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기맥3구간(쑥고개-미륵산-석불사거리-함라파출소-봉화산-망해산-대명산-고봉산-광법사육각정자봉)
★.산행일시: 2013년 05월 17일(금요일)
★.날 씨: 맑음(더웠음)
★.산 행 자: 六德홀로
★.산행거리: 43.24㎞(화곡마을←0.6㎞→쑥고개←1.85㎞→용화산←2.53㎞→아리랑고개←1.45㎞→
미륵산←3.2㎞→석불사거리←4.9㎞→익산의료산업단지←차량이동:6.6㎞→함라파출소←2.04㎞
→봉화산←3.02㎞→칠목재←3.53㎞→수레재←2.45㎞→망해산←1.67㎞→취성산←1.63㎞→용천산
←3.04㎞→대명산←1.04㎞→망경산←1.28㎞→고봉산←1.57㎞→144.6m봉←0.84㎞→96m봉/
광법사 육각정자봉)
★.산행시간: 16시간47분(휴식과 발품 및 차량이동거리포함)
★.산행코스: 화곡마을(04:52)→쑥고개(05:09)→삼각점봉(05:17)→용화산(05:49~55)→아리랑고개
(06:38)→미륵산(07:17~28)→미륵사지갈림길(08:01)→석불사거리(08:44~09:04)→삼가제일교회
(09:41)→성광벽돌공장(10:03~12)→사랑의집입구(10:27)→익산의료산업단지로터리(10:46)→
차량이동: 함라파출소(11:27)→추억남기기정자/정심(11:37~58)→함라재(12:21)→봉화산
(12:35~44)→칠목재(13:36~39)→180.4m봉/삼각점(13:54)→수레재(15:11~20)→팔각정자봉
(16:13~28)→망해산(16:38~41)→취성산(17:14~24)→거점재(17:56~18:00)→용천산(18:11)→도로
(18:31)→28.5m봉/삼각점(18:33)→고속도로/창안마을버스정류장(18:51~55)→대명산(19:27)
→망경산(20:02~06)→다리실재육교(20:20)→고봉산(20:33~21:02)→144.6m봉(21:38)→96m봉/
광법사 육각정자봉(21:56)
★.산행후기:
일요일 결혼식이 2군데 예약돼 있고 55번째 맞이하는 생일이 다음주중에 있어 연휴에 친지들과
저녁이나 먹을까 했지만 잡목이 더 기승을 부리기전에 금강기맥을 이틀에 걸쳐 마무리하고 일요일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사실 잡목과 가시넝쿨이 많다는 금강기맥을 더운 날씨에 이틀에 걸쳐 70여㎞를 진행한다는 것은 현재의
내 몸 상태로는 조금 무리가 따르겠지만 그래도 예전의 향수를 되살려 진행해보기로 했던 것이다.
내가 다리를 다치기 전에는 날밤새워가며 연속종주하는 것이 주특기이었지만 지금은 몸보다는 마음이
앞서가는 육신의 낙오자신세...
그래도 이렇게라도 걸아야만이 장애를 조금씩이라도 극복해나갈 수 있으니 무리가 따르더라도
강행해야 한다.
그것만이 내가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기에...
이번구간 도로와 식당가를 몇 번 지나가기에 중간에 매식해도 되겠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이틀간
먹을 도시락 5끼분과 간식 그리고 물3리터, 여벌옷, 침낭, 전지가위, 구급약..등등을 준비하다보니
배낭무게가 만만치 않게 나가는 것이 어깨를 짓누를 것 같은 예감이다.
난 오로지 밥을 먹어야 하는 식성이라도 빵이나 기타 행동식으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다보니 이렇게
연속종주로 산행을 떠날 때면 아내가 반찬준비 때문에 고민하게 되다보니 더욱 미안한 마음으로 산행을
떠나게 된다.
어쨌거나 지난번에도 이틀에 걸쳐 쑥고개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했으니 이번구간 도로를 많이 따라가는
구간이 자리하지만 가능한 전구간 걸어서 진행하기로 마음먹고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어려운
난 구간에서 GPS도 없이 지도와 나침반만을 이용해 진행하다보니 몇 번의 발품으로 인해서 발바닥이
아파 익산의료산업단지에서 함라파출소까지 약 6.6㎞는 지나가는 차로 이동하게 되었었다.
04:52 아내가 챙겨준 이틀간의 먹거리를 배낭에 넣어두고서 2시간 수면을 취한 후 새벽1시에 집을
출발해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천안I/C로 빠져나와 국도를 이용해 쑥고개로 내려가는데 어찌나 졸음이
몰려오던지 도로변 휴게소에 안전하게 차를 세워놓고서 차내에서 잠깐 수면을 취한 후 쑥고개가
자리하는 용화마을에 도착하니 새벽4시가 다되어가 마을진입도로변 한쪽에 안전하게 차를 주차해두고서
차내에서 아침밥을 먹는데 새벽을 알리는 닭우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05:09 그렇게 차내에서 아침밥을 먹은 후 내일 오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애마를 만날 것을 약속하며
화곡마을 표지석이 자리하는 1번국도의 굴다리를 통과해 쑥고개로 향하던 중 잠시 급한 볼일을 보고서
1번국도의 구도로인 쑥고개에 올라서니 커다란 당상나무 아래에 의자가 하나 놓여있고 그 너머로는
가축의 퇴비더미가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적막만이 흐르고 있다.
