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어버린 사랑] - 김태환(송산)
새벽이다. 늘 그랬듯이, 나는 선잠을 잔다. 모처럼 술이라도 한 잔 하고 나면 푹 자기도 하지만... 아무튼, 오늘은 먼 길을 떠나야 한다.
핸드폰이 울렸다. '받을까 말까 모처럼 일요일인데...' 망설이는 중에 벨소리가 몇 번 더 울리다가 끊어졌다. 누가 전화를 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나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엎치락뒤치락만 하다가, 조금 전 걸려온 전화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시간에 누가 전화를 했을까?' 전화기로 손을 내미려는 순간 벨이 울렸다. '그래 받자.누군가 나에게 급한 사정이 있겠지.' 나는 전화를 받았다.
"형! 안녕! 나야! 영희..." '어..여자네! 영희라고? 누구지?' '날 보고 형이라니.' 알 수가 없었다. '누굴까?' 도무지 영희가 누군지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전화를 끊을 수는 없었다. 순간 침묵이 흘렀다.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형..나야! 상주에서 만났던...오 년 전...현수오빠 동생...나 몰라? 영희..최영희..응?" "아!...그때 그...어...그 영희! 이제야 생각 나네! 그런데 웬일로? 그것도 이렇게 이른 아침에?"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문득 형 생각이 나서, 그리고 할 말도 있고 해서...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형 전화번호를 알아냈어."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 "형!" "응. 왜? 무슨 할 말이 있는데?" "형! 만나서 얘기해 응, 그리고 나 술 한 잔만 사 주라." "만나는 건 괞찮은데, 갑자기 술은? 술도 못 마시면서..." "아냐! 형! 나 지금은 술 마실 줄 알어, 소주 한 병 정도는 거뜬히..." "그래? 그럼 만나지 뭐, 지금 있는 곳이 어디야?' "청량리역." "청량리라고?'그럼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석계역으로 와! 내가 석계역으로 나갈께." "응, 알았어.지금 출발할께."
난 간단히 세수하고 반바지에 티셔츠만 걸치고 밖을 나섰다. 동녘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아침의 시원한 공기가 전신을 휘감아 왔다. 오 년 전 상주에서 만났던 그녀가 나를 만나러 온다는 것이다. 나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역을 향해 걸었다. 가는 길 왼편에는 조그만 정자가 하나가 서 있었다. 새벽이라 아무도 없었지만 전날 비가 내렸던 터라 상판은 물기에 촉촉이 젖어 있었다. 손으로 대충 상판의 물기를 제거했다. 물방울들이 튀어서 안경렌즈에 떨어졌다. 갑자기 앞이 흐려졌다. 그리고 그곳에 벌렁 드러누웠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천장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눈과 귀를 간지럽혔을 뿐. 그 순간 상념 몇 자락이 스쳐 지나갔다.
5년 전에 나는 경북 문경을 여행하고 있었다. 옛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넘어 갔다던 한양으로 갔던 그 길 문경세제 를 답사한 뒤 상주로 향했다. 상주와 문경은 나에게 치명적인 결함을 안겨준 곳이기도 했다. 나의 오랜 친구 창경이를 알게 된 것은 17년 전이었다. 지금 나를 만나기 위해서 지금 청량리에서 오고 있는 저 영희는 몇 년에 우연히 만났었다. 친구 창경은 서울에서 처음 알았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1년 후에 나는 사촌형님과 함께 서울로 상경을 했었다. 여러 모로 배움이 짧았던 나에게 중학교 과정과 고등학교 과정 을 함께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이 친구와 함께 방송통신 중고등학교 에 입학을 했고 그로부터 2년 후 당당히 대입검정고시에 합격을 했다. 그때의 그 감격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의 눈물과 아버지의 헛기침, 그리고 500여 명의 직장동료들과 사장님에게 받은 기립박수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 이듬해였다. 내 나이 스물두 살 때였다. 그녀 이름은 순이라 했고 상주 모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다. 사실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 만날 수는 있었다. 서로가 불편해지는 게 싫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2년 동안 정은 날로 깊어져 갔다. 친구는 고향으로 내려가야 되겠다는 쪽지 하나만 남기고 훌쩍 서울을 떠나 버렸다. 가진 기술도 없고 더군다나 학력이라곤 겨우 방통중고만 졸업했을 뿐이었다. 그 정도로는 도시에서 배겨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어느 해 봄, 나는 우체국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만나자는 내용이 정말 반가웠다. 3월이라지만 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겨울의 마지막 만찬인가 보다. 잿빛 하늘에선 간간히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모처럼의 휴일이었다. 그래서인지 기차역은 인산인해의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기적소리가 한 번씩 울릴 때마다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역전 대합실을 앞 다투어 빠져나갔다.
