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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뜨락의 함성" 3집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이 책에는 실벗뜨락 회원들이 한 해 동안 관심갖고 관계 맺었던 생각들을 모은 글 입니다.
세 번쯤 되니 훌쩍 자란 모습입니다.
먼저 가장 친한 친구인 스스로에게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고 글을 통해 이웃도 만날 것 입니다.
후반부를 경주하는 우리네 삶에서 글쓰는 일은 사물과 사건들에게서 의미를 찾고 지혜를 얻으며 자신을 치유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그리고 시선이 머문 곳마다 축복 담은 고운 꽃밭을 만들게 합니다. 한 해 동안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2015년 12월 30일
한상남
여기는
한상남
조잘대는 물소리처럼 소곤소곤 조곤조곤
미소로 인사 건네며 격려하는 예쁜 사람 모여 사는 곳
여럿이 있어도 큰소리 들리지 않고 공원 벤치에 앉아 책장 넘기며 마음 넓히고 생각 모으며 자기가 주인공 되어 누리며 사는
지혜로운 이들이 함께 하는 곳
둘이 한편 되는 경기 빼당크 공 던지면서도
빙긋 입꼬리 올릴 뿐 승부에 목숨 걸지 않는
여유로운 마음 가지고 사는 이들 뭉쳐있는 곳
1878년 지어진 성당에서 날마다 미사 올리고
시간마다 종소리로 평안하라! 평안하라!
주의 음성 들려오는 곳
일주일에 두 번 공원 모습 사라지고 장이 서는데 서는데 장인 정신 담은 물건,주변국가 상품까지 주인공 되는 장날에도 만나 줍던 이들처럼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는 알뜰살뜰한 이들 손잡고 사는 곳
일주일에 삼 일 셔틀버스로 대형마트 오갈 때도 바쁜 이 아무도 없어 느긋한 걸음새 세상을 안고 흐뭇한 표정으로 풍광 즐기다가
아흐브아!
약속하는 이들 어깨 기대며 사는 곳
메밀 심긴 초록벌판, 유채꽃 향기 진동하고 잠 깨우는 새소리, 강 지키는 거위가족, 벌판 노니는 당나귀, 낮잠 즐기는 불란서고양이, 봄나들이 다니는 노랑나비, 새벽 알리는 수탉 닭장 누비며 사는 곳.
골목마다 꽃나무 정갈한 정원, 창문에 심긴 라벤다. 십 분 걸으면 닿는 골프장, 암반수 수영장.여기는 나그네에게 주는 선물 가득한 곳.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라로슈포제
라꾸르즈 강가에서
한상남
봄바람이 부르길래 집 나섰다
너와지붕 집 지나
막다른 골목에서 만난 라꾸르즈
하얀 민들레 방석 깔고
맛있게 풀 뜯던 거위 네 마리
거위 곁 맴도는 삐삐새
강 지키고 있다
강물에 초록빛 담구어 진 날
까마귀 그네 태우는 나뭇가지 사이로
솔개 한 마리 아득한데
비행기는 지나가며
흰줄무늬 구름 만드는 오후
자전거 끌고 온 소년과 아버지
데이트 나온 연인
개 데리고 산책 나온 중년부부
다정하게 손잡은 노부부
인사 건넨다
건너 마을 풍경에 마음 주다가
흐르는 강물 보며 추억 떠올리니
비감이 유로한다
어찌 그뿐이었겠느냐마는
강물에 초록빛 담구어진 날
맞다뜨린 또하나의 영상이다
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안식
한상남
거대한 도서관
서서히 문 닫는다
아흔 네개 선반
책꽂이마다 빼곡히 박힌 보석
빛 잃어가고
불 끄고 닫힌 아버지의 창
깊은 잠에 빠진다
커다란 배
가라앉는다
힘겨운 줄 모르고
애지중지 끌고다니던
짐덩이들
미련없이 던져버리고
침상 하나 얻어 누운 아버지
요단강에 들어섰다
높은 산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올곧게 세운 꿈
성실하게 가꾸어
온갖 것 다 품어 기르던
아버지의 산자락
하나님 품 속에 안긴다
크게 숨 들이마시고
받으신 새생명
영원한 안식이다
김영주
아버지/ 지구/ 병든 어머니
새로운 시작/ 겨울나기 1, 2, 3
1월 1일/ 상처/ 기다림
부모님 상실감/ 80 즈음엔
아니온 듯 다녀가세요
후회/ 희소식
역지사지//고백
아버지
아버지께서
입으셨던 옷이 너무 낡아
벗어 버리셨다.
우리는 그 옷을 태워
묘원에 버리고 왔다.
아버지께서는
투명인간이 되시어
활짝 웃으시며
어디를 가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
지구
지구가 소리칩니다.
제발 살려달라고
소리칩니다.
왜
자원을 자꾸 파헤쳐서
넘치게 만들어
넘치게 사들이게 하고
막 버리게 해서
나를 쓰레기로 덮느냐고
병든 어머니
전에 어머니가
자식 나쁜 길로 갈까봐
회초리를 들었다.
이제 어머니가
일등 못했다고
골프채를 들었다.
병든 어머니가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있다.
새로운 시작
인생의 반 이상을 살면서
불필요한 것들이 많이도 쟁여져 있습니다.
내게 더는 필요치 않은 것들
다른 이에게는 아직 필요한 것들
다 꺼내 놓겠습니다.
텅 빈 서랍. 텅 빈 장 안에
꼭 필요한 것들로만 여유롭게 놓겠습니다.
나는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겨울나기1
양식은 충분해?
난방은 가능해?
혼잣말로 중얼중얼 겨울을 챙긴다.
전화가 있고
TV가 있고
라디오도 있고
배달이 되는 슈퍼의
전화번호고 있고.
됐지?
이 정도면
겨울을 나겠지?
다시
외출이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일 수 있을 때까지
견디겠지?
겨울나기2
교회력으로 사회복지 주일인 오늘
올해 들어 제일 춥다.
집에 앉아
적정온도를 다른 날과 같이 해도
밖의 찬 기운이 실내에도 찬 기운을 만든다.
언제부터일까?
추위도 싫고
눈이 와도 싫고
웅크리고 있는 나도 싫다.
나가면
몸은 쑤시고
발은 미끄러질 듯하고
긴장한 상태로 걸어야만 하는 일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시대는 변해서
젊은이들과 함께 살지 않으니
심부름 보낼 사람도 없이
직접 모든 걸 스스로 움직여 해야 하는데
사회복지 주일인 오늘
심부름 자원봉사자라도 신청해야 할까 보다.
겨울나기3
위태위태
불안불안
아침부터 창밖을 여러 번 내다본다.
새벽녘에 창문으로 환한 빛이 보여
눈이 온 줄은 알았다.
얼마만큼 쌓였지?
곧 녹을까?
걸어갈 만큼은 쓸어져 있겠지?
나가보고 아니면 다시 들어오더라도
옷을 여러 벌 껴입고
목도리도 두르고
가방도 편한 걸로 고르고
발걸음을 내딛는다.
파이팅!
1월 1일
어느덧
새로운 한 해가 되었다.
해가지고 해가 떴다.
그런데
어제는 ‘지난 해’고
오늘은 ‘새해’다.
그렇게 ‘점’을 찍어서라도
나를 되돌아 볼 수 있게 한
현인들이 있었구나.
지난 일 년 난 왜 그랬을까?
올해 일 년 그러지 말아야지
그렇게 매 해 반복이 되더라도
그것마저 없었다면
지금만큼도 오지 못했겠지.
