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행복한 자아상 찾기라는 제목으로 특강시간을
갖겠습니다. 오늘 전해드릴 이 내용은 제 생애 가장 큰 영향을 준 내용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할속에서 제가 자주 묵상하는 내용이기도 합
니다. 이제부터 한번 말씀의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안전벨트
를 잘 매주시기 바랍니다.
1.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할때와 사랑과 중요성에 대한 욕구
여러분들! 사람들은 언제 가장 행복해할까요? 어제 저녁에도 이 행복에 대
한 주제를 다루었는데요 오늘은 다른 각도로 행복론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
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가장 행복하나요?
일이 생각된대로 잘되고 좋은 성과가 있었을 때, 돈이 잘벌릴 때, 좋은 사
람만나서 결혼하게 될 때... 아무튼 일반적으로 일들이 순조롭게 잘되면 그
때 행복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요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성경은 이것들보다 더 근본적이고도 중요
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면적인 것입니다. 어제도 영혼이 잘되어야 행복하다고 말씀드렸
습니다. 그러니까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올 때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
다. 오늘 특강은 어제와 같은 맥락이지만 조금은 다른 각도로 주로 사람의
정서에 초점을 맞추어서 행복을 논하기 원합니다.
여러분들! 심리학자들이나 상담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사람에게 반드시 채워
져야할 2가지 정서적인 욕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뭘까요?
세계적인 학자요 기독교 상담학자인 로렌스 크렙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근
본적인 2가지 정서적 욕구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 인간의 근본적인 2가지 정서적 욕구
- 중요성에 대한 욕구
(존중히 여김을 받고 싶은 욕구)
- 사랑에 대한 욕구
(다른 이로부터부터 사랑 받고자 하는 욕구)
즉 반드시 채워져야할 2가지 정서적 욕구는 바로 중요성에 대한 욕구, 사
랑에 대한 욕구입니다. 즉 한마디로 사람은 누구나 존중히 여김을 받고 사
랑을 받을때에야 비로소 행복해 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렇쟎아요? 누가 나를 존중히 여겨주기는 커녕 무시하거나 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의 상처가 됩니다. 얼마전 노무현대통령이 하도 힘드
니까 "이거 어디 대통령해먹겠나?"라고 했다가 말이 많았습니다." 저도 신
문에서 그 뉴스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어요.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오죽했
으면 그랬을까?라는 정도로 정리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권력 최정상에
올랐다 할지라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게 되면 힘들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존중히 여김을 받고, 사랑을 받아야만 결국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진:아빠곰의 사랑안에 있는 애기곰)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 중요성에 대한 욕구, 그
리고 사랑받고픈 사랑의 욕구가 채워져야 비로소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남자는 뭐가 더 강할까요? 중요성에 대한 욕구, 즉 인정받고
싶은 욕구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를 지으실때부터 대표성을 갖추도록 지으
셨기 때문에 남자에게는 보다 자존심이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반면 여성은
보다 사랑받는 것을 원합니다. 물론 남녀공히 중요성과 사랑이 다 필요하지
만 경중으로 따지자면 그런 것입니다.
여기에서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처음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에
덴동산에 있을때에 그들은 어떤 상태였을까요?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들은 하나님안에서 사랑과 중요성을 완전히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상태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늘 사랑
해주셨으며, 그들은 분명 그야말로 하나님안에서 존귀한 자들로 귀중히 여
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첫사람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을 배
반하여 범죄하므로 결국 타락하게 되는 가장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게 됩니
다. (그림: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장면)
저 이후 인간은 아무거나 먹는 타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요즘도 뉴스에
보면 몇억씩 뇌물로 꿀꺽 먹는 일이 많죠? 하여간 여러분과 저를 포함 우리
모든 인류의 죄악된 모습이 저 모습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범죄한 이후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과 분리되게
되었고, 이제는 인간이 하나님안에서 완전한 사랑과 중요성을 누리던 상태
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이후 사랑과 중요성에 대한 결핍상태(deficit)가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과 분리된 이후 사랑에 대한 결핍
상태! 중요성에 대한 결핍상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이후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 결핍
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혹은 세상적인 것에
서 중요성과 사랑에 대한 결핍 욕구를 채워보려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삶의 패턴(하나님을 떠난채 중요성과 사랑
의 욕구를 채우고자 몸부림치는 인간의 헛된 삶)
인본주의 심리학자였던 프로이드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thanatos(힘)
와 eros(쾌락)보았습니다. 프로이드의 잘못된 이론들도 많지만 인간의 무의
식속에 있는 내면상태를 그래도 이만큼 파악했다는 것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대로 인간의 근본적인 정서적 욕구는 중요성과 사
랑이라고 했죠? 바로 그것의 왜곡된 형태가 바로 힘과 쾌락인 것입니다.
