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군 고림리 임원(용인시 처인구 고림동)
이곳은 예로부터 사람들이 모여살았으며
1500년대 그러니까 임진왜란 당시때도 이곳에는
무송윤씨 장령공파의 씨족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주위에 보이는 산이나 전답들이
무송윤씨 소유였으며...
세월이 흘러
외지인들도 들어오고, 묘지기들도 다 성이 있으니
섞여살았지만
기(琦)할아버지는
네아들을 두어 그 첫째는 임신이요, 둘째는 흥신이요 셋째는 달신이요 넷째는 창신입니다
임신은 고림리를 떠나고, 흥신은 벼슬을 하여 진천으로 달신과 창신만이
고향 용인 고림리에 살았지요
그래서
임신자손은 용천파라 불렀고 흥신자손은 진천파라 부리고
고림리를 지켜온이들을 용인파라 불렀습니다
매년 음력 10월이되면
고향을 지킨들이 모여 조상에 음덕을 기리는 시제를 모셔왔지요
평화롭게, 조상모시며 고림리의 무송윤씨들은 지내오고 있었으나
1960년대에 윤병찬(1900~1986)씨가 조상의 묘를 찾아 모시다가 보니
많은 문중의 재산을 확인하게 되지요
일제가 토지조사시에
종중을 인정하게되면 씨족 단위로 뭉치게 되니
종중땅을 인정하지 않고 종손 명의로 조사하게된것을...
병찬씨가 나서서
고림리에 있는 종토들을 조정하게 되는데
고림리 산 73번지는 당사골 잔남배기(9세 서손부터 14세선 할아버지산소등이 모셔짐)는
임신자손 즉 용천파5명, 달신자손 즉 용인파 5명으로 공동등기하고
고림리 산 23번지는 종산으로(병찬씨 조상 산소들을 전부 이장해옴)두어
종인들이 돌아가시면 산소롤 활용토록 하고
시제 모시는 윗토들은 고림리 종인들 명의로 공동등기 하게됩니다
이당시 고림리 224-1.2.3.4.번지는 9세부터 14세까지 시제 모시는 전답이었으나
공동등기를 누락하고 윤세완, 윤세진 명의로 후일 등기하여
세완은 윤병윤의 집터부터 팔아먹기시작 이당시에 윗토를 팔아 먹는게
검연쩍어 하며 이돈을 제가 다 가져가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니...
전부 팔아 개인 착복(윗토인정하면서 개인이 팔아먹음)하고
고림리 산 23번지의 종산으로 하기로 한것을 깨고
개인등기 했다가 종중앞으로 등기하여 세금을 포탈하다가
2000년 수원 지방법원에 특별 대리인 윤병현을 세워
개인 윤세완 명의로 등기하여 팔아 먹고 있었으며
수도권의 지가(地價)가 상승하자
이제 고림리 를 지켜오고 시제 모시던 땅들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해온 것입니다
무송윤씨 장령공파 용인 종중이라고
종손과 총무가 짜고 임의로 만들어
조상 모시던 위토들을 다 팔아 먹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가
하늘에서 금덩어리가 떨어지기를 기대하고 살지 않는것과 같이
열심히 일한자가 임금을 받는것과 같이
고림리를 지켜오고 조상 모시고 산소관리하며 시제 모신 우리의 어른들은
다 무시하고
오로지 종손이란 이유로 불법적으로 팔아 개인 착복 하는자
그 개인 착복하는데 일 거들어주는 공범
이런 어른으로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종중 규약이라고
보도 못한 자료는 그 종중 규약에 다른 종중들의 규약에는 없는
"경기도 용인시 고림동을 통할한다"
종손 자동회장으로 당연직 이라던가
말도 아니되는 내용들이 들어 있는가 하면
지금껏 발행되어온 족보(1961, 1985,2005년발행)를 확인 해 본 결과
여주,양평등 위탁 재산은 다 들어 있으나
용인시 고림동 일대에 대한 것은 없는것을 보면
용천파인 종손이라는 자가 용인파 심복총ㅁ부를 하수인으로 하여
또 팔아 착복할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배우지 못하고, 생계가 어려워 숯굽는일을 해온
우리 조상님들은 한점 부끄럼 없이 사신분들입니다
배웠다고, 이곳을 떠난 이들이
우리 조상을 폄훼하고 지금 우리를 능멸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앉아서 당하고만 살아야 합니까?
인륜적 패륜행위(조상묘를 직계가 아니라고 파묘행위)
도적질(윗토들을 팔아 개인착복)하는 자
그에 빌붙어 먹는 자
그러면서 되지도 않는 말을 하고 다니는자
나이를 먹어도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