가슴이 먹먹하다.
그런 일들 중에 어떤 것들은
올해도 계속 그럴 거라는 걸 알기에
안 돼!
손으로 내 머리를 한 대 쳐본다.
상처
어디서부터가 잘못일까?
억울하고 분한 사람이 많아졌다
주거지역의 격차
수입의 격차
교육의 격차
지위의 격차
나이의 격차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로 시작된 나라는
계층을 만들어가며
평등하지 않아
평등하지 않아 속삭인다
‘우리’라는 좋은 문화는
‘끼리끼리’라는 문화로 변형되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는다
기다림
눈이 감긴다.
눈을 번뜩 뜬다.
다시 눈이 감긴다.
몇 번을 반복하다
벌떡 일어선다.
안 돼
잠들면 안 돼.
서성이며 걷는다.
기척 없는
‘너’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하루의 고단함이
어느새 사라진다.
부모님 상실감
마음이 아립니다.
마음이 시립니다.
설마
이렇게까진 줄 몰랐습니다.
다른 이들이 이런 일을 겪을 때
짐작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짐작했던 만큼은
어림없습니다.
받아들이라고
다 겪는 일이라고
위로랍시고 그렇게 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말로
줄어들 수 있는 아픔이 아닙니다.
차라리 충분히 아프라고
그렇게 그냥 두었어야 했습니다.
80 즈음엔
벗이여,
흔들리는 걸음을 멈추시오.
지쳤으니 쉬어가시오.
앞만 보고 가던 걸음을 멈추시오.
멀리 가려는 욕심이니 접으시오.
쉬엄쉬엄 둘러보며 가시오.
여기저기 생명의 숨소리를 들으시오.
기운이 될 때까지 간 곳
그곳이 목적지라오.
아니온 듯 다녀가세요.
턱을 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뽐내는 걸음걸이로
그렇게 다녀가지 마세요.
그냥
선배처럼
인생경험에서 묻어나는 지혜가
풍부한 이처럼
고개 숙이고
조심스런 걸음걸이로
후손인 너희가 나보다 더 나은 점이 있더라
나도 더 배워야 하더라는 모습으로
그렇게 다녀가세요.
후회
네가 예쁜 것보다
네가 날씬한 것보다
네가 편안할 때 마냥 좋았단다.
그래서
화장품 사줄 줄도 몰랐고
안 보이던 옷 보이면 한마디 하곤했다.
늘어진 티셔츠와
헐렁한 일바지
옹이 박힌 손마디를 가진 옛날 엄마들의 모습이
좋아서
그래서 나는 네가 그랬으면 했나보다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 되라고만 하는 게
아니었는데.
이제라도 네가 되어보고 싶었던 모습을
가져보렴.
그동안 미안했다.
역지사지
상처받은 나
상처받고 싶지 않은 나
상대방이 되어본다.
그럴 수 있었겠구나
공감에 공감을 더한다.
상대방을 바라본다.
너도 상처 받았구나
내가 뉘우친다.
희소식
정말 전화도 하기 싫었습니다.
그저 생각 속에만 맴돌았습니다.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것은
나에게도 너에게도
잘못이 있을 것입니다.
내 얘기만 내 주장만
받아들여지기를 강요할 때
그때 우리는
입도 귀도 마음도 닫았습니다.
고백
‘너 왜 이렇게 악해졌니?’
주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입니다.
올 한해
미움도 원망도 분노도 너무 많았나봅니다.
왈칵 눈물이 납니다.
주님께서 걱정하셨습니다.
늘 함께 하셨기에
제 못된 모습이 보였을 겁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셨나봅니다.
그저 울었습니다.
주님 마음에 들만큼
악함을 고칠 수 없을 것 같아
계속 울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주님!
제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김재곤
봄비가/ 송 서방네야/ 출근
한여름 늙은이가
마애사(磨崖寺)에
접시꽃 사랑
임의 얼굴
여름이 꼬리를
정동진
어부사시사 들리는 곳
버들피리 생각
꽃바구니
무정. 허무
봄이 온다고
밤에 온 가을편지
산호섬
봄비가
비가 내린다.
피려는 봉오리에 비가 내린다.
지려는 꽃잎에 비가 내린다.봄비가 내린다.
터지는 꽃봉오리 눈으로 쓰다듬고꽃비 내린 꽃길을 발끝으로 밟으며
둘이서 공원길 걷는다.
나무에도 꽃에도 비가 내린다.
쉬엄쉬엄 내린 비
가슴으로 스며든다.
.............memo
봄비 내리는데 꽃비 내리고 영산홍은 꽃봉오리가 터질듯 하다
아내랑 우산 쓰고 동네 한 바퀴 한다.
송 서방네야
어제
즐거웠다. 더구나 너랑 송 서방이 노력하는 모습 더 즐거웠다.갖고 온 짐 보따리다듬고 정리하다 난 자버렸다. 언니는 언제 잤는지난, 몰라.자고 일어나니
다섯 시 반눈 비비고 부엌 보니언니모습 언니냄새 물씬 한다.
고구마는 몸 말리느라 신문지 펴고 누워있고줄기는 한증막 가려고 몸매 다듬어져 대기 중이고깻잎은 여럿이 뭉쳐 허리띠 매고 자맥질 중이고
동부콩은 여름내 살던 집 부시고 쫓겨나
바가지에 담겨있고
고추는 학년별로 나뉘어져 다음 학기 준비 중이다참!아름다운 모습들.인생도 농사같이 사계절이다너는 지금 농작물이 쭉쭉 크는 한여름 물도 비도 햇볕도 더위도 때로는 바람이 필요한 삼복지간이다.
송 서방네야!
풍성할 가을이 너를 넘본다.
........
memo
어제 송 서방네(행주)가 고구마 캔다기에 용인 밭에 갔다 와…
성실한 송 서방 내외를 보고.
출근
내렸다.
계단 오른다.
지상이다.
와!
해 보인다.
기다린다.
철통에 또 들어간다.
멈춘다.
철통 문 열린다.
내렸다.
벽돌 통에 들어간다.
하루가 시작된다.
........
memo
지하철 내려 버스 타고 출근한다.
한여름 늙은이가
한여름 늙은이가 마루에 자리 펴고 선풍기 켜고TV에서 흘러오는 옛 노래에 귀 기울인다.
입도 허전 마음도 허전
냉장고에 수박 쪼개 입으로 벤다.시원하고 달콤한 맛 입 안 가득 구성진 노랫가락 귓속으로 스며든다.돌고 돌던 선풍기 스르르 멈춘다.
한여름 늙은이도 구성진 옛 노래에 사르르 잠이 든다.
..........
memo
날 무더워 마루에 자리 펴고 선풍기 켜고 누웠다
접시꽃 사랑
그님을 사랑한다고접시꽃이 입을 벌린다.
그님이
언제쯤 오실까.
오시는 걸음 보고파
삐죽이 고개 올려 바라만 본다.
그님이
어디쯤 오실까
애틋한 사랑을 담아 보낸다.
접시꽃 사랑
..........
memo
접시꽃이 밤사이 미쭉이 커 환히 웃고 있다.
마애사(磨崖寺)에
가을비가 짓궂다
산 오르던 등산객 오던 길 내려간다.
방어산 마애사 극락보전 찾아온 나그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玄風郭氏德伊靈駕 에 합장(合掌)한다.
돌아올 길 없는 길
이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나
쓰다가 모두 버리고 갈 것을…
숙연한 경내에
곱게 물든 단풍이 하나둘 떨어지고
방어산을 휘감는 안개구름 따라
우산 쓴 나그네 마애사를 내려간다.
