만 강조된다.
여기 이윤과 효율성을 향해 달려가는 구조개혁에 대한 철도 노동자들의 공포감과 위기의식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철도노조 파업은 공공 영역으로서 철도에 대한 사회적 관계, 공공성과 이윤의 충돌 등이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겉으로 내세우는 요구가 무엇이든 간에, 파업에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모순이 내장되어 있다. 터져 나온 파업의 내면을 얼마나 섬세하게 주목할 수 있는가에 따라 정권의 철학이나 정치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변화와 개혁이란 이런데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도 파업이 호소하는 복합적인 문제점들 혹은 그 파업으로 인해 삐져나오고 환기되어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 할 근원적인 문제점들은 이번에도 법의 이름으로 완전하게 거세되어 버렸다. 군사, 문민,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 정부에 이르기까지 불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던 파업은 불가능했던 현실을 떠올린다면, "불법 파업론"에 입각한 법 집행이란 여전히 단죄를 목표로 한 국가권력의 담화이고 무력 진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국가이성의 "합법적인 도구"인 것 같다.
최상의 법은 국민을 존중하라 했고, 국가가 통치행위를 강조하고 부각시킬 때 국민은 파멸의 길로 걷는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굳이 책에서 읽지 않아도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국가가 법을 강조하면서, 제도나 절차와 충돌할 수 있는 사안들을 제도나 절차를 들어 단호하게 틀어막아 버릴 때, 그 때 나타나는 징후들은 대체로 불길하거나 억압적이었다는 기억을 갖고 있다. 법이 그 자체로 정의와 진리를 보장한다는 맹신 때문에 고통받은 시간들을 그다지도 쉽게 망각할 수 있는 것일까. 노조의 특혜보다 더 위험스러운 국가권력자들의 기억상실이 만약 법의 이름으로 은폐된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그 망각의 특혜를 회수할 수 있을 것인가.
이상한 명분론
그 다음 김진표 부총리와 권기홍 노동부 장관이 명분론을 들고 나왔다.
6월 29일 기자회견장. 화물연대, 조흥, 부산 인천 대구 지하철 노조 파업과는 달리 철도 파업에 신속하게 공권력을 투입하게 된 배경, 파업 대응이 강경 선회하게 된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진표 부총리는 명분 없는 파업에는 단호히 대처한다는 참여정부의 기본 방침이 실현되고 있는 것뿐이라고 일축한다.
명분이 없으면 공권력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면, 이때 명분은 명분 그 이상이다. 그럼에도 명분이란 단어를 굳이 사용한다. 명분과 공권력 사이, 생략된 내용은 무엇일까. 단지 명분만 없어도 공권력을 받아야 한다면, 그 명분의 여부는 어떻게 가르는가.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있느냐가 명분의 기준이라 설명한다. 조흥도 파업 돌입 시점까지 매각반대만을 부르짖었다면 명분을 상실했겠지만,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에 공권력 투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 잠시 난독증에 빠져야 한다. 명분이 없으면 공권력을 투입한다는 것이고, 명분 여부는 대화와 타협의 여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문맥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논리가 장관들의 입을 통해서 줄줄 나오고 있다. 결국 이 이상한 명분론은 정부의 구조조정을 문제삼는 파업은 대화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말이고, 정부가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판단하는 파업은 자동적으로 명분을 상실하게 되어, 강력한 법과 공권력으로 강제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매각을 인정하고 교섭테이블에 앉은 조흥노조와의 대비를 통해 명분의 기준을 설명하는 행간에는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자들의 판단과 저항을 체계적으로 배제시키는 정책이 일관되게 흐르고 있었다. 철도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돌발적인 강경 선회가 아니라, 구조조정 만능주의에 빠진 경제시스템을 대화와 법이라는 선택적 적용을 통해 관철시키는 참여정부의 기본방침이 실현되고 있는 것뿐이었다. 구조조정에 저항하지 말라, 거시경제의 틀을 짜는 데는 노동자들이 관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라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
2003년 6월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 까지 한달 내내 노무현 대통령의 노사관계 발언이 화려한 퍼레이드를 펼친 달이었다. 우선 6월 1일 삼계탕집 오찬회동. "경쟁력 해치는 노사관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문을 트는 것부터 시작한다. 삼성 엘지 현대자동차등 굴지의 재벌 회장들 앞에서 "경쟁력 있는 노사관계"를 위한 "대화와 법이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를 선물하며 건배도 외쳤다. 인삼주 가득 찬 술잔 높이 들고 사진도 찍었다. 20년 노동변호사 경력을 내세우는 대통령의 노사관계 인식 수준이 국가경쟁력이란 패러다임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사진까지 찍어 전국민 앞에 고백한 셈이다. 그 국가경쟁력을 위하여 희생을 강요당한 쪽은 언제나 노동자들이었는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는 가까이 앉아 사진을 찍어야 국민들이 안심할거라면서 프레임 구성까지 연출했다.
