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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째 날(8월 1일)
(15)
다시 서남동 길 위에
현대의학은 참으로 경이롭다.
71년 전에 나는 개복 수술을 받고 반년이나 입원했었다.
일제가 다이토아쿄에이켄(大東亞共榮圈)을 내세워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1941년이다.
장기 입원이었다 해도, 당시에는 수술받았다는 것 만도 엄청난 행운이고 축복이었다.
한대, 터진 맹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대장이 시시각각 썩어들어가고 마치 시궁창인
듯 엉망인 뱃속인데도 싱글 포트(single port/단일공) 수술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다니.
이제는 개복은 물론 다공복강경수술도 옛일이 되고 말았는가.
장기간 입원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9일만에 퇴원했다.
추스르는 기간을 반년은 잡아야 한다 했지만 2개월 만에 다시 길 위에 섰다.
각종 검사를 통해 이상 없음을 확인한 후 5월 31일로부터 두달 하루만인 8월 1일에.
터질 맹장이 없으므로 안심해도 되지 않겠는가.
좀 더 회복된 후에 떠나라고 말리는 가족을 비롯해 모든 이에게 우스갯소리처럼 했지만
실은 염원이 담긴 말이다.
광주광역시 송정리를 경유해 도착한 영광읍 버스터미널에서 한 노제(路祭?)를 지냈다.
타고 온 직행버스에 스틱 1세트를 두고 내림으로서 번잡한 절차를 밟아야 했으며 버스
회사의 협조로 운전기사와 통화해 그 버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으니까.
후속 조치를 신속히 취함으로서 운전기사가 보관할 수 있었으며 이 일련의 과정을 가능
하게 한 것은 오직 휴대전화(mobile,cellphone)다.
택리지 현지답사때인 2009년 10월 4일에 일어난 강진 스틱사건(메뉴 '우리의 이야기들'
361번글 참조)의 복사판이다.
그 때도, 전적으로 일상 필수품이 되어 있는 휴대전화 덕에 찾았으니까.
벨(A.G.Bell/1847~1922)이 1875년에 발명한 전화가 23년후인 1898년에 우리나라에도
상륙한 이래 1970년대 초까지도 일반 가정에는 특수재산중 하나였다.
당시에는 백색전화라 해서 매매가 가능했으며(사용권만 허용된 소위 청색전화의 등장
이전) 서울시에 22만여대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10여년의 단기간내에 유선전화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남녀노소의 필수품이 된
휴대전화 시대를 거쳐 바야흐로 스마트폰(smartphone)시대인데 다음 시대는?
토플러(A.Toffler)에 의하면 지난 1900년간 활동한 과학자보다 많은 수의 과학자가현재
활동중이라니 예측 불가의 발전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다.
2시간여의 노제를 마치고(스틱을 받고) 염산면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15시 40분.
즉시 두우리 해변을 향해 77번국도를 걷기 시작했으나 2개의 악조건을 어찌한다?
아스팔트를 녹이는 듯한 삼복 염천과 수술 후유증이다.
수술 후유증에는 달래며 적응하는 제혜와 시간이 필요하며 폭염은 체력으로 극복해야
하는데 이 때 내게는 모두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잘라내고 잇고 꿰맨 자국들이 총궐기라도 한 듯 수시로 걸음을 멈추게 했다.
허약해진 체력으로 불볕과 싸운다면 백전백패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곳곳에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매우 어렵게 봉남리 구내저수지(합산지)~ 송암리~ 두우리의 10km쯤을 걸어서 도착한
백바위 해변의 전망 좋은 정자 백암정(白巖亭)에서 나의 서남동 길은 재개되었다.
칠산도가 한결 더 가깝다는 이유에선지 77번국도를 비롯해 바닷가 길은 모두 칠산로다.
기괴한 바위들이 하얗다 해서 백바위, 백암정이며 해수욕장, 갯벌체험장이 있다.
두우권역 커뮤니티 쉼터와 녹색체험마을, 정자를 잇는 인도목교와 보행데크 등 편의를
위해 공을 들였음이 분명하나 아직 성수기인데도 한가롭다.
