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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리링!”
핸드폰이 울린다. “띵동”한 번이면 메시지인데 길게 울리는 것을 보니 전화가 온 것이다.
“뭐지?”
워낙에 전화를 통한 마케팅도 많고 보이스 피싱도 많아서 부정적인 마음이 앞서면서도
궁금한 마음에 잠금 표시 부분을 장기영 등산 총무가 밀어서 푼다.
“어? 김영만 회장이네! 웬일이지?!” 속으로 웅얼거리며 핸드폰을 귀 가까이 가져간다.
“어이구, 회장님 웬일이야?” 애인한테 온 것만큼 반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가 약간 높다.
“응. 잘 지내지? 은행은 별일 없어?”
흔히 본론은 따로 있으면서 먼저 인사말로 던지는 말이다.
하지만 퇴직 후 백수로 있어야 할 나이에 다니는 직장이라 다들 서로간의 안부 문의는 마음에 깊이 와 닿는다 .
“응, 그냥 지내지 뭐, 이제 은행 매각 공고가 나갔으니까 곧 매각되면 그만 두어야지.”
모 시중은행을 명예퇴직 후 백수로 빈둥대다가 어찌 어찌 해서 저축은행을 3번이나 갈아타면서 2년 넘게 다니고 있다.
몸담고 있던 가교저축은행이 매각되면 다른 가교저축은행으로 갈아타곤 했던 것이다. 지금 있는 곳도 곧 매각이 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끝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이번에는 남아 있던 가교저축은행을 일괄해서 매물로 내 놓았는데 대부업체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매수 의사를 표시해 와 더 이상의 가교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응, 그렇구나! 그리고, 다름이 아니라, 2월 산행 안내 메시지가 와서 그러는데...... 지난 번 신년회 때 등산비 지원요청 제안이 있었잖아. 다들 긍정적으로 생각하더라고. 어떻게 지원하는 것이 좋을까 해서....”
엥? 이게 웬 횡재야! 요청을 하기는 했지만 지원이 될까 반만 기대 하였는데 정말 지원 해 줄려나 봐!
장총무의 귀가 번쩍 뜨인다.
“아! 그랬었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듯 장총무가 능청을 떤다.
“ 정규 산행을 일 년에 6번 하니까 한 50 만 원 정도를 년 말에 지원하는 것은 어떨까?”
‘글쎄, 그런 것도 괜찮겠지?“ 장총무가 선뜻 답을 못 한다.
“지금 결론을 내기 뭐하니까 이번 산행에서 만나 멤버들하고 의논해서 연락을 줄께!”
결국 결론을 뒤로 미룬다.
아침부터 날이 흐리고 찌뿌둥하다.
“오늘은 몇 명이나 오려나.”
장총무는 참석 인원이 신경 쓰이는지 아침부터 궁시렁댄다.
지난 번 과천 쪽 청계산행 때에는 이영희 회원과 둘이 올라갔다. 몇 달 전에 회원들에게 적은 인원이 참석해도 좋다고 호기를 부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단 둘이 산행하는 것은 보기에도 좀 그렇다. 애인끼리 가는 것도 아니고. 물론 즐거운 산행같이 보이기는 했다.
이번에도 참석인원은 적을 것 같다. 늘 나오던 최영권회원은 결혼식이 있다고 하고 차기 총무를 맡아야 하는 한상희 회원도 일이 있어 못 온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그래도, 발이 아파서 산행에는 참석 못 하지만 하산 후 뒤풀이에는 오겠다고 한 박종만 회원과
근년에는 거의 나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던 박성목회원이 집안 일로 참석 못하게 되서 미안하다고 연락온 것은
그나마 장총무에게 큰 위안이다.
“에이! 날씨라도 좀 좋아야 하는데.”
“더구나 오늘은 날씨도 춥고 눈이 쌓여 미끄러울 터인데. 산행 장소도 불광역 쪽 산행은 우리 모임에서 처음이고....”
이것저것 산행하고 싶지 않을 요소가 다분하다.