내가 타고온 서울발 대구행 완행열차가 포효하며 긴 플랫폼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갈 즈음에야 나는 대합실을 나섰다. 아까부터 내린 눈이 이제는 진눈깨비가 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흐트리고 있었다. 몇 해 전 이곳 역시도 무사하진 못했으리라. 군부독재의 총칼 앞에 솟구쳤던 광주의 함성이 이곳까지도 울렸으리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담배 한 개피 입에 물고 먼 하늘을 바라보다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시간은 오전 11시30분을 막 넘어서고 있었다. 진눈깨비는 아까보다 더 거칠게 내려 도시 전체를 비벼놓고 있다.
나는 그녀를 이곳에서 처음으로 상봉을 하게 될 것이다.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할까. 인사는 어떻게 할까.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하나. 역 앞 시계는 정각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사진도 이미 교환했던 터라 얼굴을 보면 그녀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조금 멀리서 한 여인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지 않고 곧장 이쪽으로만 오고 있었다. 발끝까지 내려오는 긴 코트를 입고 긴 생머리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 그녀가 분명했다. 가슴은 두근반 세근반 마구 콩닥거렸다. 마치 영화 한 장면처럼 클로즈업 되어 오는 그녀. "안녕! 그동안 잘 지냈어?" 먼저 악수를 청했다. "응, 그래요, 잘 지내고 있어요. 오빠는?" "나두..." "아, 그래요. 근데 학교는 어떻게 됐어요?" "무슨 학교?" "경이 오빠가 그러던데요, 환이 오빠는 대학을 진학할 거라고요." "아..그 얘기...음, 그런 적이 있었지." 나는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아 참, 경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소식은 듣고 있어? 궁금한데..." "경이 오빠는 아버지 일 도우면서 잘 있어요. 얼마 전에 여기 대구에 왔었어요. 같이 점심도 먹고 환이 오빠 이야기도 많이 했어요." "아 그랬구나! 자식, 그러면서 나한테는 연락 한 번 없구...서운하네..." 역 앞에서 마냥 그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다른 데로 가자." "응 그래요. 우리 저기 가서 차나 한 잔 해요...점심은 천천히 먹고."
