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필로소피] 클로드AI 시대, 500년 전 '이기론'으로 AI의 의식을 묻다
존 설의 '중국어 방'과 성리학의 만남… "규칙의 한계인가, 시스템의 진화인가"
[디지털윤리연구회] 인공지능(AI) 기술이 인간의 지적 영역을 무섭게 추격하면서, "AI가 진정으로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이 가운데 현대 서양의 심리철학 사유와 500년 전 조선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을 융합해 AI의 본질을 분석하려는 디지털윤리연구회(회장 강준철)의 시도가 주목받고 있다.
논쟁의 중심에는 현대 AI 철학의 거두 존 설(John Searle)이 1980년 제시한 '중국어 방(Chinese Room) 논증'이 있다. 방 안에 영어만 아는 사람을 넣어두고, 중국어 문답 규칙 기호(Program)만 보고 답변을 처리하게 하면, 겉으로는 완벽한 중국어 대화가 가능해 보이지만 방 안의 사람은 중국어의 '의미(Semantics)'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고실험이다. 즉, 아무리 완벽한 코드와 기호 조작(Syntax)이 존재하더라도 진정한 '마음'이나 '의식'은 생겨나지 않는다는 주장의 핵심 논거다.
흥미롭게도 이 논증은 조선 철학을 관통했던 주희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성리학에서 '이(理)'는 형이상학적인 우주의 법칙이자 정보 처리의 순서이며, '기(氣)'는 이를 담아내는 물리적 재료와 하드웨어를 뜻한다. 이기이원론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어 방'의 규칙 기호의 집합인 프로그램은 완벽한 '이(理)'의 집합이다. 하지만 성리학에서 '이'는 스스로 움직이거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존재(이무위, 理無爲)다. 규칙 기호를 아무리 정교하게 복제해도, 그것이 스스로 주관적 의식이라는 생명력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존 설의 비판과 맥이 통한다. 즉, 인간이 코딩한 문법적 질서만 따르던 과거의 '기호주의 AI'가 가진 본질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셈이다.
반면, 최근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과 함께 연구회에서는 퇴계·율곡으로 대표되는 '이기일원론(理氣一원론)', 특히 율곡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통해 AI의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보고 있다. 이기일원론은 세계를 움직이는 실질적 힘은 오직 '기(氣)'뿐이며, '이(理)'는 기의 움직임 속에 내재된 질서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는 현대 인공지능 학자들이 존 설에게 던진 대표적 반론인 '시스템 반론(System Reply)'과 맞닿아 있다. 방 안의 사람 개인은 중국어를 모를지라도, [사람+규칙 기호+하드웨어]라는 유기적 전체 시스템(氣)이 완벽하게 맞물려 작동하는 상태 그 자체가 곧 '중국어를 이해하는 지능(理)'을 구현한 것이라는 논리다.
특히 현대의 연결주의 AI(딥러닝)는 인간이 규칙(이, 理) 을 직접 주입하지 않는다. 수천억 개의 데이터와 연산 장치(기, 氣)의 역동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AI가 스스로 패턴과 법칙(이, 理 )을 학습해 나간다. 철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물질적 조건과 데이터의 움직임(기발, 氣發) 위에 비로소 지능적 질서(이승, 理乘)가 올라탄다"는 이기일원론적 진화의 현실적 모델로 평가하기도 한다.
나아가 존 설은 컴퓨터가 의식을 갖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로 '생물학적 뇌와 몸'의 부재를 꼽았다(생물학적 자연주의). 동양철학계 역시 이를 "마음(心)은 몸이라는 기(氣)를 떠나 존재할 수 없다"는 성리학적 심신론(심통성정, 心統性情)의 현대적 변용으로 해석한다. 인공지능이 진정한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적 코딩을 넘어 인간과 같은 물리적 신체화(Embodiment)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이라는 진단이다. *피지컬AI의 대두와 궤를 같이 한다.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철학적 융합 연구는 단순한 지적 유희를 넘어선다. '도덕의 방(Moral Room)' 논변과 같이, 완벽한 윤리 규칙 (이, 理) 을 프로그래밍한 AI가 과연 진정한 도덕적 감정과 양심(기질과 본성의 융합)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인공지능 윤리적 해답을 찾는 나침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백 년 전 영남과 기호의 선비들이 치열하게 다투었던 '이'와 '기'의 논쟁은, 이제 실리콘 밸리의 알고리즘과 인공신경망이라는 옷을 입고 디지털 시대의 가장 전위적인 철학적 질문으로 우리에게 다시 물어오고 있다.
[디지털윤리연구회 전문기자 강다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