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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역사로 본 경제학 이야기-정리 및 독후감
우선 이 책을 보고난 후 경제학 역사를 즉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의 생성.발전.소멸을 나름대로 쉽고 간략하게 쓴 책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책을 보기 전에 경제학역사에 관련된 책인 경제학사(풀빛 상하),세속의 철학자들,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등을 읽어 봤지만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책이다.
이 책들을 읽을 때에는 나름대로 이해되고 전체적인 체계속에서 그 이론들이 조금은 자리잡으나 지나고 나면 그 기억이 선명하지 못하다. 물론 다시 보면 확연하게 원상복구가 되지만. 그래서 난해한 책일수록 전에 대략 정리및 독후감을 썼는데 이제부터는 더 자세하게 최소한 정리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경제학자들은 세속적 철학자들이라 부르는데 이는 사회 세속적 문제들의 원리를 이해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현대 주류경제학은 희소성의 과학이고, 거시경제학은 실무적 목적에 봉사해야 한다.
비주류경제학은 국부의 원천과 총생산(총소득)의 계급 간의 분할을 연구한 고전파경제학, 가격의 원천으로서의 노동가치에 입각한 노동과 자본 간의 갈등관계를 탐구하는 마르크스 경제학, 경제법칙의 결정원리로서 제도의 중요성를 연구한 제도학파 경제학, 자연환경(에너지)과 경제(문명)의 관계를 탐구하는 경제학이 있다.
고대 경제학이 물건의 교환의 정당성에 대해서 가치를 주관적.도덕적 측면에서ㅓ 강조하였던 것을 고전경제학이 이 가치론을 노동가치론으로 발전시켰다. 이는 상품에 투하한 노동량크기라는 객관적 상황이 상품가격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를 경제학 아버지라고한다. 이를 발전시킨 맑스는 잉여가치론이다.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생산력 혁신만이 보장된다고 한 고전파의 예측이 그 어두운 측면인 빈부격차 등이 나타나면서 신고전파경제학은 생산과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종합적인 내용의 계급론적 시각에서 탈피하여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대립으로 경제학 문제를 제기하다.
여기에서 소비자의 주관적인 가치인 한계효용이나 생산자의 비용인 한계비용 등이 제기되어소위 미시경제학이 완성된다.
여기에 1929년 대공황은 케인즈의 유효수요라는 논리로 과잉생산에 대해서 일정하게 국가가 책임지는 거시경제학이 나타난다.
다음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전까지는 다른데 있는 정리된 것을 인용하면서(책내용을 비교적 정리되서 그렇게 하다.) 내 의견을 아주 약간 곁들이고 이후에는 나의 생각과 주로 정리를 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1776년에 발간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국부론>의 기본 개념은 그러나, 애덤 스미스 이전의 다른 저서들에도 존재하는데, 그 개념은 중농주의 경제학자들과의 교류에서 싹튼 것이라고 한다. 경제학은 중세가 붕괴하고 자본주의가 등장함과 동시에 서서히 태동했다.
1. 고대와 중세의 경제학
경제학은 영어로 Economics라고 한다. 어원으로 따지자면, 그리스어 Oikonomikos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 Oikos는 가계를 뜻하고, nomikos는 ‘관리’라는 뜻이므로 오이코노미코스, 즉 경제는 가정관리를 뜻한다. 그리스 시대는 노예제 사회였고, 이 시대 가계는 상당한 수의 노예들이 포함된 대규모 농장이었다. 농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것인가, 노예들이 생산한 생산물을 어떻게 잘 관리하고 보관할 것인가가 중요한 경제문제였다.
동양에서는 경제란 경세제민(經世濟民)로 세상을 경영하여 민중을 구제한다는 뜻이었다. 서양의 경제의미보다 훨씬 인민친화적 내용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경제학은 이러한 의미의 경제학이 아니다. 오늘날 경제학은 ‘근대의 산물’인 사회과학의 한 학문분과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 주류경제학은 비경제적 요소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경제적인 요소와 논리만으로 이론을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근대 이전의 경제학은 없었을까? 근대 이전의 경제학은 분석적인 학문이라기보다 윤리학에 가까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근면과 생산은 용인했지만, 상업과 이윤추구는 용인하지 않았다. 고대 경제사상에서 우리는 부에 대한 전반적 멸시를 발견할 수 있다.
