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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송운 사랑방 (Song Woon Art Hall) 원문보기 글쓴이: dragon7
7인의 사무라이 ( 七人の侍 ) 1954
원제:七人の侍
감독:구로사와 아키라 출연 시무라 다카시(Takashi Shimura) ........ 시마다 감베이(Kambei Shimada) 역 미후네 도시로(Toshirô Mifune) ............................ 기쿠치요(Kikuchiyo) 역 이나바 요시오(Yoshio Inaba) ...... 가타야마 고로베이(Gorobei Katayama) 역 미야구치 세이지(Seiji Miyaguchi) .................................... 규조(Kyuzo) 역 치아키 미노루(Minoru Chiaki) ... 하야시다 헤이하치(Heihachi Hayashida) 역 가토 다이스케(Daisuke Katô) ................................ 시치로지(Shichiroji) 역 기무라 이사오(Isao Kimura) ..... 오카모토 가츠시로(Katsushiro Okamoto) 역
사진 왼쪽에서 부터 고로베이(이나바 요시오), 시니치로(가토 다이스케), 헤이아치(치아키 미노루), 큐죠(미야구치 세이지),카츠시로(키무라 이사오)
16세기 일본의 황폐해진 막부시대를 배경으로, 농부들로부터 도적떼를 막아주는 용병으로 고용된 7인의 사무라이의 활약상을 그린 시대극. 일본 영화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전세계에 인식시킨 첫번째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제작 당시의 상영 시간은 205분이었으나 현재는 141분짜리 필름으로 상영되고 있다. 아키라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빌자면, 그의 영화 중 최고의 조건 하에 가장 만족스럽게 연출된 영화라고 한다. 1960년에 미국에선 그 유명한 <황야의 7인>이라는 서부영화로 리메이크되었으며, 폭력 미학의 완성이라는 셈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 등에서 액션 장면의 모태가 되었다. 사무라이라는 직업이 종말을 맞는 16세기 일본에서 도적떼(노부시: 野武士)의 습격을 막기위해 사무라이들을 기용하기로 한 농민들과 7인의 사무라이가 계층간, 구성원 간의 갈등, 그리고 계층을 뛰어넘는 사랑과 현실, 그리고 도적 때와의 최후 전투를 벌인다. 영화에 쓰인 공통적인 모티브로 원형 구도와 경계를 통한 분할은 영화를 시종일관 긴장된 화면으로 이끌고, 특히 후반부 펼쳐지는 전쟁 장면은 카메라의 위치나 앵글 등이 뛰어나서 요즘의 어떤 영화에 뒤지지 않는다.
때는 16세기 중반 전국시대, 끊이지 않는 전란(戰亂)이 만들어낸 '노부시'(野武士: 산적 무리)의 횡포에 백성들이 떨고있던 그 시절 일본의 한 농촌 마을. 이 빈촌엔 보리 수확이 끝날 무렵이면 어김없이 산적들이 찾아와 모든 식량을 모조리 약탈해 간다. 포악한 산적들의 빈번한 침입 때문에 안그래도 궁핍한 살림이 남아날 날이 없다. 싸워도 애원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 마을은 가을이 되면 산적들이 쳐들어 올 예정이다. 더이상 못 견디는 농민들이 마을과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들을 구해 줄 사무라이를 구하러 나선다. 이런 보잘것 없는 보수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방황하던 7인의 사무라이들은 포악한 산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마을 사람들에게 고용된다. 이들은 풍부한 전쟁 경험을 가진 감병위(勘兵衛)를 포함한 7명이었다.
이윽고 산적들의 공격이 시작되어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고 산적들은 전멸한다. 하지만 마을사람들 다수와 7명 중 4명의 사무라이도 목숨을 잃는다. 마을엔 평화가 찾아오고 주민들은 벼농사에 여념이 없다. 노동요를 부르는 백성들을 보면서 감병위는 이렇게 말한다. "또.. 살아남았구나.. 이번도 또, 진 싸움이였구나.. 이긴 것은 저 농부들이다. 우리들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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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7인 (The Magnificent Seven) 1960
감독 : 존 스타제스
음악은 엘머번스타인이 담당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대탈주] [황야의 7인]이 모두 존스터지스의 감독작품이기도 하다. [황야의 7인]은 당시 그가 즐겨 사용했던 고전적인 작곡전개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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