전에는 이영희 총무가 산행 메시지를 보내고도 회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했다.
참석여부를 확인하고 꼭 참석할 것을 종용하고는 했던 것이 장총무의 뇌리를 스쳐간다.
“나 위해서 나오라는 것도 아닌데 매번 전화해야 하나! 나오면 자기 건강에 좋은 거지 뭐!”
찜찜한 마음을 그렇게 달래 보지만 지난 2년간 자신이 한 활동을 돌이켜 볼 때 회원들에게 소홀했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불광역 2번 출구를 나와 시계를 보니 정각 10시 1분전. 신호등 때문에 건너지는 못하고 모이는 장소인 맞은 편 경찰서를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가만있자, 우리 편이 나와 있나?”
옆 사람이 자기에게 한 말인 줄 알고 장총무를 쳐다본다.
장총무가 자신도 모르게 한 웅얼거림이 입 밖으로 샌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진 것 중의 하나가 혼자서도 곧잘 입 밖으로 웅얼거린다. 젊었을 때 노인들이 혼자서 궁시렁 대면 저 노인네 미쳤나? 그랬는데 이제 장총무가 그러고 있다. 휴!
눈을 찡그려 확인을 하려 해도 시력이 전 같지 않은지 잘 모르겠다는 눈치다. 저쪽에 2명이 같이 있는데 우리 편인가? 나를 보면서도 손을 흔들지 않는 것을 보면 우리 편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한 사람은 영희 같고 다른 사람은 누구지? 날이 춥다고 죄다 뒤 집어 쓰고 있으니 천상 가까이 가야 알겠네.
신호등이 바뀌어, 가까이 가니 점점 얼굴윤곽이 드러난다.
“히히 대균이구나. 어떻게 연락도 없이 왔지!”
너무 반가워 안아 줄 기세다.
“그 간 잘 있었어?”
악수한 손을 몹시 흔들면서 안부 인사를 주고 받고는 낄낄댄다.
늘 닦았겠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는지, 다소 덜 하얗게 된 이빨들이 드러난다.
“누구 오겠다고 연락 온 사람 있냐?” 10시 10분쯤 되었을까 영희가 못 참고 묻는다.
“없지 뭐.” 장총무가 인원이 적어 미안한 듯 눈 만 껌벅이면서 대답한다.
“그럼 올라 가자!” 영희가 재촉한다.
“그래, 가자!” 장총무와 대균이가 따른다.
구기터널을 몇 백 미터 앞에 두고 오른 쪽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최근 며칠 간 날이 푸근해서 그런가 눈이 녹아 미끄럽지는 않고, 좀 가파른 곳은 어김없이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우리나라 부자 됐어! 이런 것 까지 해 놓고....”
누군가 나라가 많이 좋아졌다는 흐뭇함을 털어 놓는다.
여기다 “000대통령이 잘 하는 것 같아!“ 라는 말만 하면 불에다 기름 붓는 것이 된다.
정치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ㅋㅋ
다른 때 같았으면 등산객이 많았을 터인데 그렇지는 않다.
다리가 연신 산을 오르는 동안 입과 귀도 계속 운동을 한다.
상인이가 알려준 건대 고전강의에 관한 야그, 히말라야 트랙킹 갔다 온 야그 등을 주고 받으며 얼마를 오르니 전망대가 나타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망대에 서니 정말 장관이다. 흐린 날씨에도 이렇게 경치가 좋으니 맑은 날은 얼마나 좋을까!
멀리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보현봉, 기타 봉봉들이 눈길 가는 대로 부채 모양으로 좍 펼쳐진다. 한 폭의 동양화다.
“내, 북한산에 자주 왔지만 경치가 이래 좋은 줄 몰랐네!”
대균이의 탄성이다. 약간의 경상도 사투리는 저절로 섞인다.