05:49 봄날이 막 꿈틀대던 3월 마지막 날에 내려섰던 쑥고개를 출발해 숲으로 들어서 6분 남짓 진행하니
쉼터의자와 함께 이정표가 세워진 삼거리갈림길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정표에는 가람이병기선생생가:
3.2㎞, 대나무숲길: 1.9㎞를 알리고 있다.
이곳은 익산시에서 둘레길을 개척해놨는지 생각보다는 등산로가 잘 정비된가운데 이정표까지 자세하게
세워져 있어 더욱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삼각점을 확인하고서 진행방향을 좌측으로 꺾어 진행하다보니 지난번과 같이 군인들의
훈련장소인 듯 육군부사관학교에서 표찰을 군데군데 걸어놓았고 그런 등산로를 따라서 11분 남짓
진행하니 좌측으로 편백나무숲 쉼터: 0.7㎞를 알리는 삼거리 갈림길을 대하게 된다.
화측 용화리로 내려서는 안부를 가로질러 다시 오르막능선을 따라서 오르는데 우측 원수리방향에
개사육장이 자리하는지 이른 아침부터 개 짖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오기도 하는데 인근의 마을
사람들과 다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안부를 가로질러 17분 남짓 올라서니 삼거리갈림길이 자리해 안전로프가 설치된 우측으로
3분 남짓 더 오르니 묘지1기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용화산에 올라서게 된다.
낭산면쪽으로 조망을 즐기고서 홀로 쎌카를 찍는데 때마침 마을주민이 올라와 사진 한 장 부탁해
인증한 후 다시 지형도상의 용화산을 향해 우측으로 꺾어 지맥길을 이어간다.
(마을주민에게 부탁해서 한컷)
06:38 우측으로 꺾어 내려서 6분 남짓 진행하다보면 등산로 우측으로 커다란 바위 하나 자리하고 이어서
2분 남짓 더 진행하면 전면으로 출입금지 푯말이 걸려있는 가운데 우측으로 우회로가 개설된 갈림길을
대하게 되는데 직진으로 철조망을 넘어 1분 남짓 들어서면 군사지역임을 알리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이 지형도상의 용화산이다.
서쪽의 미륵산 방향과 북쪽 그리도 동쪽으로 막힘없는 조망이 펼쳐지면서 고산준봉들이 하늘금을 이루고
있다.
다시 뭉개진 철조망을 밟고서 바위지대를 따라 내려서면 우측으로 우회하는 갈림길과 다시 합류하게
되고 이어서 5분 남짓 더 진행하면 돌탑이 자리하는 지맥갈림길에 내려서게 된다.
두 개의 돌탑사이를 통과해 좌측으로 꺾어 내려서면 골이 패인 등산로가 이어지면서 24분 후 2차선
포장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는 아리랑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지형도상의 용화산)
(미륵산 조망)
(여기서 좌측으로 진행)
07:17 등산로이정표의 안내에 따라 좌측에 군부대철조망을 끼고서 10여분 오르면 좌측으로 미륵산성:
0.1㎞ 이정표가 세워진 갈림길이 자리하고 이어서 우측으로 미륵산성을 따라서 3분 남짓 올라서면
미륵산성위에 올라서게 되는데 지나온 방향으로 뒤돌아보면 다시한번 멋진 조망이 발걸음을 붙잡으며
부처님오신 날의 상쾌한 아침을 열어주기도 한다.
산성을 뒤로하고 4분 남짓 올라서면 잠시 바위지대가 자리한 후 4분 후에 넓은 공터에 올라서게 되는데
지맥길은 좌측으로 꺾어 장군봉쪽으로 진행하게 된다.
어쨌거나 좌측으로 꺾어 5분 남짓 진행하면 커다란 바위와 함께 묘지가 자리하는 지대를 지나 태극기가
계양된 미륵산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미륵산정상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이 삼각점과 돌탑 그리고 산불감시초소와 미륵산성을 알리는
이정표만이 자리하는 가운데 많은 등산객들이 이른 시간에 올라와 휴식을 취하고 있어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미륵산은 익산시에서는 꽤나 알려진 산으로 인근의 주민들이 많이 찾는 산으로써 백제 무왕때 창건된
미륵산성이 있고 주봉을 장군봉이라 부르고 있다.
(용화산 뒤돌아봄)
08:44 미륵산에서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기양리방향인 남서쪽으로 조금 내려섰다 우측으로 급하게 꺾어
지맥길을 이어가게 된다.
미륵산성안내판 우측으로 내려서면 묘지1기가 자리하면서 내리막길이 이어지게 되는데 그런 내리막길을
3분 남짓 내려서면 쉼터의자가 자리하는 삼거리갈림길을 대하게 되는데 우측으로 세워진 이정표에는
지나온 미륵산의 정상인 장군봉: 140m, 장항교: 2.0㎞를 알리고 있다.
자칫 무심결에 직진으로 진행하기 쉬운 삼거리갈림길이므로 주의해서 진행방향을 우측으로 급하게
꺾어 내려서야 할 것이다.
그렇게 우측으로 급하게 꺾어 8분 남짓 내려서면 다시 갈림길을 대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좌측으로 꺾어
내려서게 되고 이어서 4분 후 우측으로 꺾어 계단을 내려서 진행하게 되는데 이후로도 뚜렷한 갈림길이
자주 나타나니 독도에 주의해서 진행해야 된다.