대구역 앞에는 다방이 많았다. 어느 역에서라도 한 번쯤 봤을 법한 '역전 다방' 그곳에도 역시 역전 다방 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잠시 쉬어 가는 곳. 출발과 이제 시작이라는 이중 의미를 두고 충전하는 곳. 사람들이 꿈을 안고 도시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고향으로 가기 전 잠시 머무는 곳. 그러나 출발점이 있으면 종점도 있게 마련이어서 기차역이나 버스종점에는 종점 다방도 있다. 거기서는 언제나 한내가 나는 넋두리도 들려오고 큰 웃음소리도 들을 수 있다. 그녀와 나는 그 어느 곳도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차 한 잔과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곳을 찾기 위해, 역 앞을 벗어나서 한참이나 걸었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질퍽한 인도를 따라 5분쯤 걸었을 때 그녀가 물었다. "오빠?" "응." "아까 대답 안 한 게 있는데.".. "음, 뭔데?" "학교 얘기...경이 오빠 말로는 오빠는 대학에 진학하게 될 거라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아..그거....경이한테 얘기 못 들었나 보네..." 그랬다, 그 무렵에 나는 너무나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경이와 내가 검정고시에 합격을 하고 난 직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순전히 권고사직이나 다름이 없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주위사람들이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너도나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사원들이 늘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일 때문에 회사의 제품 생산라인은 상당한 차질을 빚었다. 생산 공정을 관리하는 책임자들에게 우리는 눈엣가시가 되어 버렸다. 물론 겉으로 표현은 안했지만 차츰 우리에게 피부로 다가왔다. 하루는 공장장이 우리를 보자고 했다. 예감한 대로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 이유는 뻔했다. 다른 좋은 직장을 알아보라는 공장장님의 말에 따지고 싶었으나, 그 일로 인하여 회사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경이와 나는 결국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나는 지인의 소개로 우체국에 비정규직 사원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지만, 경이는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때 나의 월급으로는 대학 진학을 하기에는 버거웠다. "아, 그랬어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미안해요." "아냐. 괜찮아. 나와 경이 덕분에 그 회사에 공부하는 학생들이 생기고, 그들을 위해 기숙사도 지어졌으니 말야." "결국은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회사원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한 셈이지.. "그렇네요...보람 있겠네요." 작은 손이 나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내 손가락을 밀어넣어 깍지를 끼었다. 그리고는 조금 더 걸었다. 여자의 손을 잡아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렸을 적 할머니의 손과 어머니의 손 외에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도 이렇게 따뜻했었다. 여자 손은 다 이렇게 따뜻한가 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걸었다.
우리는 어느 건물 이 층으로 들어섰다. 테이블 열 개도 안 되는 작은 레스토랑에는 한산했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정장차림의 종업원이 다가와서는 따뜻한 물과 메뉴판을 놓고 갔다. "순이, 우리 뭘 먹을까." "오빠 드시고 싶은 거 드세요." "그래도..." 종업원에게 함박스테이크 와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진눈깨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차도랑 인도가 모두 질퍽해 보였다. 멀리 역 앞의 전광판 시계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가 말했다. "오빠 우리 영화 한 편 보러 갈까요." "응. 서울 가려면 어차피 밤기차를 타야 하니까." 그녀와 나는 레스토랑을 나와서 근처 영화 상영관으로 갔다. 극장 이름은 생각이 안 나지만 영화 제목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불멸의 연인" 극적인 반전이 없어 재미는 없었다. 그녀와 나는 그렇게 영화 한 편을 감상하고 극장을 나섰다.
지나는 길에 분위기 있는 찻집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나오니, 어느덧 여섯 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곧 기차를 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쉬운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있었지만,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 그녀가 다시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순간 나는 그녀에게 키스하려 했다.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이게 달콤한 첫 키스의 추억이 되었다.
