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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기사보고 반가워서 가지고 왔어요^^
'뉴발란스’ 국내 독점유통…조용노 글로벌 스포츠 대표 “러닝화만큼은 국내1위 자신있다” |
마케터 시절부터 반한 ‘뉴발란스’ 서울 지하철 3호선 약수역에서 내려 가벼운 산책을 하듯 남산 순환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세계 유수의 스포츠 브랜드 3개를 독점 수입·유통하고 있는 (주)글로벌 스포츠의 사옥이 보인다. 이 글로벌 스포츠를 이끌고 있는 조용노(40) 사장의 약력을 보면,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 무역회사(아주상사)를 다닌 것 빼고는 일관되게 스포츠 용품 마케터로서의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처음 경영자로서 글로벌 스포츠를 맡아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러너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뉴발란스’다. 조용노 사장은 한국외국어대학 83학번이다.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는 마흔하나라는 얘긴데, 직접 만나 보고선 나이가 믿기지 않는 젊은 외모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동안(童顔)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의 얼굴에선 세월이 지나간 흔적을 찾기 어렵다. 아주 심플하고도 멋을 부리지 않은 티셔츠와 면바지, 이런 차림도 그의 젊음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한국에서 뉴발란스를 이끄는 대표답게 포커스마라톤을 잘 알고 있는 그와의 인터뷰는, 서로에 대한 격식 갖춘 소개 없이 곧장 질문으로 들어갔다. “뛰시나요?” 한데 이 질문은 기자가 아닌 조용노 대표의 말이었다. “저도 뭐 엉터리 러너이긴 하지만, 우리 서로 뛰어야 제대로 된 인터뷰가 될 거 아니에요?” 역시, “러닝화를 팔려면 직접 달려봐야 아치가 어떻고, 모션 컨트롤이 어떻고 등을 알고 말할 수 있을 것 아니냐?”며 전 직원을 독려해 달리게 만들었다는 스포츠 용품 업체의 대표답다. 앞서 말했듯 글로벌 스포츠에서는 뉴발란스만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 229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의 캐주얼 샌들 ‘버켄스탁’, 레저 익스트림 스포츠 전문화 ‘리프’도 국내에 독점 유통하고 있다. 그러나 조 대표가 글로벌 스포츠의 ‘간판스타’로 내걸고 있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뉴발란스다. 잘나가는 스포츠 용품 마케터였지만, 경영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딜 땐 두려움이 있었을 터. 그러나 2000년 11월 처음 법인을 설립하고 국내에 어떤 스포츠 브랜드를 유통시키면 성공할 수 있을까 선택할 기로에서, 그는 망설임 없이 뉴발란스를 떠올렸다. 뉴발란스의 품질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뉴발란스를 90년대 중반부터 알고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뉴발란스라는 이름조차 잘 알지 못했지만, 저야 스포츠 용품 마케터였으니 세계 각국의 스포츠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죠. 뉴발란스는 당시에도 세계 제2위의 스포츠화 브랜드였고, 직접 품질을 살펴보니 세계 제2위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싶었어요.” 내내 이 러닝화의 저력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자신의 사업체를 시작하면서 뉴발란스부터 눈독들일 수밖에 없었다. 당장의 인지도나 브랜드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제품의 품질이 승부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경험 많은 마케터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직원이 뛰는 ‘체험’마케팅 2001년 9월, 서울 명동에 뉴발란스의 첫 직영점을 차리고 출사표를 던졌다. 품질에 대한 확신을 가졌던 만큼, 뉴발란스 러닝화의 특장점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러다 직원들과 함께 한 마라톤대회에 직접 나가봤다. 뉴발란스의 주 타깃은 러너인 만큼, 대회 현장에서 그들이 얼마나 뉴발란스를 인정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민망할 지경이었다. 