가파른 소나무 숲의 넓은 내리막길을 다라서 내려서면 우측으로 590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자리하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휘어지는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서 4분 남짓 진행하면 다시 Y갈림길을 대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우측의 간재선생묘소방향으로 6분 남짓 진행하면 다시 미륵사지: 2.5㎞를 알리는 이정표가
자리하게 되는데 지맥길은 좌직진의 뚜렷한 길을 머리고 우측의 산길(간재선생묘소: 1.1㎞방향)로
접어들게 된다.
무심결에 좌직진의 뚜렷한 길을 9분 남짓 따르다보니 우측으로 “영빈 진주 강씨 묘역”이 자리해
지형도를 확인해보니 마루금을 남쪽으로 벗어나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왔던 길을 다시 지름길로 뒤돌아가 간재선생묘소: 1.1㎞방향으로 들어서 3분 남짓 진행하면 잡목지대가
잠시 나타나다 9분 후 커다란 당상나무가 자리하는 민가 뒤로 빠져나가면 3분 후 반사경이 세워진
아스팔트도로 삼거리에 내려서게 된다.
아스팔트도로를 가로질러 9분 남짓 농로길을 따르다보면 23번도로에 내려서게 되고 이어서 함열
방향으로 4분 남짓 도로를 따르다보면 석불사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사거리에 자리하는 석불사로 들어가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석불사의 경내를 잠시 돌아본 후 그늘에
앉아 갈증을 풀고서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돌아 나와서 함라까지 버스로 진행할까 아님 그냥 걸어서
진행할까 고심하다 걸어서 진행하기로 결심한다.
(우측으로 진행)
(독도주의구간 / 우측의 숲으로 들어서서 진행함)
(보기좋게 알바했음)
10:46 석불사거리에서 석불사를 좌측에 끼고서 함열방향으로 들어서 농공단지방향으로 들어서면 우측에
중화요리석불회관이 자리하면서 멀고도 긴 왕복사차선도로길이 시작된다.
그런 4차선 도로를 따라 15분 남짓 진행하면 좌측으로 에코알룩스(주)공장이 자리하고 이어서 7분 남짓
더 진행하면 좌측으로 검지와 옥실 우측으로 맹동으로 갈리는 사거리갈림길을 대하게 되는데 여기서
좌측 검지.옥실방향으로 들어서면 우측으로 전방(주)익산공장이 자리하고 이어서 3분 후 좌측으로
삼불암이 자리하고 있다.
아마도 공단이 들어서기 전에는 삼불암이 마루금이 아니었나 추측해보기도..
그런 삼불암을 뒤로하고 4분 남짓 더 진행하면 옥실,검지마을로 들어서는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되는데
여기서 우측으로 2분 남짓 들어서면 삼가제일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삼가제일교회에서는 저 서쪽방향으로 높게 세워진 공장굴뚝을 바라보며 진행하면 되는데 우측으로
나지막한 봉우리가 자리해 그곳으로 올라가보니 수도시설이 갖추어진 공원이 조성되고 있고 바로
그 우측으로는 배수지공사가 한창 진행되는데 쉼터정자까지 세우고 있다.
올랐던 공원을 다시 내려와 도로를 따라서 돌고 돌아 성광벽돌공장 정문을 통과한 후 무심결에 우측으로
도로를 잠시 따르다 다시 뒤돌아서 왕궁리유적지방향으로진행 서두사거리에 도착한 후 우측으로 꺾어
들어서면 TY라이팅(주)가 자리하고 이어서 노인요양원인 사랑의집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더운 날씨에 도로를 따랐더니만 지열로 인해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발바닥은 불타오르는 듯 뜨겁게
달궈져 발가락이 얼얼해지기 시작하는 것이 자칫 잘못하다가는 산행자체가 망가질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가는데까지 진행해보자고 다시 다짐하고서 사랑의집 입구에서 우측의 아스팔트도로로 들어서
7분 남짓 진행하니 원형동표석이 자리하고 이어서 3분 후 도마리 표석이 자리하는 굴다리를 통과해
우측으로 7분 남짓 진행하니 익산의료산업단지입구로타리가 자리하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게 된다.
버스정류장에 잠시 앉아 생각해보니 더운 날씨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서 아스팔트도로를 걷는다는 것은
현재의 내 몸 상태로는 크나큰 무리가 따를 것으로 판단돼 이곳에서 걷는 것을 포기하고서 함라까지
약6.6㎞의 거리는 차로 이동하기로 하고서 버스정류장에서 황등행버스를 타고서 황등으로 이동한 후
다시 함라까지 버스를 이용해 함라면사무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저 공장에서 좌측으로 들어서도 됨)
(저 사거리에서 좌측에 자리하는 전방익산공장쪽으로 들어섬)
(좌측에 삼불암 자리함) / 저 앞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들어섬)
(저 공장굴뚝을 목표로 진행하면 됨)
(미륵산 뒤돌아봄)
(우측의 배수지공사봉에 올라보니 이렇게 공원이 조성되고 / 다시 뒤돌아 내려옴)
(성광벽돌공장)
(알바 후 돌아옴)
(사거리에서 좌측 TY라이팅(주)와 사랑의 집 방향으로)
(우측의 도로로 진행)
(너무나 힘들어서 여기서 버스로 이동)
(함라면사무소앞 버스종점)
11:37 면사무소에서 조금 내려서니 버스정류장과 함께 함라파출소가 자리해 함라파출소를 우측에 끼고서
1분 남짓 들어서니 우측으로 백제의 숨결 익산 둘레길 안내판이 자리하면서 넓은 주차장이 자리하는데
2009년도 희망근로프로젝트 사업으로 추진되었다고 한다.