잿빛 하늘에 바람마저 차가운 3월의 일요일 저녁. 그녀와 난 대구역 대합실에서 이별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굳이 잘 가요, 잘 있어요'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기적소리가 들려오자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순아, 걱정마,또 올께. 그리고 편지할께." "그래요, 알았어요, 오빠..기다릴께요." 우린 언제 만나자는 그런 약속은 할 수가 없었다. 기차가 떠날 시간이 다 되어서야 나는 엉거주춤 대합실을 나갔다. 기차에 오르면서 뒤돌아보니 그녀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잘 있어"라는 말과 함께 나도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80년대의 기차역은 그랬다. 만남과 이별의 애환이 짙은 그런 시절. 시국 또한 안개 속에서 갈팡질팡대고 있었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서울로 돌아와서 직장에 복귀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은 스스로 찾아야 했다. 그대로 우체국에서 비정규직으로는 오래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늘 다른 자격증을 꿈꾸고 있었다. 우체국을 그만두고서 다른 길을 택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질타를 견뎌내기가 정말 힘들었다
고심 끝에, 나는 모 양재학원에 등록을 했다. 정말 열심히 배웠다. 주경야독,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파고들었다. 그 덕택에 나는 현재 전문직(기능공)에 종사하고 있고 더불어 중소기업에서 북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지금 나는 현실에 만족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
순이와 그렇게 헤어진 후 수십여 통의 편지가 오갔다. 편지의 내용이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짐작을 하리라고 보지만 그 중에서도 생각나는 편지의 한 귀절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오빠! 벌써 8월이네요. 무더운 날씨에 건강히 잘 계시는지.. 다름이 아니고 며칠 후에 경이오빠가 서울에 볼 일이 있어 상경한다고 해서 편지를 드립니다. 경이 오빠가 서울 가면 오빠 한 번 만나고 온다고 했는데 오빠 만나서 이상한 얘기 듣더라도 절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언제든 시간 봐서 한 번 내려오시면 안 되나요. 보고 싶어요. 오랜만에 경이 오빠와 만나서 회포도 푸시고 즐거운 시간 되시길... 그럼 소식 기다릴께요 - 상주에서 보고 싶은 순이가..
대구에 있어야 할 그녀가 고향 상주에서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이 편지가 그녀가 나에게 보내온 마지막 편지가 될 줄은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했다. 며칠 후 토요일날 친구 경이가 나를 찾아왔다. "경아! 참으로 오랜만이구나..응..잘 있었어?" "어, 그래 너도." 경이와 나는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우선 저녁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갔다. 저녁을 주문하고 술도 한 병 시켰다. "경아!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응..잘 지내고 있었어..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었어? 참 그리고 대구에 한 번 내려왔었다고 순이가 그러던데..." "응..순이가 너한테 얘기했구나..응 맞아 그랬어.." "그랬으면 나한테도 연락 좀 하지..자슥이.. "야! 순이하고 나하고 첨 만나서 데이트 하는데 니가 거기 낄 이유가 없잖냐." "아 그리고, 경이 너 여기 서울 오기 전에 순이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너가 이상한 얘기 하드라도 신경 쓰지 말라며 나한테 당부를 하던데...무슨 일 있는 거야? 그리고 순이는 왜 대구에 안 있고 고향에 있어?" 그때 경이는 조금 머뭇거리고 있었다.
친구 경이의 얘기는 대략 이러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선배가 있는데 그 선배가 순이를 고등학교시절부터 짝사랑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사실을 경이가 알게 된 것은 두 달 전이었단다. 물론 순이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경이나 나에게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순이가 애초부터 그 선배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굳이 나에게나 경이에게 말을 해서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주 한 병이 금세 없어져, 한 병을 더 주문했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운 채 경이가 따라 주는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경이가 아는 동네 선배는 집안도 좋고 재력도 있어서 아들은 서울 유학까지 보내서 대학을 마쳤고 딸은 일찍이 고등학교만 졸업을 하고 객지로 떠났다고 했다. (그 딸이 바로 순이의 1년 후배이며, 지금 석계역으로 오고 있는 영희이다) 그 선배의 집안과 순이의 집안과는 그리 좋은 사이도 그렇다고 나쁜 사이도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그 선배는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술자리에서 경이와 합석을 하게 되었고, 경이는 어릴 적 초등학교 선배인지라 깍듯이 대했다고 했다. 술을 한 잔 두 잔 주거니 받거니 하는 중에 그 선배에게서 순이 에 관한 얘기를 무심코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고향에 내려와서 할 일 없이 허송세월만 보내는 자식이 한심스러워 부모는 장가라도 보내려고 했단다.
그때 경이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선배..순이는 지금 사귀는 사람이 있어..괜히 방해하지 마..." 그 선배는 깜짝 놀라면서 소리쳤단다. "아니 그 사람이 누구야?" "순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먼저 점찍었던 여자고 또 이번에 이렇게 어머니 아버지도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데...그건 안 돼지..그렇지 않어?"