중세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에서도 부는 멸시의 대상이었다.
중세로 들어오면서, 스콜라학파의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해성사 지침서>는 고리대와 금전욕을 일급 죄악으로 간주했지만, 이전과 달리 정당한 상행위의 결과라면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즉 정당한 부의 추구와 부정한 부의 추구에 관한 나름대로의 정교한 구분을 시도했다.
예컨대, 상품의 공정한 가치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는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나오는 식품과 신발의 정당한 교환비율에 대한 설명을 이용하였다. 이를테면 “농부의 노동과 비용이 신발제조공의 그것에 상응하면 신발제조공의 결과물은 농부의 결과물에 상응한다.... 교환은 한 사물의 가치와 다른 사물의 가치 사이의 비율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라는 식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고전파 경제학의 노동가치론의 맹아형태를 보게 된다. 즉 어떤 상품의 정당한 가치는 각 상품에 들어 있는 노동량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거래의 공정성을 평가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가치라는 개념은 도덕 개념이었고, 경제학이 곧 윤리학이었다.
근대에 들어오면, 근로의 윤리에 더해 자본의 윤리도 긍정하기에 이른다. 프로테스탄티즘은 부의 추구를 용인함과 동시에, 이를 소명으로 받들어 더욱 신성시 했다.
2. 애덤 스미스 이전의 경제학
가) 부를 욕망하다
나) 상업을 중시하다 - 중상주의
최초로 생산과 돈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윤리적 사고가 아닌 경제학적 이론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15~18세기 거의 3백년 동안 상인들의 사상을 지배해 온 중상주의다.
중상주의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믿음을 기반으로 했다.
1) 돈을 버는 행위를 국가의 부유함과 동일시 했다.
돈을 추구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음 넘어 이것이 타인에게 이득이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당시 상인들은 절대주의 국가와 유착했다. 절대주의 국가에서 왕권은 매우 강화되었고, 영토 팽창과 전쟁에 많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대상인을 지원하여 이로부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자 했다.
2) 상업이 부의 확대를 가능케 한다는 생각이다. 이때 상업 행위는 원격지 무역이 지배적이었다. 예컨대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영국으로부터 면허를 받아 인도를 중심으로 한 무역 독점권을 행사하였고, 다른 나라의 독점회사와 경쟁하여 군사행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식민지, 신대륙 등으로부터 원료를 싸게 사오고, 국내 수공업자들이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만든 직물을 비싸게 팔아 이익을 남겼다.
3) 상업상 차액을 얻기 위해 경쟁을 제한한다. 따라서 그들은 경쟁을 반대하고 독점을 인정했다. 또한 국가가 적극적으로 대상인의 무역행위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4) 부는 금음과 같은 귀금속의 형태로 표현된다고 생각했다. 즉 부의 형태는 화폐였던 셈이다.
* 중상주의의 모순 :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신대륙에서 엄청난 규모의 은을 국내에 반입해 왔다. 중상주의자들의 이론대로라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부유한 나라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 나라에 유입된 금과 은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여 나라 경제를 피폐하게 했다. 이 현상을 후대의 경제학자들은 화폐수량설로 설명했다.
다) 부의 원천은 농업이다 - 중농주의
18세기 중 후반 프랑스에서 발흥했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 14세 치하에서 절대주의 국가였고, 콜베르주의라고도 불린 중상주의적 사유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중농주의는 지주계급이 토지를 부의 원천으로 우월시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을 인정받기 위해 내세운 사상이다. 중농주의는 토지의 우월성과 특권을 지지하는 사상에 기초하여 상업자본주의의 지배자인 상인들을 물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경제학 이론의 기초가 만들어졌다. 왜냐면 중상주의에 반대하면서 부의 원천으로서의 상업이라는 관념에 도전했고, 농업 생산에의 주목을 통해 유통이 아니라 생산에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농주의 창시자는 궁정의사인 케네였다. 그는 경제를 인체와 같이 생각하여 경제의 흐름을 체네에 흐르는 혈액의 흐름처럼 보았다. 그는 화폐와 생산물의 순환을 도식화하여 표현하였는데 그것이 <경제표>이다.