그런 마을도로를 따라서 들어서니 익산시 함라의 3부잣집의 돌담길이 시작되는데 양반가옥의 정취와
우리민족의 미적 감각이 향토적이면서도 서정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집에서 3부자가 담장을 사이에
두고서 이곳 함라에서 살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후기에 만석꾼을 누리며 살았다는 90여명중에 3부자가 이곳 함라에 살았다하니 이곳은 그만큼
평야가 넓은 가운데 옥토가 비옥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 3부자는 “김안균, 조해영, 이배원”인데 그들은 흉년이들 때면 동네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기에 동네사람들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소금을 날라주었다 해서 3부잣집 골목을 소금길이라고
불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고향에도 만석꾼이 있었는데 그 만석꾼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보안면 월천에서 배출한 인물은 만석군의 거부 매당공(梅堂公) 허방환(許邦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894년 진사에 합격한 우재(愚齋) 허권(許權)의 아들인데 부안지방 4대 갑부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친일파의 거두였던 전라북도 도지사 김대우(金大羽)와도 재판을 벌려 승소했다는
화제의 인물이기도 한 분인데 한때는 경찰지서도 자신의 집 옆으로 끌어드릴 정도로 똑똑하고 뱃장이
있던 분이요 배일적인 인물이었다고 하여 부안사람들이 평하여 말하기를 “부안에 인물이
한사람 반이(1.5명) 있는데 그 반이 바로 허방환이다.”고 평했다 하며 또 “재판 잘하는 허방환”이라는
말도 떠돌았었다. 지금도 이분이 살았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잘 보전되어 있고 <梅堂>이라는
당호 편액이 처마에 걸려 있는데 이 글씨는 철저한 항일왕자로 불운하게 살았던 의친왕(義親王 :
高宗의 3자 )이 쓴 친필 글씨다.
이 집의 정원에는 희귀한 민속자료 <월천리 석장승> 한 쌍이 전라북도 지정문화재 제 30호로
보존되어오고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단군신앙의 신체(神體) 석상으로 그 형태는 화강석재를
잘 다듬어 조성한 법수장승형의 돌장승이다. 장승의 앞면 복부에는 각기 예서로 <桓雄>, <王儉>이라
새겼고 뒷면에는 <長白山>, <九龍淵>이라 새겨져 있어 단군신앙의 신체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조성된 연대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대체로 17세기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향토사학자 김형주님이 이 자료를 처음 발굴한 것이 1993년경이며 1995년에 문화재조사보고서를
작성 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하여 전라북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이는 1909년에 나철(羅喆)에 의하여 종교적 체계를 갖춘 단군을 신앙하는 대종교(大倧敎)의 예전
신앙자료다. 원래 단군신앙은 영생불사를 신앙의 핵심으로 하고 있는 신교사상(仙敎思想)이
그 중심이다.
향토사학자 김형주님이 1993년경에 당시 허방환씨의 며느리 정태인 여사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이 자료가 처음 있었던 곳은 일제강점기 때 배메산 뒤 거북메(龜山)에 있는 수로를 건너다니는
돌다리였는데 허방환씨가 발견하여 집으로 옮겨 세우고 초하루 보름에 제상을 올려 섬겨왔다고 한다.
허씨는 원래 불심이 깊어 매월 초하루 보름이면 개암사에 불공을 드리려 다녔다고 하는데
어느 날 밤에 꿈을 꾸니 하얀 노인이 나타나 “내가 거북메 도랑에 엎어져있는데 네가 자주 지나다니며
내 배를 밟고 다니니 내가 배가 아파서 못 살겠다.” 하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삼스레 거북메
도랑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한 쌍의 석상이 다리로 놓여있어 일꾼들을 동원하여 목도하여
집으로 옮겨 세운 것이라 하였다. 단군신앙의 신앙신체는 희귀한 자료다.
어쨌거나 3부잣집이 시작되는 주차장에서부터 돌담을 따라 5분 남짓 진행하니 우측으로 넓은
주차장이 다시 자리하면서 둘레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이어서 돌담을 벗어나 3분 남짓 더 진행하니
좌측으로 정자가 하나 자리하는데 추억남기기 쉼터라 한다.
송홧가루가 노랗게 내려앉은 정자에 앉아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진행하기로 한다.
그런 마을도로를 따라서 들어서니 익산시 함라의 3부잣집의 돌담길이 시작되는데 양반가옥의 정취와
우리민족의 미적 감각이 향토적이면서도 서정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집에서 3부자가 담장을 사이에
두고서 이곳 함라에서 살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후기에 만석꾼을 누리며 살았다는 90여명중에 3부자가 이곳 함라에 살았다하니 이곳은 그만큼
평야가 넓은 가운데 옥토가 비옥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 3부자는 “김안균, 조해영, 이배원”인데 그들은 흉년이들 때면 동네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기에 동네사람들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소금을 날라주었다 해서 3부잣집 골목을 소금길이라고
불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고향에도 만석꾼이 있었는데 그 만석꾼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보안면 월천에서 배출한 인물은 만석군의 거부 매당공(梅堂公) 허방환(許邦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894년 진사에 합격한 우재(愚齋) 허권(許權)의 아들인데 부안지방 4대 갑부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친일파의 거두였던 전라북도 도지사 김대우(金大羽)와도 재판을 벌려 승소했다는
화제의 인물이기도 한 분인데 한때는 경찰지서도 자신의 집 옆으로 끌어드릴 정도로 똑똑하고 뱃장이
있던 분이요 배일적인 인물이었다고 하여 부안사람들이 평하여 말하기를 “부안에 인물이
한사람 반이(1.5명) 있는데 그 반이 바로 허방환이다.”고 평했다 하며 또 “재판 잘하는 허방환”이라는
말도 떠돌았었다. 지금도 이분이 살았던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잘 보전되어 있고 <梅堂>이라는
당호 편액이 처마에 걸려 있는데 이 글씨는 철저한 항일왕자로 불운하게 살았던 의친왕(義親王 :
高宗의 3자 )이 쓴 친필 글씨다.
