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리포트 pt.10
[Beijing Report, 2008년 10월 12일 일요일]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났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하루 종일 쉬는 날이었다. 10시 반 즈음에 일어났기 때문에 아침식사는 할 수 없었고 대신 11시 반에 따뜻한 수프와 야채 분[bun]두개만으로 브런치를 해결하였다. 이제부터는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지만 과식은 절대 금물이었다.
12시 즈음에 다음 카페 화여자[화폐 - 여행과 자유]의 회원이신 닉네임 ‘떠돌이’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떠돌이님께서는 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고 나와는 한번도 직접 만난 일이 없었는데도, 화여자의 정회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만디챠오와 빠궈스로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하여 직접 데려다 주셨다. 이러한 극진한 대접에 정말로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마침 집에 2008년판 클라우스 세계화폐도감이 여분으로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 권 선물해 드리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오늘 받은 극진한 대접과 돈으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화폐수집가로서 갖춰야할 노우-하우와 실전 지식에 대한 습득은 이러한 책 한권으로는 도저히 만회하기 힘든 은혜였다. 두고두고 떠돌이님에게 진 신세를 갚아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빠궈스보다 만디챠오가 더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만디챠오를 들렸다. 빠궈스가 고대, 중세 주화들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시장이라면, 만디챠오는 주로 지폐를 취급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규모의 엄청난 시장이었다. 조그마한 소, 도매상들이 엄청난 수로 빼곡하게 입점하고 있는 곳이 만디챠오였다.
떠돌이님께서는 화폐를 보는 방법, 그리고 여러 나라 화폐의 상황, 중국 화폐수집 시장 사정 등에 대한, 책이나 인터넷으로는 알아내기 어려운 살아 있는 지식들을 나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알려주셨다. 공짜로 먼 곳까지 에스코트해주셨는데, 그것도 떠돌이님의 사모님까지 함께 한 동행이라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는데, 이렇게 중요한 지식과 노우-하우까지 전수받으니 감사하다기보다 죄송하다는 감정이 더 앞섰다.
홍콩에서 베이징 올림픽을 기념하여 발행한 지폐가 있는데, 십원이라고 쓰여 있는 지폐 한 장에 무려 1500위안을 불렀다. 우리 돈으로 따지자면 현재 시세로 삼십만원이었다. 그러나 떠돌이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미 이러한 기념 지폐가 600만장이나 발행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기념지폐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셨다. 이렇게 해박한 지식을 갖춘 분과 함께하는 화폐수집 관광이라서 불이익을 당할 일은 없었다.
만디챠오의 한 상점에서 우리는 북한 지폐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47년도에 일차 발행되었던 최초의 북한 지폐는 빛에 비추어봤을 경우 빗살무늬가 보인다고 떠돌이님께서 말씀해주셨다. 그 상점에서는 마침 빗살무늬가 보이는 미사용 진품 10원짜리 북조선 지폐들을 여러 장 보유하고 있었다. 장당 200위안에서 100위안까지 내릴 수 있는 대단한 흥정 능력을 보여주셨지만 결코 구입하지 않으셨다. 나는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가격이라 한 두 장정도 살까 잠시 망설였지만 떠돌이님께서 그냥 자리를 뜨시기에 어쩔 수 없이 나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잠시 후 나에게 구입의사가 있는지 물어보셨고 나는 국내에서 유통되는 동일 지폐의 가격보다 저렴하다면 사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다시 가보니 이제는 마음이 바뀌었는지 장당 가격을 150위안에서 더는 안 깎아주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빠궈스는 화여자의 한중일 주화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그 이미지 그대로였다. 그러나 실제로 육안으로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다. 여기서도 떠돌이님께서는 가품을 살 가능성이 희박한 곳으로 안내해 주셨고 나는 그 곳에서 당, 북송, 명, 청,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시절에 발행된 주화들과 영식민지 시절인 1895년도에 발행된 홍콩 10센트짜리 은화를 구입할 수 있었다. 23개의 동전 중에 7개 정도는 다음 카페 화여자에서 분양할 생각이다.
이렇게 떠돌이님 내외분과 내가 빠궈스를 돌아다니던 중, 한 한국인 신사와 조우하게 되었다. 떠돌이님과 절친한 분인 듯 보였고, 교수님이라고 부르시는 것으로 봐서 중국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 분으로 보였다. 떠돌이님은 지폐 전문가, 교수님은 주화 전문가이신 듯 보였다. 이 교수님에게서 나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기에 나의 만디챠오-빠궈스 여행은 대성공이었다.
특히 떠돌이님이 이 교수님의 도움으로 구입하신 명화[明化]라는 동전은, 춘추전국시대에 만들어진 진품 동전으로, 대단한 가치를 갖고 있는 듯 보였다. 이 교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동쪽 지역에 해당하는 곳에서 대량으로 출토된 동전으로, 고조선의 동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설명에 의하여 그 동전을 직접 보는 일이 감격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왠지 모르게 역사에 대한 문외한이면서도 뿌리를 찾은 것 같은 엉뚱한 느낌도 들었다.
돌아오는 길까지 차로 데려다 주셔서 나는 떠돌이님 내외분에게 여러 차례 고개 숙여 인사드리고 앞으로 이 은혜를 두고두고 갚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정말로 대단히 친절하신 분들이라 부담스럽고 미안한 마음을 어찌할 바 몰랐다.
정말로 대단한 타이밍이었는데, 내가 바로 차에서 내려 센터로 돌아오니 셔틀버스에서 한국 블리츠/래피드 체스팀이 내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한국국가대표 체스팀을 반갑게 맞으며 그들을 숙소로 안내해 드렸다. 그리고 저녁식사 시간 이후, 홍보 부족으로 선수단장 미팅에 불참하게 된 한국팀에게 대회의 규정과 주의사항에 대하여 별도로 공지하는 모임을 가졌다.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되었다. 한국이 메달 권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60개국 중 57번째의 시드를 받았으므로 최소한 시드번호보다 더 높은 성적을 내는 일은 가능성이 있었다. 우리가 외부의 기대치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을 위하여 이제 그만 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