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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批評의 新世代」
(趙演鉉)
일구오오년도(一九五五年度)를 전후(前後)해서부터 우리 문단(文壇)에 나타난 특별(特別)한 현상(現象)의 하나는 비평문학(批評文學)을 전공(全功)하는 신인(新人)들이 다수(多數) 출현(出現)하고 있다는 사실(事實)이다. 『현대문학(現代文學)』지(誌)의 추천(推薦)을 거쳐나온 김양수(金良洙), 천상병(千祥炳), 정창범(鄭昌範), 홍사중(洪思重), 김종후(金鍾厚), 조선일보(朝鮮日報)의 신춘문예모집(新春文藝募集)을 통(通)해 나온 최일수(崔一秀), 아직 추천(推薦)이 완료(完了)되지는 않았으나 『문학예술(文學藝術)』지(誌)에서 일회(一回)의 추천(推薦)을 받고 있는 이환(李桓), 『현대문학(現代文學)』지(誌)에서 일회(一回)의 추천(推薦)을 받고 있는 안동민(安東民), 윤병로(尹炳魯), 이석재(李錫宰), 그리고 그 전(全)부터 평론(評論)을 써온 김성욱(金聖旭), 번역문학(飜譯文學)과 비평(批評)을 병행(竝行)하고 있는 최근(最近)의 정하은등(鄭賀恩等) 십여명(十餘名)이나 되는 평단(評檀)의 신인(新人)들이 등장(登場)하면서 있다는 것은 우리 문단(文壇)에 있어서는 거의 그 전례(前例)를 볼 수 없었던 특별(特別)한 현상(現象)의 하나이다.
이러한 현상(現象)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사정(事情)을 설명(說明)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평단(評檀)의 독립(獨立)이 형성(形成)되면서 있다는 사실(事實)이요, 그 다른 하나는 신세대(新世代)의 대변자(代辯者)가 준비(準備)되면서 있다는 사실(事實)이다.
지금까지 우리 문단(文壇)에 있어서의 평단(評檀)의 지위(地位)는 거의 보잘 것이 없었다. 그것은 현역(現役) 평론가(評論家)가 불과(不過) 삼(三),사명(四名)에 지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첫째의 원인(原因)이었다. 물론(勿論) 백철(白鐵), 곽종원등(郭鍾元等)의 활발(活潑)히 활동(活動)하는 현역(現役)들 이외(以外)에 김팔봉(金八峰), 홍효민(洪曉民), 손우성(孫宇聲), 이헌구등(李軒求等)의 몇사람의 비평적(批評的)인 문인(文人)의 이름을 기억(記憶)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이 사람들은 대체(大體)로 이미 평필(評筆)에서 손을 떼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발언(發言)은 이미 비평적(批評的)인 권위(權威)나 문학적(文學的)인 영향력(影響力)은 상실(喪失)한지 오래 되었다. 전자(前者)가 문학활동(文學活動)보다는 단체활동(團體活動)에 더 많은 취미(臭味)와 정열(情熱)을 가지고 있으며, 후자(後者)가 비평(批評)에의 상실(喪失)이나 정열(情熱)보다도 역사소설(歷史小說)의 번안(飜案)이니 집필(執筆)에 더 주력(注力)하고 있는 것은 결(決)코 우연(偶然)한 것이 아니다. 비평활동(批評活動)이 전(全)혀 없거나 혹시(或時) 있어도 그 영향력(影響力)이 전(全)혀 없는 이러한 비평가(批評家)의 존재(存在)를 제외(除外)한다면 우리 문단(文壇)에 있어서의 평단(評壇)의 존재(存在)는 불과(不過) 삼(三) ․ 사명(四名)의 현역비평가(現役批評家)들에 의(依)해서 유지(維持)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적은 소수(小數)의 사람들로서 일국(一國)의 평단(評壇)이 구성(構成)될 수 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기 때문에 비평활동(批評活動)에 대(對)한 작가(作家)나 시인(詩人)들의 참여(參與)속에서 이땅의 평단(評壇)은 겨우 그 명맥(命脈)을 유지(維持)해올 수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비평(批評)이 주(主)가 아니고 창작(創作)이 주(主)인 시인(詩人)이나 작가(作家)들의 비평(批評)에의 참가(參加)는 자연적(自然的)으로 비평(批評)을 그들의 일여기(一餘技)로 삼게한 것이 되었으며 이러한 作家들의 여기(餘技)가 삼(三) ․ 사명(四名)의 비평전문가(批評專門家)들과 합세(合勢)되었다고 해서 평단(評壇)의 불안전성(不安全性)이 면(免)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평단(評壇)의 무력(無力)했던 그 둘째의 이유(理由)이다. 