이 집의 정원에는 희귀한 민속자료 <월천리 석장승> 한 쌍이 전라북도 지정문화재 제 30호로
보존되어오고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단군신앙의 신체(神體) 석상으로 그 형태는 화강석재를
잘 다듬어 조성한 법수장승형의 돌장승이다. 장승의 앞면 복부에는 각기 예서로 <桓雄>, <王儉>이라
새겼고 뒷면에는 <長白山>, <九龍淵>이라 새겨져 있어 단군신앙의 신체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조성된 연대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대체로 17세기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향토사학자 김형주님이 이 자료를 처음 발굴한 것이 1993년경이며 1995년에 문화재조사보고서를
작성 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하여 전라북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이는 1909년에 나철(羅喆)에 의하여 종교적 체계를 갖춘 단군을 신앙하는 대종교(大倧敎)의 예전
신앙자료다. 원래 단군신앙은 영생불사를 신앙의 핵심으로 하고 있는 신교사상(仙敎思想)이
그 중심이다.
향토사학자 김형주님이 1993년경에 당시 허방환씨의 며느리 정태인 여사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이 자료가 처음 있었던 곳은 일제강점기 때 배메산 뒤 거북메(龜山)에 있는 수로를 건너다니는
돌다리였는데 허방환씨가 발견하여 집으로 옮겨 세우고 초하루 보름에 제상을 올려 섬겨왔다고 한다.
허씨는 원래 불심이 깊어 매월 초하루 보름이면 개암사에 불공을 드리려 다녔다고 하는데
어느 날 밤에 꿈을 꾸니 하얀 노인이 나타나 “내가 거북메 도랑에 엎어져있는데 네가 자주 지나다니며
내 배를 밟고 다니니 내가 배가 아파서 못 살겠다.” 하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삼스레 거북메
도랑에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과연 한 쌍의 석상이 다리로 놓여있어 일꾼들을 동원하여 목도하여
집으로 옮겨 세운 것이라 하였다. 단군신앙의 신앙신체는 희귀한 자료다.
어쨌거나 3부잣집이 시작되는 주차장에서부터 돌담을 따라 5분 남짓 진행하니 우측으로 넓은
주차장이 다시 자리하면서 둘레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이어서 돌담을 벗어나 3분 남짓 더 진행하니
좌측으로 정자가 하나 자리하는데 추억남기기 쉼터라 한다.
송홧가루가 노랗게 내려앉은 정자에 앉아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진행하기로 한다.
(익산 의료산업단지에서부터 이곳까지 버스로 왔네요)
(3부잣집 돌담길 시작)
(저곳에서 점심식사)
12:35 짧은 시간에 찬물에 밥을 말아서 꾸역꾸역 먹고서 시멘트도로를 조금 따르다보니 대나무 밭이
자리하는 Y갈림길에 우측으로 둘레길 7.1㎞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잠시 발걸음을 머뭇
거리다가 우측으로 들어서 잠시 오르니 복지시설건물이 자리하는 가운데 좌측의 둘레길에 야생차
군락지: 2.5㎞를 안내하고 있어 좌측의 목책길을 따라서 13분 남짓 오르니 함라재에 올라서게 된다.
함라재는 금강변의 웅포(곰개)와 평야지대인 함라를 잇는 가장 짧은 산마루고갯길로 예전부터 이 길로
많은 사람과 물건이 넘나들었다하며 이 길에는 짐꾼들이 금강을 따라 웅포항(곰개나루)에 들어온 진귀한
상품과 풍성한 농수산물을 보따리와 지게에 실어 함라로 나른 선조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고 한다.
재 아래에는 금광이 있었고, 숲이 울창하여 호랑이에게 봉변을 당했다던 이야기와 3부잣집을 드나들던
과객들의 사연, 함라로 향교를 다녔던 아이들의 추억 등 수많은 사연과 전설이 곳곳에 숨어 있는
재라고 한다.
마음 같아선 우측 가깝게 자리하는 함라산에 다녀오고 싶지만 가야할 길이 멀기에 마음만 가져보고
아치형나무다리를 건너 14분 남짓 진행하니 사각정자와 함께 파란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하는 봉화산에
올라서게 된다.
몇몇 마을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각정자 한쪽에 앉아 서쪽을 바라보니 금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가운데 다음에 진행해야 될 금북기맥의 마루금이 저 멀리 조망되기도 한다.
세워진 이정표에는 칠목재까지는 2.7㎞라 했는데 아마도 작은 봉우리를 7개는 넘어야 칠목재에 내려설
수 있을 듯.
그래서 칠목재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측길로 들어서고)
(금강)
(칠목재방향으로 조망)
13:36 봉화산에 자리하는 무인감사카메라를 우측에 끼고서 안전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서 13분 남짓 진행하면 능선 우측으로 조망이 열리면서 금강이 다시 한번 조망되고 2분 후
나지막한 봉우리에 올라서니 쉼터의자가 자리하는 가운데 좌측으로는 군부대사격장을 알리는
경고판이 세워져있기도 한다.