자! 도표를 보실까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상태(세속화의 진행 및 결과)
A상태(초기) B상태(중기) C상태(말기) 최종적인 D상태
(결핍 욕구) (왜곡된 욕구) (왜곡된 결과) (최종적 결과)
중요성 ->힘(물질, 권력추구) -> 폭력 -> 영원한 심판
사 랑 ->쾌락(타인으로부터 사랑추구) ->부도덕적 쾌락 -> "
여기 보시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상태가 나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
난후에 그 중요성과 사랑에 대한 결핍이 생기게 되었고 이후 인간은 어떤
착각속에 빠지게 되느냐? 스스로 세상속에서 힘을 얻게 되면 중요한 존재가
될 것이고, 쾌락을 얻게 되면 사랑을 느낄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완전한 사랑과 중요성을 얻을
수 있나요? 그렇게 안됩니다. 남편도 아내도 그렇게 상대방에게 완전한 사
랑을 줄 수 없습니다. 요즘 왜 이렇게 이혼이 많은가? 그것은 상대방에게
사랑과 인정받기를 기대하기 때문(결핍동기)입니다.
이전에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를 대상으로 해서 웃음을 유발하는 퀴즈 프로
그램이 있었습니다. 남편 할아버지께서 할머니에게 문제를 설명하면 할머니
가 맞추는 것이였는데 답은 천생연분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과 나 사이를 뭐라고 하지? 그러니까 할머니가 왠수? 사람들은
웃고 난리가 났습니다. 할아버지가 다시한번 문제를 설명합니다. 아니 왠수
말고 천생 뭐라고 하쟎아..그러니까 어! 천생왠수 그랬다고 합니다. ^*^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 인간은 서로에게 완전히 채워줄 수가 없습
니다. 오히려 왠수처럼 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또는 어떤 다른 것으
로부터 중요성과 사랑을 채우라고 계속해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
니다. "니가 돈이 있어야, 명예가 있어야, 소위 성공을 해야 너는 인정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만 행복하다는 이런 식의 가치관과 생각, 그것이 부도
덕한 것일지라도 니가 하고싶은대로 쾌락을 즐기고 누려야 좋다는 이러한
생각은 정확히 말하자면 사탄이 던지는 메시지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T.V나 영화,책을 보더라도 항상 성경적인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갖고 보아야합니다. 그냥 무비판적으로 수동적으로만 세상과 문화를 대했다
가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방
인들의 사고방식, 성공주의, 물질주의 등이 침투해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이 중요성과 사랑에 대한 욕구를 왜곡된 욕구로 바꾸어
힘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B상태에서 C상태로 접어들어 그속에서 젖어사는지 모릅니다. 여기에 중요성
의 극단적 형태로서 각종 폭력문화와 권력투쟁과 전쟁이 야기되고, 사랑에
대한 욕구의 극단적 왜곡형태로 성적인 타락(잘못된 동거문화 등 혼외성,
동성애를 포함한 온갖 성적인 문란, 포르노물) 술과 각종 마약과 향락의 쾌
락중독현상 등이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갈 5:20-21) 그래서
여러분들! 가만 보세요. 자고로 성적인 왜곡문화와 폭력문화는 거의 동시에
나타납니다. 영화도 조폭마누라같은 조폭문화적인 액션물이 있는가하면 동
시에 음란물 등의 음란영화나 재미를 주로 추구하는 쾌락주의 영화들이 각
각 혹은 혼합해서 판을 치고 있습니다. 물론 때로 좋은 프로그램도 있고 좋
게 인용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T.V 프로그램을 비롯해서 대
다수 세상의 문화물들이라는 것이 다 이런 왜곡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든 삶이 라는 것이 다 이 왜
곡된 형태로서의 사랑과 중요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을 떠난 인간 삶의 그 마지막 최종상태는 결국 진노의 심판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다 이러한 삶
의 패턴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그들의 결핍된 사랑과 중요성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말로 하면 하나님
을 떠난 사람들은 결핍동기(The Motive of Deficit-다른말로 하면 자기
추구(자기의 욕심추구))를 갖고 산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중요성과 사랑을 확보할 진정한 근거가 없으므
로 결국 결핍된 욕구를 갖고, 결핍된 동기로서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
다. 허무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채워도 목이 마르며 만족이 없고 오히
려 모든 면에서 불행한 결과들을 초래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A,B.C 어느 상태에 있든지 즉각 회개하
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세속주의적인 삶의 패턴을 따르지 않고 하
나님의 뜻과 길로 가야 살게 되고 그래야 생명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길, 행복한 삶의 길은 무엇일까요?