"선배! 순이와 사귀는 사람은 서울에 사는 내 친구이고...순이 역시 그 친구를 많이 좋아하고 있어..그러니 부탁인데 가만히 놔둬요." 그래야 해요." 그렇지만 그 선배는 나와 순이와의 사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떠났고, 그 후 몇 차례 순이를 만나러 대구로 찾아가기도 했다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순이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왔고, 그 선배와 순이네 집에서는 이미 두 사람의 결혼설이 오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순이가 편지에서 나에게 한 번 내려와 달라는 그 의미를 그제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순이가 부모님과 나와의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경이는 며칠간 서울에 머물면서 이곳 저곳 구경도 하고 개인적인 볼일도 봤다. 그러나 내가 보기로는 경이의 볼일은 말 그대로 별 볼일 없었다. 그저 놀러온 것에 불과했다. 나에게 순이가 처해 있는 현실을 알려 주려고 일부러 상경했음이 틀림없었다. 그는 나에게 무언의 재촉을 하고 있었다.
서울을 떠나던 그 무더웠던 여름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환아, 잘 있어. 내가 네게 했던 말 명심해라. 시급한 건 니가 지금이라도 순이를 만나 봐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진실로 순이를 사랑한다면 지금 만나서 결정을 내려야 해. 순이를 만나서 어떤 결정이든 해야 하는데 꼭 필요하다면 나를 이용해라. 그 결정이 무엇이든 내가 도와줄께. 내게 돈도 여유가 좀 있으니 필요하면 말해. 단 순이를 만나고 난 후에....알았지?"
그런 후 경이는 돌아갔다. 이후 나는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너무 불안했다. 경이는 어서 빨리 순이를 잡으라는 암시를 주고 갔지만, 내려가서 순이를 만나려면 우선 여러 가지로 해결할 것들이 많았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고작 내 나이 스믈다섯.
9월 초 여름이 채 가기도 전, 나는 경북 상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끈적한 기온의 날씨 탓인지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했다. 더군다나 대낮부터 술을 한 잔 했더니 땀냄새와 술냄새가 역겹게 했다. 순이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도시생활 동안 벌어놓은 것도 가진 것도 없던 나로서는 순이를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였다.
버스 기사가 불쑥 말을 건넸다. "젊은사람이 낮부터 웬 술을 그렇게 마셨소?" ":......" 나는 대꾸조차 안했다. 순이에게는 며칠 전에 미리 편지를 보냈던 터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대구역에서 순이를 만난 지 6개월 후였고 친구 경이를 만난 지는 불과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순이를 가볍게 포옹하면서 말했다. "응, 오빠 나도..보고 싶었어. 고마워 여기까지 와 줘서..." "진즉 왔어야 했는데.. 경이가 왔다 간 후로 네 생각 때문에 나 꽤나 힘 들었어. 경이는 지금 잘 있지?"
순이는 말이 없었다. "오빠! 우리 어디로 가. 응." "어디로?" "술 한 잔 하고 싶어." "음..그래. 이곳은 순아가 더 잘 알 테니까 안내해.. 어느 곳이라도." "그래, 알았어, 오빠." 그녀는 허름한 술집으로 안내했다. 상주군 모서면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술집은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엇다. 상 위로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술집 모퉁이로는 쥐들이 웅성거렸다. 입에서 풍기는 그런 퀴퀴한 냄새가 나는 그런 술집이었다. 그렇지만 술집은 그곳밖에 없었다. '어쩌자고 순이는 이런 곳으로 나를 데려 왔을까?' 나는 순이를 빤히 쳐다봤다. 순이의 눈가에 눈물자욱이 선명했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순이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녀는 소주잔과 맥주잔을 번갈아가며 연거푸 들이키고 있었다.