다음날 조간 신문에 깔린 이 사진을 보고 안심할 국민들과 가슴 철렁 내려앉을 국민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정녕 모르는 것인지, 대통령이 벌리는 "국민"참여게임에는 이미 버리는 카드가 준비된 것인지, 이를 두고 한겨레신문의 정석구 논설위원은 "99일만의 항복"이라 이름 부쳤다. 대통령의 오른손에 들린 하얀 술잔은 재벌들에게 흔드는 항복의 백기처럼 보인다며, 재벌총수들과 함께 먹은 삼계탕과 인삼주가 우리 경제에 보약이 되기보다 독약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6월 19일. 마침내 대통령은 노동운동이 도덕성과 책임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질타했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옛말도 있다지만, 이렇게 덜컥 노동운동의 도덕성마저 비난하고 나서는 참여정부의 도덕적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민주화 운동의 적통을 자임하는 도덕적 오만일까. 권력화된 민주화 운동이 누리는 사유의 특혜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억장 무너지는 말이지만, 파업 자체를 고사시키기 위한 위태로운 언어의 질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7일에는 아예 노조의 특혜를 없애겠다 장담했고 28일에는 법이라는 바퀴 하나를 민첩하게 굴려 공권력을 투입했다. 6월 마지막 날에는 드디어 "나라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고 못 박았다.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낡은 어법을 주어만 바꾸어 "나라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고 당당하게 구술하는 것이다. 개발 독재 시절부터 정말 지겹도록 듣고 또 들어온 논리다. 연어처럼 회귀하는 대통령의 말, 그 다음 무엇이 나올지는 눈감고도 외울 수 있다.
"노동자가 잘살기 위해서도 경제의 발목을 잡는 노동운동은 자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결론은 다음과 같다.
"노동조건을 대상으로 하는 투쟁이 아니라 지도부를 위한 노동운동, 나아가 정치투쟁은 정부가 보호할 수 없다"
"노동조건을 대상으로 한 투쟁"만 인정한다는 것은 노동관계법 독소조항을 악용하는 노조탄압 단골 매뉴얼이었다. 이런 매뉴얼을 짜면 노동운동 자체가 질식당한다. 단지 파업만 하고도 서너번씩 감옥을 다녀온 그 무수한 노동자들을 변론했던 민변 출신 법조인들과 노동계 인사들이 대통령 주변에 포진해 있지 않은가. 그뿐인가. "지도부를 위한 노동운동"이라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대통령의 눈에는 그 많은 노동자들이 단지 지도부를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파업을 억지로 하는 꼭두각시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불순분자들의 배후조정을 받고 있다"는 파시즘의 언어와 너무나 닮은 저런 말들로 "보호할 수 없는 파업"의 이유를 설명한다. 시간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한 불변의 논리들. 숨막히는 2003년 대한민국의 초여름. 그 보호할 수 없는 파업에 공권력이 투입된다. 이것이 "386 인프라"에 의해 실행되는 파업진압 프로젝트이다. 그래서 더욱 파업의 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교묘하게 유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참여정부가 보호할 수 있는 파업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정치적 감각과 판단이 들어간 파업은 왜 안 되는가? 공공부문 노동조건이 정부의 정책과 대립할 때, 대통령이 금지하는 그 정치투쟁이 안 되는 방법이 도대체 무엇인지? 노동자의 사고와 행동은 대통령이 그어놓은 금 안에서만 움직이고 저절로 드는 판단마저 언제든지 삭제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 될 수가 없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그 외침에는 단지 기계처럼 돌아가야 하는 중노동에 대한 증오만 담긴 게 아니다. 자유로운 인간으로 생각하며 살고 싶다는 선언이고 열망이었다는 것을 대통령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23년째 노동 상담을 해온 한울 노동연구소 하종강 소장은 CBS 시사자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루가 멀다고 노동조합을 비난하는 말을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요즘처럼 노동문제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 시기는 없었다"고 안타깝게 토로했다. "87년 현대중공업파업 때, 노동자들과 함께 도로에 누워 진압중인 경찰에게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외치며 눈물 흘렸던 투사 노무현의 모습을 대통령이 된 사람에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다른 대통령만큼만 노동자들을 욕하고, 다른 대통령만큼만 노동운동을 탄압하라"고 쓰라린 역설을 토했다.