어쨌거나 칠목재까지는 뚜렷하게 이어지는 호젓한 등산로를 따라서 진행하게 되는데 봉화산을 출발한
52분 후 722번 지방도로의 고갯마루인 칠목재에 내려서게 된다.
칠목재 좌측 아래에는 한우촌식당도 자리하고 우측으로는 작은 주차장도 자리하면서 함라산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있기도 한다.
어쨌거나 칠목재에서는 매식도 가능하고 식수보충도 가능하기에 산행계획을 세울 때 적절하게
활용해도 될 것 같다.
15:11 칠목재 식당의 도로 맞은편에 자리하는 시멘트도로를 따라서 마을길로 4분 남짓 올라서면
좌측으로 기도원이 자리하면서 시멘트 길은 끝나면서 산길로 접어들게 되는데 흐릿한 산길을 10여분
오르면 지형도상에 삼각점이 설치된 180.4m봉에 올라서게 된다.
수풀 속에 자리하는 삼각점(한산-025)을 확인하고 잡목이 들어찬 흐릿한 등산로를 따라서 17분 남짓
진행하면 좌측에 자리하는 묘지 우측으로 벌목된 지역이 나타나면서 4분 후 마루금이 좌측으로 급하게
꺾이는 140m봉에 올라서게 된다.
쓰러진 고목과 함께 좌측 아래로 많은 표시기가 주렁주렁 매달려있어 길을 잘못 들어설 염려는
없겠으나 자칫 무심결에 직진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으니 독도에 주의해야 되겠다.
어쨌거나 좌측으로 급하게 꺾어 내려서면 편백나무 숲의 내리막길이 이어지면서 3분 후 수렛길에
내려섰다 좌측으로 꺾어 숲으로 다시 내려서면 좌측으로 봉분이 없는 3기의 묘지에 표석이 삼각형
모양으로 박혀있는 묘지대를 대하게되고 이어서 6분 후 임도와 같은 안부를 가로질러 14분 남짓 더
진행하면 좌측으로 공원묘지가 자리하는데 관리되고 있지 않아 잡풀들만이 무성하게 자라있다.
공원묘지를 지나 3분 남짓 진행하면 묘지1기 자리하는 능선에서 우측으로 꺾어 진행하게 되고 2분
후 좌측의 벌목지대의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꺾어 잡목 숲을 뚫고 3분 남짓 진행하면 대나무 숲을
통과하게 된다.
그렇게 대나무 숲을 통과해 3분 남짓 진행하면 묘지대를 대하게되고 다시 3분 더 진행하면 좌측으로
송전철탑이 자리하는 능선에 올라서게 되는데 여기서 다시 우측으로 꺾어 2분 진행하면 넓은 묘지대,
다시 3분 남짓 진행하면 좌측으로 송전철탑을 대하게되고 5분 후 뚜렷한 직진의 내리막길을 버리고
우측의 흐릿한 숲길로 꺾어 4분 남짓 내려서면 15번 군도로인 수레재에 내려서게 된다.
고갯마루에 농가의 정자와 함께 농가가 자리해 식수를 보충하고자 주인을 불러보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가운데 집을 지키고 있는 견공만이 짖어대 식수보충을 포기하고서 농가의 정자에 앉아
방울토마토로
허기진 배를 달래가며 휴식을 취하고서 진행하기로 한다.
(특이한 묘지)
16:38 수레재에서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서 민가 뒤로 이어지는 둔덕으로 올라서 묵은 과수원을
가로지른 후 묘지뒤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서 9분 남짓 진행하니 대나무 밭이 2분 남짓
이어지다가 흥법마을 안부에 내려서게 되는데 세워진 이정표에는 망해산: 2.1㎞, 지나온 방향으로
흥법마을입구; 0.9㎞, 오른쪽 와촌마을: 0.3㎞, 좌측으로 흥법저수지: 0.3㎞를 알리고 있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안부를 올라서면 대나무 밭이 잠시 이어지다 뚜렷한 등산로가 열리게 되는데
안부를 출발한 13분 후 통나무계단이 자리하는 능선에서 올라서면 망해산으로 오르는 능선이
펼쳐지면서 묘지대를 대하게 되는데 세워진 이정표에는 망해산: 1.3㎞를 알리고 있다.
망해산으로 오르는 마루금은 저 앞에 보이는 납골당뒤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정표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몇 미터 올랐다 좌측으로 급하게 꺾어 6분 남짓 진행하니 산딸기나무 넝쿨 등 가시넝쿨들이
옷깃을 붙잡아 스틱으로 재껴가며 통나무계단을 따라서 10여분 오르니 잔자갈이 깔린 임도에
올라서게 된다.
임도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좌측의 임도방향으로 망해산: 0.6㎞를 알리고 있고 우측으로는 금강: 4.0㎞
그리고 직진방향으로는 팔각정자: 0.1㎞를 알리고 있는데 이 임도는 축동리순환임도로써 취성산
아래까지 이어지게 된다.
어쨌거나 팔각정자방향으로 4분 남짓 올라서니 팔각정자에 올라서게 되는데 나이가 지긋한 등산객
2명이 찻잔을 나누고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서 정자 한쪽에 앉아 빵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며
휴식을 취했다.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 몸에 시원한 산들바람을 쐬다보니 자꾸만 졸음이 몰려와 잠깐 누워 낮잠을
자고서 진행할까 생각하다 그래도 밝은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진행하고자 다시 일어나 망해산으로
향하다보니 구불길이란 안내판이 이따금씩 자리하면서 8분 후 망해산에 올라서게 된다.