제법 가파른 노정이 탕춘대성암문에 이르자 완만하게 바뀐다. 탕춘대 성암문이냐 탕춘대성 암문이냐를 따지다 영문자가 탕춘대 성암문으로 띄어져 있어 그 것으로 결정하고 다시 길을 시작한다. 한 참을 씩씩하게 오르니 등에 땀이 제법 밸 즈음 포금정사지로 가는 길과 족두리봉쪽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에라, 좀 쉬어 가자.”누구 말 이랄 것도 없이 찬성이다.
털썩 주저앉아 가지고 온 먹을 것을 꺼낸다.
대균이가 “로스케 초코렛” 이라면서 나누어 준다.
“무슨 초코렛?”
영희가 잘 못 들었는지 들었어도 이해가 안 되는지 되묻는다.
나도 처음에는 뭔 소린가 했다.
“로스케!”
대균 이가 큰 소리로 확인 시켜주면서
“와이프가 러시아를 방문한 길에 사왔다”고 덧붙인다..
그제야 과거에 러시아를 그렇게 불렀던 것이 생각났다.
“로스케” 정말 오랜 만에 듣는 단어다. 머리 속 한 구석에 처 박혀 완전히 잊혀져 있던 놈이다.
러시아 어느 지역에 무슨 일로 갔는지 물었다. 대답을 했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궁금하면 다음 번 산행 때 꼭 참석해서 직접 물어보길 바란다. 너무 많은 것을 공짜로 알려주면 좀 거시기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보드카라면서 조그만 술병을 꺼낸다. 중국집의 이과두주병보다 좀 더 큰 술병이다. 역시 러시아에서 가져 온 것이란다. 병을 따서 한 모금씩 돌린다. 아주 독할 것이라고 예상을 하였는데 과일 주 맛이다. 독하지도 않고.
한 번 마셔보라고 영희에게 대균 이가 건넸지만 어제 대장 용종을 몇 개 떼어 냈는데 의사가 자극성 물질은 먹지 말라고 했다면서 손을 내 젓는다. 장총무가 가져온 귤로 이빨을 청소하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족두리봉을 향한다. 옛 시골길 같은 비탈길을 걸으니 제법 운치도 있다. 구름 안개가 짙어서 멀리 상명대쪽의 경치가 흐릿하게 보인다.
족두리봉 부근에서 장총무가 잠시 망설인다.
족두리봉의 앞으로 내려갈까 뒤로 내려갈까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결국, 늘 다니던 족두리봉의 뒤쪽은 하루 종일 해가 들지 않아 쌓인 눈이 얼어붙어 미끄럽다며 다소 가파르지만 앞 쪽으로 가자며 앞서 나간다. 정말 눈은 없고 흙도 보송보송하다. 그래서 그런지 여성 등산객이 계속 이어져 온다. 얼마를 내려가다 나이 좀 먹은 여성분들이 올라오자 참다 못한 우리 일행중 한 사람이 힘들게 뭘 올라 가느냐 우리하고 내려가서 식사나 하자고 말을 붙인다. 하지만 그 쪽의 답변 왈 “어르신들은 어서 갈 길이나 가세요!” 하면서 한 칼에 자른다. 크흐흐 어떻게 좀 해 볼까 하다가 된통 맞았다.
“원 예길, 우리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더 이상 말도 못 하고 낄낄 대더니
“아이고, 나도 한 물 갔네. 예전에는 말 한 마디만 던져도 100% 부킹 됐었는데!”라며 탄식을 한다.
“다 그런 거지 뭐!” 모두들 세월의 흐름을 안타까워 하며 불광역을 향해 내려갔다.
종만이가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아직 안 왔다.
만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내려오는 중에 전화 통화를 했는데 말이다. 기다리다 못해 역에서 가까운 식당으로 갔다. “행복식당”인가 역과는 붙어 있어 찾기도 쉬운 곳이다. 벌써 식당 이름이 가물가물하니 장총무 총기도 다 되었다. 00전에다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고 있으니 종만이가 왔다. 얼굴색이 좋은 것을 보니 그동안 잘 지낸 것이 확실하다. 종만이가 합석하니 분위기가 고조되는 것은 설명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부딪히는 막걸리 잔에 담아 주고 받으며 취기로 붉어진 얼굴에 웃음꽃까지 활짝 피었으니 극락이 따로 없구나.