패배보다 더 참혹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3일간의 파업. 그 보이지 않는 만 명과 정부의 전선은 업무 복귀시간을 놓고 그어졌다. 파업첫날이던 6월 28일의 업무복귀 시한은 오전 9시에서 정오로 넘어갔다. 다시 복귀 데드라인이 파업 둘째날인 29일 22시로 조정되었다. 그래도 복귀자는 늘어나지 않았다. 29일 22시까지 복귀 의사를 전화를 걸어 밝히고, 30일 01시까지 현장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징계를 면해주겠다는 최후통첩이 있었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크게 없었다. 결국 건교부는 전국 철도청 소속장에게 미복귀 파업 노조원 8500명에 대해 최소 정직 이상 파면, 해임 등 중징계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를 했고, 징계절차는 통상 20-30일 정도 걸리지만 10-15일 만에 끝낼 방침이라 밝혔다.
철도노조 지도부들은 일반 조합원에 대한 징계 수위가 점점 올라가는 압박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6월 30일 철도구조개혁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공식적인 노정 교섭 테이블은 단 한 건도 없는 가운데 파업지도부는 "선복귀 후협상"을 묻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7월 1일 오전 10시에 가진다는 발표를 하게 된다. 지역별로 집결한 노동자들은 파업을 접을 수 없다며 혼란과 슬픔에 빠졌지만, 이미 승패가 예정된 잔인한 파워게임, 정부는 마침내 완전한 백기투항을 받아냈다. 철도 구조조정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다.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게 우리 몸에 벤 습성이예요. 파업을 강행하고 싶지만 조직의 결정입니다. 기차를 멈추었지만, 영원히 멈출 수 없는 이상, 돌아가야겠지요. 하지만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이러고 살아야겠지요..."
3박 4일의 산개파업의 끝을 감당하지 못해 술을 마시고 있는 철도 노동자들에게 그날 20시까지 현장으로 돌아오라는 업무 명령이 떨어졌다. 어떤 사람은 목욕탕을 가고, 어떤 사람은 이미 귀가해서 잠을 자고 있는 17시쯤이었다.
"전쟁을 해도 항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대접을 할 수 없는 거다."
40대 중반의 노동자는 참았던 울음을 떨구었다.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는 일의 리듬에 억지로 몸을 맞추어 놓았으니, 정년하고 나면 억지로 맞추어놨던 것 도로 돌리다가 탈도 나고 그러니까 부고장 밖에 더 돌리겠어요? 힘들어도 노후를 준비할 수 있다는 안정감 하나로 꿋꿋하게 버텼는데, 이런 우리 생각이 이기적이라면 할 말 없지요."
"단지 연금 문제 때문만도 아니지요. 철도 구조개혁 그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건지 조만간 드러날거요. 그때가면 어째 손쓸 수도 없을 거요. 무기력하게 당하는 거 말고 뭐가 되겠어요. 그래요. 우리는 공무원이니까 명령을 따라야지요."
