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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3;1
한국 개신교 인구 열 명 중 한 명은 이단에 속해 있다는 통계가 발표되었습니다.
나르시즘과 종교가 만나면 자신을 열렬히 추앙합니다. 참된 신앙은 자기를
부인하고 가짜 신앙은 자기를 자랑합니다. 기쁨의 이유가 자기 자기자신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인지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Statistics have been released that one in ten Protestant populations in Korea
belongs to heresy. When narcissism and religion meet, they fervently admire
themselves. True faith denies itself, and fake faith boasts itself. You will have
to check whether the reason for joy is yourself or the faithfulness of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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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공, 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언어가 다소 거칠어지고 흥분된 감정이
드러났구나. 바울의 '같은 말과 세 번의 삼가라'는 경고가 주의를 집중시킨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빌립보 교회의 또 다른 어려움은 교회 밖에서 왔는데
그것은 신학적, 정치적 이유였다.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이 자신들을 참된
이스라엘로 만들어 준다고 믿고 율법에 목숨을 걸었는데, 바울의 가르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이스라엘이 된다고 하니 전통을 거슬리는 가르침을
가만히 놔 둘 리가 있겠냐?
Yes, the atmosphere of the writing has changed. The language has become
somewhat rough and you have shown your excitement. Paul's same words
and three warnings of restraint draw attention. There must be a reason.
Another difficulty in the church of Bilibbo came from outside the church, for
theological and political reasons. The Jews believed that the law made them
true Israel and risked their lives in the law, but Paul's teachings are said to
become the new Israel by Christ, so how can they leave the teachings that
intrude on tradition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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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리스도를 거부하도록 하기 위해 신학적 측면을 정치적으로 돌려 로마
황제 가이사에 반역하는 것으로 엮자 바울은 1절에서 대결의 주제를 상기시키는
말로 시작한 후, 이후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붙들고 나아가야 함을 신학적으로
서술하였다(2-16). 앞부분(2-9)에서 그가 강조하는 점은 유대주의자들의 율법
이해는 문제가 있고,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이 맞다 는 주장이야.
Therefore, when the theological aspect was politically turned into a rebellion
against the Roman emperor to reject Christ, Paul theologically stated in verse
1 that he should begin with a reminder of the subject of confrontation and then
hold on to Christ, not the law (2-16). In the first part (2-9), he emphasizes that
Jewish understanding of the law is problematic and that it is correct to hold on
to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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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율법 논쟁을 언제까지 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제도권 교회에서
청년들과 어른들 간의 분쟁은 대부분 율법 논쟁으로 본다. 아빠 청년부 시절에는
주일에 복사도 못하게 했고, 혹여 강대상에라도 올라가면 어른들이 경을 쳤다.
물론 대 예배 때 기타도 칠 수 없었어. 유교적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I don't know how long the old law debate should last, but even today, most disputes
between young people and adults in institutional churches are considered law
debates. When I was a father's youth, I was not allowed to copy on Sunday, and
if I went up to the statue of Kang, adults would pay respect. Of course, I couldn't
even play the guitar during the Great Service. Maybe it's because of the Confucian
atmosp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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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성경공부 모임을 여러 개 했었는데 웬일인지 목사님은 아주 싫어하셨다.
그리고 그 때마다 "건덕 상 옳지 않다고 하셨어. 어쩌면 담임 목사님은 주일 성수
잘하고 십일조 떼먹지 않고, 다른 교회 공부하러 다니지 말고 어른들 말에 순종하는
얌전한 교인이 제일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문제는 본질이란다. 우리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성경이 교회의 권위 위에 있다.' 믿음+할례를 주장하는 것은 육체를 자랑
하는 것이야. 그렇다면 나머지는 모두 부끄러움이 아닐까?
My dad had several Bible study meetings, but for some reason, the pastor hated it.
And each time, he said, "He said it's not right. Maybe the pastor in charge is best
if he is a humble church member who is good at Sunday holy days, doesn't go to
school, doesn't go to other churches, and obeys what adults say. But this problem
is the essence. Our Protestant church says, 'The Bible is above the authority of the
church.' To claim faith + circumcision is to show off your body. So isn't everything
else shame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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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바울에게도 육체를 신뢰하고 자랑할 만한 것들이 있었다. 누구와 비교해도
월등히 많았지. 가문, 혈통, 종교적 열심, 율법의 의,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었어.