나에게 다녀온 후, 경이는 아버지 과수원 일 도우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가끔씩 순이를 만나게 되면 항상 그랬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순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경이 오빠..걱정하지 마. 오빠가 서울 갔다 온 후로는 환이 오빠한테서 하루에 한 통씩 편지가 오고 있어.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돼요...왜 질투 나요?" "그래 알았어. 짜슥이 나한테는 편지 한 통도 안하고...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꼭 얘기해야 된다..알았지... "응 알았어."
경이가 나에게 다녀가고 난 지 열흘쯤 후였다. 나와 순이 때문에 많이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결국 경이는 그 선배를 찾아갔고 그날밤 그 선배와 이곳에서 술을 마셨다. 그렇지만 술 한 잔 하는 과정에서 우발적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그 사고는 결국 경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말았다. 흐느끼듯 이어지는 순이의 얘기에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경이는 나와 순이와의 관계를 좀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자슥이...지가 뭔데...내가 해도 되는데..미친놈..이제 나더러 어떡하라고, 경아!"
그런 간섭을 들은 선배는 홧김에 소리 질렀다. 경이와 말다툼을 벌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그 선배는 경이를 순간적으로 밀쳤다. 그 선배는 깜짝 놀라서 경이를 급하게 읍내 병원으로 옮겼지만 경이는 결국 다음날 아침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병원에선 경이의 사망 이유가 뇌출혈이라고 했다." 결국 그 선배는 과실치사죄로 구속되고 말았고, 나와 경이와 순이와의 관계를 마을사람들이 다 알게 되고 말았다.
나는 점점 취해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친구의 죽음 앞에 순이의 마음은 절망감으로 오들오들 떨었다. 차라리 미치고 싶었다. 순이 역시도 괴로움에 못 견뎌했다.
깊은 안개 속에서 겨우 눈을 떴다. 반쯤 가려진 창문 커텐 사이로 햇빛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리고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탁자 위에 놓인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빠와 처음으로 함께 보낸 밤 행복했어요. 하지만 미안해요. 오래도록 늘 건강하세요. 행복을 빌게요. 진정 사랑했어요." 전날 저녁에 그녀는 술에 취한 나를 부축하고서 이곳까지 왔던가 보다. 그리고 함께 보낸 밤. 그녀는 나와 함께 보낸 밤이 무서웠을까. 아니,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두려웠을 것이다. 그 때문에 나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겠지...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런 괴로운 선택을 했을까,
그녀는 예측하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의 기구한 삶을... 멀리서 그녀의 목소리가 이명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잘 가요, 오빠! 부디 행복하세요." 내 가슴에 눈물 같은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영희는 이미 석계역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나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한 후 그녀와 나는 잠시 함께 걸었다. 좌측 고가도로 밑에 포장마차가 보였다.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가 자리잡고 앉았다.
영희.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가냘픈 흐느낌이 진동하고 있었다.
나와 그렇게 헤어진 순이는 곧장 고향으로 왔다. 집으로온 그녀는 몇 달을 두문불출하고 지냈다. 간간히 들리는 소문에는 그녀가 가족과 함께 이사를 갈 거라는 둥, 시집을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둥, 그런 이야기만 풍문으로 떠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정말로 시집을 갔다. 상대는 고교 동문이고 선배되는 사람이었다. 읍내에사는 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순이는(나와 헤어진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그렇게 서둘러 결혼을 하고 말았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잊고 지내는 듯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신의 장난이었다.
그녀가 결혼을 한 후 아이를 낳고 산 지 4년이 흐른 어느날, 나의 친구 경이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 선배가 그녀를 찾아왔다. 그 선배는 몇 년 전 그 사건 후 곧바로 구속이 되었으나 재판부에서는 고의가 아닌 과실치사죄를 적용 징역4년을 선고했고 이제 그 형량을 모두 마치고 출소를 한 것이다. 그는 왜 그녀를 찾아갔던 것이었을까? 아마도 나를 만나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왜 만나려고 했을까? 나에게도 용서를 구하고자 했던 것일까. 그는 이미 살인자였다. 평생을 고통 속에서 뉘우치고 후회하며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 어찌 보면 불쌍한 인생. 그런 자신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에게도 사죄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감옥에서 주어진 형량을 다 마치고 출소는 했지만 마음속에 짊어진 형량은 더 무거웠으리라.
