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독일 철학자 니체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기독교영성운동가 김 진(52) 목사에 의해서다. 김 진 목사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니체에 대한 기독교 진영의 무지와 오해, 혹은 곡해로 보석 같은 니체의 기독교 이해는 사장死藏되었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그리스도교는 그의 예언대로 비참하게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니체야 말로 예수의 13번째 제자”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제라도 니체의 저서를 독파한 후 그리스도교 변화의 동력을 얻자.”고 권면한다.
김 진 목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교 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어로 쓰여진 니체의 대표 저서인 <안티크리스트Der Antichrist>를 한국어 번역본과 함께 꼼꼼히 파헤치며 니체의 본뜻을 찾아간다. 지난 1월 19일 오후 4시, 본인이 운영하는 삼각지역 살롱‘휴마니타스’에서 첫 강좌가 열렸다.
김 진 목사는 강의 서두에 “가장 나쁜 독자가 어떤 독자인가 하면 당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만 취하고, 나머지는 더럽히고, 전체를 모독하는 독자들이다.”라고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지금까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어보지 않은 이들도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신성모독’ 운운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을 보면 니체의 말은 예언에 가깝다. 왜 니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안티크리스트>를 선택했습니까 제목 ‘안티크리스트Der Antichrist’를 영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반反그리스도’라고 해석합니다. 또 그렇게 번역된 책도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어 ‘크리스트christ’는 ‘기독교’ 또는 ‘기독교인’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안티 크리스트’는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을 뜻하지요. 정관사 ‘Der’을 붙였으니 그런 사람인 자신을 지칭하는 말도 됩니다.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1884년부터 니체는 대작 네 권을 쓰겠다고 결심하고 기획에 들어갔습니다. 1887년까지 4년 동안 기획하고, 고치고, 고민한 끝에 처음으로 쓴 책이 안티크리스트였습니다. 그런데 안티크리스트를 쓰고 나서 나머지 세 권을 다 포기합니다. 이 책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네 권의 내용을 한 권에 담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이해됩니다. 니체는 안티크리스트 저술 이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책은 인류의 역사를 두 조각으로 쪼갤 것이네. 자유로운 사람은 더는 자유롭지 않게 될 것이네. 인류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가장 철저한 전복이 이미 내 안에서 그 길을 내고 있네.”라고요. 그 정도로 이 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안티크리스트로 말미암아 인류 역사가 달라질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안티크리스트>가 기독교를 반대하는 책이라면, 니체의 기독교 이해는 어떠했습니까. 제대로 비판할 정도의 깊이가 있었습니까. 먼저 니체가 그리스도교를 두루뭉술하게 알기 때문에, 즉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비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해 두고 싶습니다. 니체는 목사 아들로 태어나 친기독교 분위기의 가정에서 -중도에 그만두긴 했지만-신학을 전공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환경 때문에 니체가 기독교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19세기는 신학이라고 할 수 있는 학문이-물론 가톨릭 신앙이 있었습니다만-성서조차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신학적인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던 시대였어요. 그런데 니체가 어떻게 기독교에 대해 그렇게 깊이 알았는가하면 그는 고전문헌학을 전공했습니다. 문헌학은 학문의 기초가 되는 자료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당시 신학자들이 볼 수 없었던 문헌, 당시 신학자들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방식으로 책과 신학을 깊이 팠던 거죠. 성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당시 기독교 신학이나 성서학에서 보편적으로 얻을 수 없었던 학문적인 깊이를 스스로 공부해 갖출 수 있었고, 문헌학적인 검열을 통해 스스로 검증할 수도 있었습니다.
니체가 서구사상과 그 근간이 되는 기독교, 기독교인을 비판했다면 예수도 함께 비판한 것이 아닌가요. 니체는 기독교를 혹독하게 비판한 사람이지만 예수를 비판한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을 보는 시선에서 가져야 할 중요한 전제 중의 하나는 니체는 기독교라는 ‘하나’의 종교를 비판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니체는 그 당시 사람들의 사고를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즉 기독교라는 종교와 예수를 분리해서 볼 수 있었다는 뜻이지요. 그가 하는 비판에는 예수가 바리새인을 꾸짖었던 것과 같은 내용의 비판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예수의 참사랑, 인간다움, 그리고 표현은 달라도 구원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만약 예수가 이 땅에 다시 와서 오늘날 기독교를 보게 된다면 니체와 손잡고, 아니 그보다 더 철저하게 오늘날의 기독교를 질책했을 것입니다. ‘니체가 예수의 13번째 제자’라는 표현은 니체의 뜻과 예수의 뜻이 다르지 않다는 확신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강좌도 기획하게 되었고요.
오늘이 첫 시간이었는데요, 강의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기독교는 참사랑이 아닌, 동정의 종교’라는 말이었습니다. ‘동정의 종교’로서 기독교는 니체의 기독교 비판의 핵심적인 표현입니다. 니체는 약자에 대한 동정 행위를 예수가 말한 사랑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말하고, 기독교가 바로 이런 악덕을 행하는 종교로 본 것입니다.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했지 ‘동정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동정은 약함을 합리화시키고, 또 인간을 비주체적·수동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니체의 표현에 따르면 동정은 ‘사랑의 왜곡’ 입니다. 인간을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힘을 상실하게 합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동정에 의해 인간의 생명력이 힘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니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의 본능인 ‘힘에의 의지’를 꺾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기독교가 예수의 계명을 잘못 실천하고 있는 예입니다. 이 책을 통해 니체의 기독교 비판을 피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정직하게 정정당당하게 맞서서 그 안에 담긴 현실적인 함의를 끄집어 낼 수 있다면 기독교가 예수의 뜻에 합당한 종교로 혁명되어 나가리라 생각합니다.
니체에 대해 아는 것도 소득이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기독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바른 신앙관을 정립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꼭 첫 시간부터 함께 할 이유는 없다. 아직 기회는 있다. 이번 강의는 3월 13일까지 매주 월요일 오후 4시 삼각지역 3번 출구 살롱‘휴마니타스’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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