이 경제표는 마르크스의 생산수단의 생산 Ⅰ과 소비수단의 생산 Ⅱ라는 표식을 만드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중농주의자들은 중상주의가 상업과 귀금속을 부의 원천으로 본 것에 반대하여, 부의 원천은 농업이라고 주장하였다. 상업은 구매해서 판매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부가 창출되지는 않는다. 최초의 부가 농업생산에서 시작되고 공업과 상업은 생산된 부를 분배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의하면, 부는 농산물을 땅에서 증식시키는 것에 출발하여, 생산된 소득이 지주와 농민 상공업 생산자 등으로 어떻게 분배되는지 설명하였다. 따라서 최초의 부의 소지자는 농업생산의 조직자인 지주이다.
중농주의자들에게 있어, 농업이 왜 부를 창출하는가? 농업에 의존하는 것은 경제과정의 자연스러운 형태에 그대로 의존하는 것을 의미했다. 고전파경제학의 자유방임주의는 바로 중농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중농주의에 대한 애덤 스미스의 평가는 매우 호의적이었다. 부의 원천이 농업이라는 명제를 공업으로 바꾸면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논리가 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중농주의는 프랑스 혁명으로 일소되었다. 루이 16세의 재무장관 튀르고는 봉건제도를 개량하기 위해 소소한 개혁을 추진했다. [곡물거래 자유화, 신앙 자유, 전매 독점권 폐지 등] 그러나 결국 개혁은 실패하고, 프랑스 혁명에 의해 구체제가 일소되면서 중농주의도 소멸되었다.
* 중상주의놔 중농주의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이는 자본주의가 단순히 상인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생산의 혁명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는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새롭게 형성된 자본주의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필요하게 되었다.
3.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애덤 스미스는 오늘날 금지옥엽 중요시하고 있는 시장을 분석하여 이 시장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을 암시했기 때문에 현대 미시경제학을 예견했다고 여겨지고, 국가의 부라는 거시적 주제는 거시 경제학과 연관된다.
애덤 스미스 살던 시대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으로 인클로저 운동으로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자가 풍부히 존재하고, 공장을ㅇ운영할 수 있는 자본이 있어서 자본주의 발달에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시장에서 보이지 않은 손이 인간이 사적인 이익과 열정을 사회 전체의 이익과 가장 조화되는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공감 대 이기심 즉 이것을 애덤스 문제라고 한다.
이익추구라는 이기적 행위가 사회적 복지와 충돌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그 이유를 시장에서 찾았다는 점이 수용되어 250년 변화과정에서도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았기에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강대국의 형성을 국수주의적 방법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방법으로 제시했다. 국가의 부는 생산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ㅇ조했다.
생산에 필요한 대표적인 요소는 노동력인데 이를 많이 투입하여 공산품을 많이 만들어내는것이 국부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다.
유명한 옷핀 공장의 분업을 통해서 생산성의 향상에 주목하다. 생산성이란 노동투입에 대한 생산물의 비율로 정의할 수 있다.
시장은 사회적 분업을 가능케하고 심화하여 공ㅈ장내 분업과 함께 생산성을 높여 이는 노동인구의 증가를 가져와 더 많은 생산을 가능케 한다.
자본주의ㅣ 생산이 확대될 때 노동자의 삶의 조건도 점차 개선되어 빈곤이 점차 축소될 것이라고 봤다.
4.고전학파 경제학
가)맬더스의 <인구론>
노동인구가 생산 측면에서 국부의 원천인 것이 사실이지만 비용의 측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맬더스 <인구론>이 노동인구가 가진 의미를 파헤친책이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에 하층계층에 대한 도덕적 억제가 없다면 비참과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봤다.
노동자는 생존임금밖에 받을 수 없고, 자본가는 끊임없는 축적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전반적인 과잉생산이 있다고 봤다. 지주는 자본주의의 원활한 재생산을 위해 지주가 필수적인 존재(필요악으로서)라고 생각했다.
나)자유무역의 시작-리카도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라는 세이의법칙은 이후 주류경제학의 주요한 원리가 되었다.
당시 곡물법을 놓고 맬더스와 대립하여 논쟁에서 승리하나 폐지는 30년 후에 가능해지다.
곡물법 폐지는 리카도의 전망과 관계가 있다.
