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호반을 달리다 / 김류수
2004. 4. 15
전날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탔다. 경춘선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은 처음이다.
서울 도심을 빠져나간 기차가 어느덧 구리 남양주 가평을 지난다.
옆자리에 앉아 주변풍광에 연신 탄성을 지르는 아내.
산 여기저기 막 푸르기 시작한 신록 속에서 산 벗 꽃 자태가 우아하다.
산자락 배 밭은 하이얀 배꽃이 피어 여행객의 시선을 모은다.
연하게 솟는 새순과 겨울을 꿋꿋이 이겨낸 상록수 짙은 빛깔이 조화롭다.
마치 지긋한 연세의 어른과 마주선 어린아이를 담은 풍경화다.
기차는 황혼을 지나 밤을 거슬러 달린다.
풍경이 점점 흐려지더니
강원도 산새를 돌아드는 곳마다
여기저기 전등 불빛과 네온사인 빛이 북한강 잔물결에 출렁인다.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선 자세로
거슬러 흐르는 기차 바깥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다.
강촌을 지나 어느새 남춘천역이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이곳에서 하차를 했다.
춘천역사에 닿기 전에 15분정도가 연착되어 죄송하다는 방송을 흘려들으며
역사를 나왔다. 굳이 시간에 쫒기지 않아도 되는 이런 여행은 사람을 너그럽게 하기도 한다
춘천역은 아담하고 한적했다.
일상에 갇혀사는 나같은 사람은
호반의 도시 춘천 하면 괜히 마음부터 설레이는게 사실이다.
역 앞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기사들의 발길이 바쁘다.
경기장 근처 숙소로 이동을 했다.
춘천에 오면 닭갈비를 먹어야 한다며 우선 요기를 하자고 했다.
닭갈비를 먹는 것보다 친구의 유머 넘치는 말을 듣는 게 더 맛이 있었다.
곤하게 잠을 자고 있는데 친구 성범이에게 전화가 왔다.
시계를 보니 8시가 되어 간다.
성범이와 만호는 새벽에 출발해서 지금 춘천공설 운동장에 도착했단다.
참 열심들이다. 친구 덕분에 계획에도 없던 춘천에서 달리기를 하게 됐다.
대강 낯을 씻고 운동장으로 갔다.
운동장 주변은 경찰들이 나와 교통정리를 하고 있고
달리기 복장으로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담소하거나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마노는 어제 늦게까지 목을 축이고 마라톤화와 복장도 제대로 준비를 못했단다.
반바지를 구해보려고 시내를 돌고 주변 사람들에게
혹 ‘남는 반바지’ 없냐고 물었지만
웃기는 친구들이라는 표정만 되돌아온다.
9시부터 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춘천이 낳은 함기용 이라는
세계적인 마라토너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1950년 4월에 보스턴 마라톤을 우승하고
춘천에서는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준비 하던 중
6.25가 터져 잊혀진 인물이 되었단다.
하여 오늘 그 기념식을 수 십 년이 지나 이제야 치루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매년 대회를 개최하여 세계적인 마라톤 대회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대회의 요지였다.
5분간 스트레칭을 위한 율동을 함께 했다.
10시 20분 풀코스를 선두로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성범이와 마노는 풀코스를 신청했다.
성범이는 가다가 힘이 들면 30Km만 뛰고 오겠노라고 했지만
내심 그것은 아니었으리라.
마노는 겨울 추리닝을 입고 있어 하프정도 뛰지 않겠나 했다.
드디어 출발이다.
신호가 들리기 무섭게 사람들은 앞서 나간다.
운동장을 벗어나 큰 도로로 달리기 무섭게
선두는 200-300여 미터를 앞서 가고 있었다.
달리는 곳은 국제공인마라톤 코스라는데
3Km정도가 오르막의 연속이다. 고갯마루가 5km 반환점이었다.
어제 저녁식사를 하면서 코스 설명을 들었는데 생각보다 가파르다.
속도를 늦추면서 숨고르기를 했다.
뒤에 오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앞서 나간다.
그래도 지난번처럼 무리하지 않기 위해 속도를 내고 싶은 마음을 자제했다.