순이는 이미 잊고 있었다. 나의 주소도 전화번호도. 순이의 신랑과 그 선배는 같은 학교 선후배간이었다. 밤이 늦도록 이어지던 술자리에서 우연찮게 만나게 된 두 사람.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는 선후배 관계인 두 사람. 순이의 신랑이 먼저 아는 체하고 인사를 청하니 이쪽 또한 모른 체는 못할 터, 몇 순배의 술잔이 오가는 과정에서 선배는 대화 상대가 순이의 신랑이란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를 곧장 떠났다. 며칠이 지나서 순이가 친정을 다녀와야만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 선배와 마주치게 되었다. 하지만 말없이 지나쳤다. 순이는 불안했다. 순이 본인과 나, 죽은 경이, 그리고 그 선배에 관한 얽히고 섥힌 사연들을 만약에 지금의 신랑이 알게 된다면 결혼 생활에 심한 파장이 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내내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답답해 했다. 그러나 영희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날은 훤히 밝아오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일요일 아침을 시끄럽게 하고 있었다.
하루는 순이 신랑이 이 모든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선배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는 몰랐지만 출소 이후에, 그 사연을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것이다. 나와 순이의 관계도 그리고 떠나버린 친구와의 사연도 그 모든 것을 다 알게 되고 말았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바보 같은 순이.. 차라리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갈 것이지 멍청하게...
얼마 후 순이는 이혼을 당했다. 10여 년 전 나는 그녀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환이 오빠! 나야 순이...오빠 사랑했어요." 그 후 나는 두 번 다시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영희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순이가 떠난 그해 가을에는 순이의 가족들도 어디론가 이사를 갔다. 순이 신랑 역시도 식구들과 읍내를 떠났다. 들리는 소문에는 서울 어디론가 갔다고 하는데 소문일 뿐. 다만 죽은 친구(경)의 가족들과 경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그 선배의 식구들만 고향에 남아 있다. 그 선배는 순이와 그 가족들이 떠나고 난 후부터 술에 절어서 살았으며 그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고 보면 그 선배 역시 심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부모의 동의 하에 가산을 정리해서 친구(경)의 가족에게 충분하지는 않지만 보상을 해 주었다. 그런 후 그 선배도 가족들과 고향을 떠났다.
영희는 울고 있었다. "오빠의 순간적인 실수가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 몰랐어요." "이젠 난 어떡하면 좋아요." 그녀는 연거푸 술만 들이켰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사실 영희를 애초에 몰랐다. 언제인가 경북 문경세제를 답사하고 돌아가는 길에 죽은 친구의 무덤을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어느 포장마차에서 우연히 만났었다. 날은 저물어가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어쩔 수 없이 상주 근방에 있는 모텔을 잡아놓고 술 한 잔하러 나왔다. 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서 포장마차를 찾았다. 바로 그곳에서 영희를 첫 대면하게 되었다. 한 잔 두 잔 하다 보니 영희는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한 그 선배의 동생이고 순이와는 동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는 그날 꼭지가 돌도록 술을 마셨다.
이제 영희를 보내야 한다. 부디 과거의 아픈 상처를 잊고 얼굴만큼 이쁘게 살아가기를 빈다.
오죽했으면 새벽처럼 나를 찾아 왔을까 싶다. 무언가 얘기하고 싶어서...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지난날을 또다시 상기하게 하여 이미 아물었다는 내 상처를 다시 건드려 놓고 갔다.
순이도 영희도 이제는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운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이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둥근 박 그 하얀 솜털에 한 가닥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듯이.