3. 행복한 삶의 길! 하나님안에서 좋은 자아상 회복(그리스도안에서 충
족되어지는 사랑과 중요성의 욕구)
유명한 마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이 있습니다. (도표 참조) 저는 이 그림을
보면서 결핍을 채우려고 하는 인간의 몸부림과 그 실패를 보게 됩니다. 마
슬로우는 말하기를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결핍된 욕구가 다섯가지가 있는
데 가장 밑바닥에 있는 욕구가 생물학적인 욕구(먹고싶고 자고 싶고) 그리
고 2단계로 안전(정치, 재정(물질), 각종 안전)을 누리려는 욕구로서 이것
이 채워져야 그 다음단계로 갈수 있고 계속해서 올라가서 결국은 인간스스
로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들! 이것은 인간의 욕구를 다각적으로 파악한 이론일찌는 몰라도 그 전제부
터 잘못된 이론입니다.
첫째, 인간은 스스로 이 결핍들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
으로는 반드시 한계에 부딪히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애
써봐도 인간은 온전한 자아실현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결핍,
종교적인 결핍, 선과 의에 대한 결핍을 스스로 채우려고 했던 사람들, 율법
주의자들, 세상의 종교들, 성철 등 다 실패하였슴)
그리고 밑에 욕구가 채워져야 비로소 3, 4단계 욕구가 채워진다고요... 물
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게는 이것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여기 3단계, 4단계 욕구는 아까 설명된 사
랑과 중요성의 욕구에 해당됩니다. 그런데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 욕
구단계설에 해당되지 않는 진정한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
울을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고후 6:4절을 보시면 "그는 모든 일에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
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맞음과 갇힘과 수고로움과 자지못함과 먹지못함과"
그러니까 전혀 생물학적인 것, 안전한 것이라고는 충족될 수 없는 상황이였
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말로 감사해하며 기뻐하며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더나아가 고백하기를 9절, 10절에 보시면 다같이 읽겠습니다.
얼마나 귀한 고백입니까? 외형적으로는 온갖 연약해보이는 상태의 사람이
였지만 실상 그야말로 하나님안에서 가장 부요한 자요, 영원한 기업과 상급
을 가진 사람이요, 가장 영예로운 자로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며 사는 사람
이였던 것입니다.
자! 하박국 3:16-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소위 그 어떤 것들이 없을지라
도 구원의 하나님으로인해 가장 기뻐하는 그이 모습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
니다. 여기에서 마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은 이 분들에게는 하등 적용되지 않
는 틀린 이론으로 밝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분들 뿐만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진으로 등장하는 성경의 모든 인물들
이, 그리고 핍박받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과
우리 믿음의 동료들이 좋지 않게 보이는 여건과 때로 불행하게 보이는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찬양하며 그 모든 것을 뛰어 넘는 평안과 만족을 누렸고
지금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러분과 저
도 그렇게 될 수 있는 줄 압니다.
그렇다면 왜 그분들이 그런 환경을 뛰어넘는 만족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
었으며,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나)를 조건없이 용납해주신 사랑 (사랑에 대한 욕구를 충만하게
충족시키심) -롬 5:8, 롬 8:35,39, 구절들이 수도없이 많음
* 우리(나)를 하나님안에서 귀하게 하신 은혜(중요성에 대한 욕구를 충
만하게 충족시키심)- 사 61:3, 6-10, 벧전 2:9 , 역시 무수히 많음
* 거기에다가 주님은 우리의 삶의 제반 필요까지 채워주심
-마 6:33,34 빌 4:6, 롬 8:32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나님안에서 가장 귀한 존재라는 중요성의 자아상,
영원토록 변합없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이 사랑의 자아상을 갖고 살 수 있습
니다.
결국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는 우리(나)를 가장 사랑하시며 가장 고귀
하게 여기신다는 완전충족의 확증, 더 이상 증거가 필요없는 완전 충족
한 확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사람들처럼 내면적
결핍동기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안에서 우리의 내면적인
결핍이 이미 채워졌을뿐만아니라 삶의 제반 모든 것도 주님께서 이루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죄, 죄책감, 상처, 물질문제가 주님의 희생과 사랑
안에서 해결됨)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결핍동기가 아닌 흘러넘치
는 충만(사랑 혹은 표현) 동기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4. 결 론 (그리스도인은 이제 충만(사랑)의 동기로 살 수 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여기 서로 다른 두사람이 있습니다. 먼저는 얼마
전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 홍콩스타 장국영입니다. 우리는 그의 생애로부
터 결핍된 모든 인간의 삶의 단면과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세계적인 스타로서 정말 말그대로 별이였습니다. 영화 영웅본색과
천녀유혼 등이 히트하면서 모든 나라에서 그를 위한 팬클럽이 생기게 되었
고 가수로도 크게 성공하면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였
습니다.
