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굴
얼굴 크기가 작아야 미인이란다. 미남자도 마찬가지란다. 얼굴이 크면 아무리 이목구비가 뚜렷해도 잘 생긴 게 아니란다. 얼굴 크기를 줄이는 수술도 있단다. 네모난 얼굴도, 동그란 얼굴도 미인이나 미남자 대열에 끼지 못한단다. 소위 말하는 갸름한 얼굴이 최고의 미남 미녀 조건이란다. 갸름한 얼굴을 가지고 싶어 하는 철없는 젊은 것들은 몇 차례고 그토록 위험하다는 얼굴형 바꾸기 수술을 거침없이 시도한다. 치아교정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어린 시절 나의 얼굴을 갸름한 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은 네모난 얼굴형인데다 두상 자체가 컸다. 하관(下顴)이 발달해 얼굴 아랫부분이 넓었다. 친가 식구들보다 외가 식구들의 얼굴 크기가 유난히 컸다. 어머니의 6남매는 모두 얼굴이 넓고 네모난 모양이다. 일부는 하관이 지나치게 발달돼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다. 나와 다른 얼굴을 가진 가족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 얼굴이 넓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정 시점이 되면서 아래턱이 발달하며 얼굴이 네모난 모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30대 후반이 되면서 나는 완전히 넓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됐다. 신기했다. 내가 이상하다고 여겼던 그 얼굴형으로 내가 바뀌고 있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니 아버지 또한 갸름한 얼굴형이셨다. 아버지가 그러했고, 내가 그러했고… 나이가 차면서 얼굴이 넓어지게 된 것이다. 볼 살까지 보태지면서 말이다.
속담에 ‘씨 도둑질은 못 한다’고 했던가. 한 살이라도 더 나이가 먹으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는 나를 느낀다. 어디 얼굴뿐인가. 식성도, 체질도 닮아가고 있다. 어머니는 내 글씨체를 보면서 아버지 글씨체를 닮았다고 말씀 하신다. 내가 봐도 많이 닮았다. 아버지는 식사를 하실 때 곁에 수건을 두고 수시로 땀을 닦았다. 특히 매운 음식이나 뜨거운 음식을 드실 때는 심각할 정도로 땀을 흘리셨다. 어려서 그 모습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밥 먹는 게 힘든 일도 아닌데 왜 땀을 흘리실까’ 생각했다. 마흔 살을 넘기면서 내가 수건 없이 밥을 못 먹는 사람이 됐다. 아버지도 30대까지는 안 그러셨다고 한다.
아내의 얼굴은 각고 갸름한 편이다. 전형적인 미인 형 얼굴이다. 아내를 닮았는지 두 아들 녀석도 모두 얼굴이 갸름한 미남자 형이다. 다행스럽다. 그렇지만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녀석들도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으면 별 수 없이 제 할아버지처럼, 제 아버지처럼 결국 네모 형 얼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녀석들도 어차피 얼굴 넓은 전형적인 한민족의 얼굴 모양을 갖춘 집안의 자식이니 말이다. 외가 식구들을 많이 닮는다면 사정은 조금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별 수 없을 것 같다.
어려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사는 사람도 일부 있지만 대개는 자라면서 얼굴모양이 바뀐다. 이목구비가 변하기도 하지만 얼굴형이 바뀌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동창 모임에 나가면 도저히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친구들이 가끔 나타난다. 대개는 얼굴을 전혀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은 한 명씩은 어릴 적 모습이 온 데 간 데 없는 전혀 새롭게 바뀐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동창회에서 친구들을 만나 느끼는 또 한 가지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 부모의 모습과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친구는 내가 어릴 적 봤던 제 아버지나 어머니의 얼굴 모습을 판박이로 닮는다. 신비한 자연의 조화이다.
한국은 지구상의 많은 나라 가운데 성형수술 세계 1위의 나라이다. 성인 여성 5명 중 1명이 성형수술을 했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나라이다. 그것도 2위, 3위인 그리스, 이탈리아와의 차이는 참으로 크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나이가 들수록 제 아버지나 어머니를 닮아가는 모습을 찾아보기란 참으로 쉽지 않을 것 같다. 더욱이 식생활이 서구화 되며 한국인의 체형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외국인들과의 국제결혼도 매년 큰 폭으로 늘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 얼굴을 점점 잃어가게 되는 건 아닐지 염려스럽기까지 하다. 5000년을 지켜온 얼굴인데 말이다.
서산 처가에 갔다가 마애삼존불을 보러 갔던 일이 있다. 수 없이 서산을 다녔지만 마애삼존불을 볼 기회는 없었다. 하루는 마음먹고 나서 마애삼존불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백제의 미소’라는 별칭이 붙어있는 서산매애삼존불은 널찍한 얼굴형을 가진 백제인이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소박한 멋이 일품이다. 2000여 년 전 사람 얼굴이 지금의 사람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한국인의 얼굴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는 조각이나 그림 등을 통해 한민족의 얼굴 형태는 오랜 세월 지켜졌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누천년 지켜온 식생활이 바뀌고, 귀화하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또 성형수술 공화국이 돼 가면서 우리의 너그럽고 온화한 얼굴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서구 형 얼굴을 가진 여인이 미인의 기준이 되면서 우리의 얼굴은 점차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앞으로 몇 세대가 지나면 전형적인 한민족의 얼굴은 사진 속에서나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박물관에 가서 확인할 수 있는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5000년을 지켜온 얼굴인데 말이다. 안타깝다. 조바심 난다. 그래도 우리 얼굴은 지켜야 하는데~
첫댓글 자연스레 늙어가는 모습도 참 아름답습니다~~ 전 장방형 얼굴이지만 좋습니다~ 사진 찍을때 턱을 조금 당기면 약간은 갸름해보이거든요~