이러한 평단(評壇)의 불안전성(不安全性)에 비추어 볼때 십여명(十餘名)의 새로운 비평전문가(批評專門家)들이 일시(一時)에 진출(進出)되고 있다는 것은 문단(文壇)의 일우(一隅)에 자리잡고 있었던 무력(無力)한 평단(評壇)이 처음으로 그 자신(自身)의 지반(地盤)을 준비(準備)하기 시작(始作)했다는 일증좌(一證左)로 볼 것이다. 즉(卽) 지금까지 시단(詩壇)이나 작단(作壇)에 부수(附隨)되어 존재(存在)했던 일종(一種)의 문단(文壇)에 부록(附錄)과 같았던 평단(評壇)이 제 자신(自身)의 능력(能力)으로서 독립(獨立)하게 되어 간다는 전조(前兆)가 그것이다. 비평(批評)이 그 어느때 보다도 중요(重要)한 역할(役割)을 담당(擔當)하게된 현대(現代)에 있어서 비록 때늦은 감(感)이 없지 않으나 이러한 비평(批評)에의 강화(强化)가 시작(始作)되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환영(歡迎)할만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상(以上)과 같은 비평(批評)의 강화(强化) 및 평단(評壇)의 독립(獨立)이 준비(準備)되는 과정(過程)이 기성평단(旣成評壇)에 의(依)해서 출발(出發)된 것이라면 그것은 그렇게 중요(重要)한 것이 못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이유(理由)에서 그러하다. 그 하나는 우리는 기성평단(旣成評壇) 자체(自體)에 의(依)해서 우리의 외롭고 무력(無力)한 평단(評壇)이 강화(强化)될 수 있는 방법(方法)을 상상(想像)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의미 붓을 던진 평론가(評論家)나 방향(方向)을 전환(轉換)한 평론가(評論家)들이 새로히 비평활동(批評活動)에 參加하는 일이며, 그 다른 하나는 삼(三) ․ 사명(四名) 밖에 되지 않는 현역(現役)들이 능(能)히 우리 문단(文壇)을 대표(代表)할만한 활동(活動)을 개시(開始)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일은 다 같이 불가능(不可能)한 일일뿐 아니라(만일(萬一) 가능(可能)하다면 벌써 그렇게 했을 것이다) 설사(設使) 가능(可能)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평단(評壇)의 현실적(現實的)인 강화(强化)는 될는지 모르나 비평정신(批評精神)의 강화(强化)는 되어질 수 없는 것이 된다. 왜 그러냐 하면 현역(現役)이든 은퇴자(隱退者)든 우리 문단(文壇)에 있어서 평론가(評論家)가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문학적(文學的) 식견(識見)이나 그 비평적(批評的) 능력(能力)이라는 것은 이미 전도(前途)가 예견(豫見)되고 남을만치 시험제(試驗濟)가 되어버린 까닭에서이다. 누구나 現在의 우리 평단(評壇)에 對해서 現在 以上의 것이 나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대(期待)는 오히려 미지수(未知數)인 신진층(新進層)에 향(向)해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 된다. 이것이 다수(多數)의 신진평론가(新進評論家)를 중요(重要)하게된 우리 문단(文壇)의 현실적(現實的) 동기(動機)의 하나이다. 그러나 중요(重要)한 것은 이러한 다수(多數)의 신인(新人)의 진출(進出)은 반드시 기성평단(旣成評壇)에 대(對)한 무력(無力)만이 그 진정(眞正)한 이유(理由)가 아니라는데 있다. 현재(現在)의 기성평단(旣成評壇)이 그대로 우리 문단(文壇)의 비평활동(批評活動)을 능(能)히 대표(代表)할만한 것이 되어 있다해도 이러한 신진(新進)의 진출(進出)은 거의 필연적(必然的)인 것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이(二),삼년래(三年來)에 진출(進出)한 소설(小說)에 있어서 손창섭(孫昌涉), 곽학송(郭鶴松), 권선근(勸善根), 전광용(全光鏞), 정한숙(鄭漢淑), 오상원(吳尙源), 최일남(崔一男), 오유권(吳有權), 이범선(李範宣), 추식(秋湜), 정병우(鄭炳禹), 이호철(李浩哲), 시(時)에 있어서 이수복(李壽福), 박희진(朴喜璡), 이철균(李徹均), 박재삼(朴在森), 김관식(金冠植), 이종각(李鍾覺), 신동집(申瞳集), 이석(李石), 정한모(鄭漢模), 송영택(宋永擇), 한성기(韓性祺) 희곡(戱曲)에 있어서 노능걸(盧能杰), 임희재등(林熙宰等)을 기억(記憶)하고 있다. 