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입 신고
설피(雪皮)를 신고 빙하기를 걸었어요
얼지 않으려고 잠들지 않았죠
날씨를 이해하면 이해 못 할 게 없어져서 포기가 빨라요
협곡을 믿지 못하면 멀리 돌아야 해요 믿음이 없으면 발을 헛딛기 쉬워요
목초지가 나타나도 기뻐하지 말아요 사막은 늘 뒤에 있어요
혹을 만들고 저장 강박을 저장해서 허기지지 마세요
허기에 침몰할 수 있어요
모서리에 게르를 부려놓았어요
자꾸 추레해지는 햇살은 마음의 문제인가요
이제 행정복지센터에 가요
낯선 주소를 더듬고 더듬어 단단하게 말해요
“이사 왔어요”
잠시라는 다짐 혼자 말해요
낯선 언어에 답할 반듯한 눈빛과 미소를 준비하세요
잊지 말아요 유목민은 순진하고 다정해야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두리번거리지 않으려고요
또 어떤 크레바스를 가랑이 찢어지도록 건너뛰어야 할까요
모서리에서 모서리로 왔어요
지칠 수 없는 사거리를 건너면
참꽃 같은 시절 없을 거라는 복선처럼 개꽃이 피고
나는 유목민이에요 오래 있지 않을 거예요
다만 좀 쉬운 곳이라면 좋겠어요
먹고 살기가 쉽고 마음 놓기가 쉬운
떠날 때는
독하지 않은 눈빛으로 설피를 묶었으면 좋겠어요
이해심이 조금 줄어들어서 이해 못 할 것도 좀 있었으면 해요
모서리여, 수태차를 끓여 줄게요
잘 부탁해요 자꾸 추레해지는 봄빛이여
「공정한시인의사회」 2023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