망해산 정상에는 삼각점(한산-459)과 정상표시목 그리고 그 직전에 넓은 헬기장과 함께 파란산불
감시초소가 자리하면서 그 너머로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조망이 펼쳐지기도 한다.
(저 앞 납골당 우측으로 진행)
17:14 망해산에서 조금 뒤돌아 내려와 진행방향에서 좌측인 남쪽방향으로 꺾어 13분 남짓 내려서면
다시 임도사거리에 내려서게 되고 잔자갈이 깔린 임도를 따라서 3분 남짓 진행하면 좌측의 나지막한
봉우리쪽으로 계단길이 자리하는데 흥법마을입구: 2.5㎞를 알리고 있다.
갈림길을 뒤로하고 땡볕의 임도를 따라서 진행하는데 맞은편에서 오는 여자운전수의 소형승용차
한 대가 흙먼지를 날리며 지나가더니만 이어서 대하는 임도사거리에 또 다른 승용차에 젊은 남녀가
뭘 하는지 승용차 안에서 좋은 만남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군산생태탐방로안내도가 세워진 임도사거리 공터에서 좌측의 시멘트길로 올라서면 3분 후 비포장임도
우측의 숲 방향으로 편백나무 한 그루가 자리하면서 숲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빽빽하게 들어찬
잡목으로 인해서 고개를 숙여가며 10여분간 힘들게 올라서니 산불초소와 함께 무인감시카메라가
설치된 취성산에 올라서게 된다.
자리하는 산불감시초소 안은 장판이 깔린 가운데 전기시설이 돼있고 전기스토브도 하나 자리하는 것이
노숙지로 안성맞춤이지만 감시초소문이 잠겨있어 그림에 떡이라 생각하고 전면으로 펼쳐지는
대명산과 망경산을 바라보면서 그늘에 앉아 짧은 휴식을 취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본다.
불편한 몸이지만 이렇게라도 산줄기를 다시 탈 수 있다는 것에 거듭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불편한
몸이 조금만 더 회복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게 되는데 눈물로 지내온 세월만큼이나 아름다운
나날이 앞으로 더 많을 거라고 확신하며 내 육신을 더욱 아껴야 되겠다고 다짐을 해보았다.
18:11 다시 취성산을 뒤로하고 내려서면 잡목이 드세게 들어차 있어 고개를 숙여가며 이리저리
피해가면서 내려서게 되는데 23분 남짓 힘들게 진행하다보니 우측으로 벌목지가 자리하다 다시
잡목과 잡풀지대가 자리하게 되는데 그런 잡풀지대를 2분 남짓 벗어나니 임도에 내려서게 되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 2분 남짓 더 진행하면 전면으로 묘지대가 자리하면서 3분 후 11번 군도로인 거점재에
내려서게 된다.
좌측 아래로는 마을이 가깝게 자리하고 있고 마루금은 우측 고갯마루에서 올라서게 된다.
거점재를 뒤로하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면 잡목 숲이 이어지면서 11분 후 별다른 특징은 물론이
거니와 조망도 없는 용천산에 올라서게 된다.
18:33 용천산을 뒤로하고 3분 남짓 진행하면 능선이 우측으로 꺾이게 돼 우측으로 3분 남짓 내려서니
우측으로 넓은 묘지대가 자리하는 임도에 내려서게 되고 이어서 묘지로 이어지는 진입도로를 따라서
1분 남짓 진행하다 좌측의 숲으로 들어서 7분 남짓 진행하니 우측으로 편백나무 숲이 이어지다 4분
후 2차선 아스팔트포장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내려선 도로를 가로질러 썩은 대나무단을 밟고 숲으로 들어서 2분 남짓 올라서니 지형도상에 삼각점이
표시된 28.5m봉에 올라서게 되는데 잡목넝쿨이 우거진 작은 공터에 삼각점(익산-407)이 설치되어 있다.
18:51 삼각점을 뒤로하고 1분 남짓 내려서면 다시 시멘트도로에 내려서게 되어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서 4분 남짓 진행하면 3거리갈림길을 대하게 되는데 갈림길 우측에 생명수교회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이어서 직진의 시멘트도로를 따라서 좌측의 축사를 지나 7분 남짓 진행하면 우측으로 배수지가
자리하면서 금강(Ⅱ)지구 옥구 2-1공구현황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서 2분 남짓 진행해 굴다리를 통과한 후 4분 남짓 더 진행하면 좌측으로 창안마을
버스정류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 해는 서서히 서산으로 넘어갈 듯싶어 버스정류장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어디서 노숙할까
이리저리 생각해보지만 계획한 옥구중학교까지는 못가더라도 광법사까지는 진행해야 될 것 같아
부족한 식수를 보충하고자 이리저리 민가들을 둘러보지만 인기척이 없어 식수구하기를 포기하고서
다시 마루금을 이어간다.
오늘 더운 날씨 탓으로 지금까지 5리터는 마신 것 같은데 딸랑딸랑한 식수를 어디에서 구한다는
말인가..?
19:27 버스정류장을 출발해 고속도로굴다리입구방향으로 잠시 진행했다 굴다리입구직전에서 좌측의
수로를 따라 진행하다보니 저 앞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민가가보여 그쪽으로 진행 식수를
가득채운 후 민가 뒤로 이어지는 대나무 숲을 벗어나 능선에 올라서니 날은 이미 어두워져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는데 잡목과 가시넝쿨로 홍역을 치루면서 11분 남짓 올라서니 해발 129m인 대명산에
올라서게 된다.