그리고 이 보다 조금 먼저 나온 사람들로서 장용학(張龍鶴), 김성한(金聲翰), 김규동(金奎東), 전봉건(全鳳健), 김구용(金丘庸), 송욱, 최인희(崔寅熙) 그밖에 여러 사람들을 또한 기억(記憶)하고 있다. 이러한 범신인층(汎新人層)들의 존재(存在)는 그들의 문학(文學)이 비록 기성(旣成)의 그것과 명백(明白)희 구별(區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할지도 뭔가 새로히 해석(解釋)되기를 요구(要求)하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말하자면 신세대군(新世代君)의 일성분(一成分)들이다. 이러한 성분(成分)들이 그들을 설명(說明)해 주는 새로운 이해자(理解者)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當然)한 일이다. 시단(詩壇)이나 작단(作壇)이나 신인진출(新人進出)과 함께 평단(評壇)에도 그와 꼭 같은 현상(現象)이 일어나게 된 것은 결(決)코 우연(偶然)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理由)가 여기에 있다. 이것이 우리 평단(評壇)에 신인(新人)을 중요(重要)하게 된 그 필연적(必然的)인 이유(理由)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상(以上)과 같이 평단(評壇)의 신진(新進)들을 일종(一種)의 신세대(新世代)의 대변자(代辯者)로 보는 것은 그러나 반드시 정확(正確)한 것은 못된다. 그것은 「신인(新人)」과 「신세대(新世代)」라는 개념(槪念)이 반드시 일치(一致)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인중(新人中)에서 그 문학(文學)이 가장 수구적(守舊的)인 특질(特質)위에 서 있는 것을 얼마던지 발견(發見)할 수 있을뿐 아니라 기성중(旣成中)에서 신인(新人)보다 오히려 신세대적(新世代的)인 것에 가까운 것을 발견(發見)할 수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평단(評壇)의 신진(新進)들이 그대로 신세대(新世代)의 대변자(代辯者)라고 보는 것은 지극(至極)히 위험(危險)한 기계적(機械的) 해석(解釋)일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연령(年齡)이나 그 사회적(社會的)인 위치(位置)가 거의 동일(同一)할 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時期)의 문학적(文學的)인 신인(新人)들인 그들의 속에서 어떤 공통적(共通的)인 요소(要素)가 발견(發見)되어진다면 그것은 이땅의 「신인(新人)들의 문학(文學)」 혹(或)은 「신세대(新世代)의 문학(文學)」에 대(對)해서 약간(若干)의 설명(說明)이 내려지는 것이 될 것이다.
초두(初頭)에서 지적(指摘)한 평단(評壇)의 신진(新進)들은 그들의 문단적(文壇的)인 경력(經歷)이 아직 짧은 만큼 한 사람씩 분리(分離)해서 생각하면 많아서 사(四) - 오편(五篇) 적게는 한篇 정도(程度)밖에 발표(發表)된 문장(文章)이 없으니 그 전체(全體)의 수량(數量)을 종합(綜合)하면 이십여편(二十餘篇) 논문(論文)이 발표(發表) 되어왔다.
이 이십여편(二十餘篇) 논문(論文)들을 통(通)해서 발표(發表)되는 첫째의 인상(印象)은 주(主)로 기성적(旣成的)인 것을 비판(批判)하는데는 정열적(情熱的)이었으나 그들 자신(自身)들의 세대(世代)를 설명(說明)하고 해석(解釋)하는 방면(方面)에는 무관심(無關心)했다는 점(點)이다. 그들은 「청마론(靑馬論)」(김양수(金良洙))「서연주론(徐延柱論)」(동상(同上))「김동인론(金東仁論)」(김종후(金鍾厚))「이광수론(李光洙論)」(안동민(安東民))「허윤석론(許允碩論)」(천상병(千祥炳))「현역대가론(現役大家論)」(동상(同上))「빙허론(憑虛論)」(윤병로(尹炳魯)) 등(等)에 정열(情熱)을 쏟았으나 그들과 같은 세대(世代)의 신인(新人)들에 대(對)해서는 전(全)혀 언급(言及)된 것이 없었다. 