.......
memo기제일이라 마애사를 찾는데 가을비가 짓궂게 내린다.곱게 물든 단풍, 안개구름이 방어산을 넘는다.
임의 얼굴
머 언 산을 보아도 하늘을 보아도 구름만 지나간다.보일 듯한 임의 얼굴보이지 않네.눈동자만 보아도 마음이 보였는데.보일 듯한 임의 얼굴보이지 않네.머릿속에 남은 것이 긴가민가하지만아롱대던 임의 얼굴보이지 않네.어슴푸레 기억들 사라질까 두려운데아롱대던 임의 얼굴보이지 않네.
.......memo하늘을 보니 보이는 것은 구름뿐이다. 마음속에 보일 것은 보이지 않는다.
여름이 꼬리를
입추 지나 말복오고말복 지나 처서오니 백로가 넘본다.바람 끝에 찬 기운 묻었다.
막바지 여름이 발버둥 친다.
낮에는 햇볕 쬐며 기승을 부리더니
밤 되니 옷을 챙기란다.
밤이 길다 낮이 길다 줄다리기 하던 여름
백로에 놀라 한풀 꺾이더니춘분이 무서운지 꽥 소리도 못한다.
여름이 간다고 꼬리를 내린다.
.........
memo
백로가 오려하니 아침저녁 기온 차 난다.정동진
정 동쪽해맞이 달맞이 가는 정동진
가을비 내린다.
쓸쓸한 백사장
외로운 파도소리
길손들은 어디가고. 두 사람 뿐일까
세찬 바람에일렁거리는 동해바다망망한 수평선에 이내 몸 놓아본다.
자연 속에 인간이란바람에 흩날리는 빗방울!
관동팔경이 어디더냐이 경은 두고라도 육경인들 어떠리.가고픈 동해 바다.
...........memo가을비 오는 정동진을 아내와 걷는다.
어부사시사 들리는 곳
보길도 가는 뱃전에 기대었다.땅 끝이 물러간다.어부사시사 들려온다.뒤에서 미는가 물 밑에서 미는가.거품길 만들며 둥실둥실 미끄러져간다지국총 지국총 어사와잔잔한 바다에 바둑판이 놓였다.신선이 내려와 누구랑 바둑 둘까.배 세워라 배 세워라산양 항에 배 닫는다, 자동차가 나온다. 배안에서 뿔뿔기어 가재처럼 나온다.배 붙여라 배 붙여라
갈매기 어디 갔나 보이질 않는다.상큼한 바다 내음 콧구멍이 벌렁벌렁닻 내려라 닻 내려라.
아침공기 맡으며 갯돌해변 거니는데솔솔 바람불어온다길 멈춰라 길 멈춰라에미몽돌 새끼몽돌 손바닥에 얹어놓고제주까지 가라고 돌팔매를 쳐본다.배 띄워라 배 띄워라아름다운 보길도에“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어부사시사 들려온다.
..........memo보길도에서 고산의 어부사시사 생각난다.보길도 예송리 갯돌해변에서
버들피리 생각
봄기운 난다
시냇물 졸졸 소곤대며 흐르고
냇가에 버드나무 몸색갈이 변하였다버드나무 가지 꺾어 버들피리 만들고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피리 불고 흘얼 대며 갱빈* 길로 걸었지
불다가 망가져
버들피리 끝 잘라 해때기 만들고
해때기* 소리는 한 음정이 높았지
지나가는 어르신 ‘피리 불면 뱀 나온다’하시니
망가진 버들피리 냇가에 던졌지.
버들피리 어디 있나.
그 동무들 어디 있나
버들피리 불어대던 그 날이 그립네.
*갱빈=시냇가, 하천가 의 경상도 방언
*해때기=짧은 버들피리. 호드기의 경상도 방언
........memo봄이 오려하니 어릴 때 냇가에서 버들피리 불던 생각이난다
꽃바구니
바구니에 담긴 꽃
탁상에 앉아 향기를 뿌려대다
마르고 비틀어진다.
물을 줘도
꽃이 마른다.뿌리가 있었으면 마르진 않을 걸
꽃잎에 코 묻고 꽃향기 맡았는데
바스락 소리가 코를 찌른다.
마르고 비틀어진 채
자태도 그대로 아름다움도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내려만 본다.
........memo어버이날 가져다 놓은 꽃바구니 예쁘게 말라가고 있다.
사람도 마찬 가지일 거야
무정. 허무
아침마다 나갔다.저녁이면 초췌하여 집으로 돌아오던
기계 같은 아저씨
한 달 내내 일하고
속주머니에서 꺼내던 노오란 봉투
보인지 오래다.
오래되고 낡아
제 기능 못하고 쓸모없는 짐 덩어리라고
요양원에 보내어져 조용히 쉬라네.
요양원도 도리원도
어디를 가더라도 낡지는 않아야 는데
흐르는 세월이 無情하고 虛無하다.
........
memo성실하든 친구가 요양원에 갔다네.
虛無하다.봄이 온다고
우수(雨水) 지나는데
봄소식 들린다.창밖에 이슬비 부슬부슬 내리네.
소나무 끝에 내린 비 솔잎 타고 내리다
방울방울 맺힌다.
봄을 한 움큼 거머쥐고
수정보다 더 맑은 봄 방울이 되었네.
봄소식은 오는데
봄은 아직 오지 않네.
이달일까 내달일까
벌이랑 나비가
몰고 올까, 끌고 올까, 타고 올까동네방네 다니며 온다고 알려줄까
봄이 온다고........memo그제 우수 지났는데 이슬비가 내린다.
베란다 창틀 난간에 빗방울이 뭉쳐 떨어질듯 하면서 붙어있다.
밤에 온 가을편지
어제 밤에딩동댕 편지가 날아왔다. 밤새도록 깜빡깜빡 폰(Phon)에 앉아있다.아름다운 그림도
뭐에는 뭐가. 어떨 때는 어떻게 살아가는 인생길에 좋은 말만 담겨있다.
읽어도 슬프다
낙엽 지고 해 가려니
밤에 온 가을편지 어쩐지 쓸쓸하다.
.......memo
새벽에 미국친구가 카톡을 보내 왔다, 어쩐지 쓸쓸 하다.
산호섬
아름다운 산호가머릿속에 그려진다.
보트 달려 내린 발끝
새하얀 모래 맛
산호는 어디에?
옥빛 바닷물에 몸 띄워놓고
이국땅 산호섬에 내가 머문다.
왔다가 가는 것이
남기고 가는 것이 만물의 섭리라고
산호는 아름다운 모래를 남겼네.
...........
memo
태국 파타야 산호섬 해수욕장에서 한나절을 즐긴다.
박언경
단풍 잎새
설악 여행
가을 하늘
덕수궁 나들이
아파트 살이
덕수궁 나들이
잊었나 보다
어머니와 달
행복의 수위
가을 텃새 바람
단풍 잎새
알록달록 고운 물들은 나뭇잎
예쁘다고 환호하며 즐기는데
아십니까?
그 잎새 하나하나에 숨어 있는 상처를
지난여름 장마철 다 지나도록
큰 비 한 번 오지 않는 하늘
목마름에 지치고
하루가 멀다하게 미세먼지가 몰려와
건강을 위협하고
더더욱 이웃사막 그 먼 나라에서
숨어 들어온 전염병
온 나라 전쟁터 만든 고난의 세월들 인내하고 승화시켜
잎새 하나 하나에 녹아든
그 빛깔의
사연을 아십니까?