그리고 그가 현금화해서 사용할 수 있는 돈은 무려 500억원에 가까웠습니
다. 그러나 그는 결국 홍콩의 한 호텔 24층 객실에서 투신 자살하여 그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비참한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일
까요? 몇일전에는 현대 정몽헌 회장이 투신자살하였는데 물론 그 배경과 특
성은 다르지만 그 근본적인 내면적 삶의 본질적인 내용은 같다고 봅니다.
장국영은 죽기전 유서에서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내게는 더 이상 세상
을 사랑할만한 마음이 남아있지 않다. 사람들을 사랑하기엔 나는 너무 피곤
하다" 그가 어렸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말미암아 사랑과 중요성에 대한
결핍이 극대화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생을 삽니다.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자 질
주하는 인생이였으며, 결국은 그의 뜻대로 인기를 얻어냅니다. 그러나 거기
에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는 또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상관없다
라고 하면서 양성애자로서 동성애에 각종 쾌락과 향락에 심취하기도 하였습
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채워지지 않은 메마른 내면의 상태로 결국 그의 생
을 끊었던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장국영을 주님께로 인도했다면 얼마나
좋았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결핍동기로 평생을 살다가 결국 세상
의 것을 다 취해보았지만 더 깊은 목마름으로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던 것입
니다.
그와는 반대로 여기 또 한명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잘알려진
이지선 양입니다. 지선양은 고운 얼굴을 가진 자매로서 평범한 생을 살던
자매였습니다. 하지만 잘알려진대로 그녀는 끔찍한 교통사고를 통해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보다도 더 절망적일 수 있었겠겟
습니까?
그녀는 한참동안 너무나 큰 고통속에서 수없이 절망하고 끝없는 좌절에 빠
지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로 말미암아 좌절을 이겨내
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를 통해 좌절하는 수많은 영혼들이 회복되고
있고 절망중에 처해진 사람들이 그녀의 간증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 삶의 희
망을 얻고 있습니다.
어떤 기자가 그녀에게 혹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를 물었습
니다. 그녀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환경들이 많지만 자신은 진심으로 지금이
가장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변함
없는 사랑을 신뢰하면서 더욱더 풍성하게 넘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햇
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고난속에서 내면으로부터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사
랑을 지금도 풍성하게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누구보다도 아
름답고 건강한 자아상, 하나님께서 자신을 절대적으로 사랑하시며 가장 귀
한 존재로 아껴주신다는 그 불변의 사실에 근거한 자아상을 갖고 행복을 누
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행복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누리는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을 모른채 사랑과 중요성에 대한 욕구를 채우고자 그
결핍동기를 갖고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이 채워지지 않을 때 그렇게도 많이 낙심하고 좌절하며 심지어는 목숨을 끊
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자신을 가장 사랑하시며 가장 존귀히 여기신다는 이 귀한
사실을 알게 된 심령, 거듭나게 된 심령은 이제는 결핍동기로 살 필요가 없
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 결핍들이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채워
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흘러넘치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사랑의 동기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왜 공부하십니까? 왜 직장생활을 하시며 왜 삶을 살아가고 있
습니까? 여러분들이 탁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인가요? 보다 많은 인정을
받고 사랑과 귀히 여김을 받기 위해서인가요?
그것은 주님을 만나기전의 우리 삶의 이유였습니다. 결핍동기를 갖고 살때
에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안에 있는 우리는 이제 다릅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완전한 사랑, 완전한 존중을 받고 있는 우리들은 다른 것으로 채울 필
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완전한 사랑과 중요성의 자아상을 갖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흘러넘치는 동기,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싶은 동기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이유도, 돈
버는 이유도 이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의 동기로 살때에 거기에 환경을 초월하
고 극복하며 뛰어넘는 충만한 기쁨과 진정한 만족, 행복이 있습니다. 이 행
복을 전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오늘 함께 나눈 이 내용을 두고두고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우리는 중요성과 사랑
의 욕구가 이미 하나님안에서 완전하게 채워진 존재들입니다. 이제부터는
흘러넘치는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지체들과 가족과 만나는 모든 영혼들을
사랑하며 살게 해달라고 이 행복을 전하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첫댓글 둘째날 아침 큐티가 엡4장이었는데...개인적으로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4:23)'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의 특강이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어떻게 새롭게 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었어요.^^
다시 봐도 파워풀한 말씀이네요~ 결핍동기로 사는 삶이 아닌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삶. 영원히 간직해야 할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