비옥도의 차이에 근거하여 지대는 지주가 다 가져가는데 이는 토지로부터 나오는 생산물의 가치가 가장 열악한 토지의 생산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차액지대는 노동가치론의 산물이면서 비관론의 근거이기도 하다.
곡물법폐지는 외국에서 싼 농산물을 수입하여 노동자의 명목임금을 낮춰야만 자본주의가 정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애덤 스미스와 리카르도는 이론적 경제학자였는데 이는 자본주의이 깊은 곳에 존재하는작동의 원리 즉 가치 개념으로부터 설명하기 때문이다.
생산되고 유통되는 상품의 가격은 그 배후에 투입된 노동량에 의해 가치가 결정된다고 믿는 생각이 노동가치론이다.
스미스가 한 나라 냉에서 시장을 자유롭게 하면 모두가 유익하다는 점을 강조했고,리카ㄴ도의 자유무역이론인 비교우위론은 국제무역에도 관철시켜 오늘날 WTO.FTA논의 모두가 여기에 근거하고 있다.
5.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도전
가) 오언의 공동체운동
자본주의가 생산력 증대를 가져와 물질적 풍요을 보여주었으나 빈부격차 심화라는 문제가있었다.
토마스 모어<유토피아>에서 “양이 사람을잡아먹는다”라는 말로 1차 인클로저 운동을 비판했다. 공상적 사회주의 효시라고 부른다.당시 영국의 노동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아동노동의 장시간 근무과 동일장소에 동일 근로조건에 일하는 계층이 생겨나서 지식인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계급적 정체성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
기계파괴운동,노동자의 선거권을 요구하는 차티스트 운동,여성의 선거권 요구운동, 사회주의 운동 등이 싹트다.
영국노동운동의 발전의 계기가 된 사람은 로버트 오언이다.뉴래너크 지방의ㅣ공장에서 독특한 운영체제로 하다.이는 유토피아적 몽상을 현실화시킨 운동이었다.
당시에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16→11시)과 아동노동 폐지라는 노동환경을 제공하다.
협동마을 건설을 제안하였으나 실행되지 않았다.그러나 이는 키부츠와 코뮌과 비슷한 형태로 생산단위 공동체 운동의 효시라고 할만하다
이후 소비자 협동조합은 영국노동당 주축세력이 되었다.
나)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
생시몽은 공장을 미래의 전망으로 보았는다.동네공동체보다 큰사회 전체를 재조직하는데 관심이 있었다. 모든사회를 공장과같은 조직하되,일하는 자에게 그에맞는 보상을 해야 한다는유토피안주의를 펼쳤다
푸리에의 생산공동체는 팔랑스테르라 불렀다. 사람들의 적성과 취향에맞게 하루에도 일곱 번 이상의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며, 생산된 부는 그 사회에서 필요에 따라 분배되고,가족 공동체는 부정된다.
프루동은 사유재산과 자본주의를 강력히 비판하고 화폐없는 노동의ㅣ 교환사회를 상정하다.
여기에 대해서 마르크스는 화폐가 상품사회의 관계에서부터 등장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한 인식이라고 비판하다. 그러나 앞 두 사회주의와 달리 사회를 인간의 조직물로서 사회라는 독자적인 사고하였으므로 한 걸음 나아간다
오늘날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국가와 시장의 이중적 진자운동에서 탈출할 수 있는 사회개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유형태가 사유와 국유대립을 넘어서 상호성이라는 것이다.빈부격차나 자본-임노동의대립관계를 야기하지 않는다.
생산자협동조합으로 전원이 노동자임과 동시에 경영자이다.대체화폐,신용화폐 등의 창출을 통해서 자립적인 네트워크 공간을 형성한 것이다.
독일은 근대민족국가 늦어져서 영국과 무역에서 보호주의가 필요했다.그래서 리스트는 선진국의 자유무역론은 사다리걷어차기에 비유했다.
자본주의 놀랄만한 생산력 뒤에는 과로노동과 빈부격차라는 어두운 면이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 밀의 해법은 생산과 분배를 분리하여 생산과 정에서는고전파의 원리를 대부분 수용하고,분배에서는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자하였다.
노동자교육을 통해 인구증가를 억제하면 미래는 축적이 정체되면서 임금은 매우 높은 사회가 될것이다.
