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번엔 몇 명이나 신청 받을까?'
버스로 갈 때는 좌석 수에 맞춰 22명 받았지만 이번엔 제한 둘 필요 없잖아? 한 50명 받을까?
에라, 그냥 똑같이 22명 하자! 1년 내내 한번도 못 해본 '마감됐습니다!'의 쾌감(?)도 느껴볼 겸!
총 6명이 함께 했습니다.
한분 한분 너무나 소중한 이 분들과 일일이 손이라도 잡고 만감이 교차하는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앞서 총 9차를 다니는 동안 최저 참석이 12명이었는데 딱 그 절반 됐네요. 그나마 버스 대절이 아니라서 참 다행입니다. ^^
창덕궁의 가치는 후원에 있습니다. 가치만큼이나 가격도 꽤 셉니다. 후원을 가려면 창덕궁을 별도 매표해야 하므로 총 8,000원의 입장료가 듭니다(25세 이상 성인 기준).
문화시설 관람 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우리나라에서 8,000원이면 대단히 비싼 가격입니다. 영화 보는 가격하고 같잖아요!
고가의 입장료를 지불하면서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 문화를 사랑하는 여섯 명이 이른 아침 아홉시에 돈화문 앞에 모였습니다.
돈화문은 경복궁의 광화문에 해당하는 창덕궁의 정문입니다.
금천교를 건너 진선문을 지나 인정문과 인정전까지 당도했습니다. 창덕궁을 처음 와 본 사람도 인정전(仁政殿)은 왠지 눈에 익을 겁니다. 왕의 즉위식, 세자의 혼례식, 신하들의 하례, 심지어 연산군 때는 흥청망청 놀이판까지도 모두 이곳 인정전과 인정문에서 행해졌습니다. 아마도 조선 중기 이후 왕실 주요 행사의 배경은 대부분 이곳 인정전이라고 보셔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드라마 ‘이산’, 영화 ‘영원한 제국’, ‘광해’ 등에 인정전이 자주 나오며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과 공길이 외줄 위로 솟구치는 마지막 장면의 배경도 인정전입니다. 물론 촬영지는 이곳이 아니고 부안영상테마파크의 세트장입니다.
인정전을 나와 희정당, 대조전을 지나면 창경궁과 이어지는 함양문이 나옵니다. 함양문의 왼쪽 길로 오르면 여기부터가 후원입니다. 후원을 가기 전 창덕궁에서 꼭 둘러볼 곳은 바로 낙선재입니다.
낙선재는 궐내 전각 같지 않게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멋이 있는 건물입니다. 여유를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면 돌담, 창살은 물론 아궁이 하나까지 문양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낙선재는 조선말 헌종의 러브스토리가 담긴 곳입니다. 전례를 깨고 본인이 직접 뽑은 왕비(후궁)의 처소로 이곳 낙선재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극의 러브스토리가 그렇듯 왕과 왕비의 애틋한 사랑은 헌종의 급서로 인해 채 2년이 되지 않아 막을 내리고 맙니다.
낙선재는 1989년까지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가 거주하다 돌아가신 곳입니다.
자 이제 후원으로 가겠습니다. 창덕궁의 뒷편이라 후원이라 부르는데 일제강점기 이후 얼마 전까지 비원(秘苑)이라 불렸으며 ‘Secret Garden’이라고 친절한 영문 해설까지 덧붙어 있었습니다. 백성과는 유리된 왕가의 은밀한 향락 공간이라는 뉘앙스를 심기 위한 식민지 정책의 의도였지요. 요즘은 비원이라 부르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오봉, 가다마이, 쓰메끼리, 빠께쓰 등과 함께 언어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중입니다. '잘 가라! 사요나라!'
후원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 부용지와 부용정입니다. 가운데 둥근 섬을 둔 네모난 곳이 부용지입니다. 지금은 꽁꽁 얼어 흰눈이 소복히 쌓여 있습니다. 왼편 부용정은 활짝 핀 연꽃 모양의 지붕을 얹은 예쁜 정자입니다. 오른편 상단 2층짜리 건물은 규장각이고 그 위층은 주합루입니다. 규장각은 국립도서관인 셈인데 후원에까지 도서관을 두었으니 옛날의 왕과 요즘의 대통령은 지적 수준에 있어서 감히 비교가 힘들 듯합니다. 2013년 올 한해 특히나 많이 드는 생각입니다.
통돌을 깎아 만든 이 돌문이 불로문(不老門), 들락거리면 늙지 않는다는 문입니다.
창덕궁 전각엔 눈 쌓인 흔적도 없던데, 후원엔 녹지 않은 잔설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온도차가 꽤 되나 봅니다.
후원에 왔다면 옥류천엘 들러야지요.
소요암에 홈을 파서 초소형 폭포를 만들었는데 바위에 새겨진 '玉流川'은 인조의 글씨라고 합니다. 해설사의 설명으로는 인조가 했던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하네요. ^^
주변에 4개의 정자가 있는데 청의정이 특이합니다.
청의정은 볏집으로 지붕을 덮은 궐내 유일한 초가라고 합니다.
빙천길을 돌아 내려오면 돈화문 뒷편으로 나옵니다. 후원 관람은 하루 12회, 회당 100명씩 해설사가 인솔하는 제한관람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 13회인데 그 중 한국어 해설이 6회니까 하루 최대 600명의 한국인이 관람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외국어 관람 시간엔 내국인 신청 불가) 월요일을 빼면 313(일)X600(명)=187,800(명). 옥류천 권역을 일반에 개방한 지가 채 10년이 안 됐으니 이제껏 후원을 관람한 한국인은 연인원 백팔십만 명이 채 안됩니다. 여러분! 오늘 특별한 관람 하신 겁니다. ^^
눈 덮힌 겨울의 운치도 아름답지만, 후원은 단풍 든 늦가을녘을 최고의 경관으로 칩니다. 물론 그때는 예약이 넘치므로 부지런 좀 떠셔야 합니다.