그 까닭이 연계 교통의 열악 또는 홍보의 부족이라면 여지가 있으나 자연의 인력(引力)
이 약한 탓이라면 대책이 없다.
역겨워 가는 방부목문화
방부목 보도가 77번국도 따라 고개마루까지 길게 올라와 있다.
팔도의 산에도 들에도, 강에도 바다에도, 도시에도 농어산촌에도 방부목 다리와 계단,
데크와 보도 등 바야흐로 방부목 만능 시대다.
날이 갈 수록 이 나무판 길이 지겨워가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감당해 낸다?
전혀 불필요한 곳에도, 주변의 돌로 처리할 수 있는 지역까지도 방부목 일색이다.
적은 비용과 짧은 공사기간 및 손쉬운 작업 과정 등의 적지 않은 이점을 인정해도 이미
해놓은 시설들을 볼 때 1자리수의 수명을 극복하지 못하는데도 왜 방부목 일변도일까.
오래지 않아 우리나라는 방부목 시설들이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빨리빨리'라는 조급증과 '내 임기내'라는 실적(성과)주의 때문이다.
누군가 토로했던 떡고물의 유혹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로마시대의 길을 걸어보라.
누가 2천년 세월이 지나간 길이라 하겠는가.
세고비아의 수도교(水道橋)를 비롯해 로마인의 건축물들을 보라.
아무런 설명없이 그 장중(莊重)함과 견뢰(堅牢)함만 보았다면 밀레니엄(millennium)을
두 번이나 겪었음을 믿겠는가.
단지 며칠을 살아도 몇십년을 살 것 처럼,
1년을 살아도 평생 거주할 뿐 아니라 자자손손 대를 이을 듯 전력을 다한 그들에 비해
우리는 어떠한가.
불행하게도 평생 살지라도 며칠 살다 말 집처럼 짓는다.
자자손손이 이용할 길을 내면서도 1년쯤 후에는 없어질 것처럼 닦는다.
그리고는, 새 것 냄새가 사라지기도 전에 누더기가 되면서도 짧은 공기를 자랑한다.
해안길, 산길이라면 어렵잖게 구할 수 있는 돌로 천천히, 다시는 거의 손이 가지 않도록
야무지게 닦을 수 있으련만, 로마인은 했는데 우리는 왜 못한단 말인가.
나는 날로 역겨워가는 이 행태를 방부목문화라고 정의한다.
우리의 일상 생활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깊이 파고든 소위 방부목문화를 유산으로 받게
될 후손들이 가엾지 않은가.
왜냐하면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천재지변이 없는 땅이지만 과연 안심할만 한가.
이 백성이 겪어온 온갖 수난은 못된 조상에 그 자손이기 때문인 업보지만 그래도 어여
쁜 데가 있는지 그동안 참아주신 분이 더는 못참겠다 하시는 날 이 땅은 어찌될까.
후쿠시마 쓰나미와 원전사고(福島津波原電事故)가 과연 남의 나라 일인가.
이웃나라의 이같은 사고가 강 건너 불인가.
우리에게도 진득하고 지긋한 데가 있었다.
1년을 경영한다면 농사를 짓고 10년이라면 나무를 심고 100년지계는 교육이라고.
그러나 지금은 방부목문화가 판을 치고있다.
거의 모든 일이 4년(지자체) 또는 5년(대통령)을 넘지 못한다.
있다 해도 거의 모두 폐기되거나 뜯어고치기 때문에 연속성이 없다.
그래서 소위 새 정부가 들어서면 마치 새 나라를 세우는 듯이 요란법석이다.
준비된 대통령이란 당선과 동시에 배턴 터치(baton touch)하여 국가를 운영할 정도로
정부기능(shadow cabinet)을 갖추었음을 의미해야 한다.
온갖 사술(詐術)로 국민을 현혹하여 권좌에 오르면 국가권력을 정복자의 전리품쯤으로
취급하며 주고 받는데 혈안이다.