3.자본주의 격동기
1.마르크스와 공산주의
마르크스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준 프랑스의 사건은 1848년 2월혁명이 노동자와 부르주아에 의해 주도되었다. 당시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노동계급의 장시간 노동와 열악한 근로조건이 있었다. 이 때 부르주아혁신과 프롤레타리아의 역사적 등장을공식화한 <공산당선언>을 발표하였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사물이 내적 모순에 의해 변화ㅏ한다는 인식을 배웠으나 헤겔의 변증법이 사유(절대정신. 이성)가 정.반.합 발전을 한다고 봤는데 마르크스는 사물의 자기발전이라는 유물론를 확보하다. 이는 경제학에 접근할 단서을제공하다.
계급은 일차적으로 경제문제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세 계급의 생산과 분배에 대해서 주목하다.
상품의 가격이 노동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고전파의 노동가치론을 수용하여 잉여가치론으로 발전시켰다. 상품가격이 이런 크기인 것이 얼마나 정당한가의 문제가 있다. 노동가치론은 도덕적이고 주관적인 의미에서 노동량이라는 객관적 기준을 제시해서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그러나 고전파는 이윤의 원천을 설명하지 못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는 이윤과 지대를 다른 계급에게 주는가?자본주의 생산과정이 상품관계 속에 있어서 외관상 등가관계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력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노동시간(=노동력의 가치)은 바로 그 하루 노동력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생필품 등 소비재의 가격이라 볼 수 있다.
노동시간을 얼마나 뽑아내느냐는 근로계약에 달려있다. 오늘날은 8시간 근로가법으로 정해 있다. 그러면 노동재생산 비용 4시간을 제외한 4시간이 남는다
이런 잉여가치가 남는 이유는 자본가에 의한 생산수단의 독점 때문이다
고전파의 임금기금설(철칙설)과 달리 노동자가 빈곤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산업예비군의 존재 때문이다. 이는 다른 여러 요인보다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실업이 자본주의 전제조건이다. 이 규모에 따라 노동계급의 임금이 변화하게 된다. 이 규모는 경기변동의 영향을 받는다.
자본주의는 생산성을 혁신하는 좋은 체제이지만 맬서스의 과잉생산, 마르크스의 과소소비설, 케인스의 유효수요이론 부족 등으로 경제공황을 야기한다.
이런 주기적 공황을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과 접목시킨다. 외관상 과잉생산 공황이지만, 그본에는 노동자의 계급투쟁이 있다.
진화에 대한 예측으로 독점자본주의 출현을 말하다. 공업생산의 토대가 조직화되어 통합적.상호의존적이 되지만, 사유재산이라는 상부구조는 사회제도 중 가장 개인주의적인 것이므로 양자는 양립할 수 없다. 공황은 다름 아닌 이 모순이 주기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공황을 통해 자본주의는 점차 진화하는데, 진화과정에서 사회주의의 기술적 토대와 계급을 만들어낸다.
마르크스 경제학이 경제학에 기여한 점은 다음과 같다.
1.경제학 비판 체계의 모범 예를 제시했다.\
2.노동력상품이 지배적인사회로서의 자본주의를 정의했다.
3.이윤율하락 경향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제시했다.
이는 초과이윤을 목표로 하는 자본가 간의 경쟁과 자본-노동간 대립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혁신성을 적극 긍정했으며 동시에 파멸원인이 되기도 한 점을 보임으로써 자본주의 내적 모순을 드러내려 했다.
4.경기순환의 논리를 제시했다. PT가 확대되고 순수자본주의가 붕괴되면서 독점자본주의가출현하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사회주의초석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분배가 악화되어 노동자계급이 궁핍화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보았다. BG
2.고전학파의 재탄생
자본주의발전에 따라 나타난 빈곤의 누적, 노동환경의 악화 등 고전파의 낙관론과 충동하였다.
고전파경제학을 살리기 위해서 무엇을 핵심으로 삼았는지 살펴봐야겠다.
1.고전파는 현존 자본주c의 질서을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자연스럽고 영원한 질서로 보고자했다. 반면 마르크스는 역사적체제로 봄으로써 결국 자본주의는 없어질 것이라고 봣다.
2.고전파는 각 계급의 소득이 모든 사람이 자신이 생산한 만큼 분배받는 정당한 질서라고 보았다. 한계생산력설로 설명하다. 반면 맑스는 노동가치론에 따라 각 계급이 받는 소득의 원천은 노동자에게서 온다고 봤다. 잉여가치론이다.