물론 아식스 등 국내에서 정통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러닝화에 비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은 예상했던 바. 하지만, 대회에 참석한 러너 중 열 손가락으로 꼽기도 부족할 정도의 소수만이 뉴발란스를 착용하고 있는 현실일 줄은 몰랐다. “그때부터 마라톤대회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홍보를 하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직원들의 업무량은 많아지겠지만, 그래도 해보자고 뜻을 모은 거죠.” 지금도 그렇지만, 다른 스포츠 브랜드에 비해 뉴발란스의 대회 현장에서의 마케팅 활동은 남다르다. 그 남다름은 실은 별다른 게 아니다. ‘몸으로 때우는 것.’ 그냥 브랜드 로고를 활용한 현수막 등 ‘설치물’ ‘홍보물’ 노출에만 신경 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거의 전 직원들이 현장에 나와, 천막을 쳐놓고 대회가 끝날 때까지 버틴다. 그러니까, 대회 전 과정에서 러너들과 함께 숨쉬며 그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국내에서 이미 메이저로 자리잡은 회사만큼 돈이 많아 공중파다 어디다 펑펑 쓸 입장도 아니었지만, 러너들이 일단 뉴발란스를 접해 보기만 하면 자신의 애마로 선택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데 돈 쓰지 말고 마라톤대회를 공략하자는 거였죠.” 조 대표가 재작년 3월부터 “우리도 직접 뛰어보자”며 직원들을 독려한 것도, 이런 몸으로 때우는 ‘체험’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최근에 와서야 몇몇 체인식 스포츠 용품점에서 러닝화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직원들을 두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러너들이 운동화를 살 때 대체 뭘 골라야 할지 길잡이가 없던 형편이었다. 경험 많은 러너는 그래도 나았지만, 초보 달림이의 경우 그냥 감으로 고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뉴발란스의 판매 전략은 그간 전문성이 부족했던 판매 방식을 혁신시키는 식으로 나아가야 했다. “뉴발란스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개별 러너들의 발 특성에 맞는 러닝화를 추천해줄 줄 아는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전직원들이 매장에 나가 직접 제품을 파는 것은 아니지만요. 뉴발란스라는 러닝화의 특성을 알고, 나아가 러닝화에 대한 전반적인 전문 지식을 알아야 제대로 마케팅을 할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발의 구조와 러닝화 구조에 대해 글로 읽어서 쌓는 지식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직접 뛰어봐야 러너들에게 산지식까지 동원해 적절한 러닝화를 알기 쉽게 추천할 수 있을 거다, 이런 생각이었죠.” 매주 수요일의 글로벌 스포츠 전 직원 달리기는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자 직원부터, 얼마 후부턴 여자 직원들도 동참했다. 바뀐 게 있다면 오후 5시에서 오후 4시로 시간 조정이 된 것뿐이다. 회사 위치도 달리기에 더없이 좋다. 조금만 올라가면 남산이기 때문이다. ‘전 직원 달리기’는 글로벌 스포츠의 깨지지 않는 전통으로 이어갈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 인사 채용에서 일화도 있었다. “우리 회사에 들어오면 매우 유능하게 일할 것이 확실해 보이는 지원자가 있었습니다. 서류, 면접 다 통과시키고 연봉 얘기까지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물어봤습니다. 우리 회사는 전 직원이 매주 수요일마다 뛰는데, 달릴 수 있겠느냐? 처음엔 힘들어도 곧 적응하더라. 40분에서 1시간, 달리는 거리는 보통 5∼10km다. 그런데 그분이, ‘도저히 뛰지 못하겠다’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채용을 포기했죠. 안타까웠습니다.” 그의 고집스러우리만치 철저한 사업 철학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달리는 건 언제나 즐겁다 이런 철저함은 매출로 나타났다. 2001년 27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액이 2002년엔 100억원으로 대폭 신장했고 지난해엔 150억, 올해는 250억을 내다보고 있다. 또한 내년엔 러닝화에서만큼은 국내 1위를 점유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친다. 