자기 그릇은 망각하고 덥석덥석 받으며 백골난망(白骨難忘), 견마지로(犬馬之勞), 결초
보은(結草報恩) 등 줄줄이 아첨 수사다.
그러니까 말끝마다 국민을 들먹이지만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이런 나라와 국민에게 내일이 과연 있는가.
큰 봉변을 당할 뻔 했다
햇살이 엷어가는 때 두우리 어촌마을 체험관 앞으로 갔다.
개조한 갯벌버스도 고창 하전마을에 비해 대형이며 나름의 정성을 쏟고 있는 듯 한데도
백바위쪽과 마찬가지로 썰렁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긴, 인구는 일정한데 전북 부안 모항에서 전남 서-남해안이 온통 갯벌체험장이 되어
지자체마다 유객(誘客)작전을 펴고 있으니 특단의 대책을 세울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지자체 경영자들의 경영 마인드(mind)다.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수입원을 늘리려는 의지 이상의 머리가 없기 때문에 황당한 일들
을 벌이지만 하는 족족 실패하고 남는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뿐이다.
228개 기초지자체 중 150개(65.8%)가 자립도 30%미만(10%미만12, 10~30%미만138/
2012년통계청)으로 경직성경비의 집행마저 어려운 지자체가 이에 해당한다.
급여 지급마저 힘든 형편인데도 터무니 없는 경쟁적 겉치장이야 말로 빛좋은 개살구에
다름 아니라고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지인들의 자기 고장 걱정이 태산같다.
지방자치제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 또는 핵심임을 어찌 모르랴만 현실적 해악으로
인해 지자체의 회의론 또는 무용론에 침잠되어가고 있다.
남서로 길게 난 갯벌체험장 제방은 '남도 갯길 6000리'의 영광 천일염전길이다.
갯길은 갯벌길을 뜻하며 여기에서 말하는 '남도갯길'은 영광군에서 경남 하동과 경계인
광양시까지의 전라남도 해변길 6.000리를 뜻할 것이다.
국립해양조사원 자료(2001~2009)에 의하면 한반도 남반부에서 가장 많이 바다에 접한
전라남도의 해안선은 6.109km다.
도서부3.595km를 제해도 2.514km, 10.056리가 되므로 당국에서 설정한 갯길은 전남도
육지부 해안선의 60%쯤 된다.
갯벌과 염전을 가르는 긴 둑길의 끝에 이를 즈음에 해가 바다 저쪽으로 지고 있었다.
비록 걷기좋은 시간대라 해도 아직 적응이 제대로 되지 못한 몸을 고려한다면 지체없이
돌아서야만 했다.
그럼에도, 금방 어두워질 시간에 난생 처음 길이며 둑의 끝에 대해 아무 정보도 가지고
있지 못한 길을 강행하는 것이야 말로 상식을 거부하는 짓이다.
게다가 임무가 종료된지 오래인 듯 해안 경비초소 주변은 반키가 넘는 숲으로 우거져서
전진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왜 고집을 부렸을까.
만조때는 꿈도 못꿀 바닷가 바위지역을 90도 회전해 겨우 둑에 올라섰으나 역시 우거진
숲길인데다 몇발자국 옮기지 못해 제지를 당했다.
상거가 제법 되는 양어장 둑쪽에서 소리치는 분기 탱천한 고함때문이었다.
당장 오던 길로 돌아가라지만 상상하기도 끔찍한 길을 어찌 되돌아 간단 말인가.
전진을 포기하고 양어장 입구 집을 향해 가는데 이번에는 금방 요절낼 듯이 달려왔다.
내가 조금만 젊어더라면 그는 아마 참지 못했을 것이며 나는 큰 봉변을 당할 뻔 했다.
거액의 빚을 투입해 건곤일척의 게임중인 새우양식장이란다.
새우는 바이러스 감염에 아주 민감하다는데 방역처리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외부의
무단 침입자를 용납할 주인이 어디 있겠는가.
112를 부르겠다, 새우가 폐사되면 배상을 청구하겠다, 인적사항을 대라 등 강경했다.