이것은 그들의 비평의식(批評意識)이 자기(自己)의 세대(世代)에 대(對)한 관심(關心)에서 보다도 기성적(旣成的)인 것에 대(對)한 관심(關心)과 비판(批判)으로부터 출발(出發)되었다는 증거(證據)이며 그들이 자기(自己)의 세대(世代)를 직접(直接)설명(說明)하는 적극성(積極性) 보다도 상대적(相對的)적인 것을 통(通)하여 그것을 설명(說明)하려는 간접적(間接的) 소극적(消極的)인 태도(態度)를 지니고 있었다는 설명(說明)이기도 한것이다. 그 두째는, 이와 직접(直接)으로 관련(關聯)된 것으로서 기성적(旣成的)인것을 비판(批判), 거부(拒否)하는데 있어서는 어느 정도(程度)의 공통적(共通的)으로 구체적(具體的)인 명확성(明確性)을 갖었으나 그것을 초극(超克)하는 이념(理念)이나 방법(方法)에 있어서는 꼭 같이 추상적(抽象的)인 모호성(模糊性)을 면(免)치 못하고 있었다는 점(點)이다. 그것은 전기(前記)한 작가론(作家論)에 있어서는 그 작가(作家)에 대(對)한 구체적(具體的)인 특질(特質)의 일면(一面)을 어느 정도(程度) 명확(明確)하게 들어내어 보였으나 현대정신(現代情神)의 새로운 방향(方向)을 결정(決定)하는 「현대정신(現代情神)과 카톨리시즘」(정창범(鄭昌範))「위기(危機)의 해명(解明)과 그 초극(超克)」(김종후(金鍾厚))「현대(現代)의 지성(知性)과 신(神)에의 접근(接近)」(홍사중(洪思重))「문학(文學)에 있어서의 신인(新人)의 위치(位置)」(최일수(崔一秀)) 등(等)에 있어서는 그 논리적(論理的) 근거(根據)가 구체적(具體的)인 신념(信念)위에 기초(基礎)된 것이 아니라 불명확(不明確)한 관념(觀念)위에 기초(基礎)되어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以上)과 같은 이러한 두가지의 특징(特徵)은 평단(評壇)의 신인(新人)들이 아직도 자신(自身)의 신세대적(新世代的) 내부세계(內部世界)를 확립(確立)하지 못하였다는 외부적(外部的)인 일반영(一反映)으로서 수적(數的)으로는 다량(多量)이지만 아직도 그 다수(多數)가 통일(統一)된 신세대(新世代)를 형성(形成)하지 못하고 있는 이땅의 모든 신인군(新人君)을 대표(代表)하는 논리적(論理的)인 표현(表現)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중요(重要)한 것은 이상(以上)의 두가지에 보다도 세째의 그들의 공통성(共通性)에 있다. 그것은 휴-매니즘에 대(對)한 그들의 열열(熱熱)한 신뢰(信賴)와 지지(支持)다. 현대정신(現代情神)의 위기(危機)를 카톨리시즘으로 해결(解決)하려는 정창범(鄭昌範)의 「현대정신(現代情神)과 카톨리시즘」(『현대문학(現代文學)』작년오월호(昨年五月號))은 그것이 거의 그대로 일종(一種)의 휴-매니즘에의 복귀(復歸)를 말 한 것이었으며, 홍사중(洪思重)의 「현대(現代)의 지성(知性)과 신(神)에의 접근(接近)」(『현대문학(現代文學)』작년십월호(昨年十月號))도 근본적(根本的)으로는 인간(人間)의 내부(內部)에 저류(底流)되고 있는 휴-매니즘에의 손짓이었으며 최일수(崔一秀)의 「우리문학(文學)에 있어서의 신인(新人)의 위치(位置)」(『문학격술(文學擊術)』일월호(一月號))속에서 주장(主張)된 결론(結論) 역시 메카니즘을 초극(超克)하는 휴-매니즘에의 신앙(信仰)이었고 김종후(金鍾厚)의 「위기(危機)의 해명(解明)과 그 초극(超克)」(『현대문학(現代文學)』이월호(二月號))도 메카니즘을 부정(否定)하는 휴-매니즘에의 강렬(强烈)한 지지(支持)였다. 신진평단(新進評壇)의 사상적(思想的)인 지향(志向)을 대표(代表)하는 그 중심적(中心的)인 논거(論據)가 모다 이와같이 휴-매니즘에 대(對)한 새로운 자각(自覺)으로서 나타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說明)하는 것일가. 그것은 어떠한 시기(時機)에 있어서나 어떠한 환경(環境)에 있어서나 휴-매니즘은 인류(人類)의 기본적(基本的)인 노선(路線)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재확인(再確認) 되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인류(人類)의 역사(歷史)가 시작(始作)된 이래(以來)로 그 관념형태(觀念形態)에 있어서나 그 수단방법(手段方法)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변천(變遷)을 겪어 왔지만 그 기본적(基本的) 저류(底流)가 언제나 휴-매니즘에 있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한 의미(意味)에 잇어서 우리 평단(評壇)의 신인(新人)들이 그들의 이념적(理念的)인 대원칙(大原則)과 합치(合致)되었다는 점(點)에 있어 그것은 정당(正當)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원칙적(原則的)인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안역(安易)한 정신(情神)의 결론(結論)일 수도 있다는 점(點)이다. 