고갯마루를 오르기 전에 벌써 다리 근육이 뻐근하다.
내리막길에서도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다리근육이 풀리지 않은 듯 했다.
벌써 땀으로 목욕하듯 하는 사람도 있다.
내 앞서 달리는 이를 보니
운동화 한쪽이 닳다 못해 몸이 기울 정도였다.
복장도 일반 반바지에 허름한 옷을 입었는데
달리면서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신발이라도 하나 사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마라톤은 달리는 자세가 중요하다는데
저런 자세로 얼마나 더 달릴 수 있으려나 걱정되기도 했다.
사연이야 다 제각각 이겠지만
달리기는 홀로 고독함과
힘에 겨운 고통과 싸우는 의지의 결정판이다.
5km지점에서 목에 물을 축일 수 있었다.
5km까지 28분 정도가 걸렸다.
오르막길이 길어서 시간이 오버되는 것 같았다.
물의 흡수력을 생각해서 몇 모금 마셨다.
그사이 수 십 명이 앞서 지나간다.
날씨가 덥다. 20도가 넘는다는 예보가 있었다.
호반 동편에 다다르자 달리는 이들이 그늘 길로 연이어 붙는다.
6km지점부터 호숫가를 달리게 되었다.
연푸르게 짙어가는 숲이 감싸고 있는 호수는 맑고 투명하다.
갑자기 이마에 부딪는 바람이 시원하다.
단순히 느낌만은 아니리라. 다리가 조끔씩 풀리기 시작하면서
무겁던 몸이 조금 가벼워 진 것 같다.
선두 그룹은 벌써 반환점을 되돌아 나오는 것이 보였다.
댐에 다다르며 풀코스 4:30분대 풍선을 매단 이들 그룹을 지나쳤다.
큰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는데 뜻밖에 성범이가 내 어께를 친다.
왜 너 여기에 있냐고 물었더니 4:30분 목표로 뛰고 있단다.
나보고 풀코스를 달려 보자고 꼬드긴다. 안 될 말이다.
아직은 팔팔한 것을 보니 목표는 하겠다 싶었다.
그동안 땀 흘려 제일 열심히 연습한 녀석은 나와 비교가 된다.
다시 한번 파이팅을 외쳐주고 그들을 지나쳤다.
댐 위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지쳐있을 때 한줄기 바람은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
무거운 다리는 거기 그냥 머물고 싶어 하고 마음은 앞서 달린다.
댐 위를 거의 건너가는 시점에서 선두와 엇갈렸다.
선두는 경찰차를 앞세우고 무서운 속도로 질 주 하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선두 그룹과는 30분정도 차이가 날 것 같았다.
조금 속도를 냈다. 제법 여러 명을 제치며 앞서 나갔다.
2km정도를 더 달려 반환점을 돌았다. 풀은 완전히 호수를 한바퀴 도는 코스였다.
이전에 하프를 뛰었던 코스보다 힘이 남아 있는 듯 했다.
마노는 보이지 않았다. 10km지점에서 돌아간 것 같다.
반환점부터는 시간을 단축하기로 맘을 먹고 속도를 높였다.
호수는 빛이 반사하여 짙은 푸르름과 허이연 속살을 드러내곤 했다.
연이어 지나치는 이들에게 손을 들어 “힘”을 외치며 스스로에게
힘을 내라고 암시를 하며 달렸다.
호흡도 정상이었고 우측 대퇴부와 좌측 장딴지 옆 근육의 통증도 가라앉은 듯 싶었다.
되돌아오는 길은 15km지점에서 방향이 바뀌어 북동쪽 오르막길을 향해 뛰었다.
오르막길에서 200여m 앞서 나가던 그룹을 목표로 달렸다.
내리막길에서도 다리는 가볍지 않았지만 목표했던 사람들을 따라 붙을 수 있었다.
시내 길은 달리기가 더 수월치 않았다. 괜히 호흡이 더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종합운동장 옆이 보여 거의 다 왔구나 싶었는데 코스는 한참이나 돌아 달리도록
되어 있었다. 이럴 때가 제일 힘에 겹다.
