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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아프리카, 그리고 박물관
젊은 날, 누구나 한 번 꿈꾸지 않았으랴. 눈 덮인 킬리만자로와 야생의 세렝게티, 끝없이 이어진 태양의 땅 사하라까지. 또한 마음아파 하지 않았으랴. 가뭄과 기근과 전쟁. 가냘픈 어깨에 총을 맨 소년병 그리고 에이즈.
고정관념 탓인지 박물관은 우울하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공간에, 현란하고 화려한 아프리카의 색상과 손길을 들여놨음에도 불구하고 연민의 눈길이 쉽게 거두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김중만이라는 한 때의 통점같은 남자가 더해져 아프리카는 생각 속의 그것보다 훨씬 더 아리게 가슴에 들어앉는다.
방금 피 맛을 본 사자의 지척에는 금방 뜨거운 맛을 보고도 누 떼가 서성거리고 있다. 하루치의 생사는 이미 결판났으니 다시 시장기가 돌 때까지는 말미가 생긴 셈이다. 살기등등하던 사자의 눈빛에도, 공포에 소스라치던 누의 눈빛에도 세렝게티의 원경(遠景) 같은 평화가 깃들고 있다.
사진 속의 아프리카는 수줍고 묵묵하다. 어색한 ‘가다마이’를 걸치고 동구의 정자나무 아래서 포즈를 취한 도곤 족 남자는 마치 내 아버지의 옛 사진 같다. 저이도 분명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손을 모아야 할지 그냥 버려둬야 할지 꽤나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선하게 웃고 있는 검은 눈이 별처럼 빛난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겨울밤의 대표적인 별자리인 오리온자리 근처에 겨울의 대삼각형을 이루는 중심별인 시리우스가 있다. 별 중에서 가장 밝은 별이 시리우스인데, 육안으로 보기에는 하나의 별이지만 천체망원경을 통해서 보면 시리우스 뒤로 시리우스 B라는 작은 별이 하나 더 있다. 시리우스 B는 20세기 들어서야 그 존재가 겨우 확인됐지만 아프리카의 도곤 족은 그보다 훨씬 전에 이 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문명이라는 것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도곤 족은 어떻게 시리우스 B를 찾았을까? 아프리카를 신비의 땅이라고 할 때, 그것은 때때로 현대의 과학에 한 발 앞서 있는 그들의 예지를 일컫는 것은 아닐까?
박물관은 도곤 족을 지나 마사이족으로 이어진다. 용맹하기로는 이미 오래전에 소문이 났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들의 걸음걸이를 흉내 낸 신발이 만들어져 유명세를 이어가고 있는 바로 그 부족이다. 언젠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보았던 성인식에서처럼 마사이족 인형은 껑충껑충 뛰고 있다. 일상적으로 하루에 100리를 걷는다는 이들의 육체적 능력 앞에서는 헬스클럽이 만들어낸 몸짱 아줌마, 울트라 아저씨도 나약한 현대인 일 뿐이다.
사실 중년을 지난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라면 그 옛날의 타잔이라는 흑백 텔레비전 영화 속에 등장하던 식인종이나, 백인 학자를 위해 짐을 운반하던 모습이 고작일 것이다. 철저한 흑백 차별의 논리에 입각해 만들어진 영화에서 진실과 사실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나름대로 신세대이면서, 보다 이성적이라는 386의 입장에서도 이 대륙의 문화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박물관 2층에, 그야말로 보란 듯이 조각해놓은 그들의 모습은 섬세하고 우아하다. 인간이라는 참으로 복잡다단한 생물의 발생이 이 대륙이었으니, 문화라는 것 또한 그와 비례해 유구한 전통을 이어왔을 것이다.
다산을 기원한다든가, 전투에서의 승리를 갈구한다는 따위의 어쭙잖은 설명이 붙지 않더라도 남성의 상징에 못지않게 돌출한 여인의 가슴을 통한 기원(祈願)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또 갖가지 동물의 모습으로 장식한 전투용 가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해 적군의 사기를 꺾어 놓기에 안성맞춤이다. 베어낸 나무의 전체를 훼손하지 않고 일정하게 홈을 파내는 것만으로 완성한 사다리는 문명과 자연이 만나는 접지면처럼 느껴진다.
아프리카 박물관은 특별하다. 무겁고 장황한 공립 박물관과는 달리 관람하는 내내 경쾌하게 뛰어 건널 수 있는 색동 징검다리 같다. 더 인상적인 것은 관람객의 동선을 따라 인심 좋게, 그러나 전시물과 동등한 정성으로 들여놓은 의자다. 다짜고짜 다리를 달고, 등받이를 세운 게 아니라, 명을 다한 나무와 힘을 다한 인간이 만나 서로의 체온으로 위로 하며 쉴 수 있으리라.
생긴 대로 다듬어 놓은 의자에 앉아 김중만의 시선으로 아프리카를 보노라면, 전쟁도 허기도 전염병도 다 사라지고 소똥으로 발라 만든 움집에도 따끈한 웃음이 부풀 것 같다. 작렬하는 문명의 빛에 다친 눈과 마음을 보듬으며 바오밥나무 한 그루 우뚝 솟아오를 것 같다. 두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아프리카, 그리고 박물관.
▲ 서귀포시 대포동 1833번지 ☎ 738-6565
(http://www.africamuseum.or.kr/intro.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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