이 가을 그 피부는 비늘이 되어
객혈처럼 흥건하게 쏟아내는데
그 위를 카펫인양 밟으면서
사람들은 즐거워합니다
설악 여행
12월 첫주의 혹한에
설악 여행 가보니
산자락엔 하얀 잔설 깔아눕고
호수는 꽁꽁 얼어 고독하네
신흥사 명사찰 둘러보니
동안거 정진하시나
스님은 보이지 않고 칼바람만
부처님 곁을 맴돈다
춘삼월이면 폭죽처럼 터져 나올 꽃무리들
지금은 깊은 잠에 빠진 채 꿈꾸고 있다.
마법의 설악동
가을 하늘
저 높고 푸른 가을하늘 그 하늘빛이 난 서럽다
옥색치마 즐겨 입으셨던 어머니가
예쁘게 가꿔놓은 정원에
어느 날 아버지는 신여성이랑 신접살림 불 지폈다
조선여인의 뿌리 일부종사의 날개에 갇힌
내 어머니는 그 배반의 외로운 삶을 어린 자식들과
노오란 하늘을 홀몸으로 이고 감당키 어려운 모진 삶을
항아리에 넣어 삭혔다
결코 돌아올 수 없던 지아비 사과 한마디도 받지 못하고
길지 않은 한많은 생의 끈 놓고 가셨다
어린 마음에 어서 어른이 되어 고생하는
어머니의 힘이 되고 싶었지만
시간은 더디어서 그 뜻 이루지 못하고
죄스러운 마음 내 가슴 한켠에 응어리로 남았다.
저 푸르고 높은 가을 하늘은 어머니의 옥색치마
난 그 하늘빛이 서럽고 슬프다
아파트 살이
아주 가까이 있지만
아주 멀게 느껴지는 이웃들
스스로 자동으로 열리는 승강기 안에서
순간 스쳐만 가는 얼굴들
이웃사촌이란 말은 옛이야기
미소한 얼굴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고
무겁고 성실한 표정들만 눈거울에 비친다.
가까이 있기엔 먼 당신이란
유행가 가사처럼
콘트리트 벽 하나 사이가
지구촌 어디엔가 멀고 먼 산간벽지에 있는 것 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이웃들
사람냄새 나지 않는 아파트 살이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처럼
온기 없고 사람 사이 아웅다웅 아우르는
마음의 풍요가 사라져 재미없다
갈수록 나이만 스펙처럼 쌓여가는 내가
현실 적응이 잘 안되는 탓일까?
덕수궁 나들이
시는 삶 속의 맛과 멋
시와 함께 하면 행복해 지는
선생님들과 시집 한권 들고
고궁에서 즐겁다
들뜬 마음은 꿈많던 어린시절
타임머신을 타고 그곳에 온 청소년들과
잠시친구가 되어 시 감상에 젖어보고
언제나 그렇듯 그 추억의 김밥은 또 추억의 김밥이 되어 공원 벤치에서 꿀맛 같이 먹으며
하하하 웃는다
앉아서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감상하는
씨티 투어
알뜰하게 남은 시간 보너스로 쓰고
돌아오는 길
난 어린아이가 되어
마음에 꽃 한송이 올렸다
잊었나 보다
맛 있네 맛 없네
배 곯아 눈물 나던 시절 다 잊었나보다
집안 곳곳 옷 쌓아놓고
입을 옷 없다니
구호물자 얻어 입던 시절 다 잊었나보다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내 몸 올리고 내리고
가까운 거리도 서슴없이 차 타니
차비 아쉬어 먼거리 걷던 시절 다 잊었나보다
이웃집 아기 보며 천사 같다 하니
제 아이 어렸을 적 키울 때 힘들던 시절 다 잊었나보다
어머니와 달
풀잎을 적시는 이슬방울은
어머니의 눈물이다
자식걱정 내려놓지 못하여
달이 되신 어머니
깊은 밤 잠 못이루고 뒤척이는데
많이 아프구나 창문 두드리신다
안쓰러워 아픈 밤 함께하시는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
행복의 수위
여행을 하면 한 달은 행복하고
친구를 만나면 하루가 행복하다
손자 녀석을 만나면 따악 한 시간만 즐겁다
가을 텃새 바람
가녀린 나뭇가지 끝
삶의 마지막 끈을 잡고 있는
낙엽이 애처롭다
예고 없이 달려와 사정없이
털고 흔들고 이곳저곳 제 마음 내키는 대로
몰고 다니는 텃새바람 얄미운 갑질
추억의 봄날은 아련하고 먼 훗날의 꿈
맥이 풀린 허전한 나뭇가지에
참새들이 모여들어
속삭인다
영원한 갑
영원한 을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임동복
을미년/ 낙엽/ 갈증
소녀 같은 할머니
응급실/ 눈물/ 기억
가로수/ 가을을 내 품에
희망/ 황혼의 선물
인생이야기
그대 일 줄 몰랐어요
그 길/ 남겨진 시간
세탁기/ 돈 먹는 하마
님아/ 꽃이 피었습니다
덕수궁 나들이
을미년
순한 양 한 마리
어둠속으로 달려간다
가지말라 소리쳐봐도
돌아보지 않는 기로에서
아쉽고 감사함이 교차한다
사랑과 이별로 얼룩진
지상의 무질서
숱한 사건들의 소용돌이에서
하늘 보며
희망을 찾아본다
2016년을 향하여
더 높고 더 푸르게
뛰고 또 뛰어 가라는
하늘의 명령과 은총이
햇살 따라 내 품에 안긴다
실벗뜨락의 가족이여!
숨어있는 내면의 소리
세상에 펼칠 때까지
언제나 건강과 축복이 영원무궁하길..........
낙엽
떠나가네
우수수 대지위에 떨치고
혼자서 가네
융단같이 깔려있는 그를 밟고
우아하게 걸어보는 쓸쓸한 여인
돌아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떠나가는
가을 끝자락
앙상한 가지마다
사랑과 이별로 얼룩진 상처
희열과 아픔의 갈림길에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방황하는 영혼 위로하며
망가져가는 육신
절룩절룩 가고 있네
낙엽 따라서.....
갈증
욕망은 채울 수 없는
일그러진 영혼
사랑과 미움으로
메말라 가고
마시고 먹고 취해도
마음은 텅 빈 터널 속으로
먼 길 돌아오면서
갈증으로 얼룩진 삶의 발자욱
잠시 머물러
돌아보는 이 순간
남김없이 지우고 또 지워
하얀 영혼으로 날고 싶다.
소녀 같은 할머니
주름 패인 한 손에
고운 단풍잎 주어들고
뒤뚱뒤뚱 공원길 걷는
할머니 얼굴에
소녀의 그림자 보인다
육신은 망가졌지만
영혼은 단발머리
순정어린 그 감성이
눈물겹도록 아리하다
모두가 한 시절 지나면
쓸모없는 추한 모습
영원한 것 찾으려
눈망울 굴린다
응급실
촌각이 급박한 운명의 정거장
병상에 누워있는 절박한 영혼들
이별의 수순이 행해지는
그 순간이 두렵고 서러워
지켜보는 가족들의 침통한 그림자
적막감 흐르는 숨 막히는 응급실
두 손 마주잡고
가냘프고 떨리는 목소리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좋아질 겁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께요.”
중환자실로 보내야 하는
자식의 눈물겨운 애절한 절규
떠나가는 서러움도 보내야 하는 아픔도
모두가 힘겨운 이별의 공간.
