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지위제단에서 진서연과의 싸움이 끝난 이후야.
무일봉으로 돌아와 홍석근 사부님과 여러 사형들과 재회했지. 사부님과 사형들은 과거 진서연과 유란, 그리고 거거붕의 습격으로 인해 모두들 죽음을 맞이했어. 그 때에 나도 묵화의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홀로 살아남았지. 그 이후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그냥 그 부분은 생략하도록 할게. 이해해주길 바란다.
무일봉에서 만난 여러 사형들과 홍석근 사부님.
사부님은 이제 나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며 앞으로는 ‘나만의 길’을 가라고 하셨어. 내가 옳다고 믿는 나만의 길을 말이지. 그 길의 끝에서 모두와 함께 기다리겠다는 말을 끝으로 모두들 명계로 올라갔어. 이젠 정말로 나 혼자만 남게 되었지. 내가 옳다고 믿는 나만의 길. 이제부턴 그 길을 향해 걸어가야겠지.
그 이후로도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복잡하니까 그냥 언급하진 않을게.
난 홍문파를 재건하기 위해 아이들을 제자로 받아들여 가르쳤지. 흑룡교(黑龍敎) 에 잡혀간 아이들을 구하던 때에 친해진 류와 친친, 또 독초거사 영감이 거둬들인 고아 남매인 번양과 번아, 그리고 과거엔 견원지간(犬猿之間) 이었으나 홍문신공의 오의로 정화된 이후 어려진 진서연. 이렇게 5명의 아이들로 구성된 신생 홍문파를.
하지만 진서연을 제자로 받은 대가는 엄청났어. 꽤나 비싼 가격이었지.
무슨 말이냐고. 예전에 풍제국의 개라고도 불렸던 ‘풍객(風客)’ 으로서 있었고 또한 복수에 사로잡힌 나머지 마도의 길을 걸었던 나를 구해준 팔부기재(八部器才) 소속이었던 사람들. 그들이 자기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묵화의 상처를 입고서 살아가던 나를 구해줬어. 그런 그들의 후예들과 적대관계가 되고 말았지.
아이들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1년이 지난 지금.
류는 언제나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지.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라고 불러주면 될 거야. 언제나 예의바른 행동을 보이는 류. 언제나 그를 볼 때마다 지금의 이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언제나 지금처럼 말이야. 1년이란 기간을 거치면서 가장 잘 따라와주는 류. 언제나 고마운 제자지.
“사부님. 일어나셨습니까?”
“......그래.”
“오늘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루카 사부님!”
“그래. 나야말로 잘 부탁한다.”
“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들 아직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숙소로 가서 다른 아이들을 깨우겠습니다.”
“아니. 내가 가서 깨우겠다.”
“네? 사부님께서 직접요? 하지만 그래도 되겠습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다. 넌 먼저 연무장으로 가있어라. 내가 가서 깨우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연무장으로 가서 어제 배운 무공을 복습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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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아끼고, 가르쳐준 무공도 열심히 잘 배우는 류.
그런 류가 애들을 깨우게 한다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숙소로 가서 애들을 깨워야겠지. 일단은 먼저 번양과 번아를 깨우러 가기는 했는데, 숙소가 아닌 근처의 둥지에서 자더라고. 린 족은 마치 참새 둥지처럼 보이는 곳에서 자는 모양인가 봐. 언제나 땡땡이치기만 하는 번양과 번아라도 어쩌겠어. 어찌되었건 깨워야지.
“......일어나라.”
“흐아아~ 안 돼, 내 만두란 말이야.”
“......”
“흠냐~ 제자. 아니, 사부야~ 너 많이 컸다아아아~”
“......”
기껏 깨워줬는데도 번양과 번아는 여전히 꿈나라를 헤매는 모양이군.
여전히 사부인 나에게 반말을 쓰는 번양과 번아. 예전부터 그랬었지.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더라고. 번양을 볼 때마다 녀석을 빼닮았던 사형이 생각나거든. 화중 사형이 말이야. 그래서 그런지 버릴 수가 없어. 또한 번양에겐 번아란 하나 뿐인 혈육도 있으니까. 독초거사 그 영감은 애들을 어떻게 키웠기에 예의가 없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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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건 계속 깨운 덕분에 애들이 일어나긴 했어.
이번엔 친친을 깨워야겠지. 숙소까지 뛰어가서 깨우기는 했는데, 역시나 그 녀석들처럼 바로 일어나진 못하더군. 재차 깨운 덕분에 간신히 일어나긴 했는데 어쩌지를 못하더라고. 자기는 아직 어둡다는 말을 하더군.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지. 벌써 해가 중천인데 여전히 일어나지 못하는 친친.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얘기를 들어봐야만 해.