천장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의 고뇌를 묻고 가는 듯했다. 나는 그 바람 속에 내 마음을 실어 보내고 싶었다. 자꾸만 잃어버렸던 그녀의 미소가 새삼 떠오르고 있었다. 왜 이토록 또렷이 오늘 그녀가 생각이 나는지.. 도대체 그녀는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일요일의 낮과 밤은 너무 길기만 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무작정 나는 배낭을 꾸렸다.
"너 지금 뭐하냐?" "음, 어디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어딜? "알려고 하지 마! 임마." "그럼, 언제 올 건데?" "기다리지 마라, 응." "그래? 너 거기 가서 죽어라, 자식아...이 한심한 놈아!" "알았어 자식아! 정말 죽을지도 몰라." "미친놈."
그렇게 내 가슴속의 대화는 울고 있었다.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정관에서 멈춘 버스는 더 이상 가지 않았다. 대합실 안에 들어서자, 어느 늙은 노파의 한숨 섞인 노랫소리가 하얀 불빛과 함께 창틈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한 아주머니는 맨바닥에 주저앉아 멍한 눈빛을 허공에 던져 놓고 첫차가 4시간 후에나 온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괜시리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아이고! 이눔의 차는 언제 오노?" 불면에 걸린 여학생 참새 떼들은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있고... 벽에 기대어 잠시 두 눈을 붙이려 하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를 않았다. 밀밭으로 가려면 병산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
몇 년 만인가? 얼마 만에 이곳에 와 보는 것인가. 논밭으로 어우러진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서 가다 보니 언덕배기 밑에 주막집이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한 터라 주막에 들렀다. 빈대떡과 막걸리가 배를 채워 주었다. 더불어 주인아줌마의 넋두리도 마셔야 했다. "무신 사연이 있는지는 몰라도요, 거근 와 갈라 캅니꺼?" "거그 가 봤자 기러기 엄마만 혼자 살고 있을 낀데예" "그라고 동네가 흉해서 그랑가, 저그 가다 보면 저수지가 하나 있다 아잉교..." "내사 마, 말 안 할라꼬 했는디. 손님이 거그 밀밭까지 간다꼬 하잉게 알어묵고 가씨오." 여인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새벽녘에 소 팔러 읍내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는 빈 털터리가 되어서 이곳 주막집에서 외상술을 먹고 저수지에 빠져서 죽고 말았다는 진숙이 아부지 얘기,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던 학생들이 저수지에서 물놀이하고 놀다가 몇 명이 익사를 했다는 얘기, 같은 동네 청년과 바람이 난 아내를 찾으러 나왔다가 약을 먹고 저수지에서 비관 자살을 하고 말았다는 정화 아부지의 서글픈 사연 등등... 어느새 나는 그 저수지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한여름의 대낮은 참으로 더웠다. 가까스로 그늘진 소나무 숲길로 들어섰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을 지나던 중 오른쪽으로 작은 분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분교는 오래 전에 폐쇄되었는지 작은 운동장에는 잡초만 가득했다. 작은 소슬바람에도 흔들리는 잡초...
분교의 양철지붕은 녹이 슬어 시커먼 밤색으로 변해 있었다. 교실 유리창문은 여러 개가 깨져 있었고, 운동장을 둘러싼 벽돌담은 파란 이끼가 낀 상태로 여기저기 허물어져 있었다. 마치 어느 타락한 인생을 보는 듯했다. 이곳에 더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솔길은 매우 좁고 가파랐다. 울창한 숲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길은 길인데 사람 다닌 흔적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약 십여 리 정도 되는 숲길을 쭉 걸어 갔다.
조금만 더 가면 순이를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못 찾는다 해도, 최소한 소식 정도는 흘려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새 나는 밀밭을 지나고 있었다. 그곳에 너릿재라고 불리는 고개가 하나 있다고 했다. 수년 전 나는 그녀로부터 이곳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경남 양산군 정관면 병산리 밀밭...
- 12편으로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