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도시
기억의 집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부, 부자들이 산다는 레골레트 구역에 죽은 자들의 도시가 있다. 여느 주택지와 같이 크고 작은 석조 건축물이 블록을 이루고 있다. 화려한 장식이나 조각이 많아서 조각공원처럼 보이지만 실상 죽은 자의 거처다. 묘역 밖은 아파트와 빌딩으로 이어져 있다. 묘지를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우리네의 정서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죽음과 삶이 이웃해있는 광경이 편안하다.
고즈넉한 평화가 흐르는 죽음의 공간이다. 골목골목 색다른 모양, 각양각색 규모로 이루어져 묘지의 전시장처럼 보이는 관광명소다. 묘지는 죽은 자를 기억하면서 살아있는 자를 위로하는 기억장치일 뿐이다. 1800년대 부유했던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유명 인사, 열세 명의 대통령, 에바 페론이 영원한 기억 속에 잠들어 있다. 대를 내려가며 가족묘로 활용하는지라 지금도 끊임없이 새로 입주하는 진행형 거처다. 원래 성당 뒤뜰에 안치한 묘지가 하나둘 늘어나면서 성당은 상대적으로 왜소해지고 묘지는 도시를 이루었다. 죽음이 삶보다 화려한 곳으로 보인다.
죽은 자도 빈부의 차이는 극명해서 호화 묘지는 규모가 신전처럼 거대하고 각종 조각과 종교적 장식으로 화려하다. 장소가 유한한지라 산 자들의 집보다 훨씬 비싼 값에 거래되어 이곳 레골레트에 입주하는 것만으로도 부의 상징이라 한다. 대부분 묘지는 자손들의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져 고인의 유품, 생화, 가족사진 등이 정돈되어 있어 방금 다녀간 듯 정갈하다. 증, 개축 중인 묘지와 허물어져 가는 묘지도 보인다.
페론 대통령의 아내, 에바의 묘는 좁은 골목길 안에 있다. 상대적으로 소박하지만 관광객이 순서를 기다려야 접근할 수 있는 명소다. 가난한 자와 병든 자의 벗으로 살았던 에바의 신화, 그녀에 대한 평가는 양분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잠들어 지금도 시민의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다. 에바상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에비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음악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유투브로 듣는다.
영원한 사랑의 거처
인도 북부 아그라지방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받는 묘지가 있다. 세계 7대 경이로운 건축물 중 하나인 영원한 사랑의 거처, 타지마할이다. 야무나 강변에 자리 잡은, 동서남북 어느 쪽에서 보아도 같은 모양인 이슬람 궁전형식의 묘지다.
무굴제국 5대 황제 샤자한의 두 번째 부인 뭄타즈마할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능묘건축물이다. 미려한 백색의 대리석 건축물에 돔과 웅장한 첨탑, 정교한 문양과 조각으로 새겨진 무굴제국 예술의 걸작이다. 태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 몇 번씩 빛깔을 달리하여 보는 사람의 넋을 뺀다. 웅장한 건물이 공중에 떠 있는 듯 신비롭고 건물과 입구의 수로(水路) 및 정원의 완벽한 좌우대칭은 균형미와 정갈함의 극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연간 3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의 관광지다. 화려한 색상의 사리와 치렁치렁한 장신구를 매단 인도여성들을 바라보며 무덤의 주인 뭄타즈마할의 아름다움을 상상한다.
백색 대리석에 코란에서 발췌한 글귀와 꽃무늬들이 정교하게 상감된 건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예품 같다. 무덤을 짓는 데만 22년, 이탈리아, 프랑스, 터키등지에서 동원된 장인을 포함 2만여 명의 노동자가 동원되었고 장식을 위해 러시아, 중국, 페르시아, 터키 등지에서 28종의 보석을 수입했다고 한다. 그 거창한 건축물 1층에 고작 왕과 왕비의 석관 두 개가 주인이다. 그것마저도 유골이 없는 빈 관이고 정작 시신은 지하에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타지마할을 벗어난다. 산자가 거처하는 땅은 자동차, 오토릭샤, 사이클릭샤, 사람과 개, 소, 낙타, 코끼리까지 가세해서 먼지로 뒤덮이고 무질서로 혼잡하다. 부자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지만 빈자의 삶은 모두 길 위에 적나라했다. 수많은 천막촌과 맨발로 넝마에 의지해서 소나 개와 함께 노숙하며 사는 사람들은 인도 땅 어디서든 보이는 흔한 광경이었다. 타지마할 반경 2킬로미터 내에는 순백의 대리석을 먼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전기차만 운행한다고 한다. 죽은 자의 위세가 대단하다.
死者의 집
나일 강 서부 황량한 사막에 이집트 신왕국 파라오들의 공동묘역이 있다. 왕가의 계곡은 산 정상에서 굽어보고 있는 산의 원곡(圓谷) 한가운데 있다. 투탕카멘을 비롯해 총 64명의 파라오가 잠들어 있던 곳이다.
왕가의 계곡은 부활을 꿈꾸었던 죽은 자들의 도시로 파라오들의 지하 무덤이다. 파라오들은 내세가 있음을 믿었고, 영생을 위해 자신의 유해를 지키는 일에 엄청난 시간과 재화를 투자했다. 피라미드는 웅장하고 튼튼했지만 도굴꾼에게는 확실하게 노출된 표적이었다.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지상에 무덤을 세우는 대신 골짜기나 절벽에 암반을 뚫고 내려가 비밀의 분묘를 만들었다.
고대 왕국 특유의 문화인 암굴분묘는 번영했던 이집트 왕조의 역사다. 수직 갱도를 따라 내려간 묘실 내의, 장대한 벽면은 아름다운 색채의 부조 또는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이시스(Isis)와 오시리스가 관장하고 있는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그림으로 명계를 안내한다. 신들께 영접 되는 왕, 배를 타고 명계를 항해하는 왕, 미이라에 신이 생명을 불어넣는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부활 의식이다. 이 소망을 위해 파라오들은 평생 자신의 무덤을 준비했을 게다.
고대 이집트인은 이곳을 그 어느 곳보다도 신성하게 여겨, 이곳을 침범하는 자는 '침묵의 여신'이 벌을 내린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곳은 신성의 장소가 아닌 두려움의 장소일 뿐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소멸에 대한 두려움, 도굴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 모든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투탕카멘 왕묘를 제외하면 모두 도굴되어서 호화로운 부장품은 사라지고 파라오는 미라의 몸으로 후세에 구경거리가 되었다.
조간신문에 광릉(光陵)이 소개되었다. 조선 7대 세조의 능이다. “내 무덤에 석실과 석곽을 쓰지 말 것이며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세조의 유언에 따라 간소하게 꾸며진 능이다. 후대 왕들이 왕릉을 만드는데 모범이 되었다는 기사가 청량하다.
첫댓글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게급은 죽어서도 존재하는 것, 흔적없이 사라지는 죽음들 부지기수인데 수백,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거대한 능과 무덤은 문화유산이란 보호막까지 쳤으니,
오랫만에 글을 올렸구나. 우리 이교수님 퇴직하시고 또 어떤바퀴를 달고 달리시는지 몹시 궁금하네.
항상 건강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