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 13. 금요일(날씨 : 맑음)
1630 성남 시외버스터미널 출발
- 정식 답사는 14일 아침이지만 주문진의 밤을 미리 보려는 마음에 개별적으로 출발
- 강릉 행 직통버스 (우등, 13,000원)
- 출발 전 터미널 상가 식당에서 객원회원 이용과 함께 간단한 간식
- 강릉 도착까지 휴게소에 정차하지 않는다는 안내와 함께 출발
1905 강릉 시외버스터미널 도착
1910 온석과 만나 주문진으로 출발
1930 온석 주문진 숙소 도착
- 바다가 바라보이는 조그만 고층아파트(용도는 주거와 전망대)
- 가끔 바다를 향해서 사진기를 고정시킨다는 베란다에도 서 보고...
2000 선착장 회센터 도착(22호, 23호)
- 답사에 앞서 사전 점검한다는 차원에서...
- 기본 반찬과 주문한 물회로 저녁과 술을 동시에 해결
- 옆 자리 바닷가 창가에 먼저 자리잡고 있던 사람들과 동석(61년 소띠 인터넷 회원)
2300 만풍 주문진 도착 합류
2430 숙소 도착
2008. 6. 14. 토요일(날씨 : 흐린 후 비 조금)
0800 숙소 출발
0820 두부마을 도착
- 선교장 앞 고분옥 할머니 딸이 운영하는 식당
- 아침식사 (두부전골과 강원도 메밀 막걸리)
- 물론 답사 일정을 사전 점검하는 차원에서...
============ 여기까지는 마중답사 이제부터 진짜 =========
0920 식당 출발
- 강릉시내 교동에서 산행에 필요한 간식 준비
- 김밥, 오이, 물, 초코바 등 간식과 주식인 막걸리 두 통
1000 대관령 박물관 주차장 도착
- 예전 신입사원 때 왔었던 곳이다. 박물관 앞 도로가 영동선이 확장되기 전 고속도로였기 때문에 박물관 개관과 관련한 안내 표지판 등을 설치하려면 우리 부서의 허가가 필요했기에 그 당시 토목과장이었던 선배 분과 함께 박물관을 둘러보았었다. 물론 구체적인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1010 도연, 향암 그리고 문현주, 원옥희 선생 도착
- 문 선생님은 정원을 설계하고, 조성하는 조경가
- 원 선생님은 국문학 전공으로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퇴직, 현재 여주농업대학 2학년(도연의 수제자)
1030 대관령 박물관 관람
- 태합 : 왕실의 왕자나 공주의 태를 보관하던 돌로 만든 합(고려시대)
- 삼신할미상 : 원래 3개의 석상이나 2개만 수집 전시(조선시대)
- 거신광배 : 부처나 보살의 몸체에서 발하는 빛을 표현한 조형물(조선시대)
- 돌대야(조선시대)
- 실내전시관 : 여러 민속자료 등
1050 지려, 려해, 완혜 도착
1110 대관령 옛길 답사 출발
- 초입은 포장 길
1130 비포장 산길
- 비로 깨끗이 쓸어 놓았음
1150 점심식사
- 옛길 옆 계곡 속 바위 위에서...
- 깁밥과 지려가 가져온 따뜻하게 데워지는 비상식량, 막걸리
1210 출발
1230 주막터
1415 반정 도착
- 대관령 옛길의 중간 지점
- 단체 기념촬영
- 안개와 비로 주변의 경치를 볼 수 없음
1425 반정 출발(하산)
1600 옛길 주막 도착
- 막걸리, 도토리묵 무침, 감자전
1640 옛길 주막 출발
1700 대관령 박물관 주차장 도착, 출발
1735 주문진 숙소 도착
- 바닷가 민박집 3층
1745 숙소 출발
- 주문진 시내와 선창을 따라 도보 이동
1810 선착장 회센터 도착
- 22, 23호 충북우정
- 잡어 모듬회, 소주, 가시오가피 등
2040 선착장 회센터 출발
2130 숙소 옆 맥주집 도착
- 아트리움 :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온석)
2430 숙소 도착
- 조경과 정원에 대한 열띤 토론 후 취침
2008. 6. 15. 일요일(날씨 : 흐린 후 맑음)
0710 숙소 출발
- 만풍 사정 상 조기 귀가
0730 식당 도착(생선구이 실비집)
- 생선구이, 곰치국
- 시원한 오가피물 제공
0820 식당 출발
0815 강릉 선교장 도착
- 중요민속자료 제5호(강릉시 운정동 431번지)
- 선교장은 효령대군의 11대손인 가성대부 무경 이내번이 1703년에 건립한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으로 안채, 열화당, 행랑채, 동별당, 서별당, 활래정 외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0대에 걸쳐 3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거주하며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명성과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1965년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세기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된 바 있다.(출처 : 안내간판)
