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현대도예는 물론이요 다기들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이른바 전승전통작가들에게 있어서도 라쿠와 천목이라는 두 개의 테마는 매우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같다.
요변천목다완(曜變天目茶碗, 일본 국보)
천목은 한국의 다도문화의 확대와 발전, 그리고 관심의 고조에 따라 예부터 일본 다도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만큼 일본 도예가는 물론이고 한국과 중국까지 이의 재현을 위한 노력 또한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본래는 중국의 건요(建窯)나 길주요(吉州窯) 등지에서 주로 당송(唐宋)시대에 양산된 것이기 때문에 건잔이라 불리는 것이지만,
일본의 유학승들이 중국의 천목산 일대에서 수업 이후 귀국 시 가져왔다고 하여 천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 전설이다.
그 이후 천목 중에서도 요변에 의한 천목다완은 전세계적으로도 수 개에 불과하여 그 가치와 그 속에 태어난 전설 또한 수다한 것이 사실이다. 하늘의 눈이라는 의미에서 천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거나 하는 것들은 후세에 붙여진 전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유적천목다완(油適天目茶碗, 일본 중요문화재)
현대에 와서는 천목다완, 다시 말해 건요산의 건잔이 검은색을 띠고 있어, 검은색의 흑유가 시유된 도자기를 천목이라 부르고 흑유 자체도 천목유라 부르는 이들까지도 생겨났다.
중국 내에서도 이제는 건잔의 형식을 천목이라고 부르는 이들까지도 생겨 천목은 일본산 용어이나 이제 전세계에서 사용하는 보통명사화 되어버린 것 같다.
흔히 천목이라 할 경우에는 건잔을 의미하였지만,
이제는 건잔의 특이한 형태, 다시 말해 굽언저리에는 시유되지 아니하고 굽허리께까지만 시유되고 직선으로 구연부까지 뻗어지다가 구연부쪽에서 한 겹 안쪽으로 꺾여 있는 형태 내지는 길주요산의 다완처럼 직선으로 구연부까지 뻗은 그러한 형태만으로도 천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곤 한다.
일본의 미노(美濃)지역의 도자기 중 하나의 분류인 시노(志野)도자 중에서 흰 유약이 시유된 이와 같은 형태의 다완은 백천목(白天目)이라 명명되기도 한다.
당초의 천목의 의미가 형태만으로 구성된 것으로 이름이 명명되는 것이다. 백천목다완(白天目茶碗, 일본 중요문화재)
우리의 고려청자에도 건잔이 유행하던 시기에 그것이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그 형태를 본딴 고려청자는 다른 변화를 가지고 왔다.
흔히 철채탁잔 등은 흔히 일본에서 천목대라 부르는 목재의 건잔받침 위에 건잔을 얹어놓은 것과 거의 유사한 형식을 한국화 시켰다.
굳이 일본식으로 명명한다면 청천목인 셈이다.
간혹 도예가들 중에 필자에게 천목을 만들고 싶다고 하는 문의가 있다.
그 목적은 무엇인가?
필자는 감히 말하건데 모든 전세계의 도예기법을 수입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작가의 자유지만, 문화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소비자인 그 민족의 미적 감각과 일치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치 일본의 다도계에 떠 받들여지고 있는 센노리큐(千利休)가 천목과 고려의 반통형다완을 합성한 형식의 새로운 다완인 라쿠다완을 만들어낸 것처럼.
쿠로라쿠(黑樂茶碗, 田中宗慶)
쿠로라쿠(黑樂茶碗, 長次郞)
라쿠는 락(樂)의 일본식 발음이다.
우리의 도예가들 중에는 역시 이에 대한 관심이 최근에 더욱 고조되고 있는 것 같다.
아울러 이 라쿠 또한 전세계에 이미 소개된 지 오래이다.
하지만, 라쿠의 소성 방식이나 그 정의에 대하여는 조금 오해의 소지가 많은 듯하다.
물론 그 오해라는 것도 외국인이 지은 라쿠 소성에 대한 것이 라쿠라면 굳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라쿠라는 것의 최초의 출발은 어디까지나 소성 미숙과 고화도 소성방식에 대한 지식의 결핍으로 태어난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의 탄생물이었음을 기억하였으면 한다.
라쿠라는 다완을 최초로 만들었다는 죠우지로(長次郞)는 당시 조선의 기와공이었던 아버지가 일본으로 건너감에 따라 기와를 만들던 기법으로 만들었다는 일설이 있다.
자그마한 일실의 가마를 다완 하나를 센노리큐의 요청에 따라 시험적으로 제작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장차랑의 후손들도 지속적으로 장군가에 다완을 상납하면서 다완의 굽언저리에 락(樂)이라는 글자를 새긴 도장을 찍음에 따라 대대로 이러한 반통형의 다완은 라쿠다완으로 불리게 되었다.
역사적인 라쿠다완의 탄생인 것이다.
이러한 라쿠다완은 라쿠를 만들어내는 라쿠가의 후예들의 손에서 붉은 빛의 같은 형태의 다완도 만들어져 쿠로라쿠(黑樂)와 아까라쿠(赤樂)로 분류된다. 아까라쿠(赤樂茶碗, 長次郞)
일본의 도자기법상 이 라쿠다완의 경우에는 현재 알려진 것처럼 소성 중간에 끄집어내어 물에 집어넣거나 하는 방식은 필자가 알고 있기로는 없었다.
그것은 임진왜란 이후 도기만을 생산하던 일본의 유명한 도자산업지역인 세토(瀨戶)도자와 나고야 지역의 미노(美濃)도자가 본격가동을 하게 됨에 따라 이 세토지역에서 처음에 도자기를 생산해 나가면서 소성 정도를 중간에 확인하기 위하여 끄집어낸 이른바 일종의 테스트피스가 식혀졌을 때 검게 변하는 것을 보고 만들어진 것이 바로 히끼다시쿠로(끄집어낸 검정이라는 뜻)다완이다.
이 또한 검은색이라 천목이라 불러야 하겠지만, 반통형이기 때문에 라쿠다완의 형태라 하여 세토산 쿠로라쿠다완이 된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라쿠소성의 종류가 끄집어내는 방식으로 와전되는 것이다.
대대로 라쿠다완을 만들어내는 곳과 달리 세토지역은 그 이후 현대적인 도자산업단지화 함으로써 19세기 이후에는 아리타를 뛰어넘는 생산량을 자랑하게 되며, 라쿠의 기법도 한층 다양화하게 되었다.
천목이건 라쿠건 당초의 출발과 달리 일본에서 수입한 이후 그 자체의 발전과정에서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변화 발전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의 도예가들은 어떤 것이 라쿠인가 아닌가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울러 우리 나름대로의 아이디어와 자신만의 기법을 만들어낸다면,그리고 기왕이면 한국말로 된 도예기법이 전세계에 소개될 날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라쿠다완의 형태의 그릇은 이미 우리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백자와 분청사기 모두. 굳이 이름 붙인다면 조선백자라쿠완이요 분청인화문라쿠완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다양한 형태 중의 하나로서의 백자완이요, 분청인화문완인 것이다.
글 : 비봉 김진홍(도예평론가)
*craft about.com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