눈물
눈물은
가장 아름다운 고백이다
가식 없는 심연의 눈물샘
감성이 메마르면 볼 수 없는 것
그것이 눈물이다
내면의 순수성이
여과 없이 표출되는 아름다운 상징
남의 슬픔에 눈물 보인다는 것은
귀한 선물이며
희망이고 재생의 등불이다
나를 위해 누군가
뜨거운 눈물 쏟아내며
함께 한다는 것은 감격이고
더없는 축복이며
행복이고 사랑이다.
기억
언제부터인가
나사 풀린 기계처럼
되돌려 감기에 바쁜 일상
하루에도 수없이
술술 빠져나가는
구멍 난 기억창고
왜이래 이럴 수는 없어
혼미해지는
영혼과의 숨바꼭질
최후의 자존감이라도
지킬 수 있도록
멈추어다오
가로수
한평생
매연 속에 몸부림치는
쌓이고 쌓인 오염의 날개
가을바람에 흩날린다
알몸으로 서있는 가지마다
가냘픈 고통의 숨소리
저마다 숨어있는 사연
무언의 이야기 나눈다
얼마나 괴롭고 아팠는지를
수많은 날개 속에 묻어놓고
오늘에야 토해내는
한 많은 가로수.
가을을 내 품에
가을은 말 한다
오늘 지나면
내일은 늦을지도 모른다고
가을을 꼭 잡고
오늘 즐기자
내일은 불확실 하니까
바람 불고 비 내리면
도망치는 가을
내일은 칼바람이 몰려올지도 모른다고
낙엽 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누리고 즐기고
이 가을 내 품에 안겨주자.
희망
새벽하늘 저 편에 희망의 그림자
빛 오는 길목에
찬란한 미래 꿈꾼다
하루를 여는 우주의 질서가
조화를 이루는 거룩한
아침을 맞이한다
만물은 생성하고
인간 동력은 첨단을 넘어
세상을 바꾼다
무한한 행복을 추구하며
더 높고 더 강한 국력을 향해
비상하는 날개를 본다
황혼의 선물
오늘은
어떤 선물 배달될까!
긴장된 마음으로
모든 것 사양하고 싶은 마음
이것은 나의 바램일 뿐
보이지 않는 오만한 악성
어느 곳에 둥지를 틀고
살과 피를 갉아 먹을지
부속품 모두가 고갈되어
재생불능의 상태
세월의 무게가
이토록 녹슬 줄이야
덜크덕 덜크덕 어느 순간에
멈출지 모르는 시한부 소음.
인생이야기
오랜 세월 살다보니
세상사는 이야기 넘친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권력의 오만함과
빈부격차의 서러움
사랑과 증오의 갈등과 하소연
불평등한 이런 것들과
일생을 동행하는 우리 인생
때로는 상처받고
어느 때는 분개하고
또 포기도 하면서
스르르 녹아내리는 응어리
그 세월 속에서 성숙된
용서와 감사하는 마음
모두가 한번쯤 스쳐가는
흥미로운 이야기
그대 일 줄 몰랐어요
아직 내 안에 있는 사람
그대 일 줄 몰랐어요
못잊어 생각나는 사람
그대 일 줄 몰랐어요
오늘도 혜성처럼 떠오르는 사람
그대 일 줄 몰랐어요.
그 길
외길뿐인 그 길
외롭고 힘들어도 가야하는
숙명의 길
그 위를 걷는다
꿈도 희망도 권력도 재물도
소유할 수 없는
허무의 세상
묻지도 말고 따라 오란다
웃으며 가야 할지
울면서 따라야 할지
고달픈 긴 여정 돌이킬 수 없는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남겨진 시간
시간은 무한 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
자유로울 수 없는
속박의 시간 뿐
남겨진 시간의 길이
몇 뼘이나 될까!
자꾸만 다가오는 운명의 그날
주어진 원형 안에서
즐겁고 보람있게
하루를 살아도
백년같이 산다면
한 뼘 인들 어떠하리.
세탁기
얼룩진 일상의 허물 한 꺼풀씩 벗겨
수북하게 쌓인 널부러진 것들
통속에 몰아넣고 전원을 누른다
스르륵 스르륵
부비고 헹구고 비틀어 짜고
바지란 떠는
유일한 친구 나의 도우미
마침내 다시 태어나
웃고 있는 하얀 날개
칙칙했던 몸과 마음
날아갈 것 같다
햇살 좋은 창가에 주절 주절
콧노래 부르며 여가를 즐긴다
모두가 재생된 상쾌한 아침
도우미도 휴식 중이다.
돈 먹는 하마
이 몸은 고물상자
삐걱대는 마디마다
신음소리 울려 퍼지고
볼륨 조절이
불가능한 조직
시시때때로 괴성만 울린다
탈진한 허수아비
일등 요리사 찾았지만
먹을 만한 것 없다하니
어지러워 비틀거리는
내리막길 인생
이 몸은 돈 먹는 하마.
님아
불러도 대답 없는 님아
내 목소리 잊었나요
꽃피고 새우는
이 아름다운 세상
저리 많은 사람
오고 가는데
님은 보이지 않아요
이 세상 어딘가에
아니 저 세상에서
못잊어 지켜보고 있을 님아
왜 이리 무심하오
한번쯤 내게 오신다면
그것이
꿈이라도 좋으리다.
꽃이 피었습니다
냉한 속에서
심한 몸살 끝에 깨어난
꽃들의 함성이
메아리 치고 있습니다
창 너머로 보이는 꽃망울
속살 드러내며
수줍은 듯 빙그레
웃고 있습니다
마음 구석구석 파고드는
사랑의 속삭임
젊음이 다시 찾아와
가슴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모두 즐기고 행복하라고
웃으면서 살라고
곱고 아름다운
꽃이 피었습니다.
덕수궁 나들이
그렇게도 맑던 하늘빛 어디로 숨어버리고 오늘은 온통 희뿌옇게 시야를 가린다. 어제 밤부터 일렁이는 마음 아직도 소녀의 환상인지 아니면 노년의 어릿광대인지 알 수 없다. 새벽 일찍 일어나 사랑과 정성을 꼭꼭 담은 김밥을 쌓아 등에 메고 훠어이 훠어이 전철역을 찾아가는 이 마음 그저 즐겁기만 했다. 실벗뜨락 회원들 야외 수업이다. 덕수궁 정문 앞에서 만나서 입장하여 궁내를 돌아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1960년대 그러니까 결혼 전에 일주일간 서울 구경 길 첫 코스가 덕수궁 가을 국화 전시회 관람이었었는데 참으로 아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오묘한 모양과 다양한 색상 그 진한향기가 온 궁내에 가득 순수했던 시골처녀의 마음이 얼마나 황홀했었는지 그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누각이며 돌담길은 무변인데 나는 이렇게 퇴색되어 가고 있다니 순간 허무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전에 왔을 때는 유난히 곱던 노오란 은행잎이 장관이었는데 오늘은 아직 싱그러운 초록의 너울들 아마도 가을바람이 구중궁궐 높은 이 돌담을 넘지 못한 것일까! 궁 밖에는 울긋불긋 곱게 익어가고 있는데 이 궁 안은 딴 세상이로구나,
우리는 등나무 밑 벤치에 자리를 잡고 한상남 선생님의 문학 수업에 불을 당기고 나니 지나가는 여학생도 동참하여 시 한편 읽어주고 비둘기 한 쌍이랑 작은 참새들도 날아와 이야기 듣는다. 얼마나 재미가 있었는지!