3.자본주의를 목가적으 로 보았다. 스미스는 상업사회가 분업과 시장이라는 사회적 분업을 매개로 생산성을 혁신시키는 놀라운 사회로 보았다. 반면 맑스는 주기적 공황을 자본주의의 자기모순의 발현으로 인식하다.
고전파와 맑스경제학의 차이는 방법론적으로 현재의 시장 경제 또는 자본주의 경제를 균형론의 시각에서 바라보는가, 아니면 진화하는 질서로 보는가의 차이였다.
인간본성에 부합하고, 정당한 분배인 발전과 진보를 보장하는 자본주의라는 관념ㅇㄹ 유지하기 위해서 고전파의 기초인 가치론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엇다. 생산중심의 패러다임에서 필연적으로 유래하는 계급론적 시각을 탈피하고 소비자와 생산자 간 대립의 문제로 쟁점을 전환시킨다는 것이었다.
원래 노동가치론은 경제학 이전과 이후를 구분짓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보이는 가치론은 도덕이론과 차별이 되지 않았으나 고전파의 가치론은 객관적 가치론으로 정당성을 논증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상품 가격의 기초가 되는 가치를 투하한 노동량, 좀 더 넓게 보면 비용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소비자가 부여하는 가치로서 파악하고자 하는 시각이었다.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갖게 되는 가치 즉 주관적 만족도를 효용이라고 부르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상품의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고 보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벤담의 공리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사물의 판단 기준을 고통과 기쁨으로 나누고 후자의 확대를 바람직한 것으로 보았다. 선험적인 보편적 도덕과 덕의 개념을 부정하고, 결과적 총 후생의 크기로 사회의 우열을 판단하고 하여 인간ㅅ성의 독자적 지위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보수주의로 해석된다.
효용이 개념이 가치의 원천을 설명해주지만 정확히 어떤 상품의 가격이 왜 이 수준인가는 효용극대화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
효용극대화는 한계 효용,한계효용균등의 법칙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계개념은 물과 다이아몬드 역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한계효용이론이 가치론에대해 가지는 함의는 가치결정요인은 노동이 아니라 효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가치론이 가졌던 난점을 피할 수 있었다. 이제는 생산조건이 아니라 소비조건을, 생산자의 권리가 아니라 소비자 주권을 중시해야 했다.
시장우선적 자유방임주의라는 점에서 고전파와 같지만 개인주의에 근거하고, 소비, 균형강조하는 정학,평균보다 한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고전파의 전체주의,생산중심,평균주의,동학중심의 논리와 다르다.
이 신고전파경제학은 생산,유통,소비, 분배를 경제현상으로 바라보는 고전파의 체계를 탈피하여 수요와 공급을로 모든 경제학을 재배치하였으며, 오늘날 미시적경제학의 초기적 내용을 제공하였다.
한계효용의 체감법칙이 화폐에도 적용해보자.
부자의 천 만원을 줄때와가난한 자의 천 만원을 줄 때 만족도는 다를 것이다. 부자가 만족도가 낮으므로 부자의 소득을 빈자에게 이전하면 사회전체의 총효용이 증가할 것이다. 벤담과 밀이 초기의 자유방임주의를 부정하고 국가개입주의로 변하는 이유의 하나가 될 것이다.
철모위의 쇠사슬-일반균형이론
철모안의 쇠사슬은 안정적 균형, 철모 위의쇠사슬은 불안정적 균형이므로 모두 균형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수요와 공급이 마주치는 균형점이 외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복귀된다면 수요와 공급이 과부족 사태 즉 일반적 과잉이나 실업 등은 무시해도 좋은 경제적 현상이 될 것이다.
현실에서 균형에서 일탈하는 상황을 위해 발라스적 경매인을 가정한다. 경매인은 일탈하면 거래를 성사시키지 않고 초과수요, 공급에 따라 가격을 조절한다.
3.신고전파의 정립
마셜의 기여한 바는 한계효용학파의 한계개념을 생산으로까지 확장했다는 점이다. 수요와 생산이 작용하여 가격이 결정된다고 봤다. 생산에서의 한계이론은 한계생산성 체감의 원리라 한다.