20:02 대명산을 뒤로하고 좌측으로 꺾어 16분 남짓 내려서니 시멘트도로 좌측으로 운동시설이
자리하고 도로건너 좌측 아래로는 경주이씨추모관인 납골당이 자리하고 있어 그 우측의 숲으로
들어서 13분 남짓 진행하니 커다란 나무 한 그루 자리하면서 3분 후 대하는 편백나무 숲을 따라서
2분 더 오르니 망경산에 올라서게 된다.
망경산에서 뚜렷한 길을 따라서 우측으로 1분 남짓 들어서니 №21번 송전철탑이 자리해 지형도를
확인해보니 마루금을 우측으로 벗어나고 있어 다시 망경산으로 뒤돌아 갔다.
20:22 망경산에서는 독도에 주의하여 좌측으로 급하게 꺾어 내려서야 한다.
어쨌든 망경산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꺾어 9분 남짓 내려서니 아스팔트도로에 내려서게 되는데
평강채씨 향림종산으로 성산면 산곡리 일대의 임야에 편백나무를 조림했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창오초등학교에서 1산 1하천 결연을 맺었다는 안내판이 함께 세워져 있다.
내려선 도로에서 우측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3분 남짓 진행하니 27번국도 위로 개설된 다리실재
육교를 건너게 되고 이어서 육교를 건너 숲으로 들어서니 잡목이 우거진 가운데 10여분 후 군부대
펜스를 대하게 되는데 절조망울타리에 고봉산안내판이 걸려있다.
군부대펜스를 좌측에 끼고서 휘돌아 진행하다보니 임도를 대하게 되어 좌측으로 임도를 따라
올라서니 철수한 미군부대정문에 올라서게 되는데 지난번 비슬지맥의 상원산에서 대했던 그런
안내판이 정문에 걸려있다.
정문에서 다시 뒤돌아 내려와 넓은 헬기장에 내려와 보니 철구조물위에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하는데
밑에서 올라가는 문이 자물통으로 잠겨있어 노숙하지 못할 곳으로 판단하고서 이동통신시설이
자리하는 곳에서 조금 더 빠져나가보니 묘지대가 자리하면서 전면으로 멋진 야경이 펼쳐져 비석에
앉아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거지가 따로 없다는 농담을 하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진행해야 하고 잠은 어디서 잘건지 걱정스럽게 물어와 앞으로 2시간 남짓이면 오늘 산행은
끝날 것 같다고 안심시키고서 식사를 끝낸 후 다시 헬기장으로 돌아가 마루금을 미어간다.
21:56 고봉산에서의 마루금은 고봉산헬기장 끝부분에서 미군부대의 철조망을 좌측에 끼고서 좌측으로
조금 진행하다보면 다시 우측으로 급하게 꺾어 내려서게 된다.
그렇게 우측으로 내려서면 헬기장을출발한 9분 후 시멘트도로에 내려서게 되고 이어서 시멘트도로를
2분 남짓 따르다보면 이정목이 세워진 삼거리갈림길을 대하게 되는데 이곳이 지형도상의 애잿고개이다.
애잿고개에 세워진 이정목에는 노란 페인트로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가운데 대야산월: 0.8㎞를 알리고
그 우측으로 좁은 시멘트길이 이어지게 되는데 그 우측의 시멘트길을 따라서 들어섰다 좌측의 숲으로
올라서면 편백나무 숲이 이어지면서 능선 좌측으로 검정포장이 둘러쳐있고 이어서 15분 후 나지막한
봉우리에 올라섰다 3분 남짓 내려서면 우측으로 지장암 내려서는 갈림길을 대하게 된다.
지장암갈림길을 뒤로하고 6분 남짓 진행하니 무인감시카메라가 자리하고 이어서 2분 남짓 더
진행하니 지형도상에 삼각점(익산-405)이 설치된 144.6m봉에 올라서게 된다.
삼각점봉에서 야경을 다시한번 만끽하고 4분 남짓 내려서니 다시 임도에 내려서게 되면서 좌측으로
광법사:100m를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이어서 9분 남짓 임도를 더 다르다보니 우측으로
육각정자 안내판이 자리해 우측으로 올라가보니 운동시설과 함께 육각정자가 자리해 이곳에서
노숙하기로 하고서 금강기맥 3구간을 종료하기로 한다.
(우측 지장암 갈림길에서 직진)
(대아중학교까지 진행하려던 계획을 수정 이곳에서 산행을 접고 정자에 베이스켐프를 구축합니다)
(내일 마무리산행을 위해서 이곳에서 잠을 자는데 멧돼지가 다가와 친구하자고 한다)
남은 식수로 얼굴의 땀과 발을 간단하게 씻고서 정자에 여름용 침낭을 펴고서 침낭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려하니 갑자기 멧돼지 녀석이 가깝게 다가와 소리를 질러 호루라기를 불어가며 멀리
쫒아버렸는데도 저 말리에서 계속 울어대 긴장한 마음으로 잠을 청해보지만 추위에 새우처럼
오그라져 자는둥 마는둥...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배낭속에 3단 우산과 비옷이 있었다는 것을 번뜩 떠올라 비옷을 입고
또 우산을 펴 바람을 막아가며 그럭저럭 밤을 지새우게 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