하지만 이 양식장 주인에게 내가 헤살을 놓을 억하심정이 있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영문을 모르고 고성에 놀라서 나온 차분한 아내의 설득으로 누그러지기는 했으나 곧 60
줄에 들어선다는 그가 참느라 씩씩거리는 것으로 보아 내가 엄청 무모했던 듯.
진정이 된 후 비로소 늙은이가 제대로 보이는지 궁금한 것들을 물어왔다.
염치불고하고 재워달라 하면 그러기라도 할 듯한 정이 있는 부부다.
얼음냉수까지 제공하며 돌아갈 길을 안내할 정도로.
밀물에 잠깨고 썰물에 잠들고
그러나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어둠이 양식장과 광활한 염전을 덮어버렸다.
체력은 이미 아무 감응도 가질 수 없도록 바닥이 났고 남아 있는 것은 석양에 눈여겨 둔
정자로 가야 한다는 의식뿐이었다.
컴퍼스로 방향을 확인하며 희미한 가로등 불빛따라 걸어가게 한 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반복을 거듭하는 동안에 체질화 된 관성이다.
염전 한가운데로 길게 들어선 소금창고를 겸한 집에 인적이 있을 뿐 적막강산이며 간혹
자동차 전조등 또는 후미등이 길임을 확인시켜 줄 뿐 장기판 길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마침내, 차량 왕래가 끊김으로서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일 듯 싶었을 때 사도 야고보의
마드리드 길에서 사용했던 방법을 꺼냈다.
길 한복판에 서서 마지막 차량일 지도 모를 뒤에서 오는 차를 세운 것.
시도가 적중하여 두우리 도로까지 진출했으며 곧 칠산로변의 정자에 도착했다.
백수해안로의 칠산정과 동명이정인 염산면 두우리 상정마을의 칠산정(七山亭)이다.
정자 마루에 천막을 세울 기력마저도 없어 한동안 발랑 누워 있었다.
하체의 근육이 경직현상을 일으켜 임의로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다.
몸이 2개월에 걸쳐 편한 맛에 순치된 탓일 것이다.
신체 각 부위가 똘똘 뭉친 듯 대드는 형세가 워낙 세서 수그러들 때까지 넋놓고 있다가
천막을 친 후 낮에 영광에서 구입한 떡 남은 것으로 저녁식사를 대신했다.
배낭 안에 라면이 있고 지근에 가게도 있으나 억지로 거동하는 것 보다 더 실리적일 듯
싶었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기 때문이다.
밀물 파도치는 소리에 2시간도 못되어 잠이 깼다.
해변의 천막 생활이 거듭되는 동안 자리에 누워서도 밀. 썰물 때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진 파도소리다.
6.25동란의 총성이 멎기 직전, 한 시골 역 인근의 작은 절에 유폐되어 있던 때 일이다.
1일 몇회 되지 않는 열차의 바퀴 굴러가는 소리를 반복해 듣는 동안 상. 하행선 열차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사춘기였던 그 때에는 상행선 열차가 떠난 후 한동안은 누군가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에 사로잡히곤 했었지만 지금은 단지 파도소리일 뿐이다.
그 때는 거동을 하지 못하고 격리된 절망의 시기였기에 그랬지만 지금은 늙은이의 전적
자의의 나그네 길이므로 감상적일 이유가 없다.
그래도 동향으로 지은 집을 남향으로 개축했다.
자리에 누운채로 리드믹(rhythmic)하고 은은한 파도소리를 보내오는 바다를 볼수 있게
했는데 가볍게 들어 방위를 임의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천막집의 장점이다.
특히 내 천막은 반듯이 누워서도 하늘을 보고 별들을 헤아리며 그들과 속삭일수 있도록
천정에 투명창이 나있는 것이 특징이다.
산야에서 별을 보며 잠드는 내 통비닐 인생을 늘 안타까워 한 지인 K의 선물이다.
그는 이 늙은이로 하여금 통비닐 생활을 청산하도록 통비닐의 장점을 살려 설계했으며
그의 회사가 제작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천막이다.
잠자리가 안온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몸이 많이 편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곧 썰물에 잠이 들어갔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