이것들은 인생에 유익이 될 만한 것들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는
거야. 덜 유익하다는 것이 아니란다. 바울은 지금까지 유익으로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영혼을 죽음으로 이끄는 치명적 손해였음을 깨달고 하는 말이다.
As you know, Paul had things to trust and brag about. Compared to anyone else,
there was much more. There was no shortage of family, lineage, religious zeal, or
the will of the law. These are things that can be beneficial to life. But Paul considers
all of this harmful. It is not that it is less beneficial. Paul realizes that all of the things
that have been beneficial so far have been fatal damage that has led to his soul's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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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서 난 의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 앞에 설 때, 그 가치는 배설물과 다름없어진다.
교회는 세상의 손익 계산이 뒤집어지는 곳이거든. 그러니 세상에서 유익한 것이 교회
안에서도 유익으로 여겨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야. 명함과 스펙이 그리스도인 됨과
교회됨을 위협한다면 그것은 덜 유익한 것이 아니라 아주 해로운 것이다. 바울은 자기
에게 주어진 의가 부활의 소망으로 이끈다는 것을 확신했고, 육체를 신뢰하던 과거를
뒤로 하고 주께서 부르실 날을 고대하며 날마다 주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본받아 살았다.
In the law, when righteousness stands before God's righteousness, its value is no less
than excrement. The church is a place where the world's profit and loss calculations
are reversed. Therefore, we should be wary of what is beneficial in the world being
considered beneficial even in the church. If business cards and specifications threaten
to be Christ and to be a church, it is not less beneficial, but very harmful. Paul was
convinced that the righteousness given to him led to the desire for resurrection, and
he lived by copying the hardships and deaths of your crosses every day, leaving the
past of trusting the body behind and looking forward to the day the Lord will c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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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진정 그리스도를 아는 길이요 부활의 권능을 경험하는 길임을 알았던 거야.
주 앞에 서는 날 우리가 기댈 것은 우리가 한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똥처럼 여기고 있는가?
He knew that it was really the way to know Christ and to experience the power of
resurrection. On the day we stand before the LORD, what we will lean on is not
what we have done, but what Christ has done.
Am I treating everything like poop for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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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아는 것과 기뻐함의 연관성은 무엇인가?
나는 왜 우울한가?
우리 시대의 육체를 신뢰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스도 인이 상황과 상관 없이 기뻐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What is the connection between knowing value and joy?
Why am I depressed?
What is it about trusting the body of our time?
If Christians can rejoice regardless of the situation,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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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같은 말을 함(1)
대적 자를 경계(2-4a)
a.요지, 개, 악한 일꾼, 지르는 자를 조심하라:2
b.근거, 우리가 참 할례자이기 때문이다;3-4a
바울 모습1, 그들의 주장에 비추었을 때(4b-6)
a.요지,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다:4b
b.설명, 할례, 미족, 율법, 열심, 의의 측면에서:5-6
바울 모습2:바울의 주장에 비추었을 때(7-9)
a.요지,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로 여긴다:7
b.설명,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다:8-9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정체성(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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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1a)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1b)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1c)
개들을 삼가고(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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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2b)
손 할례 당을 삼가라(2c)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3a)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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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 당이라(3c)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4a)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4b)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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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5a)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5b)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5c)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6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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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6b)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7a)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7b)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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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8b)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8c)
그리스도를 얻고(8d)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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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9b)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9c)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 로서 난 의라(9d)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1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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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10b)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10c)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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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가 아닌 주 안에서 기뻐하라_
rejoice in the Lord, not the flesh
육체가 아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자랑하라_
Show off the knowledge of knowing Christ, not the body
육체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운 구원을 이루라_
Do the righteous salvation of God, not the body
육체를 주장하는 것과 다툼이나 허영이 일어나는 것의 깊은 연관성을 생각해
보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한 주간 살면서 다툼과 허영가운데 우울한 한
주간을 보냈는데 그것은 내가 아직도 육체를 의지하고 있다는 확증임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주님, 이제는 내 자신의 것들을 신뢰하지 않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살게 하옵소서.
Thank you for letting me think about the deep connection between arguing
for the body and arguing or vanity. I have spent a gloomy week in the midst
of quarrels and vanity living for a week, and I repent when I realize that it is
a confirmation that I am still relying on the body. Now, O Lord, let me live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without trusting my own things.
2023.12.24.sun.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