그런데 부지런히 먹이를 쪼아 먹던 비둘기 한 쌍이 갑자기 생존경쟁의 치열함을 보인다. 서로 물고 뜯고 평화의 상징인 그들이 생존을 위해서는 인간과 일맥상통함을 보고나니 왠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저들도 내가 살기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상대를 이겨야 하는건지. 하긴 생물의 본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잠시 후 궁에서 나와 배제공원 한적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 김밥과 선생님들이 준비해 오신 포도랑 방울토마토를 먹었다. 야외의 멋과 즐거움을 느끼고 시립미술관에 설치된 전시품을 보았다. 정동 거리를 산책을 하며 들린 곳은 구세군 교회의 카페였다, 은은한 음악과 차를 마시고 광화문 앞에서 “서울 파노라마” 2층 버스를 탔다. 2층 버스를 타게 되다니....청일점 김재곤 선생님의 배려였다. 서울 생활 50년 만에 귀에 익은 도처의 명소를 누비며 한 시간 사십 분의 관광을 즐겼다. 가슴에 담고 눈에 익히고 고개를 열심히 좌우로 돌려가면서 즐겨 보았다. 가는 곳마다 넘치는 인파와 활력 넘치는 젊음을 느꼈다. 가을을 알리는 곱디고운 단풍의 멋스런 자태 옅은 햇빛에 반짝이는 도도한 한강의 물결 모두가 환상적이다. 모든 것 잊어버리고 젊은 날의 추억 들추어 되새기는 그리움도 맛보았다. 버스는 서서히 남산으로 접어들었다. 리라 초등학교 노오란 교복의 상징으로 아직도 뇌리에 펼쳐지는 옛 그림자. 힐튼 호텔을 지나 남산 도서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 아이들 중고 시절에 새벽밥 먹고 긴 줄 서서 기다려야 했던 그 시절, 오늘날과는 또 다른 시대 차이를 느끼니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 문화가 새롭기만 하다.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버스는 서서히 종점으로 향한다. 우리 일행은 다음 주를 기약으로 어둠과 함께 아쉬운 작별의 손을 흔들었다,
어쩌면 마침표를 찍어야 할지도 모르는 덕수궁 나들이. 한상남 선생님과 좋은 추억 남겨주신 실벗뜨락 회원들에게 감사드리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한 분들께 아쉬움을 표한다. 보다 건강한 모습 기대 하면서 전능하신 분의 사랑과 은총이 댁내 가득하길 기도드렸다.
언제나 타오르는 불꽃처럼 내일도 오늘같이 영원하길.........
임윤자
접시꽃/ 수확 / 봄의 길목에서/
갈대/ 사월의 봄
장미/ 축제/ 비 오는 날
겨울 밤
폭우(비)/ 빗방울/ 텅 빈 하루
꽃 선물 받고서/ 바다
나는 그런 세상 꿈꾸고 있네
담쟁이/ 들국화
서윤이의 가을
접시꽃
바람 한 점 없는 지루한 여름날
큰 키 자랑하며 예쁘게 피워 오른 너.
너를 보는 순간 어린시절로 뒷걸음 친다.
여리게 고운 얼굴 다홍으로 물들이고
더위도 잊은 채 미소 짓는 너
이름도 예쁜 너를 안아 주고 싶구나.
수확
줄기를 심은 지 엊그제 같건만
햇볕은 그렇게도 뜨거웠는데
속일 수 없는 게 땅이라는 말처럼
금세 수확의 기쁨을 즐기네.
들녘에는 버얼써 가을을 재촉하고
풍년의 배불림은 가까워 온다
멀리 계신 조상님들 지하에서 지켜보며
그으래, 잘 살고 있구나!
칭찬하시리.
봄의 길목에서
비행기 공포증을 참고서 제주에 도착했다.
봄을 맞으러
봄은 눈보라에 쫓겨 발을 멈추고
어린 싹들은 잔디 속에 숨어 미소 짓네.
오는 봄이 무서워 동장군은 도망가겠지
멀리보인 한라산 정상에는 희 눈이 덮여있고
끝이 없는 바다는 잔잔하기만 하는데
머얼리 가버리신 엄마 얼굴 바다 위에 아롱이네.
갈대
석양에 물들어 곱게 단장하고
옹기종기 모여 서서 주고받고 속삭이며
바다 넘어 숨어버린 해님 보고파 하네.
미풍에도 살랑대는 너의 자태 보고파서
바쁜 일상 미뤄놓고 가슴 설레며
머언길 달려서 널 보러 왔네.
사월의 봄
사월의 봄은 사랑으로 옵니다.
어머니 품속 같은 따스한 봄 햇살 아래
산에도 들에도 봄의 친구들이 다 모였습니다.
사월의 봄은 만남입니다.
산수유 개나리는 노랗게 단장하고
철쭉은 수줍어하며 몰래 꽃망울을 내밀었네요.
잔디 위에 민들레도 웃으며 바라봅니다.
사월의 봄은 슬픔인가 봅니다.
민들레 옆에 보랏빛 씨름 꽃 한 송이도
연약한 줄기에 꽃을 피워 봄을 맞고 있네요.
바라보기도 애처로운 작은 꽃잎은
내 슬픈 미소로 눈물 고여 얼룩집니다.
사월의 봄은 희망입니다.
대지에 말 없는 모든 생명들이
다 같이 희망 찾아 잠에서 깨어나
꽃 피우고 잎 틔우느라 하루가 다릅니다.
이 아름다운 봄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 합니다.
장미 축제
장미의 계절 오월
하늘은 뭉게구름 둥실둥실 떠다니고
축제 속에 장미꽃 친구들 사랑으로 피어나네.
봉우리 봉우리 고운 꽃잎들
형형색색 곱게 곱게 물들어
서로서로 예쁘다고 거만 피우네.
오월의 여왕 장미
요염하면서도 사랑스런 너에게
사랑하는 손자, 손녀들 건강도 소원하였다.
해님 떠나고 별이 총총 빛나는 밤이 오면
밤이슬 아줌마 친구 되어 와서
니 엷은 볼에 대고 입맞춤 해 주겠지.
비 오는 날
바람이 분다
잿빛 하늘 미에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린다.
베란다에 홀로 앉아
바라보는 공원의 풍경
종일토록 비에 젖어 울고 서 있네.
비오는 날은 그리움이 밀려오는 날
보고픈 어머니가
친구들, 고향 들녘이 애타게 그리워진다.
비오는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무섭게 질주하고
행어 사고 날까봐 가슴이 뛴다.
세월 속에 묻혀버린 지난날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뒤안길에서
비 속으로 멀리 떨어져 간다.
겨울 밤
동지섣달 긴긴 겨울밤
등잔불 밑에 식구들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던 어린 시절
구운 오징어는 왜 그렇게 맛이 있었을까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 겨울 밤 머언 먼 그리움이여.
텃밭에 묻어 놓은 무를 뽑아서
밤참으로 먹었던 그 달콤함
배보다 더 달던 무
어찌 그리 달았던지요.
영영 잊을 수 없는 그 때 겨울밤
아름다운 지난날의 추억 속에
노후 된 내 人生을 달래어 본다.
폭우 (비)
새벽 3시, 한 밤중 하늘이 성이 났다.
찢어지는 뇌성, 번쩍이는 번개 불.
비는 억수 같이 쏟아지고
하늘을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
이성을 잃고 눈 부릅뜨고 내려친다.
어찌하여 하늘이 이렇듯 화가 났을까?
우리가 자연을 함부로 훼손한 탓이겠지.
