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daum.net/alhc/51q2/2111?docid=CxSE|51q2|2111|20031110004836&q=%BF%B5%B6%F46%B3%E2&srchid=CCBCxSE|51q2|2111|20031110004836
영락 6년은 17년과 다르게 해로를 이용하여 수군으로 공격하였고, 한강을 건너 철군할 때만 육로를 이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영락 6년 말 겨울에 공격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군을 이용할 때는 기습적으로 적의 후방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의 방비가 허술한 틈을 노려야 합니다.
적이 농경국가인 경우에는 농번기로 한창 일손이 바쁜 음력 8월에 제격입니다. 약 백년 후인 498년에 동성왕이 노령산맥을 넘어 영산강유역에 진격할 때도 영산강유역이 한창 농번기인 음력 8월을 택했습니다.
추수기인 가을에 적을 치면 군량미도 해결되므로 일석이조입니다. 또 전투를 마치고 돌아올 시점에는 겨울이 되어 강물이 얼므로 철군에도 유리합니다.
한마디로 영락 6년 음력 8월에 수군으로 아산만에 상륙하여 1달에 약 10성씩 모두 40성을 공파한 후, 한강을 건너 그해 겨울에 철군하였습니다. 일본서기를 봐도 음력 8월에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응신 7년(영락 6년); 가을 9월, 高麗人 百濟人 任那人 新羅人 並來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