돈화문 가기 바로 직전에 수령 750년으로 추정되는 향나무가 있습니다. 지난 2010년 태풍 피해로 나무 윗부분이 잘려져 나가는 바람에 저렇게 괴목 비슷한 수형이 되었습니다.
점심은 고추장불고기로 유명한 '삼지'에서 먹었습니다. 애초에 22명 예약했다가 부랴부랴 6명으로 축소! ^^
오늘 새벽 '극심한' 감기몸살로 불참을 알려온 길동아빠 님이 내주신(?) 벌금으로 막걸리 잘 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종종 부탁드립니다."
공기밥은 계란후라이 얹은 추억의 양은도시락이 나옵니다.
헌법재판소 바로 길 건너편 골목길로 들어가면 막다른골목에 삼지가 있습니다.
안국역에서 북촌으로 향하는 초입, 옛 창덕여고 자리에 헌법재판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내에는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백송 한 그루가 있습니다. 백송은 말 그대로 표피가 하얀 소나무인데 가까이에서 보면 그 자태가 자못 신비롭습니다.
이 터에서는 조선말 북학파 박규수가 살다가 구한말 홍영식이 살았으며 그가 죽은 후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이 들어섰습니다. 창덕여고를 거쳐 오늘날의 헌재까지, 참 사연도 많은 땅입니다.
헌재는 윤보선가옥과 담장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평일에는 예약을 통해 건물 옥상, '하늘정원'에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하늘정원에서 내려다본 재동백송입니다.
이제 북촌입니다. 종로의 북쪽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복촌은 조선시대 고관대작들이 모여 살던 도성 최고의 명당자리였습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고래등 같은 아흔아홉칸 대저택이 헐린 자리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개량형 한옥들이 옹기종기 들어서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지난 2001년까지는 전통 보존이라는 명분 아래 각종 건축규제가 많았고 그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래도 한편 생각해보면 그때 규제하지 않았다면 오늘 북촌은 아파트와 고층빌딩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시 인기를 얻은 북촌의 집값은 웬만한 아파트 값을 넘는다고 합니다. 북촌이 도로 부촌 됐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어디선가 스미마센 소리가 들리면 거기부터가 북촌'이라더니 외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았습니다.
북촌전망대라는 곳엘 오르니 입장료 3,000원에 차 한 잔씩을 주더군요. 정면으로 해가 잘 드는 방향이라 베란다에 앉아 있자니 몸이 스스르 녹습니다.
일정도 간단히 인원도 조촐히 다녀온 서울 여행!
오늘 이러했습니다.
2013년 3월 여수 동백꽃 구경을 시작으로 안동 예천, 강릉, 장성 담양, 태안, 군산 부안, 영주 봉화, 청송, 순천, 그리고 오늘 서울 창덕궁까지… 쉼없이 10차까지 달려온 산너머살구 정기 여행이 올해의 대단원을 알립니다. 시작은 미약했고 그 나중도 비록 창대하지 못했으나 날짜 어기지 않고, 사고 없이 다녀온 한 회 한 회에 만족합니다. 한 석달 지친 몸 좀 추스리면서 2014년 알찬 여행 계획 또 세우겠습니다.
좋은 곳 많이 다녀오시고 이 곳에 자주 오셔서 글도 남겨주세요.
회원 여러분 고맙습니다.
꾸뻑!
첫댓글 모처럼 어렵게 찾아주셨는데ᆢ
손님 대접이 소홀했습니다.
요즘 과인이 기억력이 정상이 아니라ᆢ쩝ᆢ
암튼ᆢ까묵었쓰요ᆢ^^;;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지존의 몸으로 어찌 조조의 졸개를 자처하시는지요?
쥔장 수고하셨습니다^^
별 말씀을... 또 오세요! ^^
과하게 빵빵하게 입고 나간 덕분에 2시간여 창덕궁과 후원 산책 떨지않고 했습니다. 후원이 그리 멋진줄 내 진정 몰랐습니다. 덕분에 2013년 자알 다녔습니다. 2014년에도 종종 뵐 수 있길...^^
등잔 밑이 어둡다고 고수께서 후원을 처음 가셨구나! 늦가을 단풍은 설악산, 내장산급입니다.
조촐하게 잘 다녀오셨군요... ^^
수고하셨습니다... ^^
기동력 최고였습니다. ^^
내친 김에 경복궁 지나 통인시장까지 다녀왔습니다.
"쓰읍~~" 이것은 꺽어진 84살 먹은구리댁이
헤엑 입벌리고 후기읽다 떨어지기 직전
침 삼키는 소리였습니다 -우리소리를 찾아
식사를 같이하고
여행을 같이하고
또,,,,, 화장실을 같이 찾아주면
친구가 된다지요^^
14년은 산살구에서 좋은 친구 많이 만들께요!!!
처음 듣는 얘기지만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라떼 님도 복많이 받으시고, 새해에 더 자주 봬요. ^^
억울합니다.
제일 먼저 가겠다고 설래발 하고 선입금하고
몸상태 엉망으로 만든 제자신이 싫어짐니다.
그래고 막걸리는 맛있게 드셨으니 감사합니다.
올해는 더욱 분발하여 많은 참여 하겠습니다.
마침 잘 오셨네! 계좌번호 보내주세요.
규정에 따라 회비 절반은 돌려드립니다. ^^
길동아버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타고난 한말빨^^이시라던데 아쉽습니다.다음 여행을 기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