생산과정에서 투입된 노동자와 기계를 구분하지 y단지 가변적 요소인가 고정적인 요소인가
차이로 설명한다
기간의 문제일 뿐 본질적인 차이은 없다는 것이다.
g노동의 한계생산체감 현상은 공급곡선과 관련이 있고 한계비용이라는 개념이 있다.
또 소득분배이론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노동자의임금은 노동자의 생산성에 비례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소득분배의 강력한 근거이고 노동자의 임금 차이에는 정당한 근거가 있다는 논리이다.
한계생산성 체감 법칙이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 점이다.
다양한 투입이존재한다면 투입비율을 조정하여 한계생산성 체감을 극복할 수 있고,또한 통신, 전력, 항공 등 초기 투자가 대규모로 하여 단위비용이 줄어들어 한계생산이 늘어날 수있다. 클러스터로 외부경제가 작용할 수 있다. 마셜은 이런 요소들을 간과하지 않았다
빌프레드 파레토와 신고전파세계
파레토 최적은 어떤 사회에 r서 한 구성원의 후생을 침해하지 않고서는 다른 구성원의 후생을 증가시킬 수 없는 경우이다 완전경쟁시장은 이런 의미에서 파레토최적상태이다. 시장이 효율적 자원배분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신고전 파경제학이 지나치게 협소한 이 론적 가정이 도전받다.
1.일반적 과잉 가능성이다. 고전파는 세이의 법칙에 따르다. 맬더스는 과잉생산을 소비하는 주체를 지주로 보았고 케인즈는 국가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앗다
1-2.고전파와 신고전파의 시장성공에 대한 믿은에 대한 두 번째는 맑스이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두 적대세력의 계급투쟁이 미래의 동학의 핵심으로 봤다.
고전파가 소득의 계급간 분배 문제에 대한 관심 때문 에 정치와 경제에 대한 종합적인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신고전파로는 경제학의 퇴행이다.
완젅경쟁 시장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시장성공을 증명할 수 없다. 그 예는 불완전 경쟁,공공재 및 외부성의 문제이다.
2.d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가 일반적인 사적 재화여야 한다.
e 치안, 국방, 공공방송 등 공공재
3.어떤 재화는 소비할 때 그 추가적 만족도가 증가하는 경우가 있다. 예방접종
그 외 시장실패 요인으로 경제주체가 의사 결정할 때 상대방을 의식할 경우와 정보비대칭성이 있다.
제4장 자본주의 황금기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제국주의 국가들의 비자본주의지역을 식민지화하면서 등장한 것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이다.
자본주의의 자기붕괴의 스토리, 대공황과 2차대전
주기적 불황의 대안으로 케인즈는 국가에서 그 답을 찾다. 자본주의가 직면하게 될 본질적 위협은 분노한 PT가 아니라 경제적 보상에 대한 불평등 경향과 투기 과잉에서 유래한다는 점을 인식했다.
대공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1.파시즘형태이다 군비와 전쟁에 의한 유효수요의 창출을 의미했다.
2.뉴딜-노동계급과 국가. 자본가 계급 간의 사회적 대타협의 형태를 띠며, 금융자본을 규제하기 위해 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고 사회공익산업에 규제하는 혼합자본주를 취한다.
3.볼세비즘이다
4.사회민주주의이다
2차대전 이후 시장만으로 이사회를 구성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합의가 있엇다. 이리하여 혼합경제, 복지국가가 대두되었고, 국가가 경제에 체계적으로 개입하였다. 화폐 의 국가 관리이며, 국가재정의 적극적 활용, 노동계급과의 타협이었다.
생산능력이 남아돌고 실업이 지속되는 상태를 불완전 고용균형이라 불린다. 이렇게 되면 실업과 과잉생산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정상적인 경제과정으로 인식되고 불황 또는 경기후퇴 역시 일시적인 태풍이 아니라 상당히 장기간 유지될 수 있다.
개체의 합리적 의사결정이라는 미시적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국민경제에서 출발하는 거시적 문제 설정을 도입하게 된다.
케인즈의 경제모형은 수급의 불일치가 있을 때에도 거래가 발생한다.
국민경제순환모형에서 기업과 가계는 모두 수요자도 되고 공급자도 되어 재화와 화폐가 끊임없이 순환한다고 본다.