날이 밝았지만
쉴 새 없이 퍼 붓는 폭우
인간의 나약함을 비웃고 있는 듯
아무 말이 없다.
한강은 견디다 못해
흙탕물과 쓰레기로 제 모습을 잃고
서울을 집어 삼킬 듯 몸부림친다.
하늘이여 이제 그만 진정하소서.
우리의 잘못을 용서 하소서.
빗방울
유리창 밖
창틀에 매달린
수정 같은 빗방울
비 그친지 한참 오래인데
빗방울은 떨어질 듯 말 듯
대롱대롱 매달려 있네
빗방울 친구들
줄줄이 매달려
곡예를 하네.
바람이 불어오면
떨어질까 봐
해님이 오시면 말라버릴까 봐
떨어질 듯 말 듯
곡예를 하는 빗방울
바람아 제발 오지 말아라.
텅 빈 하루
생각은 무수한데
마음은 텅 비어
허무한 하루
시도 막혀 나오지 않는
적막한 오후
하얀 백지에 낙서만 끄적끄적
텅 빈 고요
허전한 마음 달랠 길 없어
어느 시인의 꽃 시를 읽고
텅 빈 마음 가득 채우네.
꽃 선물 받고서
못난 엄마의 생일을 잊지 않고
향기 그윽한 장미꽃 한아름 안고서
엄마! 하고 웃으며 와준 너. 은화야
내 눈에 행복의 눈물 글썽이네.
서울의 울타리 안에 같이 살면서도
그리움만 더 했던 딸
부용 꽃처럼 소박하게 피어오른
함박웃음 이어라.
만나면 반가워서 행복한 투정
헤어지면 서러워서 그리움의 눈물
마음속에 채곡채곡 쌓여만 가는
아름다운 추억의 장이어라.
바다
마음이 아플 때면
항상 떠오르는 드넓은 바다
엄마가 보고플 때도 마음 달래 주었고
고향이 그리울 땐 손짓하며 오라했지
언제나 풍성한 먹거리로 우리 건강 채워주었고
풍랑으로 돌변하면 악마의 탈을 쓰고
한 순간을 삼켜버린 고약한 심술쟁이
무섭고도 고마운 바다
수많은 생명을 지하에 감추고
아름다운 꽃동산도 만들어 놨지
서로 먹고 먹히면서 서로 사랑하며
아들 낳고 딸 낳고 아무 말 없이
잘 살아가는 아름다운 천국
나는 그런 세상 꿈꾸고 있네
담쟁이
긴긴 장마 속 여름을 보내면서
긴 몸뚱이 이끌고
저 놓은 곳을 향하여
열심히 올라가는 담쟁이
벌거벗은 벽돌 담장에
초록으로 옷을 입혀 멋을 부리고
잎새마다 입맞춤 하는 정다운 모습
여름 내내 고단했던 몸부림 속에서
큰 꿈은 작아져서 옛날로 남고
낙엽 되어 사라져야 하는
한 살 박이 담쟁이 넝쿨
들국화
영롱한 아침이슬 머금고
수줍은 듯 미소 짓는
초라한 어머니 얼굴처럼
가녀린 꽃잎 피워냈구나
자주 빛으로 곱게 단장하고
함초롬히 웃음 짓는 들국화
누가 한 번 만져주지 않았지만
네 스스로 꽃을 피운 너
고독으로 얼룩진 내 마음에
환한 웃음으로 안겨주고
환희의 눈물마저 빼앗은 너
내 고운 꽃잎을 사랑하고 싶구나
오래오래 서 있기 심심하면
산 속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노래삼고
훨훨 날아오르는 벌 나비 친구 삼아
이 가을 내내 피어 있거라.
서윤이의 가을
이른 아침 베란다에 앉아
고개 갸우뚱 공원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4살 손녀 서윤이
행여나 가을을 알까?
저 파란 하늘을 알까?
천진한 속마음 하도 궁금해
서윤아! 지금 무얼 생각해
새침때기 우리아이 토라질까봐
조용조용히 한마디 던졌다.
할머니, 지금요 공원에는요
단풍이 많이많이 피고 있어요
서윤이는 한 소절의 시를 읊고 있었다.
이 찬란한 가을의 단풍을......
조정자
계단이 무서워/ 언니/ 마음/
엄니 손맛 콩국수/ 고난의 지장가/
내 방식대로 그렇게 살거야/
단풍 1, 2/ 나 혼자/ 오늘/ 봄비/
세상살이/ 매미의 고뇌/ 능소화/ 장미공원/
꿈에라도 만나지길/ 꽃샘추위/
들꽃을 반기며/ 행복찾기
계단이 무서워
숨차지 않아도
계단을 오르고 내릴때면
마지막 계단
한 두개 남겨놓고
휘청하면서
깜짝 놀란다.
내 몸에 이상이 있는건가?
모르는 계단보다
내려가는 계단에선
마지막 남은 계단하나
깜짝 놀라게 아찔하다
내 몸을 깊이를 모르는
밑바닥으로 밀쳐 버릴 것 만 같다
내 곁에 누가 있었으면 한다
요즘 자주 느낀다
누구든 꽉 잡고 싶다
언니
언니 얼굴에서
오늘
읽었습니다.
저 만치서 걸어오는
언니 외모에서.
아직도
많이 아픈 모습 보았습니다.
전해오는
미소에선
반가움 뒤에 숨긴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오늘 새롭게 알았습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지난날을 이야기 하지 못하는
언니를 이해하기.
많이 불편한.
하루였습니다.
마음
높고 높은 하늘에
넓디넓은 산천에
마음 끓이며
애달플 게 왜 있을까
펑 뚫린 허공에
탁 트인 벌판에
날려 보내련다
오늘이 다하니
내일이 기다린다
이 풍광과 함께 하는 오늘.
기쁘고 즐거움 뿐이라
어찌 감사에 인색할까
내 남은 생애 중
가장 찬란한
푸른 오월에
내가 서 있음을.
엄니 손맛 콩국수
지금 갑니다.
까똑.
큰아들이 혼자
엄니가 만든 콩국수 먹고 가다.
난 그냥 반갑고
흥분까지 이는 게 내 본 마음
오래전 즐기던 아버지 따라
그 후에도 몇 번 갔던
여의도의 그 콩국수집.
아버지가 좋아했던
콩국수 내 아들도 좋아해서
난 밤 10시에
아들 위한 야참으로
콩국수 만들며
웃고명을 정갈하게 얹는다.
후루룩
시원하고 맛있네요
오늘 밤은 잘 자야죠
야참으로 먹은
엄니 손맛 콩국수가
아들 위한 수면 유도제라니
고난의 자장가
세 밤 자고야 알았다
헤집지 않고 나무숲 때리는 물폭탄소리
두 밤 자고는 붓도랑 넘치는 물소리로 들었다.
세 번째 날 잠 속에선 먼 곳서 들려오는
아득한 바람소리로 들었다.
물 매치는 혹독한 소리를
이들은 자장가로 잠들 수 있었고
고통의 세월 참아온 무한한 소리 있어
이렇게 이룬 것이리라.
이 소리 낯설어 안면할 수 없었다고
불평했던 나
감히 너희들 삶을 내 상상껏 판단하다니
난 이제 작고 보잘 것 없이 바스러진 모습으로
서툴고 야속한 기억만 남기고 가버릴
나쁜 엄마
나쁜 엄마
내 방식대로 그렇게 살 거야
뾰족한 무엇으로 폭 찌르면
푸른 물이 그대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릴 듯
눈 댈 수 없게 시리고 아린 아침 하늘
심장 깊은 곳까지
푸른 물이 겹겹이 출렁이게 하는
하늘만이라도 눈에 가득 마음에 가득
담아가야지.