“아아 사부님. 제 세상은 아직 어둡다고요.”
“일어나라. 벌써 해가 중천이다.”
“아아아~”
“......하아아~ 이 사부님을 한숨 쉬게 만드는 데에는 선수가 따로 없구나.”
“저, 전 절대 땡땡이치지 않았어요!”
“......”
“번양이랑 같이 대나무 마을로 놀러가서 하루 종일 놀지 않았다고요!”
“......하아~ 그걸 다 자기 입으로 부나. 하여간 번양 이 녀석이 제일 심히 문제지.”
“사부님! 서연이는 제가 데리고 나올게요. 그래도 되죠?”
벌써 해가 중천인데도 일어나지를 못하는 친친.
이 녀석이 다 불어버리더군. 번양이 대나무 마을로 데려가서 하루 종일 놀았다는 결과가 된다는 거잖아. 번양이 정작 동생인 번아까지도 망쳐버린 덕분에 땡땡이를 치는 것도 언제나 함께야. 그런데 식사시간만 되면 어떻게 알아채는지 항상 나타나더군. 사부인 내가 열심히 무공을 가르치는 의미를 상실하게 만드는 녀석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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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친이 서연이는 자기가 깨워서 데려오겠다고 했어.
그렇다면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가야지. 류가 혼자서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었지. 언제나 예의가 바르고 단 한 번도 수련에 빠진 적이 없는 류. 언제나 이쁜 녀석이야. 번양과 번아, 그리고 친친도 류의 반이라도 닮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한다. 내가 너무나도 큰 것을 바라는 건가. 류가 나에게 뭐라고 말을 시작했어.
“실은, 사부님께서 어제 가르쳐주신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습니다.”
“......서두르지 마라.”
“그렇지만! 전 사부님처럼 하루라도 더 빨리 강해지고 싶습니다.”
“네 마음은 안다. 허나 조급함은 일을 그르치게 된다.”
“네. 잘 알겠습니다.”
“너는 언제나 잘 따라와 주고 있다. 그거면 된다.”
“그게~ 저보다 말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아예 기억조차 못한다고 합니다.”
“......하아~ 한숨만 나오게 만드는 녀석들이군.”
“사부님. 경솔하지만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뭐지.”
“저와 대련해주시겠습니까?”
“뭐야. 지금 자만하는 건가.”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다른 아이들이 걱정되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루카 사부님.”
“그러지.”
그렇게 류의 부탁으로 나는 비무를 가정해 대련을 하게 되었지.
확실히 제자들 중에서는 류가 가장 뛰어나지만 그래도 역시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야. 봐주는 거 없이 대련한 결과 당연히 내가 이기지. 류는 사부님의 실력은 언제 보더라도 존경스럽다며 앞으로 더욱 무공을 갈고 닦겠다고 말했지. 아무래도 류는 내 실력을 ‘홍문신공(弘文神功)’ 의 힘인 것이라 생각하겠지.
류와의 비무를 끝낸 직후에 친친이 달려와 서연이가 아프다고 하더라고.
그렇다면 서둘러서 서연이가 있는 숙소로 가야지. 와보니까 서연이가 많이 아프더라고. 이에 번양이 무슨 풀을 구해오면 된다고 해서 구해와 그가 알려준 방법대로 약을 만들어 먹였지만 달라지지 않았어. 오히려 더 악화될 뿐이더라고. 그래서 제자들과 함께 대나무 마을의 의원으로 가서 이런 저런의 조언을 들었어.
뭐. 그 과정에서 충각단 동해함대가 마을로 쳐들어와 행패를 부리더라고.
범인은 동해함대의 기지관리관인 포화란의 짓이지. 날 만나서 할아버지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마을로 쳐들어온 거라고. 함께 왔던 주방장 태장금이 대신 사과했지만, 그게 납득이 되기는 하겠는가. 그 이후로도 여러 사건들이 지나갔어. 간략히 줄인다면 동해함대장이자 포화란의 할아버지인 해무진을 구출하는데 성공하고.
대충 그런 일들을 끝내고 무일봉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어.
대나무 마을의 의원에서 제자들에게 말했었거든. 서연이가 다 나으면 무일봉으로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이제 일을 다 마쳤으니까 돌아가야지.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잖아. 보나마나 돌아가면 번양이 사부야~ 사부야~ 이러면서 또 반말을 하겠지. 번아도 마찬가지고. 서연이도 다 나았으니 이제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