이제 달리기를 멈추고 싶은 맘이 턱까지 차오른다.
마음속으로 목표했던 1시간 45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 오르막에서 시간 계산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종합운동장 입구 방향으로 틀었다.
마지막 이를 악물고 운동장으로 뛰어들었다. 트랙을 돌면서 두 어 명을 더 제칠 수 있었다.
골인지점 손을 번쩍 치켜들고 기호 3번을 뜻하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손목시계는 1시간 48분에서 멈췄다.
진행을 맡은 분이
"멀리 일산에서 오신 김00씨........" 이름까지 불러주며 환영해 주었다.
친구들이 환한 웃음으로 맞아준다.
물을 받아 벌컥거리면서 머리는 텅비어 온다.
포기하지 않고 해 냈구나. 이 생각뿐이다.
많은사람들이 참가 하지 않아서 그런지 전체적인 기록은 좋지 않은 듯 했다.
서브 3는 1등 한명 뿐인것 같았다.
중간에 되돌아 오지 않을까 염려 되었던 성범이는
4시간 10분58초에 들어왔다.
대단한 기록을 낸 것이다.
빨치산 3인자 다운 오기로 달린것 같았다.
오면서 우리는 닭갈비 집 시원한 야외 그늘에 앉아
마라톤의 진가에 대해
차려진 푸짐한 식탁만큼 씹고 또 씹었다.
씹을 수록 단맛이 나오는 이것을 왜 아니 씹겠는가?
인생은 마라톤을 위해 존재 한다는 뭐 그런 야그들.....
흠뻑 땀을 흘리고 차가운 막걸리로 목을 축이는 옆에서
단내나는 음료수를 마시며 함께 취해 간다.
또 운전대를 맡았다.
단순히 내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꼭 술을 먹겠다는 친구들을
말릴 수 없어서다.
그래도 어떤가? 이런 열정을 가진 친구들이 있어
나날이 젊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을......
오는 길은 가평 전에서부터 많이 막힌다.
386 따라지 노래를 틀어놓고 함께 부르며 북한강 물길을 따라
천천히 천천히 서울에 진입 했다.
집에 도착하니 10시가 다 되어 간다.
이틀간의 여정을 접으며 이런 저런 생각속에 나른한 몸을 뉜다.
처음엔 달리면서 내가 이짓을 왜 하나 하는 후회가 문득 문득 들었었다.
그만큼 힘이 들었다.
그러나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왜 이제까지 달리기를 안했던가 늘 후회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희열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성범이의 극성으로 춘천호반 마라톤에 참가 했다.
친구......나는 뒤늦게 바람이 났다.
친구가 좋으면 가서 함께 살라고 하지만
친구는 친구지 안그런가?
나는 내일 그 어느날도
바닷가나 강가 호숫가를
땀을 훔치며 달리기를 하고 있으려니
나를 보고프면 그곳으로 오게나...
---------------------------------------
오래전에 썼던 글이 인터넷에 남아 있어 퍼온 것임.
첫댓글 마라톤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 데 벌써 10년이 다되었구만.
허리에 무리가 가서 뛰기를 그만 두었는데... 그래도 저때가 한참때였다는 생각이 드네.
1263번 대리통이 보통 이상이네요. ~^^ 저때만혀도 날라댕겨는디
시방은 새대리 됐네...그래도 이번에 산에 갔더니 친구들이 못따라 오듬만. 저대리가 듬묵골 정골 번던 대세이 절골 시덜 폼마골 진짝지 갱미 목짝지 고래지미 안댕긴데가 없는 대리제..그래 봤자 못기미에서 못벗어 났지만...그때 쌔댕기던 대리로 시방 버티고 사네.
요즘은 배트민턴 하시죠잉~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면 땀도 나구요. 혼자 괜스리 땀흘리는 것보다 이게 더 낳제잉~
배드민턴은 그저 운동 삼아서 살살합니다.
때론 허리 통증 때문에 무통주사도 맞는데..무리하면 운동보다도 병원 신세를 집니다.
두어 시간 동안 두 세 게임하고 나면 땀나고... 운동할 맛 납니다. 운동후 샤워할때 기분이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