- 활래정
1816년 건립하였으며, 서쪽 태장봉에서 끊임없이 내려오는 맑은 물이 연못을 거쳐 경포호수로 빠져나간다는 활수(活水)의 의미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누마루와 온돌방, 다실이 있어서 근대 한국 특유의 건축양식과 조경미를 갖추고 있다.(출처 : 안내간판)
- 열화당
1815년에 건립된 건물로서 선교장 주인남자의 거처이다. ‘일가 친적이 이 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으로 건물 앞의 태라스는 조선 말기 러시아식 건물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로 지어준 것이다.(출처 : 안내간판)
- 동별당
집안의 잔치나 손님 맞이에 주로 사용되었고, 방과 마루의 모든 벽체가 문으로 되어 있어서 활달하고 개방적인 선교장 가족들의 성품과 면모를 보여준다.(출처 : 안내간판)
- 서별당
이씨가의 서고 겸 공부방으로 사용되었고, 살림을 맏며느리에게 물려 준 할머니의 거처로도 사용되었다.(출처 : 안내간판)
- 외별당, 안채주옥, 연지당, 곳간채 등
- 기념품 판매소에서 술잔, 컵 등 구입
1000 선교장 관람 종료
1005 식당 도착(두부마을)
- 아침식사가 채 두시간도 지나지 않았서 점심이라기 보다 참
- 두부전골, 복분자 등
1120 식당 출발
1130 하난설헌 생가 도착
- 허초희(許楚姬, 1563-1589) : 호는 난설헌(蘭雪軒), 자는 경번(景樊)이다. 신동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글재주가 뛰어났으며, 아름다운 용모와 천품이 뛰어나 여덟 살 때에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지었다. 당대 석학인 아버지 허엽과 오라버니,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에깨너머로 글을 익혔으며 손곡 이달에게 시를 배웠다. 213수의 주옥같은 시를 남겼으며 동생인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난설헌의 시를 넘겨주어 1608년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되었다. 그 후 중국에서는 물론 일본에서도 격찬을 받아 당대의 세계적인 여류시인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출처 : (사)허균,허난설원 선양사업회, www.hongkildon.or.kr)
1250 허난설헌 생가 출발
1320 식당 도착(주문진 금홍대게)
- 점심(대게찜)
1430 식당 출발
- 온석 주문진
- 도연, 향암, 문 선생, 원 선생 여주로 출발
- 지려, 려해, 완혜, 효천, 객원 이군 원주 경유 대구 출발
1630 원주 도착
- 효천, 객원 이군 서울 행
1700 원주 시외버스터미널 출발
- 답사 종료
첫댓글 올라갈 때는 원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했네..
나는 여주 도착하여 두 분(문,원)은 학교로 차를 가지러 가시고,
향암과 여주 터미널 뒤편에서 술을 더 마셨지요. 그리고 향암은 가고,
나는 후배와 술을 마시고는 노래방으로 갔고,
결국 집에서 배달와서 후배네 집에까지 흥이 마쳐질 때까지, 기운이 쇠할 때까지 보냈으니,
답사의 종료가 꽤 질겼던 셈이네요.
역시 답사 여정을 읽어야 답사가 종료된 감을 가지게 되네요. 수고 했어요.
- 온형근 -
원주에서 부터는 완혜의 운전으로 대구까지 왔고
대구에서 한분은 울산으로, 한분은 통영으로 출발하셨습니다.
늘 '괜찮터라'만 운전하던 저로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고급승용차였지요..ㅎㅎ
지려님은 곧장 주무시고 려해님은 행여나 졸음운전이나 하지 않을까 배려하시느라
쉬시라고 해도 말동무가 되어주셔서 잘 내려왔습니다.
리플들을 보니 모두 다 잘 내려가신 것 같네요.
근데 효천님 너무 훌륭합니다.
설마하고 들어와보니 여정이 올려진지 5일이 지났네요.
아주 아~~주 훌륭합니다. 수고하셨어요^^
- 박수미 -
그러게요! 저는 오늘 봤습니다. 설마 올라왔게어? 하며 봤는데... 뾰~옹! 앞으로도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회장님께서는 결국 배달되셨군요! ㅋㅋㅋ 건강 잘 챙기셔야 하는데... 자꾸 걱정이 되네요!
- 안행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