뉴발란스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뉴발란스 본사도 한국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엔 회장이 직접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덕분에 조용노 대표가 본사 회의에 참여해 한국 시장의 동향과 한국 러너들이 원하는 러닝화를 보고하면, 본사는 이 의견을 수용해 제품 제작에도 반영할 정도다. 이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동아시아의 러닝 붐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일본은 이제 포화 상태라고 판단하고, 해외 스포츠 브랜드가 가장 큰 시장으로 내다보는 것은 한국과 중국이다. “제가 뉴발란스를 들여오면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도 90년 말부터 시작된 한국의 러닝 붐이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 거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불이 되는 나라에선 러닝 붐이 불게 돼 있고, 그 이후에도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1만불 시대가 도래한 지 얼마 후에 바로 IMF 등 경제 위기를 맞았고, 이후로도 경기 침체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 하지만 이런 장기침체 현상은 오히려 러닝 시장엔 호재로 작용했다는 것이 조 대표의 평가다. 달리기가 결코 돈이 안 드는 스포츠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골프 등과 같이 큰 비용이 소모되는 것도 아니다. 달리기는, 처음엔 운동화 하나로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일상성 강한 스포츠다. 또한 ‘아무리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도 건강을 위해 달리기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욕구가 점점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용노 대표가 달리기 시작한 건 직원들보다 훨씬 오래 전의 일이다. 9년 전, 당시 스프리스 마케팅 상품기획팀장이었던 그는 우연히 마라톤대회 현장에 가게 된다. 거기 참가해 달리는 러너들을 보고, 문득 나도 뛰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무작정 아침에 일어나 집 주변에서 뛰었다. 처음엔 2∼3km 거리를 아주 천천히 달리는 것에서 시작한 그. 이젠 해외 출장 나갈 때도 가방에 꼭 러닝화와 러닝복을 챙겨가는 달리기 매니어가 됐다. “출장 가서 못 뛰고 돌아온다 하더라도, 시간이 비면 언제든 달릴 수 있도록 꼭 챙깁니다. 평소에는 5∼10km 정도 뛰어요. 글로벌 스포츠를 시작하고선 출근길이 멀어 처음으로 헬스클럽에서 뛰기 시작했죠. 타워호텔 피트니스 센터를 2년 전부터 다니고 있습니다. 1주일에 두 번은 야외에서, 나머지는 트레드밀에서 달립니다.” 1990년 코오롱상사 입사 당시만 해도, 스포츠사업본부에 발령받자 “난 스포츠에 관심 없다”면서 옮겨 달라고 요구했던 그. 그러나 이제는 스포츠 용품 마케팅이 좋고, 무엇보다 스포츠가 좋다. 그리고 많은 스포츠 중에서도 달리기만큼 매력적인 것은 없다고 느낀다. “테니스나 각종 구기운동들은, 하는 동안에는 매우 재밌죠. 달리기는 달리는 동안엔 좀 지루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목표한 양을 다 달렸을 때의 성취감, 자신감, 이런 것을 가져다주는 스포츠는 달리기가 유일한 것 같아요.” 인터뷰를 끝내고 오늘도 어김없이 직원들과의 남산 달리기에 참석한 그. 달리는 그의 모습을 꽤 오래 촬영하면서 “힘드시죠?”라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달리는 건 하나도 안 힘들어요. 기분 좋잖아요.” [조용노 대표 약력] 1964년 서울생. 1983년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과 입학. 1989년 졸업과 함께 아주상사 입사. 1990년 코오롱상사 스포츠사업본부로 옮김. 이후로 1995년 타프(The Athlete‘s Foot) 코리아 마케팅 팀장, 1996년 스프리스 마케팅 상품기획팀장, 2000년 타프 한국 지사장 등 스포츠 용품 마케터로서의 길을 걸음. 2000년 11월 말 (주)글로벌 스포츠를 설립하고, 2001년부터 본격적인 글로벌 스포츠의 사업을 펼침. |
조용노 글로벌 스포츠 대표
글로벌 스포츠의 직원 누구라도, 러너들의 신체 조건에 맞는 러닝화를 추천할 수 있는 전문 지식으로 무장돼 잇다. 직원들과 러닝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조 대표.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글로벌 스포츠의 전 직원 달리기 현장에서 몸을 풀고 있는 조 대표.
첫댓글 진짜 멋있으신 것 같아~!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