영희 딸 결혼식이 다음 다음주 22일에 있다는 둥 종만이 딸도 3월 29일 12시 잠원동성당에서 결혼식이 있다는 둥둥 한 없이 이어질 것 같던 이야기도 배가 불러오자 갈 길을 찾는다.
“회비를 얼마씩 걷을까?“ 누군가 술값 이야기를 꺼내 집에 갈 시간을 고른다.
그러자 장총무가 김회장과 있었던 등산회비 지원에 관한 말을 꺼내면서 회원들의 의사를 타진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오고 간다.
“김회장이 년 말에 50만원 정도 지원하는 것은 어떠냐고 하던데!”
“년 말에 한꺼번에 타기는 그렇고, 매번 참석한 일인당 얼마씩 받는 것은 어떨까?”
“두당 만원씩만 하지. 그래 봐야 1년에 6번 산행잡고 한 번에 평균 잡아 5-6명 정도니까 3,40만원 밖에 더 나오겠어?”
“그래, 그게 좋겠다. 2명 나올 때도 있고 10명 나올 때도 있으니까 평균하면 대 여섯 명! 더 나오면 더 좋고! 몇 명 초과해도 50만원 이내에 들겠네.”
결론이 일인당 만원으로 정해지자 장총무가 힘차게 외친다.
“아줌마! 여기 얼마에요?”
“예, 48,000원이요!”
아주머니가 우리를 향해 웃으면서 말한다.
막걸리 추가 주문할 때도 웃지 않더니 돈 이야기 할 때는 웃는다. 서비스가 덜 좋다는 이야기다.
“그나저나 4명에 4만 8천원이면 8천원이 모자라네.” 장총무가 당황해 한다.
“에이! 한 명 더 왔다고 하고 5만원 청구해! 다음에 2천원 초과하면 장총무가 내고”
영희가 대안을 그럴듯하게 제시한다.
“그래, 그렇게 하자!” 다들 찬성이다.
“그럼, 누가 왔다고 하지?” 또 망설인다.
“아이, 원, 사람도. 융통성이 그렇게 없어. 상희가 오려다 못 왔으니까 상희 까지 5명이라고 해!”
“맞아, 한경수총무가 일일이 확인 하겠어? 그리고 설사 확인한다고 상희한테 전화했다 치자. 상희가 갔었다고 하지 안 갔다고 할 사람인가?”
“그래, 그래, 좋다!”
“그럼, 한경수 총무에게 5명으로 확정입니다.”
낄낄 대며 서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다.
박수! “짝짝짝”
식당 안이 행복한 분위기로 꽉 찬다.
지하철 안에서 꾸벅 꾸벅 졸다가 종만이는 망원역에서 내리고 나머지 세 명은 합정역에서 사당 쪽으로 가는 2호선으로 갈아탔다. 얼마 가지 않아 집이 구로구 궁동인 대균이는 신도림역에서, 장총무는 서울대입구역에서, 영희는 제일 나중에 사당에서 내렸고...............
그렇게 해서 그 날 하루도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옛날이야기 이었습니다.
자! 등산회비 얼마씩 결정되었는지 다들 아셨지요? 많은 참석 바랍니다.
고경73 만세! 만세! 만세!
첫댓글 신기하고 어처구니 없다. 소박하기만한 산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밖에 없도록 재미있게 쓴 글솜씨가 신기하고, 160명의 많은 졸업생중에 2-3명만 참여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 없다. 군대처럼 의무제로 하거나, 조금 더 재미있는 산행으로 바꾸어야 되지 않을까?
ㅎㅎㅎ 글을 잘 쓰는 구먼
가고싶어는데 해외있어서 못갔네
다음번부터 가ㅡ도록할께
등산회원 증강운동을 벌이고
한명씩전도하면 시상도 하고
부끄러워 못나오는 사람도 있지요
대균씨가 오랫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