7월 1일 20시. 그들은 시간 맞추어 야간작업을 하러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업무명령이 핸드폰으로 울리던 그 시간. 7월 1일 17시. 오마이뉴스에는 "철도 파업으로 인한 영업 손실분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건이 논의된 국무회의 내용이 기사로 올라왔다. 외국인 투자 확대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관련부처에 대책 마련을 지시하는 대통령의 발언도 실려 있다.
"외국인 투자가 무산되거나 지연되는 사례에 대해서는 법적 수단 등을 통해 투자애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는 내용과 "외국인을 위한 원스톱 서비스도 제공하도록 노력하고 (산자부 외에) 타 부처에서도 적극적인 투자유인 정책대안들을 마련해 한번 더 논의하라"며 "투자유치에 관한 한 완전히 준비된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내용이다.
최재덕 건교부 장관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다른 일간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칙적인 해결이 국제 신인도를 높이는 데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여전히 같은 날. 7월 1일. 손길승 전경련 회장은 정부측에 4백조원의 "경제활성화기금"을 장기국채로 빨아들여 조성해 줄 것을 제안한다. 프레시안 박태견 편집국장은 시장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금융기관에서 저리금융을 조달해 금리차익을 거두거나, 부동산투기 차익을 치부해 본원적 축적이 가능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재벌들의 망상이라 논평했다. 개발독재 시절의 코리안 스탠다드 정경유착을 잊지 못하는 재계가 "정부명의의 저리자금"을 조달해 달라고 밀어붙이는 날, 한편 청와대 이정우 정책실장은 네덜란드 모델 노사관계 로드맵을 소개하면서 노동자들에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요구하는 브리핑을 가졌다.
철도노동자가 파업을 접은 날. 장마 중 맑은 하루였던 7월 1일. 대한민국은 이렇게 숨가쁘게 굴러가고 있었다. 차병직 변호사의 칼럼 제목처럼 "이 정도 파업을 용납할 수 없는 사회" 우울한 7월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차 변호사는 "정부와 시민들은 노동자들을 위로할 줄 알아야 하며, 징계 절차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노동 투쟁의 일시적 결말은 결국 슬픔을 나누어 숨기는 일이다."고 했지만, 그들의 슬픔은 우리가 미처 나눌 수도 없는 것 같다. 이미 산개투쟁을 하던 허름한 민박집에 낚시터에 3박4일 동안 흩뿌리던 장마비속에 숨겨두고 왔기 때문이다. 사라진 그들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못했기에 우리 모두는 그 이유를 자초지종 알 수가 없었다.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는, 말할 수도 없고 귀기울일 수도 없는, 이 소통불능의 사건을 놓고 공권력이 투입되었고, 그것을 "원칙적인 해결"이라 강변하는 관계 장관은 "국제 신인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서를 제출했지만, 파업과 국제신인도의 오래된 연결고리 말고는 아무 것도 해명된 게 없었다. 국제 신인도를 위해서 파업은 언제까지 봉쇄되어야 하는가? 왜 파업을 했는지, 정부나 사회는 그 파업을 어떻게 수용하고 만나고 부딪쳐야 하는지, 그 어떤 것도 성숙하게 검토되거나 숙고될 수 없었던 가슴 아픈 경험이었다.
끝없는 구조조정의 물결에 밀려 지리멸렬 부서진 노동자들 또한 끝없는 파업의 물결을 만들지만, 결과는 패배보다 더 참혹하다. 이제 참여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배제 당하는 계층이 단지 노동자들이기만 할까. 개발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쳤던 "인간다운 삶"은 존재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렸고, 2만불 시대를 내거는 성장이데올로기의 악몽은 시작된 것 같다. 경제위기에 대한 참여정부의 참을 수 없는 히스테리가 "투자유치에 관한 한 완전히 준비된 나라가 되어야 한다"면서 우리 모두를 성장독재의 늪 속을 헤매도록 만들 것이다. 비비안느 포레스트의 말처럼 "다가올 시대가 어떠할런지에 관해 미처 검토해 볼 틈도 없이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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