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그리움이 별이 된 곳
# 마음에 세운 절집
몇 년 째 일상에 쫓기다 보니 늘 가슴에 담아둔 부석사에 가보지 못했다. 며칠 전 부석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는 소리를 듣고 나의 무심함을 돌아봤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가끔씩 무심히 앉아 눈이라도 잠시 감고 있노라면 무량수전도, 안양루도, 선묘 아가씨도, 너럭바위 부석도, 내 가슴속에 찾아와 안부를 전하곤 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겐 그런 마음의 여유 조차 없었다.
나에게 부석사는 가끔 그렇게 가슴으로 만나는 절집이었다. 밤마다 강물에 떨어지는 별들처럼 들꽃이 되어 피어나 아름다운 향기를 전해주는 그런 절집이었다. 나는 가끔 사람들에게 그리움이 쌓이면 부석사 무량수전 석축에 걸터앉아 눈 한번 감아 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람과 풍경이 만나 그리움을 달래는 소리 한 자락 들어보라고 한다. 그곳에 가면 그리움은 바람이 되고 소리가 되고 별이 된다. 그래서 부석사에 가면 켜켜이 쌓인 그리움들이 종일 풍경으로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 큰 산이 만든 절집.
부석사는 산이 만든 절집이다. 태백산맥은 동해와 서해의 분수령이 되어 내려오다 강원도의 북쪽에서 꺼질 듯이 이어오면서 장엄하고 첩첩하게 펼쳐져 나라의 견고한 허리로 휘어져 내렸다.
이 허리는 다시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을 낳고 내려와 자신의 허리만큼 첩첩한 소백산맥을 하나 만들어 영남과 호서, 호남을 돌보고 있다. 부석사는 바로 이 첩첩한 산의 허리인 봉황산이 품고 있다. 이 봉황산은 내성천의 발원지로 서쪽으로 형제봉을 동쪽으로 옥적산, 문수산, 천등산 줄기로 이어진다.
절집이 속한 봉황산을 도외시하고 굳이 ‘태백산 부석사’라 지칭하고 있으니 태백산은 참 덕을 두루 갖춘 산인 모양이다. 그래서 부석사는 큰 산들이 배 아파 낳은 절집이다.
# 큰 스님 무량수전
부석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량수전일 것이다. 산에는 절이 있고 절에는 스님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초라한 절집이라도 수행이 깊은 스님이 있어야 한다. 부석사의 큰스님은 무량수전이다.
천진난만한 얼굴을 한 부처님의 궁전 무량수전, 무량수전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위로 솟구친 버선코 같고 휘돌아 오르는 저고리의 배래기, 뒤채듯 들어 올리는 춤출 때의 손짓 발짓처럼 추녀끝도 성큼 들려 마치 날개를 펼친 듯한 한 마리의 학을 연상시킨다.
지붕 끝 용마루나 기왓골 또한 결코 수평을 이루거나 경사면을 직선적으로 두지 않았다. 살짝 허리께가 꺼져 보이는 듯 하다가 끝에서 예쁘게 치켜 올려져 그 흐름이 짧고 유장해 보이게 하였으며 고요한 가운데 동적인 선율을 가미하고 있다.
사뿐히 들어올린 여인의 치맛자락 같은 조형미, 그 속에 들면 누구나 한떨기 연꽃으로 피어난다. 배흘림이 아름다운 무량수전은 큰 기침 한번 내지 않고 그렇게 봉황산에서 천년을 살아오고 있다. 저 멀리 산파도에 석양이 걸리고 산 그늘이 절 집에 발을 들여 놓으면 자욱한 목어소리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을 기어오른다. 적멸(寂滅)이다
# 바보 부처님 아미타
아미타는 천진스럽다. 욕심도, 아첨도, 비웃음도, 시샘도 모르는, 꾸밈도 과장도 싫어하여 있는 그대로의 자연만을 닮은 무념무상의 부처님이다.
반쯤은 뜬 눈, 아름답고 온화한 눈썹, 세상 사부대중의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길고 큰 귀, 얼굴 전체에 살며시 흐르는 맑고 환한 미소, 그것은 온화하고 너그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미소이다. 아미타의 미소는 바라보는 모든 중생들에게 안식을 주고, 위안을 주고, 위로를 가져다주는 세속에서 쌓인 고단함을 잊게 해 준다. 그래서 아미타는 받을 줄은 모르고 내어주기 만하는 바보 부처님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좋다.
아미타는 존엄을 높이려고 협시보살도 옆에 두지 않았다. 인자하고 너그럽고, 자애로움이 미소 속에 간신히 흐르는 부처님. 당신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절로 손이라도 만지고 싶어진다. 얼굴에 볼이라도 한번 비벼보고 싶어 진다.
# 선묘, 그리운 사람
부석사하면 의상 스님과 선묘 낭자의 사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선묘의 끝없는 사랑을 불법으로 승화시킨 의상 스님의 법력, 그런 스님을 도와 죽어서까지 스님을 보살핀 선묘 낭자의 물무늬 같은 지고지순한 사랑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 부석사에 가면 선묘 낭자를 만날 수 있다. 그런 사랑을 만날 수 있다.
앵두 같은 붉은 입술, 가냘 픈 손, 입가에 맴도는 미소, 복스런 얼굴 그리고 볼수록 정이 가는 사람. 선묘 낭자와 마주 서면 마음과 마음 사이 두고 온 그리움들이 하나둘 일어나 자리를 편다. 그럴 때 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그 긴 기다림을 그리움으로 승화시킨 마음을 진실로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의 그 마음을 죽도록 보고 싶어 했습니다. 가슴에 이는 그리움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당신의 변화지 않는 마음, 그것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잠들지 않는 내 그리운 사람입니다. 당신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글.김태환<영주향토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