어차피 모두 두고 가야 하는 것들
욕심내서 끌어안지도
끌려가지도 않을 것들
지난날 나의 욕망
내 한 몸 앞가림하며
살아온 삶이 남아있어
그곳엔 잘 지켜온
나의 성이 있는 곳.
나답게 내 방식대로
그렇게 살아갈 거야
내 마음이 만드는 길을 따라
마음 다스리며
나답게 내 방식대로
그렇게 살아갈 거야.
단풍(1)
지난밤 불어닥친 눈바람이
말짱 들쑤셔 부수었나.
거기가 무허가 구역이었나봐
둥지는 비어두고 피난 간 걸까
솜털 같은 부스러기
잔디 마당에 뿌려놓다
높은 사시나무 꼭대기에
발돋움하고
깍깍 차거운 울음
던지고 가는 저 검은 새 두 마리
겨울이 이렇게 오는구나
붉어지기도 전에
잎을 떨군 노란 단풍도
잠깐 아름다움 뽐냈지만
바람 불면 잎을 떨구는 게
너와 나의 인생 같구나.
단풍(2)
곱게 차려 입으셨네요.
어딜 가시려는지.
나 혼자
건너 집 잔디 마당에
노란 가을 쏟아지고
고즈넉한 집안엔
겨우겨우 낯익어 가는
들문 날문 사용 도통 거북해
끙끙대던 몇몇 군델
조심조심 더듬더듬
제각각 제 일 위해
몽땅 비워진
커다란 나무 궤짝 안에
오롯이 남겨진 나 혼자
뭐 하는 척 펜 굴려 본다.
뒷마당에 쏟아지는
햇살이 좋아
종아리 걷어 올리니
발바닥도 좋아라
어데든 가잔다
하늘. 구름. 햇볕이
모두 내 차지다.
오늘
결국 이렇게 오고야 마는 걸.
오늘은 기다리느라
목 메이고 휘어져가며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뒤틀리지도 젖혀지지 않은
나의 짧은 목.
내 생애 중 이런 날이 오다니.
기뻐서 웃는 게 아니고
기쁘기 위해서 많이 웃었다.
그리운 건 견딜 수 있었지만
외로움은 아픔이 되어
날 지탱해주며.
내가 오늘까지 살아온
활력을 유지해준
모진 아픔들.
오늘이 있기 위하여
어제도 있었고
내일도 있는 것을
봄비
봄비가 왔다.
혼자 오기 싫어서
천둥과 번개와 함께 왔다.
낮 동안 바빠서
셋이 만나기 힘들어
일손 쉬는 밤에 만나더니
요란한 반가움이
메마른 대지를 뒤 흔든다
봄 맞을 준비로 분주한
우리 가슴에 반성의
두 손 얹게 한다.
어두운 창
힘차게 두드리는
빗줄기가 괜히 겁난다.
잘못한 게 많아서.
세상살이
가끔은 세상이
너무 좁아 온통 날 얽매 놓는 것 뿐
날 전부 풀어 놓고 싶다.
가끔은 세상이
너무 질척질척해서
발목 죄는 전부에서 빠져나가고 싶다.
울 안에 폭 갇혀있는
이 답답함 탁탁 털어 내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
죄가 아닌 진정한 자유를 갖고 싶어
하늘과 땅에 대고 커다랗게 소리쳤다
그러나 우린 늘
세상살이에 서툴러서
웃고 우는 것도
멋쩍은 나이가 됐다.
매미의 고뇌
밤인지 낮인지
그건 몰라
우리들의 여름살이가
너무 촉박하니까
아직 암흑 구덩이
못나온
그들도 이 목 터지는 소릴
들어야 될까
빨리 갑옷을 벗어 던져
장마가 끝나간대
우리들 반기는
광명한 세상도
잠깐 후면 바뀌니까.
우리들의 역사를 이루려면
아무리 목청 높혀도
짧다 너무 짧아.
능소화
거긴 너무 멀고 먼 곳
닿을 수 없는 곳이기에
담벼락 의지한 그리움은
보일 듯 말 듯 그 모습 보고파
발돋음만 꽂추 세워 보지만
기다리다 기다리다
헤집고 기어오를 수 밖에.
시들지도 못하고
옅은 잎새
다물지도 못한 채
애절한 눈물만
가득 담았기에
땅으로만 뚝뚝 떨굴 수 밖에
오늘도 울음 꽃 지는
능소화 송이송이
장미 공원
두꺼운 겨울 옷.
훌훌 벗은 너희들
연병장에 정렬한
병사들 모습만큼
풋풋하구나.
뿌연 먼지에
숨막힐텐데
은빛 햇살 밀치며
여리고 수줍게
새싹을 내밀었구나.
장미공원에서
추억을 주우려는
성급한 상춘객들
반가워 빨간 새싹에
눈 맞추고 귀 기울이며
초록물 찰랑거리는
봄의 소리를 듣는다.
꿈에라도 만나지길
내가 너흴
미워하지도 않았고
밀어낸 것도 아닌데
언제 그리 멀리 갔는지
내 사랑뗑이들
보고파서 눈물짓고
보고 돌아오긴
더더욱 힘들게 하는 그곳.
바람 다르고
햇빛 구름 물빛
나무 냄새 다른 곳.
하늘 땅이 맞닿아
끝도 없이 펼쳐진 그곳을
하느님이나 관리하실까
인간들의 영역이 아닌 듯
아득하기만 한 그곳
난 오늘도 꿈속에서나
너희들을 만날 수 있음에
긴긴 밤이 안타깝다.
꽃샘추위
얼굴 감추었던 식물들이
초록으로 피어나려는데
봄이 철 잃어간다
황사에 미세먼지에
호흡기가 병들어간다
9 년 만에 찾아온
3월의 한파라니
이름 있는 푸른 것들은
꽃을 잎을 피우고 싶어
술렁거리고
내 안에선
영글지 못한 시어들도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어
동동거린다
바람 한 점이라도
따뜻하게 휙 스치기만 하면
초록잎 시어도 돋아날 것 같은데
들꽃을 반기며
나이 들면서
몸의 여기저기가 병들어간다
그나마 다리의 힘을 키워야 한다니
공원을 걷는다
금빛 햇살 좋은
초록 오월의 반짝임이 아름답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호수 위를 선회하는
조형물을 비껴 놓고
작디작은 풀꽃들이 피어나는 곳
낮게 쪼그리고 앉으려니
발바닥이 저려오고 무릎은 삐걱거려도
풀꽃들이 몸의 불편을 덜어준다
사랑한다 너희들
작고 가녀려도 반기는 웃음은 변함없구나
노랗게 하얗게 반짝거리는
이름도 모르는 들꽃 곁에서
한나절이 즐거운 나의 오늘
행복찾기
햇빛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벚꽃은 황홀하게 피어있는 곳
꽃잎에 소복이 덮인 거기엔
네잎클로버 자라고 있어요
꽃잎에 가려 아름다운 모습은 잘 숨어있죠
한 잎은 희망이고요
한 잎은 신앙
또 한 잎은 행복
마지막 한 잎은 사랑의 잎이래요
눈에 띄지 않지만
희망 사랑 신앙 갖고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면
아름다운 네잎클로버와 만날 수 있어요
삶의 행복은 우리들의 맘속에
깊이 숨어서 살고 있는 것이죠
네잎클로버를 만나는
그 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