정창범(鄭昌範)은 「쟉끄 ․ 마리땅」의 「충족적(充足的) 휴-매니즘」을 말하고, 김종후(金鍾厚)는 종합적(綜合的)인 휴-매니즘을, 최일수(崔一秀)는 「서구적(西歐的)인것이 우리의 민족전통(民族傳統)과 융합(融合)되는 새로운 형태(形態)의 휴-매니즘」을 주장(主張)하고 있으나, 이것이 위에서 잠간(暫間) 언급(言及)한 것과 같이 구체적(具體的)인 신념(信念)에 기초(基礎)된 것이 아니라 추상적(抽象的)인 관념(觀念)에 기초(基礎)된 것인 이상(以上), 누구나 추종(追從)하지 않을 수 없는 기본적(基本的) 원칙(原則)에의 안역(安易)한 투신(投身)과는 다른 성질(性質)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어쨌던 인류생활(人類生活)의 기본적(基本的)인 변동(變動)의 위험성(危險性)이 세계(世界)를 지배(支配)하는 현대(現代) 메카니즘의 암흑기(暗黑期)에서 휴-매니즘에의 원칙(原則)이 우리 평단(評壇)의 신인(新人)들에 의(依)하여 공통적(共通的)으로 다시 한번 재확인(再確認) 되었다는 것은 결(決)코 무의미(無意味)한 것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상(以上)과 같은 우리 평단(評壇)의 신세대(新世代)는 기성적(旣成的)인 것에 대(對)한 비판적(批判的)인 관심(關心)을 떠나서는 신세대(新世代)의 특징적(特徵的)인 특이성(特異性)이 아직은 확립(確立)되어 있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위에 잠간(暫間) 언급(言及)한 바와 같이 신진평단(新進評壇) 자체(自體)만의 신세대적(新世代的)인 결함(缺陷)이 아니라 다른 신진작가(新進作家)나 시인(詩人)들의 공통적(共通的)인 결함(缺陷)의 일반영(一反映)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現在) 우리 문단(文壇)의 각방면(各方面)에 산재(散在)되어 있는 그 다량(多量)의 신인(新人)들이 그들의 공통적(共通的)인 역사적(歷史的)인 사명(使命)에 통일(統一)되는 방향(方向)으로 그들의 활동(活動)이 확대심화(擴大深化)되어 간다면 우리 문단(文段)의 신세대적(新世代的)인 성격(性格)은 자연(自然)히 그 면모(面貌)를 들어내게 될 것이다. 최일수(崔一秀)는 그의 「문학(文學)에 있어서의 신인(新人)의 위치(位置)」에서 「신인(新人)의 출현(出現)을 우연(偶然)한 기회(機會)의 소위(所爲)라고 보는 것 보다는 그 시대(時代)의 특수(特殊)한 문학적(文學的) 정황(情況)과 질적(質的)으로 새로운 세대(世代)를 지니고 당대(當代)를 비판(批判)하면서 필연적(必然的)인 문학사조(文學思潮)의 기운(機運)으로서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같이 신인(新人)은 어느 개인(個人)의 특출(特出)한 본질(本質)에 의(依)해서 그 위치(位置)가 설정(設定)되는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한 시대(時代)가 낳아준 문학사(文學史)의 필연적(必然的)인 창조과정(創造過程)의 주류적(主流的)인 발현(發現)으로서 그 위치(位置)가 설정(設定)되는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신인(新人) 자신(自身)들의 숙제(宿題)인 동시(同時)에 기성(旣成)의 기대(期待)이며, 희망(希望)이기도 하다. 그러한 「문학사(文學史)의 필연적(必然的)인 창조과정(創造過程)의 주류적(主流的)인 발현(發現)」인 신세대(新世代)의 구체적(具體的)인 세계(世界)를 확립(確立)하는 것이 신진작가(新進作家)와 및 시인(詩人)들의 의무(義務)라면 그것을 이론적(理論的)으로 추구(追求)하고 논리적(論理的)으로 해명(解明)해 주는 것이 우리 평단(評壇)의 신세대(新世代)가 부하(負荷)한 사명(使命)일 것이다.
(『문학예술』, 1956. 3: 전기철, 『전후한국문학비평자료집 6』, 토지,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