세이법칙은 저축과 투자의 일치문제인데 저축이라는 누출이 투자라는 주입으로 반드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고전파는 이자율이 저축과 투자에 영향을 준다고 봤다. 이를 대부자금설이다.
케인즈는 저축이 소득에 대해 반응한다고 봤다. 투자가 이자율에 반응하는 것은 맞지만, 사실상 투자의 비용인 이자율보다 투자이득인 기대수익에 더 크게 반응할 것이라고 봤다
자본주의가 성숙할수록 과소소비의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를 정부개입에 의한 총수요관리정책이다.
총생산=총소득을 막는 교란요인은 저축이 투자로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신)고전파에서 화폐는 실물경제에 아무런 역할을 수행하짐 못하고 오로지 인플레이션만 야기한다. 반면 케인즈는 저축이 투자로 연결되지 못하는 요인이 바로 화폐때문이라고 봤다.화폐는 실물경제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팍스아메리카와 신고전파종합
2차대전 후 미국의 세계 생산량의 상당량을 생산하면서 자본주의 세계를 주도하다.이에 따라 나타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이다.
노동조합이 합법화되고 화폐체제는 국가 관리하에 있고 총수요관리정책을 펴다. 불환지폐였다.
누진세를 통해서 의료,주택,교육을 비롯하여 사회보장정책및 적극적 재정정책의 재원으로 삼았다. 이를 새뮤얼슨은 신고전파종합이라 했다.
3.신자유주의 경제학
프리드먼은 시장우위론을 믿고 잇었고, 국가의 지나친 개입은 경제를 망칠 뿐이라고 생각했다. 중앙은행을 중심ㅇ로하는 통화정책을 중시했다. 화폐수량설은 통화량이 증가하면ㄴ생산이 증대하기보다는 물가가 상승하는 논리이다.
신고전파의 복수-합리적 기대론과 새고전파경제학
케인즈는 자본주의 불황 경향을 한편에서는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과소소비경향에서 찾았지만 투자의 변동성에서도 찾았다.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화폐뿐만 아니라 기대 역시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신)고전파에서 미래 불확실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위기로부터 고전파을 구한 학설이 합리적 기대론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합리적으로 수행할 경우 결국 미래의 불확실성 역시 확률의 문제가 되므로 결과적으로 고전파의 세계와 비슷해진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불규칙하게 집행될 때에만 실물에 영향을 주지만 이는 합리적이라고 볼수가없다. 예측가능한 정부정책은 사실상 실물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므로 필요가 없게된다.
합리적 기대론은 정부정책의 방향을 대체로 시장에 맡기는 정책들 즉 탈규제,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들을 권고하게 된다. 이는 통화주의나 같다.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타국에서시장을 복원하고 하는 시장주의적 신고전파 정치경제학을 확장시키는 소재가되었다. 제3세계에 시카고 보이즈라고 불리는 자들 이 이런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신자유주의와 오스트리아 학파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경쟁지상주의이다 .공동체적인 단합, 사회주의, 파시즘을 모두 싸잡아 전체주으로 매도하면서 개인의 절대
적 자유를 주장하는데 이는 극단적 경쟁주의로 귀결할 수 있다.
하이에크는 우리사회가 복잡한 구성물이므로 시장이라는 과정(자생적 질서)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의 문제를 시장 불완전성의 원인으로 보았던 케인즈와 달리 그 불확실성 때문에 정부는 경제적 의사결정을 효율적으로 할 수있게 하는 엄청난 정보와 수집 및 처리능력을 갖추지 못한다고 보았다.
비록 불완전한 정보하에서라도 독립적, 분권적 의사결정 구조를 갖춘 합리적 행위자들 간의 경쟁적 대립관계, 즉 시장과정만 이 현대경제를 운영하는데 필수적인 정확하고 세부적인 정보를 생성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결과 전세계 경제 2008년 대공황을(지금도 진행중이지만)겪고 있는 지금 어떤 세계, 사회에 살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연구하고 투쟁하는 삶을 요구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평보다는 정리하는데 주안점을 두었기에 여기에서 끝맺기로 하겠다.
2010.12.20 00:55 두암동 미라보 아파트에서
간간히 정리해오다가 오늘 저녁 늦으막하게 정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