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한켠에 호두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그 사이에 흰 아키다 한 마리를 키웠다.
더위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녀석이라
호두나무 아래 그늘지붕을 하나 더 만들어 씌워 주었더니,
활발히 잘 놀고, 잘 먹고, 잘 싸고, 무럭무럭 자랐다.
두 해쯤 지날 무렵 장염으로 치료를 받고 온 지
사흘을 못 넘기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고추밭 옆 양지 바른 언덕에 굴착기로 땅을 깊이 팠다.
땅을 파면서 울고,
구덩이로 밀어 넣고 울고,
흙을 되묻으며 펑펑 울어버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49124B4EBA21DA07)
그러고도 그 녀석의 집은 치울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큰 꼬리를 쭐래쭐래 흔들며 나타날 것만 같기도 하고,
아무 일 없는 듯 웅크리고 자고 있을까 봐 개집 속을 들여다보기도 수십 번이나 했던 것 같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0D9C474EBA220407)
그러는 동안 호두나무는 시나브로 야위어 가더니,
이듬해 봄엔 잎을 내지 않았다.
아마도 같이 놀던 아키다가 그리워 그 녀석만 밤낮으로 기다리다 지친 것 같았다.
윤호 할미는 "개 오줌이 독해 호두나무가 죽었다."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늘 그렇듯 쓰잘데기없는 소리를 하고는
"강아지 한 마리 줄 테니 키워 볼 텨?" 물어본다.
"똥개는 안 키워요."
"그럼 탕집에 가져다 팔지 뭐!" 라며 나를 자극하다 싸늘한 분위기를 감지하곤
커피 한 잔 빼 들고 호호 불면서 고추밭으로 간다.
치아가 엉성해 바람은 잘 나올 듯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74EE3E4EB9F2F701)
남은 호두나무에 호두가 제법 많이 열린다.
지난해는 앞집 정비공장 박씨가 새벽마다 열댓 개씩 주워 갔다.
꼭두새벽부터 호두 주워 가지 말란 소리는 이웃 간에 할 말이 아니다 싶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호두알 다 떨어질 무렵엔 이제 말해봤자 무슨 소용 있으랴 싶어 결국 말 못 하는 바람에
일 년 기다려 호두 열댓 개밖에 못 건졌다.
일 년을 벼루다가
지난달 우연히 마주친 박씨더러 "호두를 모아 따로 줄 사람이 있다"고
어렵게 운을 땠다.
그 후, 박씨와 마주칠 일은 없었다.
이사 온 지 처음 두어 해는 청설모랑 쟁탈전을 벌여, 호두가 절로 떨어지기 전에
푸른 겉옷을 입은 놈까지 털어서 수확하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땐 나도 어렸다.
호두 몇 알 놓고 청설모랑 다투다니....
생각할사 생각사록 붓그런 일이다.
늘 그렇듯 가을은 또 다시 어김없이 돌아오니
새벽에 일어나 소와 나귀 먹이를 주는 게 첫 번째 일이요.
두 번째가 호두나무 밑을 훑어보는 일이디.
떨어진 것만 주워도 날마다 한 움큼이 넘어 그릇에 담아 놓고 한 번 더 주워야 했는데....
서리 한번 내린 이후론 더 떨어질 것도 없어졌다.
그래도 고마운 것이 한 바퀴 돌 때마다 꼭 한두 개씩은 주울 수 있으니,
외려, 듬성듬성 숨어 있는 지금이 더 반갑고, 고맙고, 재미난다.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 수상한 낌새를 맡았다.
입이 다 말라 앙상한 가지에 반쯤 열린 호두알만 드문드문 붙어 있었는데,
돌연히 새잎이 돋기 시작한 것이다.
따뜻해서 그러려니 한 번 넘어가고,
비가 와서 그러려니 두 번 넘어가려다가......
앗!차차!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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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넘어 이웃에 농협 주유소가 오픈하며 밤새 비췬 수은등으로 말미암아
애들이 계절 감각을 잃었는가?
지금이 봄이다 싶어 서둘러 밤새도록 광합성 작용을 하여
파릇파릇 새잎을 달았는가 하면, 옆에 있던 장미마저 한 송이 탁 터트리고 나섰으니......
오호라! 이 결말이 어찌 될 것인가?
그 옛날 풀잎에 관한 시를 읽으시다 느닷없이 내 이름을 불러 화들짝 놀란 내 눈에 비췬
시인교수님의 눈동자!
아!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슴 두근거리며 불면의 밤을 지새웠던가?
야야! 너희가 꼭 그때 내 꼴을 닮았구나!
애처로워 어쩔끄나!
애드러워 어찰끄나!
여름날 푸르던 잎이 가을을 맞아 절로 지는 것이 아니고,
다시 돌아올 봄의 새싹을 위해 그 자리를 비켜 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건만,
푸른 잎을 달고 삼동을 어찌 견디려는지......
나무야!
나무야 !
호두나무야!
세상은 너그럽지 못하고,
주인은 명민하지 못하다.
너와 나는 수동성 생명체,
오로지 바라볼 것은 하나님의 조율뿐이로다.
첫댓글 에효....마루님의 청승이라고 하기엔 너무 귀한 감성에 제눈에 눈물이 그렁.....언젠가 그 정겨운 곳으로 초대해주시길.....^^*
11월에 번개 한번 하려는데
사실, 제가 환절기 감기로 웅크리고 있습니다.
조금 나아지면 일정 잡고 초대할게요.
이 글 해늘님이 처음 보신 것 같네요. ㅋ
아직도....어쩐대요?ㅜ.ㅜ 빨랑 이겨내세요. 그 공기 좋은 곳에서 감기라니....파뿌리에 귤껍질 넣고 푹~~~~~~~달여 먹어보세요. 생강도 좀 넣구요...
세상은 너그럽지 못하고
주인은 명민하지 못하다, 사물을 보는 눈이 가숨이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